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41 - #97. 란나 (2)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후.
한 때 친구들과 거리가 멀어졌던 적이 있었다.
특히 대학교 친구들은 그녀를 살짝 따돌리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이유는 굳이 복잡하게 생각 할 필요도 없이 적나라했다.
'질투랑 시기심이지.'
그녀 본인의 능력이 좋아서 성공한 거라면 몰라도, 란나는 스스로가 남자를 잘 만나서 성공한 케이스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프렌차이즈 회사가 잘 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이 제공해주는 한도 끝도 없는 자금 지급 능력 덕분이었다.
여러 번 회사의 자금이 바닥이 나서 대출이 필요했을 때.
그녀의 남편은 히어로처럼 나타나 엄청난 금액을 선뜻 투자해주었던 것이다.
'돈이 많으면 실패하기가 어렵지.'
그녀는 회사를 운영하기에 적합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돈을 주고 지식을 배운 사람들을 고용했다.
그들이 힘써서 만들어준 '체계'는 회사가 발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러니까 결국 회사가 잘 된 건 그녀의 능력 덕분이 아니라 남편의 금전이 크게 영향을 미친 거라는 뜻이다.
그걸 친구들에게 별 생각 없이 말했고, 질투와 시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친구들이 변한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나중에 생각을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친구들도 물론 잘못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 한 쪽의 잘못만 있는 건 아니었던 거다.
자신도 알게 모르게 친구들의 심기를 상하게 만드는 행동과 말을 했을 수 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좀 걸리는 게 몇 개 있긴 해.'
영영 잃어버릴 뻔했던 친구들과의 관계.
남편이 우울해 하는 그녀를 위해 나서주었다.
그의 별장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열어준 것이다.
친구들과 술을 거하게 마시고 나서 그동안 쌓아뒀던 얘기들을 다 풀어놨다.
분위기가 만들어지니 친구들 쪽에서도 평소 생각들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친구들에게 실망하고 불만이 쌓인 만큼, 친구들도 그녀에게 쌓인 불만이 있었다.
그걸 다 털어놓고 얘기를 하자 묵은 감정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는 다시 끈끈해질 수 있었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야.'
자신이 어려워 할 때 히어로가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남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친구들도 쌓였던 불만이 사라지자 남편의 스윗함에 대단하다며 장난스러운 질투심을 보여주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남들에게도, 본인에게도 완벽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릴 만큼의 대단한 남자.
'근데 난 왜 이렇게 찜찜할까?'
그런 완벽한 남편에게도 불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불만이라기보단 수상한 구석이 있달까?'
이건 친구들에게도 차마 하지 못한 말이다.
그녀들이 들으면 복에 겨워서 그런 소리를 한다며 장난을 담은 비난을 쏟아낼 게 분명하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야. 나 같은 여자가 감사 할 줄도 모르고 이상한 의심을 한다고.'
실제로 그녀도 이런 자신의 마음이 황당하다.
그런데 그와 함께 지낼수록 위화감은 줄어들지 않고 커지고 있었다.
'왜 오빠는 친구가 없을까? 저렇게 다정한 사람이.'
오빠에게는 '지인'이라는 사람이 없다.
정확히는 한 번도 소개를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무역일이라는 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긴 해도,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니 인맥이 아예 없을 리가 없다.
알다시피 자신의 친구들은 오빠에게 몇 번이나 소개 시켜준 바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오빠는 지인들에게 자신을 한 번도 소개 시켜 준 적이 없다.
심지어 그녀와 둘이서 있을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는 경우도 없었다.
'진짜 오빠는 어떤 사람이지?'
사람이 정말 동화 속에서 나올 법한, 모든 조건에 완벽한 사람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이런 남자를 여자들이 과연 가만히 내버려뒀을까?
그가 아이들을 돌볼 때 때때로 보여주는 능숙함은 그녀의 상상을 부추기는데 한 몫을 했다.
'여자가 없는 게 말이 안 돼. 분명 나 말고 다른 여자들이 있을 거야.'
실제로 그녀가 은근히 다른 여자에 대해 물어봤을 때, 그는 부정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랑한다는 말로 그녀의 서운함을 달래주었을 뿐.
그녀라고 양심 없이 이 완벽한 남자를 독점 할 생각은 없었다.
'나도 소개 받고 싶어.'
나름 잘 나가는 한 회사의 CEO다.
그게 오빠의 도움으로 얻은 자격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배경을 잘 모르지 않는가?
'이 정도 직업이면 어디가서 부족한 수준은 아닐 거라고.'
그러니까 말하는 거다.
오빠의 지인들을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싶다고 말이다.
"와아아아!!!"
"아빠! 바다야! 바다!"
"응, 아빠가 모래 성 지어줄까?"
아이들은 여러 가지 여행지 사진을 구경하다가 에메랄드 빛 바다의 아름다운 자태에 홀려 그곳을 여행지로 선택했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관광지역이었기에 그녀도 흔쾌히 여행지를 받아들였다.
'그림 같은 모습이네.'
아이들은 아빠보다 자신을 더 많이 닮았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이목구비의 전체적인 조화는 아빠를 쏙 닮았다는 점이다.
주변에 놀러 온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아이들과 아이 아빠를 향해 있었다.
"우와아!! 머시써!!!!"
"꺄아아!! 여기 내꺼! 내 성 할 거야!"
"나도! 나도 여기 할래!"
"싸우지 말고 기다려봐. 아빠가 성 하나 더 만들어줄게."
능숙하게 성 하나를 두고 싸우려는 아이들을 달래면서 자기 몫의 성 2개가 뚝딱 완성 된다.
아이들은 신나서 이것도 만들어 달라, 저것도 만들어 달라고 하며 아빠를 재촉했다.
