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녀역전 세계의 아이돌-849화 (829/849)

Chapter 849 - #97. 란나 (10)

"그러니까..."

그녀는 한참 동안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정말 입에 담는 것 자체가 힘들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반드시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도 걱정하는 남편의 심정을 아는지 두 번째로 똑같은 꿈을 꾼 것까지 말하지 않고 넘기지는 않았다.

"제가 좀 이상했어요. 모든 걸 두고 떠나고 싶어 했거든요."

"모든 걸 두고 떠나고 싶다는 거기에 저도 포함이 되어 있었나요?"

"...네."

"그렇구나. 되게 기분 나쁜 꿈이네요."

그녀가 꾼 꿈이 어느 시절의 이야기인지 알 수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후유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일정을 소화 하다가 아이를 허무하게 잃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그녀는 본인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소중한 생명을 놓쳤으니 그 죄책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때의 꿈을 꿨을 걸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잊어버려요. 꿈일 뿐이니까."

"직접 꿈을 꾸지 못해서 모르시는 거에요. 그걸 고작 꿈이라고 넘길 수가 없어요. 심장이 쥐어 짜이는 기분이었거든요."

실제로 그때 그녀의 심장이 그만큼 괴롭고 아팠다는 의미였다.

그 말을 들으니까 나도 덩달아 표정이 굳고 표정 관리가 힘들어졌다.

"단순히 그게 끝인 꿈이었어요?"

실제로 그녀는 꿈을 꾸는 내내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음, 당신한테 헤어지자고 말했고 당신은 절대 안 된다면서 저를 붙잡았어요. 저는 계속 미안하다고 더 이상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당신 얼굴을 보면 괴로워서 미칠 것 같다고 말했고요."

"그걸 듣고 제가 순순히 그러자고 했나요?"

"...그렇다고 하면요?"

"꿈 속으로 들어가서 그놈 멱살 잡고 말도 안 되는 짓 하지 말고 당장 그 여자 붙잡으라고 윽박 질러야죠."

내 말에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당신은 꿈 속에서도 그랬어요. 절대 못 헤어진다고요."

"하하. 꿈 속에서도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있었네요."

"제가 큰 잘못을 해서 헤어지자고 하는 건데도요?"

"란나씨가 무슨 잘못을 했든 우리가 헤어지는 일은 없어야 해요. 저는 란나씨를 놔줄 생각이 없거든요."

당시에 내가 란나씨를 붙잡기 위해 보여준 모습이 어마어마하게 추했다.

떠나려는 그녀를 강압적으로 붙잡기도 하고, 광적으로 집착하고 소유욕을 부리는 형편없는 모습도 보여줬던 것이다.

그렇게 하고 서야 겨우겨우 그녀가 자신의 곁에 남아 있겠다고 허락을 해줬다.

'그걸 꿈속으로 다시 보게 된다는 의미인 거잖아.'

끔찍하다.

그런 형편없는 모습은 깔끔하게 사라지는 게 맞는 일인데 말이지.

"꿈 속에서도 그랬어요."

그녀는 내 말에 꿈을 떠올리는 것인지 살짝 몽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할 줄은 몰랐거든요.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았어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꿈 속의 내용이 빠르게 진행 됐던 모양이다.

"꿈일 뿐이에요."

"꿈일 뿐이지만...기분 좋았어요."

"그렇게 패악질을 부리는 게요?"

내가 했던 행동을 그녀가 좋게 생각해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게 왜 패악질이에요?"

하지만 란나는 그게 패악질이 아니라 사랑이라며 꿈이지만 행복했다고 말해왔다.

"...행복이요?"

그게? 내가 생각해도 찌질한 짓은 혼자서 다 했었는데?

"당신이 이렇게까지 날 사랑하는구나 하는 걸 그때 제대로 느낀 것 같아요. 아! 물론 꿈이지만요."

꿈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저지른 일이다.

그렇기에 꿈을 꾸면서 느낀 감정이 실제로 느꼈던 감정일 것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그런 모습이 란나씨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는 거죠?"

"망가진 모습이 아니에요. 오히려 멋있었어요."

그녀를 붙잡기 위해 했던 일들은 내가 이 세계에 와서 했던 가장 찌질한 행동으로 손 꼽힌다.

'내가 찌질한 모습을 보여줘도 란나씨는 나를 사랑한다는 뭐 그런 의미인 건가?'

그 모습은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보기 꺼려질 만큼 최악이었었다.

당시에는 내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훌쩍 떠나 버릴 게 분명했기에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었다.

나중에는 결국 붙잡는데 성공해서 결혼까지 하고 둘째를 낳지 않았는가?

그 과거는 삭제 되어 사라지게 되었지만, 당시에 했던 일은 찌질했었을지언정 후회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걸 다시 꿈으로 보게 될 거라는 점은 곤란하지만 말이야.'

나는 오히려 그런 모습이 멋있었다는 란나의 말에 반박하고자 말했다.

"제가 아무리 잘 생겼어도 그런 찌질한 모습까지 포장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푸훗! 당신은 꼭 제 꿈을 본 사람처럼 구네요. 제 꿈에서 멋있었다니까요. 절대 못 보낸다면서 막 힘을 줘서 제 손목을 꽉 붙잡는데, 설레어서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설마 그때 얼굴이 붉었던 게 화가 나서가 아니라 설레어서 였다고?

