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39화 (847/849)

Chapter 839 - #96. 진해솔 (143)

"미션 완료 인정 됐지?"

[그래. 쳇, 이건 너무 밸런스가 안 맞는데...싱겁게 끝나버렸잖아.]

"내 능력이 좋으니까 쉽게 끝난 거지. 난이도는 충분히 높아."

이제서 하는 말이지만, 3천 명의 여자를 안는 거나 좀비 세상으로 들어가서 여자들을 임신 시키라는 게 쉬운 일이냔 말이다.

좀비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의뢰인의 정자 활동량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활발해서 다행인 거다.

그게 아니었다면 미션을 완료 시키기까지 오래 걸렸을 것이고, 저놈이 너무 쉽게 끝났다면서 아쉬워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네가 벌어 들인 코인을 생각해야지! 그쪽 의뢰인이 너무 답답한 머저리야. 그 정도로 만족하고 의뢰를 완료 시키는 게 어딨어? 거기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고! 넌 그 사람한테 사기 친 거야.]

한 세계를 살리기 위해 내가 안아야 했던 여자가 삼천 명이다.

일단 횟수가 많다 보니 많은 여성들이 임신을 하고 황족을 낳고 있는 중이었다.

반면 두 번째 미션에서는 고작 11명의 여자들이 임신을 한 상태다.

"상황이 다르잖아. 상황이. 거기에 살아 있는 사람이 삼천 명이 안 되는데."

거기다가 임신에 뜻이 있는 젊은 여자를 손에 꼽으려고 한다면 숫자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 딱 한 번이지만 위험할 뻔했었어. 좀비 웨이브 때문에."

그때 내가 몸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기라도 했다면 어쩔 뻔했는가?

'그리고 내가 그 사람 뒤 닦아 주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다른 사람의 연인을 안아보질 않나, AV를 찍히질 않나...

상점을 이용하는 방법도 선생님이 된 것처럼 하나하나 다 가르쳐줬다.

첫 번째 미션은 삼천 명의 여자를 안아야 하지만, 황제라는 권력의 정점에 앉아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하는 미션이라는 점에 상대적으로 많은 숫자를 감안하게 해준다.

두 번째 미션은 최악의 환경에서 적은 숫자의 여자를 임신 시켜야 하는 미션.

열악한 환경과 좀비라는 최악의 상황이 적은 숫자로 감안이 된다.

즉, 두 미션 모두 난이도 자체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미션 같은 경우에는 의뢰인이 쿨하게 완료를 해준 걸 그동안 진상 짓을 했던 것의 보상이라고 치면 되지.'

생각했던 것보다 일찍 끝나긴 했지만 나름 생각해보면 지금이 딱 알맞은 시기인 것 같았다.

성벽을 고친 의뢰인도 더 이상 자신의 몸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여자를 안는 것을 두고 보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성벽을 고치게 만든 게 의뢰를 빨리 끝내게 한 원인이 됐을 수도 있겠구나.'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포니 녀석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가능성이 높은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의뢰인의 의뢰 완료는 생각한 것보다 빨랐다.

물론 그의 정자가 놀랍도록 활발해서 11명의 임산부를 만들어냈다는 점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 애들이 몇 주 차이 안 나게 줄줄이 태어나면...어우, 힘들긴 할 거야.'

아포칼립스 세계에선 임신을 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굉장히 어렵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아빠가 될 준비를 하는 의뢰인의 앞날은...

다시 한 번 새삼 그에 대한 짧은 복을 기원하고 포니를 바라봤다.

심통이 난 표정.

의뢰가 끝났다는 이유로 올 녀석이 아니니 뭔가 용건이 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야? 내 의뢰가 쉽게 끝난 게 불만이 있어서 온 건 아닐 거 아니야."

얘와 내가 살가운 사이도 아니니 분명 용건이 따로 있을 거다.

그리고 포니는 내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말했다.

[있지.]

"그러니까 뭔데. 네가 나한테 할 말이 딱히 없지 않아?"

[왜 없어? 이번에 뭐...꽤 쓸모 있는 모습을 보여줬잖아.]

"그래서?"

[좀 더 코인을 벌어 볼 생각 없어?]

"코인을 벌어 볼 생각?"

지금까지 한 미션은 내 아이를 살리기 위해 빚을 낸 것을 갚는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버는 코인은 내 수중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언제나 말했지만 코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구체적으로 뭘 바라는 건데?"

[네가 이번에 했던 일이랑 비슷해.]

"아...그런 거라면 싫어."

지금은 세계 하나가 정리 되긴 했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면 두 개의 세계를 오가는 것은 굉장히 정신 사나운 일이었다.

아무리 분신체로 활동을 대신하게 만들 수 있다지만, 결국 분신체의 기억은 본체로 흘러들어 온다.

하루를 두 번 사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많은 기억들을 흘려보내지만, 기억에 담아둬야 할 일들은 존재하고 그건 내 몸의 부담으로 다가오게 된다.

"여러 세계를 돌아다니는 건 너무 정신없어."

그리고 그곳에 가면 필연적으로 거기서 정이 들어버리는 사람이 생긴다는 게 문제다.

[네 도움으로 멸망을 향해 다가가던 세계가 살아나는 거야. 너는 막대한 양의 코인을 벌게 될 거야. 코인이 있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걸 알잖아.]

"아무리 그래도 다른 세계에 가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야. 당장 하겠다고는 말 못하겠다.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

그동안 다른 세계의 일에 신경 쓰느라 내 본래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특별한 능력을 가졌으며, 한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막아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근본적인 정체성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였다.

