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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13화 (794/849)

Chapter 813 - #96. 진해솔 (117)

"이런 위험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예, 폐하! 황궁에 나서실 때마다 자객이 찾아와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런 일을 왜 숨겼단 말이냐!!"

게오스 황제는 그동안 비앙카가 이런 큰일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이게 전부 황제의 권위가 부족해서 생긴 일인 것이다.

비앙카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고 있는 사람이 한 둘인가?

굳이 조사해보지 않아도 귀족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 게 분명했다.

"폐하의 근심이 되고 싶지 않으셨다고 하옵니다."

"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황제는 참담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한참 홀로 생각에 잠겼던 게오스 황제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와 결심이 차올라 있었다.

"더 이상 귀족들이 비앙카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게 할 거다."

그들이 비앙카를 계속 툭툭 건드릴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이국에서 온 상인이기 때문이었다.

이국의 상인.

결국 평민이지 않겠는가?

귀족들이 평민을 죽인다고 문제가 되는 일은 없다.

그걸 알기에 비앙카도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을 황제인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걸 것이다.

그녀가 안다고 해서 귀족들을 처벌하기까지 너무 많은 고생이 필요할 게 뻔하니까 말이다.

'평민이니까 건드린다. 그럼 평민이 아니게 하면 될 것 아닌가?'

황제는 그녀에게 어떤 작위를 내려야 할 지 고민했다.

그녀에게 작위를 내릴 명분은 충분했다.

축제가 무사히 성공적으로 끝나기만 한다면, 그리고 국책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된다면 그 모든 공이 비앙카에게 있지 않겠는가?

애초에 그녀로부터 시작 된 일이니 말이다.

황제가 비앙카의 일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사이, 눈치를 보던 궁인이 슬며시 황제의 귓가에 속살거렸다.

"뭐라? 증거가 있다?"

"예, 폐하. 주인께서는 흉수가 누구인지 분명한 증거를 갖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아무리 그녀가 평민이라 해도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신하이지 않은가?

그런 자에게 자객을 보냈으니, 증거를 보여주고 황실을 모독한 죄를 물으면 됐다.

"냉큼 가져오거라. 비앙카가 깨어나면 바보처럼 하지 말라고나 하겠지! 저 아이가 깨어나기 전에 처리할 것이다."

황제의 말에 궁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증거를 바쳤다.

황제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도 매끄럽게 진행 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독에 당했다고 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로인해 쓰러진 건 연기였다.

비앙카는 황제에게 무사히 증거들이 전달 된 것을 확인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저것들이 폭탄이 되어 귀족들을 뒤집어 엎을 것이다.

"아우, 꼬셔."

비앙카가 아프다는 핑계를 댄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도망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황제의 시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어수선한 분위기를 완전히 감추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해서 그녀의 몸에 변고가 생겼다고 함으로써 어수선해진 분위기의 핑계를 댄 것이다.

지금까지는 다행히도 그 변명이 잘 통하는 듯 했다.

"모두 잡아 들여라!"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폐하!!"

"비앙카는 짐이 총애하는 이다. 그런 이의 목숨을 함부로 해하려고 했다는 것은 짐을 우습게 여기는 일! 황족 모욕죄로 다스릴 것이다!"

황제는 증거를 가져간 후.

축제의 성공으로 흥에 취해 있던 귀족들의 목을 순식간에 잡아챘다.

황제는 귀족들이 정신을 차리고 반발을 하기 전에 증거를 대고 몰아 붙였고, 비앙카에게 자객을 보낸 귀족들을 황족 모욕죄로 죄의 이름을 결론 지어버린 것이다.

평민을 건드리는 것은 큰 죄가 아니나, 황족을 모욕했다는 것은 엄청난 문제였다.

하필 건드린 사람이 황제이지 않은가?

비앙카가 독에 당해서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는 소식이 그와 동시에 귀족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기어코 그 여자가 당했고, 그걸 본 황제가 분노에 찼다는 것을 깨달은 귀족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그 여자의 명줄이 드디어 끝날 모양이구나.'

'총애하던 이를 잃게 될 판이니 폐하께서 저러시는 것도 이해가 되지.'

'어쩔 수 없다. 대의를 위해 희를 희생하는 수밖에.'

'증거가 너무 명백하지 않은가? 쯧쯧쯧, 그러니까 일을 처리할 때 주의 했어야지. 무능한 놈들은 지금 손절하는 게 맞다.'

귀족들은 비앙카와 귀족 몇 명의 목숨을 맞바꾸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걸린 귀족들의 면면이 그리 중요한 귀족들이 아니라는 점이 귀족들을 너그럽게 만들었다.

대부분 걸린 귀족들이 꼬리에 해당하는 자들이었다.

'꼬리는 잘라내고 다시 키우면 되는 일.'

현 게오스 황제는 축제와 국책 사업을 통한 업적으로 입김이 꽤 쎄진 상태였다.

혹여나 황제에게 밉보여서 국책 사업에서 빠지라고 할 지도 몰랐다.

황실에서 주관하는 국책 사업은 게오스 제국 미래의 근간이 될 사업들.

