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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43화 (823/849)

Chapter 843 - #97. 란나 (4)

"미안해요. 제가 괜히 투정을 부렸어요."

엄마에게 다녀온 이후.

스스로 많은 반성과 함께 남편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할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래, 이게 맞아.'

남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나올 법한 황당한 의심들.

그냥 모두 묻어두자.

그게 맞는 일이다.

란나는 그렇게 확실하게 결심을 했다.

그리고 나서 가장 먼저 한 것은 남편에게 사과하는 일이었다.

"네? 뭐가요? 아~ 그때 그거요? 이미 다 잊었어요. 미안해 하지 말아요. 그리고 제가 사과를 해야 하는 일이죠, 그건."

착하디 착한 남편은 그녀가 잘못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했어야 하는 사과였다며 오히려 자신의 잘못이라 말해왔다.

'이렇게 착한 사람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엄마처럼 되지 말자고 생각해서 긴장을 놓치지 않은 것인데, 오히려 그 고집이 그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지금에라도 마음을 바꿔 먹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역시 핏줄은 못 속인다고.

엄마처럼 안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같은 절차를 밟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서늘한 냉기가 뒷덜미를 확 낚아 채는 것 같았다.

'건드리지 말자.'

그녀는 자신의 의문점을 마음 깊은 곳에 봉인하고, 다시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남편은 예고했던 대로 일이 굉장히 바빠졌는지 연락이 뜸해졌다.

가끔 그녀가 아이들 사진을 보내면 답장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답이 올 때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여야 했다.

얼마나 바쁘기에 문자를 보는 것도 힘들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파헤치면 안 된다고 다짐한 지 얼마 안 됐기에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불안감이 꿈에 영향을 미쳤던 걸까?

끼이이익ㅡ!!!

"헉!"

그녀는 요즘 자주 꾸는 꿈 때문에 잠자리가 어수선했다.

오늘도 그 꿈을 꿨는지 새벽 4시에 잠에서 깨어나 버렸다.

"후우..."

사실 꿈 속에서 당한 교통사고는 그리 큰 사고가 아니었다.

가벼운 접촉 사고였고, 자신은 뒤에서 살짝 쿵! 하고 몸이 부웅~ 뜨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그 별 거 아닌 느낌이 어찌나 소름이 끼치던지.

'그래서 이 꿈을 꾸고 나면 엄청 불쾌해.'

꿈 속의 자신은 사고가 나자마자 배를 부여 잡는다.

그러면 자연스레 생각이 떠오르는 거다.

뱃속의 아이에 대한 걱정이.

"첫째? 둘째?"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임신을 했을 때 사고를 당한다는 느낌인 것 같다.

다만 그건 꿈 속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실제로 벌어지지 않을 일이기도 했다.

"오늘은 몸 조심 좀 해야겠네."

회사 CEO라고 할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커피 프렌차이즈로 시작해서 다양한 사업으로 영향력을 뻗어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커피의 브랜드의 가치를 키워 줄 중요한 회의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브랜드 로고 결정하는 날이지.'

프렌차이즈 로고를 바꾼다는 건 브랜드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심사숙고해서 여러 의견을 조합해서 들어보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걸 최종 결정 내리는 날이었기에 그녀는 하필이면 오늘 교통사고를 당하는 꿈을 꾼 것이 썩 부정적으로 느껴졌다.

"오늘 차 조심히 운전해주세요. 꿈이 좀 뒤숭숭해서."

"예, 대표님."

그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운전기사를 따로 고용해서 차를 운전하게 했다.

회사가 자리를 잡고 잘 되고 있을 때에도 굳이 운전기사를 두지 않았는데, 꿈이 너무 꿈 같지가 않고 마음을 뒤숭숭하게 해서 운전기사를 두기로 한 것이다.

무사고 운전 경력이 오래 된 사람으로 특별히 고용을 했다.

운전 실력을 보고 결정을 한 거라서 그런지 운전기사를 두고 난 이후 그녀는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차가 좀 많이 막히네요. 앞쪽에서 사고라도 났나 싶습니다. 원래 이 구간이 막히는 구간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좀 심하네요."