'나는 아이돌이지.'

멤버들이 각자 개인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이젠 연예인의 연예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가수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룹은 해체하지 않고 있었다.

팬들은 언제나 완전체가 되어 다시 컴백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2년에 한 번씩은 컴백을 하고 있었다.

그룹을 해체한 건 아니지만 컴백도 하지 않는 아이돌 그룹이 몇인가?

년 단위로 컴백을 해도 팬들은 활동만 해준다면 감지덕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마음이 어디 좋겠어?'

이번에 팬들을 위해 제대로 애들과 다시 뭉쳐볼 생각이었다.

처음에 포니가 아이돌이 되라고 했을 때는 황당했었고, 아이돌이 된 후에는 생각보다 이 직업이 주는 짜릿함에 매료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볼 때 행복해 하는 걸 보는 게 그렇게 짜릿한 감정을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가장 행복하고 좋아하는 일은 아이돌로 활동할 때였어.'

혼자서 활동하는 건 좀 외롭다.

지금은 다들 숙소에서 나가서 독립을 한 멤버들이지만, 그들과는 거리감 없이 가족처럼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이였다.

[정말 좋은 기회가 나왔는데 포기할 거야? 코인도 엄청 벌 수 있다니까? 이번에 완료한 의뢰처럼 날먹으로 코인을 벌지도 몰라. 이런 좋은 기회가 흔하게 오는 것도 아니라고.]

포니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애가 탔는지 계속 설득을 시도했다.

하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당분간은 내 세계에서 딱 붙어 있을 거야. 좋은 기회가 흔하게 오는 게 아니라는 건 아는데, 계속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또 오지 않겠어?"

그럼 그때 다시 생각해보면 되는 일이다.

포니는 내 단호한 거부에 몇 번 더 설득을 해보려는지 날개를 팔락이며 정신 사납게 굴었다.

[그래도 일단 얘기나 들어보는 게 어때? 들어오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잖아.]

"싫어. 안 들어. 어차피 안 할 건데 들어서 뭐하냐? 됐고, 돌아가. 그리고 당분간 다른 일로 바빠질 예정이야. 그런 거에 신경 쓸 겨를 없어. 계속 귀찮게 굴면 쫓아낸다?"

[에이씨! 더럽고 치사한 놈!]

"극찬 감사."

포니가 왁왁 소리를 지르다가 뿅 하고 사라졌다.

지금 나는 의뢰 하나를 완벽하게 끝내서 매우 큰 자유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여기다가 다시 짐을 등에 얹으라고?

'절대 싫지. 일 안 할 거야.'

아이돌 활동도 일이 아니냐 하면, 이제 이 정도 연차가 됐으면 활동이 아니라 힐링이라고 봐도 좋았다.

아무래도 연기를 하다 보면 아이돌 활동을 할 때보다 팬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진다.

하지만 아이돌은 팬들과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하고 감정을 나눌 수가 있었다.

무대 위의 뜨거운 열기도 좋다.

'아...생각만 했는데도 빨리 무대 위에 올라가고 싶네.'

사람들의 머릿속에 에어플레인이라는 그룹의 매력을 다시 새겨주는 것.

그룹이 완전체로 컴백했을 때,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였다.

그리고 나는 그럴 자신감이 있었다.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나는 많은 영감들을 받아왔고, 그 영감을 허투로 흘려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곡들을 모아두었기에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더군다나 우리 그룹에는 제키가 있잖아.'

제키는 요즘 빌보드에서 잘 나가는 작곡가들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제키는 단순히 작곡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프로듀싱 분야에도 나서고 있는 것이다.

활동하는 곳이 국내가 아니라 빌보드 쪽이라는 점에서 그의 실력을 옅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재다능한 멤버들을 모아두었으니 다시 뭉쳤을 때의 시너지는 몇 배 이상이 될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앨범에 곡을 꽉꽉 눌러 담고도 더 넣고 싶어서 고민을 할 게 분명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제키도 곡을 잔뜩 만들어뒀다고 하던데 말이지.'

지금도 하고 싶은 앨범 컨셉을 떠올려보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곤란할 지경이었다.

이런 아이디어들을 나 혼자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서 빨리 멤버들과 만나서 구체적인 앨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설레는 일이 남아 있는데, 포니가 제안한 미션을 하겠다고 신경을 분산 시킨다고?

'완전 싫어.'

앞으로 행복한 일을 하게 될 텐데, 재를 뿌리고 싶지 않았다.

벌 수 있을 때 벌어 놓자고 생각했던 코인인지라 조금이라도 흔들릴 거라 생각했는데, 포니가 다른 일을 더 해보겠느냐고 했을 때 마음이 확 식어서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역시 나는 거창한 일에는 안 어울려."

내가 진심으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일은 '아이돌'이었다.

이게 바로 내 진정한 정체성일 것이다.

꿈이 아이돌이었던 것도 아니고,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별나라 사람들이라 생각했던 나지만 결국 다시 돌아갈 곳은 내 가족들의 곁이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음악을 하는 것이었다.

팬들의 사랑이 고팠다.

그들이 보고 싶다.

나를 보며 행복해 하고 기뻐해주며,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나를 위해주는 그들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여러 세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사랑을 접해왔지만 팬들이 주는 사랑만큼 순수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사랑은 없었다.

'만나러 가야지.'

우리를 한없이 기다려주고 있는 팬들의 품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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