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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23화 (804/849)

Chapter 823 - #96. 진해솔 (127)

늦게 배운 도둑질, 밤 새는 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이 인간이 그 속담을 아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요?”

-…부탁 드릴 수 있는지 여쭤보는 겁니다.

“흐음….”

-어차피 제 몸으로 하는 거잖습니까? 영상에 나오는 건 제 몸…입니다. 그러니 부담이 없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왜 부담이 없습니까? 노출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대가는 코인이라고 했죠?”

-예.

이 사람, 그동안 잠잠하기에 못된 버릇 들기 전에 멈췄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남자가 기어코 내게 카메라촬영을 대놓고 부탁해왔다.

어차피 섹스를 해야 한다면 코인으로 값을 받고 촬영을 해 달라는 거다.

그것도 여전히 자신의 연인을 대상으로 말이다.

그의 연인은 임신을 한 상태여서 굳이 나와 섹스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촬영은 둘째 치고, 임신했는데 섹스를 하려는 겁니까?”

-몸 상태는 최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녀도 욕구 불만이라 우리 둘 모두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나참. 할 말은 많은데 일단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비앙카의 일이 잘 마무리 돼서 좀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던 중인데, 다른 쪽 미션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쪽도 어느 정도 정리는 해둘 필요가 있긴 한데….’

아무래도 24시간 동안 생활을 하는 첫 번째 미션지와 달리 두 번째 미션은 몇 시간 정도만 빙의해서 섹스를 하고 나오면 되는 지라 수행하는 게 굉장히 편한 편이었다.

‘첫 번째 미션에 비하면 좋긴해. 시간도 얼마 안 들고, ’

다만.

마냥 꿀 빠는 건 봐줄 수가 없는지 의뢰인이 좀.

'진상이란 말이지.'

그게 아마 유일한 단점이지 않을까 싶다.

좀비도 특별했던 좀비 웨이브 그날 이후로 한 번도 같은 일이 벌어진 적 없었다.

항상 섹스하기 딱 좋은 상황에서 눈을 뜨곤 했으니 말이다.

'이 의뢰인이 진상을 부리는 것만 어떻게 잘 넘기면 될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섹스 비디오를 찍어 달라니?

‘나 연예인인데….’

직업적으로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애초에 섹스 영상을 만들어달라는 것에 긍정적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라.

다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기겁'이다.

물론 저 사람이 내 직업에 대해 알 리가 만무하긴 하다.

더군다나 카메라에 찍히는 대상은 내 몸이 아닌 저 사람 본인.

'그러니까 잘만 하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저런 걸 제안이라고 한 거겠지.'

사실 알다시피 나도 섹스 하는 영상을 직접 찍어 본 경험이 있긴 하다.

그땐 내 여자들과 함께 섹스를 해서 촬영이라는 수단이 성감을 돋우는데 쓰였었다.

‘근데 이 사람은 그게 아니잖아. 자기 반참 삼겠다는 건데...’

내 섹스하는 장면이 사내새끼 자위 반찬이 된다?

‘시발.’

욕부터 박아지게 될 만큼 기분이 더럽다.

문제는 촬영을 한 대가로 제법 많은 양의 코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기분 더러운 걸 넘어설 만큼 솔깃한 양이라는 건데.’

코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번 일로 충분히 알게 된 사실이기도 하다.

코인이 많았으면 이런 고된 일을 하지 않고도 죽었던 내 아이도 되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과거로 돌아가서 아이를 살려낸 것이지만 말이다.

'코인으로 안 되는 게 없으니까. 코인은 무조건 많이 모아두면 둘수록 좋아.'

골치 아픈 일도 많았지만, 과거를 바꾼 것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만족한 성과를 낸 일이었고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다보면 언제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코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거지.’

내가 이번 일을 경험하고 생각한 게 있는데 평소에 코인을 벌 기회가 있으면 마다하지 말자는 거였다.

넉넉하게 갖고 있었던 코인을 야금야금 다 쓰고 나니 정말 중요하게 써야 할 일이 생기지 않았는가?