"아...회의시간에 늦을 정도에요?"

"예."

"저기 옆길은 잘 달리는데요?"

"그쪽은 다른 방면으로 빠지는 거라서요."

"중간에 끼어들기 가능할까요?"

"오늘 운전을 조심하라고 하셔서...."

"그 정도는 괜찮아요."

"예, 그럼 조금 서둘러 보겠습니다."

부우우웅-!

사람은 누구나 후회를 하기 마련이고, 그녀는 오늘도 어리석은 선택을 저질렀다.

회의에 늦는다고 해서 회사 사람들이 대표인 그녀에게 크게 뭐라고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늦지 않는 것을 선택했고 때로는 조금 느려도 빠르게 가는 것보다 더 나을 때가 있다는 법을 간과하고 있었다.

끼이이익-!!!

"어욱!"

"꺄악!"

쿵!!!

차체가 흔들리고, 정신이 아찔해진다.

뒤에서 온 충격에 그녀는 꿈에서처럼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흣!"

"대, 대표님! 괜찮으십니까? 어휴우...!"

"어떻게 된 일이에요?"

"죄송합니다."

"무리하게 끼어들기 하다가 이렇게 된 건가요?"

"예..."

사고가 난 상대방 차 쪽에서 운전석을 똑똑똑 노크 했다.

"잠시 나갔다 오겠습니다. 일단 수습하고 바로 병원부터 가셔야죠."

"병원이요?"

오늘 중요한 회의라서 그녀가 빠질 수가 없었다.

그녀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아예 회의가 취소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깥에서 운전자와 대화를 나누고, 또 사고 상황을 촬영하는 등의 일이 이어졌다.

"시간이 없는데..."

사고가 났을 때부터 이미 모든 게 다 글러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결국 한숨을 푹 쉬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네, 대표님! 회의 준비 다 끝났습니다.

"아...미안해요. 오는 중에 사고가 났어요."

-사고요?! 몸은 괜찮으신 가요?

"네, 크게 다친 곳은 없어요. 문제는 회의에 좀 늦을 것 같다는 거에요."

-아휴! 그럼요. 어쩔 수 없죠. 회의는 언제든 다시 열면 되니까요. 어서 병원 가서 검사 받으세요.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무서운 거라고 하잖아요.

"아뇨, 사고 수습 되면 회사로 갈 겁니다. 그러니까 회의 먼저 진행하고 있어주세요."

-네? 병원은 안 가시려고요?

"작은 접촉 사고에요. 병원은 무스...음..."

어쩐지 대수롭지 않게 사고를 넘길 수가 없어진다.

꿈에서 계속해서 교통 사고 나는 꿈을 꾸지 않았는가?

그게 다 오늘의 불길한 사고를 예견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수시로 꿈을 꾸면서까지 경고하려고 했던 사고.

'이걸 그냥 넘겨도 되는 거야?'

그녀는 한참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리고 회사 직원에게 말했다.

"그래, 병원 가봐야겠어요. 회의 취소해주세요. 다음날 다시 잡죠."

-네, 대표님!

직원과 통화가 끝나자마자 운전석에 기사가 들어와 앉았다.

"일단 상태는 뒤에 범퍼만 좀 깨진 것 같습니다. 택시를 이쪽으로 불러뒀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무리한 운전을 부탁 드려서 죄송하죠. 오늘 안전하게 운전해 달라고 했으면서 말이에요."

"회의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취소했어요."

"아이고..."

"차 렉카에 실어서 정비 보내고 나면, 기사님도 병원에 가서 검진 받으세요. 제가 비용 모두 대겠습니다."

"어휴! 안 그러셔도 됩니다. 저 멀쩡합니다."

손사래를 치면서 거부를 하는 걸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교통 사고는 후유증이 더 위험하다고. 제가 오늘 꿈에서 교통 사고 당하는 걸 꿨거든요. 꿈에서 깨어났을 때, 엄청 기분이 나빴어요. 그러니까 꼭 가보세요. 저도 회의 취소하고 병원 갈 거에요."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어쩔 수 없겠군요. 알겠습니다. 꼭 가겠습니다."

