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24 - #96. 진해솔 (128)
인생 똑바로 살라고 조언을 했지만, 아무런 도움도 안 주고 조언만 하는 건 무책임한 일.
나는 조언을 해준 것에 더해 책임지기 위한 가르침도 아끼지 않았다.
“노하우가 완전 없으시네. 상점 검색을 고작 그거밖에 안 해봤어요?”
예상했던 바대로, 이 사람은 상점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상품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항상 구매하는 것들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정도만 쓰다 보니….
“이런 식으로 이용하면 상점의 한 5%? 그 정도만 이용하는 겁니다. 저는 심심할 때마다 상점을 검색해봐요. 워낙 상품이 많아서 직접 찾아보지 않는 이상 필요한 게 저절로 눈에 들어오거나 하질 않거든요.”
거기다가 상점에서 홍보를 하는 물건들은 기본적으로 구매 코인을 굉장히 비싸게 받아 먹는 편이었다.
같은 효과를 내는 상품이어도 얼마나 상점을 잘 둘러 봤는 지에 따라서 아주 싸게 구매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저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을 구매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쓰면 손해 많이 봅니다.”
쯧쯧쯧, 모처럼 상점 이용권을 갖게 됐으면 상점을 극한으로 써먹어야 하는 법인데.
'원래 남자가 쇼핑을 할 때는 의뢰인처럼 하는 게 대부분이긴 하지.'
쇼핑을 꼼꼼히 하는 건 남자에게 굉장히 곤욕스러운 일이다.
그걸 해야 한다고 하니 막막했는지 의뢰인이 말했다.
-가르침을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족하겠지만, 코인으로 사례하겠습니다.
"고작 이런 걸로 뭐 코인을 줍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튜토리얼 정도만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아무리 코인에 아쉬운 입장이라지만, 이 정도로 팍팍하게 굴 생각은 없다.
그때부터 의뢰인에게 상점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
검색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검색 되는 게 천지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세분화 된 검색 방법을 보며 의뢰인은 많이 놀라워했다.
-이런 게 있는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검색을 이런 식으로도 이용할 수 있군요. 이렇게 세분화 시키면 쓰고 싶은 기능만 쓸 수 있겠어요.
“맞아요, 이렇게 안 쓰면 손해에요. 필요하지 않은 능력까지 있고 그 값대로 비싸게 코인을 들여야 하니까요."
의뢰인은 나쁘지 않은 학생이었다.
적어도 설명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재차 설명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니까.
"예를 들어서 이 상품을 봅시다. 이건 가격이 16만 8천 코인이죠. 성능은…이 상품은 15만 5천 코인인데 방금 봤던 성능이랑 똑같죠?”
-하! 정말 그렇네요. 원하는 능력이 한 가지라면 굳이 다른 능력까지 덧붙여 있는 비싼 걸 구매 할 이유가 없죠.
“맞아요. 정확히 봤어요.”
내가 예시 문제로 몇 가지 상품을 검색해서 가장 좋은 물건을 골라보라고 하니, 시간이 오래 걸려도 제법 괜찮은 상품을 골라왔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 다 드린 것 같네요. 잘 하시는데요?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직접 필요한 물건들을 검색해보시죠.”
-벌써 실전이군요.
의뢰인이 긴장 되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더군다나 아무리 최악인 취향이라지만, 그걸 인위적으로 바꾼다는 게 선뜻 하기 꺼려지긴 할 거다.
강제로 자신의 무언가를 바꾸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가 정신에 관련 된 상품은 주의 사항을 아주 잘 읽을 필요가 있기도 했다.
“어려우신가요?”
이것도 도움을 받을 거냐는 의미의 질문이었고, 의뢰인은 스스로 해보겠다며 도움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혼자서 해보겠습니다. 다만, 선뜻 결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쪽으로 바꿔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게 인위적으로 바꿨다가 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듭니다.
“정신이라는 분야가 그만큼 어렵긴 하죠. 그건 상품을 고르면서 천천히 고민해보세요.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을 겁니다.”
초대남 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란 말인가?
자기 몸을 아무한테나 막 맡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모두가 다 나와 같이 행동하지는 않는다.
의뢰인의 성격에 맞춰서 연기까지 해주는 것 말이다.
'취향을 삭제하기보단 적당히 억누르고, 폭넓게 취향을 넓히는 쪽이 좀 더 나을 텐데.'
취향을 완전히 삭제해 버린다는 건 쉽지 않을 거다.
성능이 강하면 후유증도 그만큼 강하게 오는 법 아닌가.
가장 추천하는 건 무난한 취향들을 추가 시키는 것이었다.
평범하고 다양한 성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쪽으로 고친다면 연인과의 관계가 훨씬 편해질 거다.
더불어 거기에 더해 트라우마도 고칠 필요가 있다.
"트라우마요. 그거 이번 기회에 같이 고치는 게 어떻습니까?"
이러면 내가 아예 쓸모가 없어지려나?
평범해진다면 그가 굳이 나를 코인 주고 쓸 이유가 없어지니 말이다.
그래도 성향을 보면 나처럼 하렘을 좋아하는 경우는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아예 쓸모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최고의 결과는 다른 여자는 나한테 안게 하고, 자기 연인은 스스로 안는 거였다.