이런 일이 분명 앞으로 또 생길 거다.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이번 일처럼 편하게 코인을 벌 수있는 기회를 놓치기가 아까웠다.

‘그냥 해버릴까?’

어차피 나는 촬영 당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다.

촬영은 투명한 채로 알아서 찍어줄 거다.

내 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찍히는 여자도 내 여자가 아니라 남의 여자다.

유일하게 찝찝한 것은 내 섹스가 ‘남자’의 반찬이 된다는 사실인데….

‘대가로 받는 코인 생각하면 불쾌감을 참을 만 한 것 같기도…? 어차피 지 몸 찍히는 거잖아.’

근데 진짜 이 사람, 이래도 되는 거냐?

“정상적인 취향이 아닌데….”

의뢰는 언젠가 끝나게 된다.

내 의뢰는 쉘터의 여성들을 임신 시키는 것.

지금도 벌써 몇 몇의 여성들이 임신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초음파로 확인이 불가능하다 보니 급하게 임신 테스트기로 여부를 확인 했다는데, 현재 그런 식으로 확실하게 임신 확인이 된 여자만 총 4명이었다.

내가 거기로 가서 꾸준히 여자들을 안은 것에 비하면 솔직히 4명은 적은 거였다.

‘생각보다 임신이 안 되는 건…역시 몸이 달라서겠지.’

그래도 의뢰인의 몸이 씨 없는 수박이 아닌 게 어디겠나?

그렇게 되면 씨 없는 수박을 씨 있게 유전자 조작을 해야하니 복잡해진다.

애초에 병원이 없으니 씨 없는 수박인지 확실히 검증하는 것부터가 힘든 일이다.

“이걸 누구한테 상의할 수도 없고….”

“상의할 사람이 왜 없어?”

“아, 깜짝이야! 애 떨어질 뻔했네.”

“너 이젠 임신도 해?”

“…그럴 리가 없잖아.”

“뭔가 고민할 게 생긴 것 같은데 나한테 말해. 내가 상담해줄게.”

“됐어. 그렇게 심각한 일 아니야.”

아현이, 쟤한테 그런 문제를 상의한다고?

아서라.

차라리 다른 여자한테 하고 말지.

아현이는 절대 상담하기 좋은 상대가 아니었다.

일단 애가 좀 순진하지 않은가?

"내가 봤는데. 엄청 심각하게 한숨 쉬면서 고민하던 거. 나는 영 못 미더워?"

"못 미덥기는. 그냥 너한테 말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서 그렇지."

내 여자들에게 설명을 하기도 그렇다.

어떤 남자가 자기 몸을 빌려주고 대신 섹스를 해달라고 했는데, 이젠 그걸 촬영해 달라고 했다는 걸 어떻게 납득이 가능하게 설명하란 말인가?

'잠깐 설명하려고 생각해봤더니 자괴감이 엄청 드네.'

이건 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그 인간도 그런 좋지 못한 취향은 그만 두는 게 맞고.

"뭔지 얘기라도 해봐. 내가 진짜 상담 잘 해줄 수 있다니까?"

"아니, 해결 됐어."

"???"

"방금 잠깐 생각해봤거든. 너한테 상황을 설명해서 상담 받는 거."

"응. 근데?"

"그랬더니 이게 설명하기가 쉽지가 않더라고. 특히 너한테는 양심에 찔려서 못한달까."

아현이의 눈이 동그레졌다.

"양심에 찔려? 너 뭐 나쁜 짓하려고 하는 거야?"

"나쁜 짓은 아니야. 본인이 좋아하니까. 오히려 나쁜 짓을 해 달라고 요청을 받았거든. 근데 확실하게 결정했어. 안 하는 게 맞다고."

"뭐 그런 사람이 다 있니? 그러니까 대충 비유를 들자면 사기꾼한테 자기한테 사기 쳐 달라고 했다 뭐 이런 거라는 거잖아."

"오. 거의 정확해."

