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48화 (828/849)

Chapter 848 - #97. 란나 (9)

남편이 보내준 운전기사.

중년 여성의 운전 기사는 기존에 운전을 하던 기사보다 실력이 좋았다.

일단 어디를 가도 길을 금방 찾아서 간다는 점이 매우 좋았다.

같은 시간에 나가도 안전하게 운전함과 동시에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도 사람을 잘 구했다 싶었다.

'마음에 쏙 드네. 일도 잘 하고, 부산스럽지도 않고.'

다만 남편이 보내준 운전기사는 굉장히 말수가 적었다.

그래도 자기 할 일을 잘 해내니까 오히려 말수가 적은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세 운전기사가 보필 해주는 것에 익숙해졌다.

"요새 꿈도 안 꿔서 자고 일어나면 개운해서 좋네."

꿈을 너무 자주 꾼다는 건 수면의 질이 낮아졌다는 거였다.

꿈 내용도 찝찝한 것들이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교통 사고를 한 번 당하고 나니 그런 꿈을 언제 꿨냐는 듯 깔끔하게 사라졌다.

덕분에 그녀는 그 꿈이 자신을 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미리 보여줘서 큰 피해가 생기지 않게 만드는 좋은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좋은 일로 남았던 그 꿈을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 ♧ ♧

꿈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 포니의 멱살을 잡고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해버리고 싶었다.

란나가 왜 사라져 버린 과거를 꿈 속으로 다시 기억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리고 과거를 바꾸는 일에 대한 부작용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내 아이가 살아 돌아오는 걸로 멀쩡하던 아이들에게 피해가 올 수 있다는 점도 들어서 알고 있고.

그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포니와 합의를 한 상태였다.

나중에 들었는데, 영구적인 장애가 아닌 작은 사고나 좋지 못한 병을 한 번 앓는 것으로 부작용이 끝났다고 들었다.

누가 내 아이 때문에 피해를 입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작은 사고나 좋지 못한 병을 한 번 앓는 것 만으로도 내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그 부작용의 대상에 란나가 들어있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그래서 당장 포니를 불러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추궁을 했다.

포니는 란나가 그런 꿈을 꿨다는 말에 엥? 진짜? 라며 전혀 모르는 눈치를 보였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해보라는 내 말에 며칠 후 결과를 가지고 왔다.

"이럼 뭐하냐고.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다만 그 조사 결과를 받아봐도 제대로 해석이 되질 않았다.

내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적혀져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분명 읽을 수는 있는데,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된다.

"그니까 뭐라고?"

[솔직히 나도 이해 못했어. 근데 조사 안 해가면 네가 뭐라고 할까 봐 가져온 거야.]

"너도 이해 못한 걸 내가 어떻게 이해 하냐?"

[그러니까 시간을 다루는 건 진짜 어렵다고 했잖아! 비용도 비용이지만,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네가 했던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이제 좀 실감이 나? 그나마 여기 차원 급이 낮으니까 그 정도 비용에서 그칠 수 있었던 거야.]

포니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조사한 내용을 읽어보았다.

"하나도 모르겠다."

뭔가 굉장히 전문적인 지식을 파고 들어야 이 조사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조사 내용의 정확한 결론이 뭐야?"

[짧게 요약을 하자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정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건 또 그런 식으로 란나씨 꿈에서 사라진 과거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야?"

[뇌에 저장 되어 있는 뚜렷한 기억, 이미지 같은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다 정도인 것 같아. 근데 크게 걱정 할 필요가 없대. 결국 지금처럼 몇 번 꾸다가 사라질 거라고 하니까.]

"란나가 그 꿈을 굉장히 찜찜해 했어. 그리고 이번에 갑자기 난 교통사고도 그래. 이 둘 사이에 연관이 있는 거 아니야?"

[그건 기분 탓이야. 그리고 그 꿈은 더 이상 꾸지 않게 됐다며. 그럼 문제 없는 거 아니야?]

"란나가 그 꿈을 예지몽으로 생각했으니까. 근데 그 꿈이 예지몽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찜찜한 거다.

과거의 좋지 못했던 일들이 꿈 속에서 계속 나온다면 그녀의 일상 생활에 영향이 갈 거다.

아이를 잃은 후, 우리는 정말 진심으로 헤어질 뻔 했던 적이 있지 않았는가?

그때 기억들이 꿈 속에서 나오기라도 하면?

'처음에야 대수롭지 않게 넘겨도, 점점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가뜩이나 예민한 사람이다.

정확히 뭘 숨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녀에게 모든 진실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은연 중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녀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접근할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그녀에게 솔직하게 나 자신에 대해서 말할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연예인이고, 당신이 알고 지내던 얼굴은 내 진짜 얼굴이 아니며, 다른 여자들이 많다는 것까지.'

하나 같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한 비밀들만 있었다.

더군다나 이 비밀을 말한다고 한 들 그녀가 좋아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밝히지 않았을 때가 더 나은 진실도 있는 법이잖아.'

다만 근래에 란나가 내 비밀에 대해 궁금해 한다는 눈치를 받았을 때가 종종 있었다.

지금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쏙 들어갔지만, 언제 또 내 의뭉스러운 점을 궁금해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비밀을 캐내려고 들었을 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 내 동료들에 관한 것이었다.

직장 동료들을 집으로 불러서 대접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거다.

나는 다들 해외에 파견 나가 있어서 바쁘다는 핑계로 그녀의 요청을 끊어냈지만, 이후로 많이 아쉬워 하는 걸 보며 양심이 쿡쿡 찔렸었다.