-제 트라우마는….
“그 문제가 그쪽 성 취향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싹 치료합시다. 우리 같은 사람은 100~200년 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보통의 수명에서 벗어난 존재들이다.
그 긴 시간 동안 트라우마에 갇혀서 고통 받는 건 너무 심한 일이 아닌가?
-스스로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상점의 도움을 받는 인위적인 방법을 쓰지 않은 겁니다.
"취지는 좋네요. 나름 올바른 선택을 하긴 하셨는데, 그 트라우마가 본인을 망치고 있잖아요.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죠.
기회는 충분히 있었지만, 결국 극복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고집을 부리는 것도 상황 봐가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자기 여자를 남의 남자에게 안기게 하고, 그걸 영상으로 보면서 자위를 한다?
좋은 말로 포장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이 부분은 포장할 수 없는 쪽이었다.
-하…냉정하시네요.
“비위 맞춰주면 도움이 됩니까? 이럴 땐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말씀 드린 겁니다.”
-맞아요, 아프긴 한데 이젠 냉정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맞는 것 같습니다.
“고치세요. 남한테 민폐인 취향입니다. 사실 당신 성 취향에 참견하는 게 참 어이없는 일이긴 합니다. 그래도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해서 도움을 드리는 겁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직설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의뢰인에게는 지금이 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의뢰인은 나한테 고마워 할 필요가 있다.
"하실거죠?"
-해야죠. 아니, 하겠습니다.
이렇게 협조적이라면 나도 더 적극적으로 도와줄 의향이 있었다.
부디 일이 잘 해결돼서 내게 진상 좀 그만 부려주길 바란다.
“물건을 고르기 전에 주의 사항을 알려드릴게요. 정신계 아이템을 사용할 때는 주의 사항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정신을 건드리는 아이템에는 항상 부작용이 있고, 그 부작용을 너무 쉽게 생각해선 안 됩니다.”
아까 취향을 삭제해버리는 극단적인 수단보단 중화 시키는 쪽의 아이템을 구매할 것도 추천했다.
멜리사가 기억을 잃고 난 이후, 부작용으로 한참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 극단적인 수단은 상처를 남기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땐 비앙카가 양념을 많이 쳐 놔서 더 고생을 한 거긴 하지만 말이다.
멜리사의 경우를 한 번 경험하고 나서부터는 정신계 쪽 아이템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왔다.
내 부작용 얘기에 의뢰인이 심각해졌다.
-부작용이 심각합니까?
“그건 상품에 적혀 있으니 잘 살펴보세요. 부작용 걱정 때문에 아예 아이템을 쓰지 않을 순 없잖습니까.”
부작용을 핑계로 댈까 싶어서 말하자 의뢰인이 순순히 알겠다며 대답을 했다.
“그럼 건승을 빌겠습니다.”
-귀찮은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도움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이번으로 끝나기만 한다면요.
대놓고 앞에다가 안 괜찮다고 할 순 없어서 예의 상 괜찮다고 해주고 통화를 끊었다.
어린애가 아니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싶으면서도 저 사람이 큰 사고를 치는 건 아닐까 걱정과 불안감이 밀려왔다.
♧ ♧ ♧
트라우마와 성 취향 그러니까, 성벽을 바꾸는 것에 대한 통화를 한 날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그날은 주기적으로 빙의를 하는 날이었지만, 의뢰인과 연락을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내 쪽에서 먼저 연락을했다.
-여보세요.
“잘 지내셨습니까?”
-예, 잘 지냈습니다.
“오늘이 그날이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예정대로 하면 될까요? 변동 사항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예. 별 다른 변동사항 없습니다. 오늘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성벽은 고쳤는지 결과를 물어보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싶다.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까?”
-없습니다. 평소와 같습니다. 아…한 가지 있긴 하네요. 새로운 생존자들이 쉘터에 합류한 겁니다.
“오, 그래요?”
-물론 그 사람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일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저 계획대로만 해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행히 크게 의뢰 내용이 바뀌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그때 해주셨던 조언, 듣고 치료했습니다.
“그래요? 벌써 고쳤을 줄은 몰랐는데.”
아무 말이 없기에 아직 상품을 보고 있는 줄 알았다.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후회를 많이 했습니다. 트라우마를 고치고 나니 연인과 사이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관계는 해보셨습니까?”
-그건…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능숙하지 못하다 보니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요. 성 능력 분야는 코인이 굉장히 비싸서 구매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실 유모에게 듣기는 했다.
내가 유난히 싼 값에 성 능력을 구매한 거라고.
보통의 경우에 성 능력은 굉장히 비싸게 판매 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은 법이 아니겠나?
이런 쪽으로 좋은 영약들은 차원을 가리지 않고 비싸게 거래 되기 마련이었다.
“그런 건 많이 경험하다 보면 늡니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더 좋은 걸 알고 있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섹스를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오호, 치료를 했다고 하더니.
의뢰인은 항상 ‘섹스’라는 단어를 최대한 피해서 말하는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단어를 아무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사용하는 단어만 봐도 그가 확실히 트라우마를 고쳤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