'저러니까 애들이 아빠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거지.'
자신도 그와 같은 아빠가 있었으면 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졸졸 따라 다녔을 것 같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여보! 뭐해요? 와서 같이 놀지."
"흠흠! 저는 괜찮아요. 아이들이랑 계속 놀아줘요."
아이들이 아빠와 노는 사이.
란나는 같이 놀자는 말을 거절하고 썬베드에 누웠다.
그녀는 선글라스를 낀 채로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었다.
왜 그러냐고?
'가족들은 내가 지켜야지.'
분명 저 완벽한 그림을 깨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불온한 접근이 있을 때, 한 눈을 팔아서 가족들을 위험에 휩싸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신혼 여행지로 유명하다는 뜻은, 이곳에 남자가 많다는 의미이기에.
'남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 자연스럽게 이곳을 찾게 된다는 거지.'
결혼을 한 남자라고 해서 여자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느냐?
전혀 아니다.
오히려 결혼한 남자는 허들이 낮다고 생각해서 여자들이 더 달라 붙는다.
'여행 떠났을 때 주의 사항을 미리 봐두길 잘했어.'
신혼 여행을 갔다가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뺏겼다는 사연이 인터넷에 꽤 유명한 일화로 퍼져 있었다.
그걸 보니까 마냥 남의 일이 아니겠는 거다.
'저 사람을 못 믿는 게 아니야.'
남자들을 향한 여자들의 불손한 눈빛과 마음을 믿지 않는 거다.
내 남자를 다른 여자가 유혹하는 걸 두고 볼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눈 뜨고 코 베이는 씁쓸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처럼 한 마리의 맹수가 되어 가족들을 지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손한 접근이 시작 됐다.
"안녕하세요. 애들이 정말 예쁘네요!"
저 여자는 감히 남편에게 접근하는 의도로 아이들을 언급하기까지 한다.
"감사합니다."
남편도 차마 아이들 칭찬에는 냉정하게 쳐낼 수 없었는지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족들에게 다가갔다.
"여보~"
"어~다 쉬었어요?"
"네. 애들 물 마셔야 하지 않을까요? 햇빛이 강해서요. 그리고 썬크림 잊고 있었잖아요."
"아! 맞네. 썬크림. 큰일 날뻔 했다. 얘들아~ 이거 바르자."
그의 손에 썬크림을 쥐어주고, 애들에게는 물을 마시게 한다.
그 과정에서 말을 걸었던 여자는 순식간에 뒷전이 되었다.
그녀가 바라던 대로 된 것이다.
여자는 아쉬운지 조금 더 기다려보다가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깨갱하고 꼬리를 내리며 자리를 피했다.
이럴 때는 눈치 없는 사람이 되는 남편은 여자가 사라지는지 마는지 조금의 관심도 없다.
아이들에게 썬크림을 발라주느라 정신이 없을 뿐이다.
"꺄하하핫!"
"썬크림 제대로 발라야지. 얼굴이 완전 하얗잖아. 하하!"
'차라리 이게 낫긴 해.'
괜히 그녀의 기분을 달래주겠다고 눈치를 보면 그것 만으로도 화가 날 것 같았다.
그의 기억 속에 여자가 한 자락도 남아 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물을 먹이고, 남편에게도 먹이고, 썬크림도 모두 바른 후 다시 썬베드에 가서 누웠다.
한 여자의 실패로 다른 여자들의 시선에 망설임이 섞여져 있었다.
'대놓고 견제하는 걸 보여줬으니까.'
멀쩡한 사람이라면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걸 알았을 때 물러 나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수시로 썬베드에서 일어나서 다가오는 여자들로부터 아이들과 남편을 지켜내야만 했다.
"애들 배고프다는데요?"
"엄마~ 배고파!"
"나도! 배고파요!"
아이들이 배고프다는데 엄마가 돼서 가만히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녀는 썬베드에서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가자! 맛있는 거 먹으러!"
"이야앙~!!"
"아빠, 안아죠. 안아주세요!"
"야아! 너 혼자 치사해! 나도! 나도 안아줘요!"
"한 명은 엄마한테 안기자. 둘 다 안기면 아빠 힘드셔."
싫다고 떼를 쓰는 첫째를 훌쩍 들어 올린 그녀가 앞 장 서서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밥을 먹으러 가는 것도 우선 애들을 씻기고 난 후가 되어야 하는 법이었으니까.
"맛있어?"
"넴!"
"아빠 나! 아~!"
"그래, 아~"
옴뇸뇸!
"어휴, 아빠 피곤하시게. 밥 먹을 때는 좀 떨어지는 게 어떨까?"
"괜찮아요. 아빠가 이 정도는 해야죠."
"혼자서 애들 먹이느라 밥도 제대로 못 드시고 있잖아요. 적어도 한 명은 제가 할게요."
"싫어!"
"시러~!"
"아주 그냥 이것들이!"
아빠만 있으면 엄마는 찬 밥 신세.
아빠는 자기꺼라면서 엄마를 약 올리기까지 한다.
오늘 경계할 대상을 잘못 선택 한 걸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애들에게 남편을 뺏겨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엄마 서운하시겠다."
"아니야."
"서운해, 엄마?"
"아니. 안 서운해. 너희들이 아빠가 좋다는데 엄마가 뭐 어쩌겠어."
애들 나이가 어려도 알건 다 안다.
자신들의 태도가 엄마를 서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말로는 투덜댔어도, 아이들이 아빠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서운한 감정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세 사람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따듯해지고, 행복했다.
"내가 엄마한테 갈게."
그리고 의젓한 첫째가 동생을 배려해서 그녀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아빠가 밥을 못 먹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 기특한 마음에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 뿜어져 나와 아이의 뺨에 뽀뽀를 잔뜩 퍼부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