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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44화 (824/849)

Chapter 844 - #97. 란나 (5)

"지금 뭐하는 거에요?"

운전석에 앉으려고 하니, 누군가가 자신의 팔뚝을 잡아서 뒷좌석에 태웠다.

누군지 정체 모를 괴한이었다면 힘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붙잡은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남편이었기에 반항하지 않고 일단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그는 그녀를 뒷좌석에 태우고, 자신은 운전석에 앉았다.

운전을 하겠다는 의미였다.

"깜짝 이벤트랄까요. 안 좋은 일이 있었으니까 당분간 곁에서 지켜 주려고요."

"바쁜 사람이 뭘 하겠다고요?"

"운전이요. 운전. 저도 운전 잘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운전기사는 새로 구하면 돼요. 금방 구해져요."

암에 걸린, 그것도 췌장암에 걸린 운전기사를 데리고 계속 일을 시킬 순 없었다.

결국 그는 휴직 했고, 복직하기 전까지 새로운 인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불길하게 느껴졌던 꿈도 완벽하게 해소했겠다, 자신이 직접 운전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적어도 운전 기사가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끝내고 돌아올 때까지는 말이다.

"거짓말. 운전기사 분 다시 복직 할 때까지 스스로 하려고 했잖아요. 맞죠?"

"...원래 저 혼자 했던 일이에요. 꿈이 뒤숭숭해서 운전기사를 고용했던 거고요."

"직접 운전하는 건 안 돼요. 불길한 꿈을 꿨었다고 했잖아요. 제가 운전기사 해줄게요."

"당신 일은 어떻게 하고요. 바쁘다고 하셨잖아요."

"바쁜 일 많이 괜찮아졌어요."

"거짓말. 제가 교통사고 얘기하기 전까지만 해도 바빠서 연락도 한참 뒤에 겨우 해줬잖아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시간이 남는다며 그녀의 운전기사가 되어주겠다고 한다는 게 말이나 될 일인가?

누가 봐도 자기 때문에 억지로 무리해서 시간을 낸 게 분명했다.

"저 그렇게 무능한 사람 아닙니다. 회사 일을 아내 건강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고요."

"읏...! 그런 말을 하는 게 어딨어요? 반칙하지 말아요."

"당신 건강을 위해서라면 반칙이든 거짓말이든 다 할 거에요. 그러니까 말리지 말아요. 어차피 못 할 겁니다."

남편이 고집을 부린다.

항상 고집을 부리는 건 자신이었는데, 남편이 단호하게 말하니까 할 말이 나오질 않았다.

거기다가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운영하는 회사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했을 때는 묘한 서운함을 느꼈으면서, 남편이 다니고 있는 회사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말에는 서운함이 아닌 고마움과 감동이 밀려왔다.

'참 나쁜 년이네. 이렇게 착한 사람을 데리고 살면서...엄마가 괜히 복에 겨웠다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니까.'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사이.

남편은 차를 출발 시켰다.

"그럼 적어도 조수석에 앉을 게요."

"됐어요. 거기에 앉아요. 일 하면서 가야 하잖아요. 편하게 있어요. 편하게~"

"......"

란나는 어쩔 수 없이 평소처럼 차 안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그러고 보면 당신이 회사를 구경하러 가는 게 오늘이 처음이네요. 그동안 투자만 하고 제대로 둘러 보지도 못했잖아요."

"제가 좀 많이 바빴죠? 미안해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좀 서운하긴 했어요. 그러니까 오늘 기왕 온 김에 싹 둘러보고 가요. 제가 소개 시켜드릴게요."

란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남편의 깜짝 이벤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분명 그녀가 안에 들어갔다가 가라고 하면 괜찮다고 거절할 게 분명해서 일부러 서운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소개요?"

초반에야 남편의 도움으로 이것저것 도움을 받았지만, 회사가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하고 사옥 건물이 생겼을 무렵부터는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 상태였다.

