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25 - #96. 진해솔 (129)
“정말 고치셨나 보네요. 한결 편해 보여요. 이제 자신감만 가지면 되겠네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설명해줬는데 설마 이상한 걸 구매해서 썼겠는가?
알아서 잘 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자신감을 채우기 위해선 경험이 필요할 텐데...
"다른 사람과 해볼 생각은 없습니까?"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은 싫습니다.
"그럼 경험은 어떻게 채우시려고요?"
결국 직접 해보는 게 아니면 실력을 쌓는 게 힘든 법이었다.
-영상을 꾸준히 시청하고 있습니다.
영상?
이 사람 영상으로 보는 거 되게 좋아하네.
그래도 상황 자체가 경험을 쌓을 마땅한 게 없으니 영상밖에 참고할 게 없는 게 사실이긴 하다.
근데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야동이 많나?
“음...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딱히 없는 것 같고, 그나마 도와주자면 클라우드 공유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야동을 보는 사람은 아니다.
야동보다 더 야릇한 밤이 기다리고 있는데, 굳이 혈기를 혼자서 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야동을 구하는 것보다는 내 쪽에서 구하는 게 훨씬 쉽긴 할 거다.
-...부끄럽지만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종류의 야동을 구해줘야 하나...
취향을 바꿨으니 여러 종류를 구해다 줘서 선호하는 게 어떤 것인지 확인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취향들로 말이다.
그럼 그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통화를 끝낸 후.
빙의 시간에 맞춰서 의뢰자의 몸으로 이동했다.
"음."
좀비 웨이브 이후로 다시 예전 쉘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주민들은 굉장히 열심히 일해왔다.
무너진 건물을 수습하고, 땅을 다시 다져서 그 위에 제대로 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건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는 탓에 책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하나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말이다.
비전문가들인지라 높게 쌓지 못하고 2층으로 구성 된 집을 짓는 게 전부였지만 첫 걸음을 뗐다는 점에서 다들 큰 의미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집은 의뢰인인 그가 차지하게 되었다.
“오, 저번 주에는 정리가 덜 돼서 번잡했는데 깔끔하게 정리를 다 해놨네. 나쁘지 않은데?”
그리 큰 평수의 집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천막에서 지내고 있다 보니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 해야 할 판이었다.
이 정도도 큰 혜택을 누리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여자는 없네.'
물론 의뢰인은 이런 혜택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쉘터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해온 사람이니 말이다.
“오늘은 딱히 없나?”
내가 빙의를 했을 때, 경우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늘 하룻밤을 같이 보낼 여자가 미리 정해져 있어서 가만히만 있어도 알아서 방을 찾아오는 경우가 첫 번째.
딱히 밤을 보낼 여자가 없어 직접 구하는 경우가 두번째였다.
거의 대부분 첫 번째 경우가 많았고, 두 번째의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주기적으로 빙의를 하다 보니, 이제 여자들도 알고 있거든. 오늘이 여자를 안는 날인 걸.’
눈치가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다.
언제 여성과 잠자리를 갖는지 말이다.
내가 이 몸으로 빙의하는 것은 일주일에 3번.
단 번에 임신이 되는 것이 아니기에 한 사람이 여러 번 잠자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지라 아직 안아보지 못한 여성들이 꽤 됐다.
'밖으로 나가서 구해야 하나?'
딱히 순서를 정해두지 않았기에 여자들 사이에서 눈치 싸움이 장난 아닌 걸로 안다.
그걸 알면서도 의뢰인이 딱히 순서를 정해두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미 충분히 희생하고 있는데, 그 문제까지 신경 쓰면서 섹스를 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여자들도 싫다는 사람을 데리고 억지로 하는 섹스다 보니 순서를 안 정해둬도 항의를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거기다가 섹스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쉘터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
의뢰인이 여자를 정해주고 섹스를 하는 날이 생기는 원인이 바로 저것이었다.
임신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이 쉘터를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그 기회를 얻어 잠자리를 갖는 것이다.
웅성웅성ㅡ!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가만히 있는다고 여자가 찾아 오는 건 아니었기에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창문을 열어서 바깥을 확인해봤는데, 쉘터 안쪽에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이 꽤 많았다.
아마 새로 들어 온 사람 때문에 분주한 게 아닐까?
오늘은 누구와 잠을 자야 하나, 떠오르는 얼굴들을 생각하면서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이곳저곳에서 공사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이 집처럼 2층의 얕은 건물을 세울 계획인 모양이었다.
'지진 때문에라도 높게 짓는 건 무리니까.'
한 번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졌으니 두 번이라고 지진 피해를 입지 말란 법이 없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좀비를 막아주는 성벽도 보수를 하고 있는 모양인지 그곳에도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 저 사람은...”
그런데.
내 눈에 놀랍게도 '남자'가 보인다.
의뢰인처럼 젊은 나이는 아닌 듯 하고, 한 40~50대 남성이다.
덩치가 제법 있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살아 남은 인류의 마지막 남은 남자가 바로 의뢰인인 걸로 알고 있었기에 놀라운 일이었다.
‘새로 들어 온 생존자인 건가?’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러면 굳이 의뢰인이 억지로 여자를 안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선택지가 '유일'에서 '두 가지'로 늘어나지 않았는가?
