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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22화 (803/849)

Chapter 822 - #96. 진해솔 (126)

처음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세상에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넘쳐났을 때, 극한의 공포를 느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만큼 무섭고 두려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좀비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을 살다보니 인간이라는 종족은 적응을 해내더라.

‘좀비는 이제 지겹지.’

어느 순간부터 좀비는 그가 사냥하는 '사냥감'이었지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살아가기 위해 부딪치는 '인간'들끼리의 싸움이 더 공포를 안겨주었다.

국가와 법의 테투리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선이 사라졌다고 생각해봐라.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표 한 가지만 생각한 사람들은 놀랍도록 잔인해졌다.

도덕이 무너진 세상.

원시 시대가 이랬을까?

우리가 아니면 모두가 적인 세상은 각팍하고, 살아가기가 무척 힘겨웠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걸까.'

그 사람들 사이에서 그나마 의견이 통하고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 뭉쳤다.

우리라고 모두가 잔인해진 세상에 도덕심을 피력할 수도 없었다.

그 사람들이 잔인해진 만큼, 우리들도 변화에 순응했다.

그렇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살 수 있었던 건 아니야.'

많은 동료가 죽었다.

이젠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흐릿하다.

문명이 사라진 세계에서 옛 동료들의 얼굴을 온전히 기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의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기엔 그의 삶이 팍팍하기도 했고 말이다.

희생 된 이들을 하나씩 잊어갈수록, 그와 일행들은 하나씩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쉘터 완성. 정말 꿈에 그리던 일이야.’

그리고 마침내.

살아남은 사람끼리 쉘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쉘터를 만든다는 것은 '미래'를 준비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우리'만 살아남는 게 아니라 '인류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때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미래가 생겼어. 내가 그동안 고생했던 게 헛되지 않았다는 거지.'

쉘터를 만드는데 성공하고 가장 좋았던 점은 먹을 것을 구하러 폐허가 된 도시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정기적으로 수색대를 보내서 물자를 조달해 오기는 한다.

사람이 살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나 배 곪고, 잠을 자는 것도 힘겨워 하면서 지내던 날과 비교해보면 쉘터를 완성한 지금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몸이 편해지니 사람들은 또 다른 욕망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기.

그러니까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 보면 모두가 늙고 병들어서 죽을 것이다.

100세 시대는 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다시 과거처럼 60세도 장수했다며 박수를 받을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모두가 병에 걸려 죽기 전에 다음 세대를 이어갈 '아이'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쉘터 안에는 본의 아니게 딱 한 명만이 씨를 뿌려줄 수 있었다.

그게 바로 자신이라는 점은 매우 비극적인 일이었다.

왜냐면.

'섹스는...'

어릴 적, 트라우마가 있었다.

아무에게도 입 밖에 내뱉어 본 적 없었던 끔찍한 기억이다.

새 어머니에게 당했던 성폭행.

여자만 성폭행 당하는 게 아니다.

남자도 당할 수 있다.

특히 나이가 어렸던 그는 믿었던 보호자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큰 충격이었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던 비극이기도 했다.

새 어머니의 범행은 가출을 통해 해결 아닌 해결이 되었다.

도망을 친 게 해결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도망칠 수도 없잖아.’

인류의 미래를 위해 사람들이 그에게 바라는 게 생겼다.

하필 그가 전혀 힘을 쓸 수 없는 분야 쪽에서 말이다.

결국 그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했던, 그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이유인 ‘상점’을 통해 의뢰를 넣은 것이다.

의뢰 비용을 내는 것이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

‘좀비는 잡아도 잡아도 계속 생겨나니까.’

70억에 가까운 인류의 숫자.

그들 대부분이 좀비가 되었으니 좀비의 씨가 마르지 않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의뢰를 넣었고, 샇람이 구해졌다.

의뢰를 수행하는 방식은 계약을 맺은 이가 그의 몸에 빙의해서 쉘터 주민들과 섹스하는 것.

자신은 기억하지 않을 수 있으니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완벽한 계획이었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매우 이상하고 추잡스러운 취향에 눈 뜨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 ♧ ♧

그의 인생은 확실히 시간이 흐를 수록 조금씩 더 나아졌다.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만들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사람’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너무도 쉽게 죽어 나가는 세상에서 인연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요즘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요?”

그녀를 보면 행복하다.

대화를 나눌 때,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좋았다.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 게 정상이다.

“별 거 아닙니다. 속은 좀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아직 초기라서 입덧 안 할 때라.”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필요한 건 딱히 없어요. 음~아! 하나 있다. 조심해야 한다고 하니까 조심하고 있긴 한데, 좀 심심하긴 하네요.”

매일 운동하듯이 좀비를 잡던 그녀가 아이를 임신하고 몸을 사리고 있었다.

과거 문명 생활을 하던 때라면 그녀의 손에 책이라도 쥐어줬겠지만,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책은챙길 때 가장 후순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책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추천하려고 해도 딱히 좋은 취미 생활 거리가 없기도 했고 말이다.

“임신 관련 된 책 같은 걸 가져올까 합니다. 태교에 좋은 음악 같은 거 듣게 CD도 구해볼까 싶고요.”

쉘터 내에 임신을 한 여자가 그녀 혼자 만은 아니었기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아기들을 위한 물건들도 잔뜩 가져와야 하고 말이다.