"그래요."

택시를 타고 먼저 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나니 결과는 다행이도 크게 다친 곳 없이 멀쩡하단다.

"검사 받느라 하루 시간 다 썼네."

금식을 못해서 받지 못한 검사도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예 건강 검진을 받아보자 싶어서 며칠 후로 건강 검진을 예약해두고 나온 그녀는 기지개를 펴며 가벼워진 마음으로 사뿐사뿐 걸음을 걸었다.

"마냥 불안해 하는 것보단 차라리 먼저 매 맞고 끝내는 게 낫네."

더 이상 교통사고 꿈을 꾸지 않을 것 같았다.

♧ ♧ ♧

"교통 사고를 당했었다고요?!"

사고 다음날, 무사히 회의를 끝내고 마무리가 됐다.

그렇게 서두르지만 않았어도 차 수리비를 내야 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앞으로 어떤 개꿈을 꾸든 함부로 무시하면 안 되겠다 다짐하면서 건강 검진도 야무지게 받았다.

그 결과는 다행히 깨끗하단다.

어쩜 이렇게 몸 관리를 잘 했냐면서 칭찬도 받았다.

'남편이 주는 영양제밖에 안 먹는데...'

남편이 주는 영양제를 먹고 난 이후부터는 일이 고되어도 힘들다는 생각이 잘 안 들었던 것 같다.

피곤해도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가뿐했고 말이다.

아무튼 속 시원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대수롭지 않게 그날 일을 말한 거다.

그녀 입장에서는 이미 해결 된 일이었으니까.

불길 했던 꿈은 교통사고를 조심하라는 예지몽의 역할로 끝난 거라고 생각했다.

"네."

"병원은요?"

"가봤죠."

"뭐래요?"

"건강해요. 기왕 하는 거 건강 검진 싹 받아봤거든요. 어쩜 이렇게 건강 관리를 잘 했냐고 하더라고요. 당신이 준 영양제 효과가 좋은 것 같아요."

"그거 외에 다른 건 없고요?"

"네. 없어요. 아! 그리고 운전기사 분한테도 건강 검진 받으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췌장암을 발견 했대요. 그냥 뒀으면 큰일 날뻔 한 거죠."

췌장암은 조기 증상이 없어서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라고 들었다.

증상이 없으니 건강 검진도 안 했을 거고, 그러다가 점점 더 심각해졌겠지.

"사실 교통사고 나기 전에 자꾸 꿈을 꿨거든요. 교통사고 나는 꿈이요."

"그런 꿈을 꿨어요?! 왜 말을 안 했어요!"

"지금 말 하잖아요. 왜 이렇게 반응이 격해요. 나 괜찮다니까요? 아무튼 그 꿈 덕분에 사람 한 명 살린 거나 다름없어요. 저 칭찬 받으려고 말한 건데 왜 혼나고 있는 거죠?"

"병원은 사고 나자마자 바로 간 거에요?"

"네. 중요한 회의가 있었는데, 고민하다가 취소 시키고 병원에 갔어요. 꿈이 너무 불길했었거든요."

남편이 그녀의 말에 드디어 처음으로 칭찬을 해줬다.

"잘 했어요. 정말 잘했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요. 몸을 걱정하라고요."

"에이~ 저는 후회했는데요? 이렇게 건강한 줄 알았으면 그냥 택시 타고 회사 가는 거였는데 하고요."

"...진심으로 하는 말 아니죠? 농담으로도 그런 말은 하지 말아요. 마음 찢어집니다."

남편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차마 반발이 안 나온다.

그냥 순하게 알겠다고 대답하기로 했다.

아까부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지 모르겠다.

'건강 검진까지 받았다고 했는데 말이야.'

건강하다는 걸 병원에서 증명 받았는데 이렇게 예민하게 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다칠 뻔 했다는 것에 많이 놀랐나 보다 하기로 했다.

그랬는데...

바쁘다던 남편이 불쑥 찾아오더니 그녀의 운전기사가 되어주는 것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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