전문가들을 고용하게 되면서 더 이상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역시나 남편은 얘기를 듣자마자 난감해 했다.

"괜히 저 때문에 일 만드는 거 아니에요?"

"전혀요. 우리 회사 실질적 주인이잖아요. 오히려 싫다고 하면 서운해 할 거에요. 직원들도 당신을 보고 싶어 할 걸요?"

"나 같은 사람을 왜 보고 싶어 할까요."

"제가 남편 자랑을 좀 많이 해뒀거든요."

"하하, 제 자랑을요?"

"전부 사실만 말하면서 자랑했으니까 허풍쟁이가 되진 않을 거에요. 다만 직원들은 무척 궁금하겠죠. 그렇게 자랑을 해대는 남편은 도대체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지금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남편을 회사로 끌고 오겠는가?

그녀는 이런 생각을 금방 해낸 자신을 기특하게 여겼다.

'직원들한테 좀 깔끔하게 하고 있으라고 전달해야지.'

아마 남편을 데리고 간다고 말을 해 놓으면 알아서 잘 준비해둘 것이다.

적어도 오늘 남편의 눈에 회사의 부족한 면이 보이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 ♧ ♧

"굿모닝! 근데 아침부터 회사가 왜 이렇게 어수선해요? 로비부터 이상하던데."

"어머, 몰랐어요? 오늘 난리 난 거 맞아요."

"무슨 일인데 이래요? 오늘 일정 빡빡한데!"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회사에 큰일이 생겼다고 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정이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몰라요."

"무슨...월급 받아 먹는 사람이면 당연히 일정이 더 중요하죠. 그리고 무슨 일인지 몰라도 저 오늘 바빠서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이따가 상담하러 오신다는 분들도 열 분이나 된다고요."

"열 명? 좀 많긴 하네요."

"그쵸? 그러니까 저는 신경 안 쓰고 일 좀 할게요. 그래도 괜찮죠?"

"뭐...신경 안 쓴다고 해도 크게 상관이 없기는 할 거에요. 그냥 본인이 아쉬운 거지."

내가 아쉬운 거라고?

직원이 동료의 말에 회사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궁금해졌다.

"제가 아쉽다고요?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요?"

"그게...오늘 대표님이 남편 분을 데려오신다고 했어요! 그래서 로비부터 시작해서 싹 다 대청소 시작한 거잖아요."

"헉!"

우리 대표님 남편분???

사원들 모두 대표님의 남편에 대한 정보를 알음알음 들어 알고 있었다.

실질적 회사의 주인이 대표의 남편이라는 것을 말이다.

회사를 이 정도까지 키우는데는 마르지 않은 투자금이 큰 영향을 미쳤고, 그 투자금이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왔는지 모르는 직원이 없었다.

'엄청난 재력가라고 했었지!'

대표가 그 사실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기에 직원들도 모두 아는 사실이다.

오히려 자신은 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그저 남편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곤 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 대표님을 좋아하는 건데...'

누가 봐도 훌륭하게 성공했지만 겸손한 사람.

그렇기에 직원은 평소 자신의 롤모델로 회사 대표님을 서슴없이 꼽았다.

회사를 다니는 직원이 자기 회사 롤모델을 대표로 삼는 건 면접 때나 하는 일이지 진심으로 그렇게 여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 직원은 진심으로 대표를 존경하고 롤모델로 삼고 있었다.

그런 여자의 든든한 후원자인 남편이 처음으로 회사를 방문하는 사건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회사가 난리 날 만 하네요. 아니, 우린 이렇게 태평하게 있어도 되는 거에요?!"

"우린 평소에 깔끔하게 쓰잖아요. 이모님이 아침마다 깔끔하게 청소도 해주시고. 부장님이 새삼 부산 떠는 것보단 차분하게 마음 가라앉히는 게 낫다고 하셨어요."

"그건 부장님 말씀이 맞긴 하네요."