“엇, 나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예. 뭐하십니까? 다들 바빠 보이시는군요. 날도 어두워졌는데.”
“헤헷, 이분이 건축 전문가시잖아요. 조언을 듣느라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어요."
"역시 우리끼리 아등바등해봤자 전문가 딱 와서 정리를 해주니까 효율이 확 달라지더라고요."
"두 번째 집부터는 좀 더 제대로 지을 수 잇을 것 같아요."
새롭게 들어온 생존자 무리의 남성.
그 남성이 운 좋게도 건설에 전문가인 모양이다.
"부끄럽네요. 고작 책으로만 어설프게 지어 놓고 잘 지은 것 같다면서 엄청 좋아했잖아요."
"아무래도 첫 번째 집은 허물어야 할까 봐요."
"에이~ 허무는 건 너무 아깝죠. 다들 열심히 만드셨을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너무 어설프게 지었어요. 이러다가 무너지면 큰일이잖아요."
"안 무너집니다. 고작 2층밖에 안 되는 걸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따로 더 보수 공사 해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이 이 쉘터에 필수 존재라면, 건설 쪽 인재도 충분히 필수적인 존재라 할 수 있었다.
건설 전문가인 남성이 자기만 믿으라며 호언장담을 했다.
그 집에서 지내고 있는 당사자인 내가 가만히 있긴 뭐했기에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뭘요. 오히려 저희들을 선뜻 받아주셔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명 생활을 다시 누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솔직히 혼자서 눈물을 찔끔 흘렸습니다."
"이 쉘터가 인류의 마지막 보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절대 무너트리지 않고 미래를 위해 힘 쓰고 있는 중이에요."
남성의 말에 쉘터 주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쉘터가 더 튼튼해질 수 있게 도움 좀 많이 주세요. 꼭 건설 전문 지식이 필요했거든요. 열심히 보수 공사를 하고 있긴 하지만, 보다시피 다 어설프게 해 놔서 금방 망가지더라고요."
“하하, 생존에 도움 하나도 안 되는 것들이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다시 쓸모를 찾을 수 있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요.”
남성은 감회가 새로운지 울적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 봤다.
어둑한 검은 하늘은 어제와 같았지만, 쉘터의 존재 덕분인지 마음 가짐이 180도 달라졌다며 헛헛한 웃음을 터트렸다.
"쉘터가 조금씩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다 보면 슬픈 생각도 금방 잊혀져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힘내요."
"물론입니다! 우울한 생각에 갇혀서 땅을 파기엔 너무 많은 걸 경험했죠."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평범하지 않은 정신력을 가졌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정신력이 좋다고 해도 적절한 휴식은 필요한 법.
나는 그들에게 휴식을 취할 것을 권유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시간이 많이 늦었는데, 이제 그만 다들 쉬는 게 어떻습니까?”
“그럴까요?”
“배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
"피곤하시겠다. 어서 가서 쉬세요!”
“하하, 아닙니다. 오랜만에 신나게 대화 나눴더니 정말 즐겁습니다. 늙은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한 좀 풀어 보렵니다. 날이 새도록 질문 받아도 됩니다!”
남자의 너스레에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꺄르륵 웃음을 지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는데 분위기가 훨씬 좋아진 걸 보면 그들이 쉘터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저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오늘이 그날이죠?”
“예.”
“화이팅 하세요.”
“예.”
남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이 내가 오늘 뭘 하는 날인지 떠올랐는지 잡지 않고 순순히 놔줬다.
“그날? 그날이라는 게 뭡니까?”
“음…나중에 알게 되실 거에요.”
그들에게서 멀어지는 사이.
남자가 사람들에게 '그날'의 의미를 물어봤다.
이제 막 쉘터에 적응 중인 사람에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을 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어찌보면 치부이기도 하니까.'
이해 받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거라며 나중을 기약했다.
남자도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은 건 아니었는지 금방 다른 화제를 꺼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냥 유목민 무리 같았던 쉘터가 이제 진짜 사람 사는 곳 같네. 뭔가 마을 느낌이랄까?’
쉘터 곳곳에는 문명 생활을 할 때 쓰였던 물건들이 꽤 모여 있었다.
아마 의뢰인이 열심히 바깥에서 옮겨온 물건들일 것이다.
그 짧은 사이에 많이 변한 쉘터를 구경하면서 돌아다니자 나를 향한 시선이 느껴졌다.
오늘이 그날인 것을 바로 알아차렸던 그 여성처럼, 쉘터 내에 있는 여성들 모두 나를 그런 의미의 기대를 담아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누구를 해야 하나.’
이 짓이 한 두 번이 아닌 지라, 여자를 고르는 것에 어리숙하게 굴 이유는 없었다.
“오늘 시간 됩니까?”
밝은 갈색 단발 머리의 여성이 눈에 딱 보였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어보았다.
얼굴이 익숙하니 적어도 새로 들어 온 생존자 무리는 아닐 것이다.
“헉! 정말요?”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내가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금방 알아차리고 눈을 똥그랗게 떴다.
“아까부터 얼굴 뚫리게 쳐다보고 있는 걸 봐서 말입니다.”
누구보다 나를 적극적으로 바라본 여자를 고른 것이었다.
그래야 거절 당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뒷말도 적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