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26 - #96. 진해솔 (130)
처음에야 외모 따져가면서 안았지만, 예쁜 여자가 어디 많겠는가?
급할 때는 외모 같은 건 보지 않고 내게 얼마나 적극적으로 어필하느냐를 더 주의 깊게 살피곤 한다.
그때그때 상황이 다르다 보니 기준이 뒤죽박죽으로 바뀌기도 하고 말이다.
오늘도 바로 그런 식이었다.
보이는 여자마다 나랑 잘래요? 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쉘터 소속 여성들이라 해도 임신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클럽도 아니고, 술 들어가지도 않은 맨 정신에 그런 짓을...어렵지.'
그래서 오늘같은 경우에는 가장 적극적으로 내게 의사를 표현한 여성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뒷말이 나올 확률이 줄지 않겠는가?
상대방 쪽에서 먼저 어필을 해줬으니 물어보는 것도 한결 편하다.
괜히 적극적으로 나를 쳐다 봤던 게 아닌 듯, 의향을 묻자마자 여자가 냉큼 가겠다며 화색을 보였다.
“좋아요! 갈래요.”
“말도 안 돼."
다만 그녀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옆에 친구가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정말로 얘에요?"
"예?"
당사자는 좋다는데, 옆에 있던 여자가 훨씬 더 격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얘라고 하신 게 정말이냐고요.”
"맞습니다만."
반응도 굉장히 부정적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내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두 사람이 같이 있었기에 당연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저렇게 부정적으로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이 쉘터 안에서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혹시 연인이 따로 있다면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부담을 주려는 건 아니었습니다."
"연인이라뇨!! 얘랑 그런 사이 아니에요. 저 솔로에요."
"웩-"
당사자는 친구의 돌발 행동을 수습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리고 오해를 산 친구도 불쾌하다는 듯 헛구역질을 한다.
'두 사람이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건 보이는 그대로 해석하면 되는 사이라는 건가? 근데 그게 더 큰 문제 아니야?'
두 사람이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 사이가 나쁘다는 걸 의미하는 일이 아닌가?
"..."
내 표정이 좋지 못하자 여자가 친구에게 괜스레 더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곤란해 하시잖아! 빨리 저리 가."
"싫은데?"
"네가 여기 있어봤자 뭐할 건데? 이제 난 갈 거야."
나와 함께 가려는 듯 내 쪽으로 그녀가 다가온다.
하지만 친구는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안 돼. 못 가."
'이거 진짜 사랑 싸움 아닌 거 맞지?'
"뭐래는 거야, 진짜! 넌 내가 잘 되는 꼴이 그렇게 보기 싫니?"
“당연히 보기 싫지. 그럼 넌 내가 부러워 하고, 마냥 호구같이 축하 해줄 거라고 생각했어?"
이젠 두 사람이 친구 사이인지도 의심 될 지경이었다.
"네가 싫다고 해도 뭘 할 수 있는데? 선택 받은 건 나야! 황당해서 말도 잘 안 나오네. 얘는 신경 쓰지 말고 가요, 우리.”
"못 간다니까? 얘 말고 다른 사람이랑 하세요."
"네가 뭔데 그걸 정해! 내가 하겠다는데! 네가 아닌 게 그렇게 아니꼬워? 좋아해주는 건 못해도 초는 치지 말아야지. 질투하는 거 너무 추해보여.”
“내가 지금 질투한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네가 멍청한 거야. 이게 질투심으로 보이는 게 어이가 없다."
내가 보기에도 저건 질투심은 아니었다.
'질투심보다는 좀 더 딥한데. 엄청 화가 난 것 같은?'
두 사람의 언쟁은 점점 더 격해졌다.
"거짓말 하지마. 나랑 같이 있다가 나만 선택 받으니까 기분 나쁜 거 맞잖아. 그게 아니면 네가 이럴 이유가 있어?"
"질투가 아니라 화가 난 거야! 왜 너같은 애한테 자꾸 이런 행운이 오는 건지 이해가 안 돼서!! 내가 너보다 훨씬 나은 사람인데!"
상황이 복잡해진다.
말리고 싶어도 이미 상황은 폭주 기관차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네가 왜 나보다 나아? 지금도 봐. 선택 받은 건 네가 아니라 나잖아."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된다는 거야!! 저기요, 왜 하필 얘에요? 고르는 조건 같은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왜 내가 아니고 얘를 골랐던 거에요?”
이렇게 직설적으로 왜 자신이 선택 받지 못했는지 따지는 여성은 처음이었다.
대답을 바라는 것 같긴 한데, 두 사람의 싸움에 이용 당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제가 당신한테 이유를 설명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까? 그런 의무는 없습니다.”
내 딱딱한 대답에 그녀들이 살짝 기세를 잃었다.
"대답하기 싫으시다잖아."
“넌 좀 조용히 있어봐! 물론 의무가 없긴 하죠. 근데 너무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요. 누가 봐도 내가 더 나은데, 왜 얘인지 진짜 이해가 안 되요.”
“누가 더 나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냥 제 기준에 맞는 사람을 골랐을 뿐입니다. 제가 선택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인 건 아닙니다. 그러니 이렇게 항의 받을 일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좀 싸워.
“결국 기준에 쟤가 맞았다는 거잖아요. 그럼 쟤가 저보다 더 낫다는 의미 아니에요?”
“아뇨, 그런 식으로 말한 적 없습니다. 제 기준이 따로 있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기준이 뭔지 알려줘요.”
“싫습니다.”
그걸 알려줬다가 다른 여자에게 말을 옮기면 곤란하다.
"다른 사람한테 말 안 할게요!!"
"안 됩니다."