“와~ 그러고 보니 필요한 것들이 엄청 많겠네요. 임산부 복도 필요하고, 슬슬 아기들한테 쓸 물건들도 잔뜩 필요할 거고요. 분유는 어떻게 하죠?”

“분유는…어떻게든 구해야죠.”

마트에 가면 아직 분유가 남아 있기는 할 거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유통기한인데….

‘정 안 되면 내가 상점에서 구매하는 게 맞다.’

아기들을 돌봐줄 수 있는 전문 지식을 갖춘 의사가 쉘터 구성원에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이 부분은 항상 아쉬움을 느끼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연인을 가만히 바라봤다.

‘추잡스럽구나.’

자신의 아이를 임신해 기뻐하는 연인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부푼 배를 보면서 배덕감을 느끼고, 그 감정으로 혼자서 자위를 하는 쓰레기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직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보다 더 큰 문제도 있었다.

‘내 아이로 느껴지지가 않아.’

저 아이를 어떻게 내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아이가 어떤 과정으로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영상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아마 들키지 않았다면 자신은 그 영상을 보면서 자위를 했을 거다.

그리고 영상으로 봤으니 너는 내 아이가 맞는 거라고 인정을 하는 거다.

그래봤자 그녀의 몸에 씨를 뿌린 건 자신이 아닌데 말이다.

‘그럴 리가 있겠냐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솔직히 지금 상태로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아이를 직접 보고 함께 생활하다 보면 정이 생기겠지.

‘어찌 됐든 내 피를 이은 아이일 테니까.’

“임신한지 이제 몇 주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낳고 싶은 건 왜 일까요?”

“…괜찮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상점의 아이템이 많이 필요할 거다.

임산부용 물건, 아이용 물건들을 구하러 가는 과정에서 좀비들을 사냥하며 코인 수급을 할 예정이었다.

그녀가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몸이 상할 일은 없는 것이다.

“걱정 때문에 그렇다기보단, 못 하는게 너무 많으니까 그게 답답한 거에요.”

“좀비 잡고 싶어서 그래요?”

“…아뇨. 솔직히 고백하면 섹스하고 싶어서요.”

“…….”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애써 웃음을 지었다.

임신을 했으면 섹스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임신을 한 이후로 성욕에 더 강한 욕구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미안합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하기 힘듭니다.”

“나도 알아요. 나는 이미 임신 했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양보해야 하는 거. 히잉, 그래도 내 남자인데 너무한 거 같아요. 맛만 보게 해주면 안 되요?”

시도 때도 없이 성욕을 불 태우는 연인 때문에 그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이런 식의 위기를 넘겨야만 했다.

애석하지만, 그는 여전히 연인에게 ‘그것’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서 자위 할 때는 잘만 힘이 들어가면서 정작 그녀와 단 둘이 있기만 하면 힘이 들어가질 않는 것이다.

“미안합니다.”

“칫, 알았어요. 내 몸 생각해서 그러는 거 아니까. 그럼 가슴 마사지 해주세요. 가슴이 커져서 아프거든요. 살살 해줘야 해요.”

“네. 그럴게요.”

성기를 세우는 것을 못하는 거지 가슴 마사지 하는 것도 못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만져주면서 땡땡 부은 것을 살살 풀어주었다.

“아직 배도 안 나왔는데 너무 유난인가?”

“얼마든지 유난 떨어요. 그래도 됩니다. 임산부는.”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임신했을 때만 받아줘요. 시도 때도 없이 기분이 막 바뀌어서 저도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그럼요. 막 대해도 괜찮습니다.”

미안하니까 더 잘해줄 수밖에 없다.

“너무 잘해주니까 자꾸 미안해진단 말이에요. 내 기분대로 하다가 오빠가 저 싫어하시면 어떡해요?”

“그럴 일 없어요. 저 그렇게 변덕스러운 사람 아닙니다. 가볍게 연애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랬다면 이렇게 결실을 맺고 싶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직 나오지 않은 연인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떻게 만난 인연인데 함부로 군단 말인가?

자신은 인연을 그렇게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가 너무 복에 겨워 있어서 그래요. 다른 분들한테는 이러지 않으시잖아요.”

“그만큼 당신이 희생했으니까요. 이건 당연히 받아야 할 자격입니다. 제게 이런 대접을 받는 걸 과분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사정 다 알고 시작한 거잖아요. 괜찮다고 했는데도 자꾸 미안해 하시네요.”

연인이 그의 얼굴로 손을 들어올려 뺨을 쓰다듬었다.

다정한 손길에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연인은 그가 미안해 하는 이유를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 것 때문에 미안한 게 아닌데 말이다.

‘나 같은 쓰레기를 사랑해주는 당신에게 미안해서 그런 겁니다.’

사실 그도 연인과 섹스를 하고 싶기는 했다.

정확히 말해서 ‘다른 남자’와 섹스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게 유일하게 성욕을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뢰를 받은 ‘그’에게 몰래 카메라로 촬영하는 걸 들켰다는 점이다.

그는 카메라에 저장 된 영상을 지우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아마 한 번이니까 봐준다는 의미였을 거야.’

그랬는데 다시 한 번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다면?

그에 대해서 많은 걸 아는 건 아니지만, 한 번은 봐줘도 두 번이나 봐줄 사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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