그 사업에서 빠지는 건 가문에 매우 치명적인 일을 불어 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황제의 분노를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

"귀족들에게 고문을 가해라! 그들만의 짓이 아닐 것이다. 진정한 배후를 찾아낼 것이다. 이번 일에 가담한 자들은 모조리 참할 것것이야!!"

귀족들은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게오스 황제에게 비앙카가 어떤 의미인지 상상도 못하는 것이고.

그녀는 단순히 신하로 취급할 수 없는 존재였다.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알아 준 친구였고, 어떨 때는 소울 메이트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이대로 잃을 수는 없다! 제대로 처벌을 해야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야.'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아준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녀와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면 허하던 마음을 따듯하게 위로 받을 수 있으며, 조언을 받아서 행동하면 조금씩 자신의 상황이 나아지게 된다.

귀족들이 국책 사업이 시작 되자 투자 기회를 얻고 싶다며 태도를 바꿨을 때 느꼈던 짜릿함을, 황제는 아직 잊지 못했다.

그때 통쾌한 마음을 가진 만큼, 황제는 비앙카가 소중했다.

"꼬리를 자를 생각이겠지."

황제도 이젠 정치가 무엇인지 안다.

비리가 고발 당했을 때, 귀족들이 대부분 하는 행동은 다른 이에게 자신의 죄를 떠넘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죄를 떠넘기고 본인은 아주 작은 처벌만 받고 유유자적 고고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런 꼴은 절대 봐줄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 자의 밑바닥을 보고야 말 것이다.

자신을 위해 이런 일을 숨긴 비앙카의 고운 마음을 위해서라도.

"차도는 없는 것이냐? 목숨이 위험한 것은 아니라 하지 않았는가! 헌데 왜 아직도 일어나질 못해!!"

그때부터 황제는 나 홀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정확히는 관료들에게 일을 시킨 것이겠지만, 일이 진행 되는 것을 일일이 확인을 하는 것 만으로도 굉장한 거였다.

그리고 비앙카의 처소에 들려 그녀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다.

"송구하옵니다. 오랫동안 음독 해온 탓에 독이 이미 몸 곳곳에 퍼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독을 해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허면 언제쯤 회복을 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냐?"

"...장담할 수 없사옵니다."

으드득-

황제가 이를 갈았다.

비앙카의 얼굴이 예전보다 훨씬 수척해져 있었다.

그 안타까운 모습을 도저히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던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를 이렇게 만든 놈을 반드시 잡으마. 그 전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다. 너는 반드시 이 아이를 회복 시켜야 한다."

"예, 폐하."

치료사에게 비앙카를 맡겨둔 황제는 재차 각오를 다졌다.

비앙카가 깨어나면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너를 해친 놈들을 내가 모두 처리했다! 그러니 이젠 마음 놓고 짐의 곁에 있거라! 라고 말이다.

♧ ♧ ♧

"...갔어?"

"예."

황제가 사라진 이후.

비앙카가 슬며시 한 쪽 눈을 떴다.

초췌한 안색은 화장으로 커버했고, 사경을 헤매는 연기 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게오스 황제의 총애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세상이 무너진 사람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요. 들키는 줄 알았잖아요."

비앙카는 숨어 있다가 나타난 데인 남작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름 짜릿한 게 썩 나쁜 경험은 아니었다.

들켰을 때를 상상하면,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막막해지겠지만 말이다.

"황제가 본격적으로 귀족들을 쳐낼 생각인 듯 한데, 어쩔까요? 조금만 더 버티면 재밌는 걸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글쎄요. 보는 재미가 있긴 하겠지만, 귀족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신변에 더 큰 위험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대로 정말 돌아가요?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모처럼 좋은 구경이 흐지부지 될 텐데요?"

"그래도 안 됩니다."

"칫, 고집스러운 사람이라니까."

타협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다.

비앙카는 혀를 차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제 정말 도망쳐야 할 시간이 됐다.

그녀는 아쉬움에 뭔가 더 할 만한 수작질이 없나 고민하다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남작님! 혹시 이렇게도 가능할까요?"

"예?"

비앙카가 자신이 생각해낸 것을 말하니 데인 남작은 난색을 표하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하시려는 겁니까? 게오스 제국에 원수라도 있으십니까?"

"후후후, 주인님의 적대국이잖아요. 애초에 주인님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더 대단한 나라가 있는 것 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요."

게오스 제국이 무너져야 주인님의 제국이 위대해진다.

데인 남작은 비앙카의 광기 섞인 충성에 소름이 돋았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해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좋아요! 마지막까지 완벽한 것 같아."

"게오스 황제가 불쌍하게 여겨지는 군요."

방금 전까지 황제는 비앙카를 위해 귀족들과 척을 질 결심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정작 걱정 받는 당사자가 황제에게 악질적으로 굴고 있으니, 황당한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자신을 저 정도로 믿고 좋아하면 이 정도로 악랄하게 구는 게 꺼려지기 마련일 텐데 말이다.

데인 남작이 이를 지적하니 비앙카가 혀로 자신의 초췌한 입술을 핥고 매혹적인 눈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게 재밌는 거에요. 짜릿하잖아요. 게오스 황제가 나 때문에 펑펑 울었으면 좋겠어요."

절레절레-

데인 남작은 비앙카를 납득하는 것을 포기해버리기로 했다.

저런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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