'이 얼굴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녀와 결혼식을 올렸을 때, 내 지인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등골이 서늘하다.

[다음에 또 그런 식으로 꿈을 꾸면 그때 말해.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한 내용이 있는 거면 삭제시켜줄게.]

"기억을 삭제시키라고? 그거 부작용 심하지 않아?"

[부작용을 감내하고서라도 지우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 하는 게 맞지.]

그건 싫다.

"다른 방법을 가져와. 그런 식의 해결은 아무 도움 안 되니까. 끝난 일이라고 입 싹 닦을 생각은 하지 말고."

[칫, 귀찮게. 그냥 과거 잊혀진 기억이 꿈 속에 나오는 것 뿐인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야?]

"충분히 호들갑 떨만한 일이야."

아이를 구하는 것도 구하는 거지만, 아이를 잃은 기억을 없애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제대로 이행 되지 않았으니 나는 클레임을 걸어도 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포니가 일의 해결 방법을 가져오기도 전에 일이 터졌다.

란나가 어떤 과거를 꿈으로 꿀 지 모르기에 최대한 그녀와 잠이라도 같이 잘 수 있게 계획을 잡고 있는 중이었다.

'컴백하고 스케줄이 너무 빡세긴 해서.'

분신 하나는 무조건 미션을 위해 한 쪽 세계에 박아둬야 하고, 다른 분신 하나는 국내와 해외를 오가면서 내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본체인 나는 주로 애들과 함께 스케줄을 다니는데, 아무래도 에어플레인 그룹으로 활동하는 기회를 분신에게라도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온전히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지 않은가?

'팬들 앞에 서고, 무대를 하는 건 내가 직접 해야 의미 있는 거지. 분신한테 맡길 거면 아예 시작도 안 했어.'

내게 이번 활동은 단순히 '일'이 아니라 우리 그룹을 좋아해주는 팬들을 위한 활동이었다.

그러니 직접 움직이는 게 의미가 있는 거였다.

물론 분신으로 해도 기억이 내게 흘러 들어오기에 문제가 없기는 하다.

하지만 직접 이 순간 순간들을 경험하는 것과 기억을 전달 받는 건 다른 법.

그런 식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스케줄을 뛰고, 밤이 되면 란나의 곁으로 가서 잠을 자는 행동을 반복했다.

물론 그것도 매일 할 수는 없었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많은 여자들과 스케줄을 하고 있다 보니 그럴 수밖에.

'내가 선택한 인생인데 누구한테 뭐라 하겠어.'

묵묵히 참고 바쁜 스케줄과 란나씨 케어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하지만 포니 쪽에서는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는지 연락이 없었고, 란나는 그 사이에 또 다른 과거를 꿈으로 경험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흣!"

"음...무슨 일이에요? 란나씨?"

잠을 자는데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서 깨어나니, 란나씨가 잠을 자면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보였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그녀의 이마에는 흥건하게 땀이 적셔져 있었다.

"아! 꾸, 꿈이에요?"

그녀는 정신이 들자마자 여기가 꿈인지 생시인지부터 물어봤다.

"나쁜 꿈이라도 꿨어요? 잠을 편하게 못 자는 것 같던데."

내 얼굴을 확인한 그녀가 깊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하아...꿈이었구나."

"도대체 무슨 꿈을 꿨는데 이래요?"

"엄청 생생한 꿈을 꿨어요."

"많이 심각했어요?"

그녀는 저번의 교통 사고 꿈도 있었던 지라 내가 예민하게 구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괜찮아요. 그냥 꿈인데요, 뭐."

"그냥 꿈이라기엔 저번 그 일도 있잖아요. 무슨 일인지 말해주기 힘든 거에요?"

"그냥...입 밖으로 내뱉는 것도 좀 찝찝한 내용이었어요."

도대체 무슨 꿈을 꾼 걸까?

하지만 말하기 싫다는 사람을 붙잡고 말해 달라고 칭얼 댈 수는 없었다.

"손 잡고 잘까요? 꿈 꾸지 않게."

"그래요. 그럼."

란나씨와 손을 마주 잡고 얼마나 흘렀을까?

깊게 잠들었는지 그녀의 숨소리가 새액 새액 평온해진다.

적어도 다시 꿈을 꾸는 건 아닌 듯 했다.

'나중에 물어봐야겠네. 그냥 꿈일 수도 있지만, 어째 느낌이 별로란 말이지.'

그런데 다시 물어 볼 기회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그 꿈을 꾸고 다음날 밤.

"흐으...으으어....하...으...으으.."

"란나씨. 란나씨?? 일어나봐요."

또 다시 란나씨가 꿈을 꾼 것이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 저번보다 더 격하게 꿈을 꾸고 있었다.

손이 움찔거리면서 움직이고, 입술도 무언가를 말하려는지 웅얼대기까지 한다.

하지만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확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서 몸을 흔들어 깨우자 그녀가 눈을 크게 떴다가 내 얼굴을 확인하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요새 왜 이렇게 잠자리가 사나워요?"

"그러게요."

"오늘도 꿈 꾼 거에요?"

"...네."

"설마 저번 교통사고 꿈처럼 똑같은 꿈을 꾼 건 아니죠?"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어제 꿨던 꿈이랑 똑같은 꿈이었어요."

이로써 란나씨가 단순한 꿈이 아니라 과거를 꿈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된 판에, 무슨 꿈을 꾸는 건지 숨길 순 없겠다 싶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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