“쟤는 멍청해서 일을 시켜도 제대로 하는 게 없고, 항상 게으름만 피우고, 먹는 것도 엄청 밝혀서 항상 배고프다고 투덜대기만 하는 애란 말이에요!!”
“야!!”
“생긴 것도 좀 봐요! 누가 봐도 제가 훨씬 낫잖아요! 얘는 성형수술 했다가 실패해서 얼굴이 엉망진창인데. 차라리 절 아니, 아예 다른 사람이랑 하는 게 어때요?"
"뭔 이상한 소릴 하고 있어? 그만해. 그만하라고!"
"제대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운만 좋아가지고…오늘 이후로 또 얼마나 거들먹거릴지 눈에 선해요. 그런 꼴 보면서 속 뒤집어질 바에야 시작도 하기 전에 깽판 치는 게 낫거든요.”
생각보다 내가 선택한 여자의 상태가 굉장하다.
그 여자의 성격이나 평소 행실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게 이런 스노우볼을 굴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래서 순서를 안 정한 건데, 이런 식으로도 문제가 생기네.'
임신을 하면서 그것이 권력화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노력이 저 두 여자에 의해 엉망진창 되고 있었다.
하지만 분노하는 여자의 행동에 공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평소 행실을 듣고 보니 기겁할 만 하긴 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그녀가 선택을 받은 건 열렬한 시선과 더불어 운이 좋았기 때문이지 뭔가 대단한 기준에 맞아서 선택을 받은 게 아니었다.
“설마 얘가 하는 말 진지하게 들으시는 거 아니죠? 다 거짓말이에요. 지어낸 소리라고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하니? 조사하면 금방 알게 될 일을."
"이제 그만하시는 게 어떨까요? 싸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싸우자고 한 일도 아니고.
난 그냥 오늘 맡은 바 임무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쟤 말 듣고 그만두려는 거 아니죠? 그럼 안 돼요!"
"지금 이 상황에선 두 분이 화해를 하는 게 먼저인 것 같습니다."
"화해는 무슨! 안 할 거에요!"
시작하기도 전에 제대로 초가 쳐진 상황이다 보니 화가 쉽게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얼굴이 정말 사과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이래서 평소에 인맥 관리를 잘 해야 한다니까.’
대놓고 그런 소리를 들었으니 화가 안 날 리가 만무하다.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집으로 가서 섹스를 하는 것도 웃긴 일이었고.
‘싸움 나는 건 상관없는데, 제발 나는 빼줬으면 좋겠네.’
두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막막해졌다.
"두 분이 원만하게 화해하지 않는 이상 다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말리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이제 막 싸움이 붙은 두 사람이 쉽게 흥분을 가라앉힐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어서 화해하라는 의미를 담아 말했다.
그런데 이게 역효과였던 모양이다.
"이게 뭐야!! 너 때문에 그냥 가시겠다고 하잖아!!"
"흥, 잘 됐네."
내 말을 듣고 그녀가 거절이라고 오해를 한 것이다.
"너 정말 실망이다. 어쩜 이렇게 배신을 하니?"
“이게 왜 배신이야? 네가 평소에 게으름 피우면서 생긴 일을 누가 했는데. 내가 다 했잖아. 네가 일을 안 하는 만큼 내가 더 일했어! 그런데 고작 이런 걸로 배신이니 뭐니 운운하니?”
“그건 네가 해주겠다고 했던 거잖아!”
“그래!! 너한테 맡겨봤자 결국 안 할 거니까! 네가 일을 제대로 안 하면 불이익은 다 같이 받는다고!”
“나는 네가 하겠다고 하니까 별 생각 없이 맡긴 거 뿐이었어. 내가 해봤자 넌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대면서 다시 하잖아!”
두 사람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불 붙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는 나도 싫어하는 편이었다.
회사 다닐 때 충분히 호되게 당해봤기 때문이다.
‘좀 더 말려봐야 하나? 그냥 다른데 가버릴까….’
싸움을 멈추지 않으면 다음은 없다고 했음에도 계속 싸우고 있지 않은가?
이 정도면 그냥 가도 될 것 같았다.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여기서 시간을 쓰고 있을 수는 없다.
물론 양심에 좀 찔리기는 한다.
‘아무리 그래도 싸움 붙인 건 난데, 말리지도 않고 가버리는 거니까.’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빨리 다른 사람을 물색하고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저기, 계속 싸울 겁니까?”
“나도 너한테 불만 없는 줄 알아? 너는 뭐가 그렇게 잘 났니? 내가 하는 일마다 다 마음에 안 들고, 다 이상하고 부족해 보이지? 너 똑똑한 거 알아! 근데 사람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잖아. 나는 뭐 배알도 없는 줄 아니?!”
이젠 내 말도 안 들리나 보다.
저렇게 불이 붙었으니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 올리 없긴 하다.
“그만하시는 게…!”
“그래? 내가 잘난 게 싫으면 빌 붙는 거 그만하면 되겠네! 나도 너 뒤치닥꺼리 하는 거 지겨워 죽겠어!”
“절교하자, 그럼! 절교 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결론을 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안 되겠네요. 부디 원만하게 화해 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괜히 분란 만들 것 같네요.”
기왕 여자가 오해를 한 김에, 그걸 사실로 만드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애초에 싸움이 일어났을 때부터 그른 일이었다.
“안녕히 가세요! 잘 됐네."
"앗! 잠시만요. 금방 화해할 수 있어요. 잠깐만..!"
"화해는 개뿔. 내가 싫거든? 지금 이 상황에서 가긴 어딜 가니? 절대 못 보내지.”
“야!!!”
“네가 임신했다고 거들먹거리는 꼴 볼 바에야 아예 기회조차 못 얻게 하는 게 맞아.”
“너 진짜 어이없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어릴 적에 너한테 내가 어떻게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