"너는 그걸 왜 할까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당연히 안 하겠다고 딱 잘라서 말했어야지."

"돈 때문이지 뭐."

"돈? 돈 아~! 그 코인?"

아현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코인이 많이 급해? 쓸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그냥 모아두면 좋으니까. 벌 수 있을 때 벌자는 느낌이지."

"당장 필요한 거 아니면 하지마. 정확히 뭘 할까 말까 고민 중인지 몰라도, 나쁜 짓 하면서까지 벌 필요는 없잖아."

"나쁜 짓이 범죄는 아니야. 당사자가 해 달라고 요청한 거니까. 아무튼 덕분에 확실하게 결정했어. 안 하는 쪽으로."

"응응. 잘 생각했어."

아현이가 잘 했다고 하니, 정말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나는 의뢰 내용만 잘 해결하면 되는 거다.

의뢰인에게는 바로 거부 의사를 담은 메세지를 보냈다.

'이걸로 의뢰인도 좀 자제하겠지.'

정상적이지 않은 일에 동조하지 말자.

애초에 고민해보지도 않고 거절했어야 할 일이었다.

-다시 한 번만 생각해주십시오. 제가 정말 급해서 그럽니다.

"아뇨, 다시 생각하고 말고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부분이 걸려서 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그런 영상을 찍는 것 자체를 꺼린 겁니다. 다른 뭔가가 걸려서 거부한 게 아닙니다."

-제 몸이지 않습니까? 솔직히 영상을 볼 전자기기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보일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의뢰인이 완전 질척이고 있었다.

이대로 쉽게 물러나지 않으려는 듯 했다.

"아무래도 '그걸' 해소하기 힘들어서 이러는 것 같은데, 제가 따로 비슷한 영상을 구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 영상에 나오는 여자가 제 연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분명 소용 없을 겁니다.

"......"

취향 한 번 확고하다.

"안 해보셨잖아요. 내가 이걸 왜 도와주고 앉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같은 남자니까 말해주는 겁니다. 언제까지 저한테 몸을 맡겨서 연인 분과 그걸 할 순 없잖습니까? 다른 여자는 몰라도 적어도 연인이라면 스스로 안아보려고 노력은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상점에 트라우마를 없애는 좋은 약들이 많이 있다.

그걸 의뢰인도 모르지 않을 것 같았기에 따로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제가 의뢰가 끝나고 더 이상 빙의를 하지 않게 됐을 땐 어쩌려고 그럽니까? 또 다른 사람을 구해서 연인을 안게 할 겁니까?"

-...정 안 된다면 그 방법도 생각 중이긴 했습니다.

미친 놈아, 그럴 바에야 그냥 네가 트라우마를 고쳐!

속에 있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려고 했으나 꾹 눌러 참았다.

아무 것도 모르고 당하고 있는 연인은 무슨 죄란 말인가?

"취향을 그냥 바꿉시다."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이 사람, 상점을 생각보다 자주 뒤져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아포칼립스 세상이니 생존에 필요한 물건들만 사왔을 거다.

"상점에 잘 찾아보면 성 취향을 바꿔주는 것도 있습니다."

S인 성향의 사람을 M 성향으로 바꿔줄 수도 있는데, 의뢰인의 좋지 못한 취향쯤이야 얼마든지 개조 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예? 취향...그런 게 있다고요? 상점에? 말이 됩니까?

의뢰인은 처음 들어보는지 당황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상점을 두고 말이 되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죠. 존재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곳이니까요. 전 차원의 모든 물건을 경매하고 있는 플랫폼인데."

괜히 코인 만 있다면 못할 게 없다는 말을 재차 언급한 게 아니다.

"적어도 연인을 사랑한다면, 망가진 부분을 고쳐보려고 노력은 해봐야죠. 우리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쉽게 가능하지 않습니까?"

취향을 바꿀 방법이 아예 없는 게 아니다 보니, 바꾸지 않는 것 자체가 연인에 대한 큰 실례였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예의를 지킬 필요가 있는 거다.

지금처럼 거짓말로 속일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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