여태까지 직원 중 누구도 그녀의 남편을 실물로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사업 초반에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고, 그 직원들로부터 알음알음 형성 된 소문이 몇 가지 있었다.

'그 많은 투자금을 서슴없이 내어줄 정도로 대단한 재력가! 거기다가 연예인을 해도 될 정도의 미모까지 갖췄고, 매너도 엄청 좋다고 했었지.'

무슨 동화 속 왕자님도 아니고.

대표님 남편에 대한 소문을 완전히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소문의 진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됐으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직원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실물이 어떨까요? 진짜 잘 생겼을까요? 우리 로비로 가서 구경하면 안 되려나요?"

"오늘 일 바쁘다면서요. 왜 말이 확 달라요?"

"아잇!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어요! 지금밖에 없잖아요."

일은 어느새 뒷전이 된 직원들.

하지만 이어진 말에 기운이 쭉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자중하라고 공문 왔어요. 그리고 생각해봐요. 대표님을 따라서 왔는데 우리들이 동물원 동물 보듯이 구경하고 있다고요."

"윽...그거 완전 화날 것 같네요."

"그러니까요. 얌전히 자기 자리에 앉아서 일하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아마 한 두 명이 몰래 사진 찍지 않겠어요?"

그러니 얼굴이 아무리 궁금해도 참자는 거였다.

어차피 누군가는 몰래 사진을 찍을 테고, 그 사진이 퍼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좀 차분하게 생각해보니까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를 것 같아요."

"괜히 기대했던 얼굴이 아니면 실망할까봐요?"

"네."

대표님은 그녀의 롤모델.

그런데 정작 함께 온 남자가 짤막한 키에 뚱뚱한 외형을 갖고 있는 남자라면?

'요즘은 그런 남자도 없어서 못 만난다지만...'

롤 모델인 대표님이 그런 남자랑 팔짱을 끼고 하하호호 하면서 나타나는 걸 보는 게 너무 괴로울 것 같았다.

"오오! 왔대요!"

띠링띠링-

지이이잉~!

회사의 직원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대표의 남편을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 걸까?

드디어 로비에 나타난 대표와 남편의 소식이 빠르게 직원들에게 퍼졌다.

"세상에! 엄청 잘 생겼대요. 멀리서 찍어서 잘 안 보이는데, 기럭지 좀 봐요! 이런 몸이면 안 잘 생길 수가 없는 거거든!"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용기를 내서 로비에 들어오는 대표와 대표 남편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린 모양이었다.

얼굴이 정확히 나오지 않았지만 대표님과 함께 서 있는 기럭지만 봐도 훈훈한 훈내가 풍겼다.

'진짜 미남이라고?! 그런 대단한 재력가면서!?"

경악스러운 소식은 계속 전달 되고 있었다.

"거기다가 대표님이랑은 사이가 어쩜 그렇게 좋은지...깨가 쏟아진다고 하네요. 대표님 얼굴 좀 봐요. 여기 활짝 웃는 거. 완전 행복해 보이시잖아요."

"와...그러네요. 정말 행복해 보이신다."

"우리 대표님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좀 뚜렷하게 얼굴이 나온 사진은 없을까요? 기럭지가 좋은 거지, 잘 생겼다고 확실하게 증명 된 건 아니잖아요."

"좀 기다려봐요. 누가 올려주겠죠."

"하, 직접 봐야 알 텐데!"

회사를 소개시켜준다고 했으니 혹여나 자신들의 부서에 놀러오진 않을까 기대하며 직원들 사이에서 대표 남편에 대한 소식이 다시 갱신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들의 기다림은 성공적이었다.

남편에게 회사를 제대로 보여주겠다고 작심을 한 란나가 남편을 이끌고 회사의 모든 부서를 끌고 다녔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소문의 남편과 대표님이 나타났다.

"우와아..."

"미쳤다. 미쳤어."

"개 잘생겼네."

"우리 대표님 너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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