꿈으로 과거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는 건 안 좋은 일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당시 그녀의 심경을 알게 되는 건 나쁘지 않았다.

"제가 당신 손목을 잡았다고요? 힘으로 막 밀어 붙이고?"

"네,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당신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는데."

"쓰읍- 글쎄요. 란나씨가 갑자기 날 떠나겠다고 말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떠나면 꿈 속에서 했던 것처럼 절 붙잡을 거라는 거에요?"

"그렇죠. 당신은 교통사고 당했을 때 꿨던 꿈처럼 예지몽으로 생각해서 찝찝할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 이번 꿈은 예지몽이 아닐 것 같거든요. 애초에 우리가 헤어질 이유가 없잖아요."

아이들도 무사히 잘 낳았고, 크게 문제가 될만한 일도 없다.

회사도 운영이 잘 되고 있는데 무슨 이유로 우리가 헤어진단 말인가?

아이들이 있는 이상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선녀와 나무꾼에서 괜히 나무꾼한테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한 게 아닌 것 같단 말이지.'

나는 문득 두 명으로는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양 손에 다 챙길 수 없게 낳아야 하늘로 날아가지 못할 것 아닌가?

"그래도...저번에 꿈이 잘 맞았잖아요."

"아뇨. 꿈은 꿈일 뿐이에요. 다만 제가 이렇게 말해도 불안한 건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죠.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헤어지지 않을 완벽한 이유를 만들어요."

"완벽한 이유요?"

란나가 도대체 그런 방법이 어디 있냐는 듯 의문을 담아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녀의 옷 속에 손을 쑤욱 집어 넣고 말했다.

"당신 뱃속에 내 꺼라는 도장을 찍어두는 거죠. 도망칠 수 없게 말이에요."

"!!!"

무슨 그런 저질스러운 말을?! 이라는 표정이 말하지 않아도 전달이 된다.

나는 그녀의 경악한 표정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해줬다.

"오늘따라 귀엽네요. 자다 깨서 그런가?"

"뭐, 뭐하는 거에요? 아직 새벽이에요! 내일 회사 가려면 자야 하는데...학!"

잠을 자고 있으니 당연히 옷은 금방 내 손길을 허락할 만큼 무방비한 상태다.

방금 전까지 잠들어 있었던 지라 살결이 부드러웠고, 따끈따끈했기에 만질 맛이 났다.

잠옷 단추를 풀어서 드러난 가슴골에 얼굴을 묻으면 악몽 때문에 살짝 땀 냄새가 묻어 나왔는데, 그게 그녀의 살결 향을 진하게 만들어서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으응...안 되는데..."

부부 사이에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나?

란나가 불안해 하는 꼴을 두고 볼 바에야 사전에 그럴 일이 없도록 차단을 하는 게 맞았다.

그녀의 살결을 혓바닥을 내밀어 맛을 봤다.

목덜미에 옅은 이빨 자국이 난다.

고른 치아로 아프지 않게 앙앙 잇자국을 내면, 란나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하아...악몽은 완전히 잊어버리게 해줄게요."

"흣, 으응...이미 다 잊었어요."

"문득 꿈이 떠올라도 지금 이 순간이 더 기억에 남을 거에요."

사라져 버린 기억을 굳이 들 출 이유가 없었다.

그런 기억보다는 지금 우리가 직접 해나가는 현실을 떠올리는 게 더 영양가 있는 일일 것이다.

그녀의 젖가슴을 입으로 빨면서 잠옷을 하나씩 벗겨 나간다.

그리고 어느새 벌려진 양 다리에 몸을 밀어 넣고 바지를 벗었다.

♧ ♧ ♧

[그냥 내버려두는 것밖에는 답이 없어.]

"그게 네가 기껏 알아오라고 했더니 내놓은 답이야?"

[괜히 건드렸다가 일이 더 꼬일 수가 있어. 지금처럼 꿈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게 나아. 너도 내가 조사해온 걸 봤잖아. 잘못 건드렸다가 왕창 기억이 뒤죽박죽이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포니가 내놓은 결론은 이거였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

하지만 내 입장에서 꿈 때문에 잠을 설치는 란나를 두고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녀가 매번 꿈을 꾸고 괴로워 하는 걸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왜 하필 란나, 그녀에게만 이런 힘든 일이 자꾸 생기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세계를 멸망 시키는 아이를 태어나게 한 죄라도 물겠다는 건가? 근데 그것도 나 때문에 사라진 시나리오잖아.'

첫째가 똘똘하기는 해도 세상을 멸망 시킬 독한 성격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되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서 이것저것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시켜주고 있는 중이었다.

아이의 꿈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가 과학자가 되었다가 정치인이 되었다가 미술가가 되었다가 가수가 되었다가 하면서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고 있었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것을 아이가 해볼 수 있게 해서 자기에게 맞는, 그래서 계속 흥미를 갖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발굴하기를 바랐다.

'여러가지를 시켜서 그런지 몰라도 다양한 분야에 흥미를 보이긴 하는데...'

아이가 똑똑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뭐를 시켜도 뚝딱 잘 해낸다.

다만 아직까지는 그 흥미를 진지하게 쭉 이어가고 싶어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재능이 있다고 해서 굳이 그 재능을 살리는 직업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아이가 재능 있는 분야라 해도 흥미가 없다면 굳이 밀어 붙일 생각이 없었으니까.

'정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엄마가 하는 회사 물려줘도 되고.'

어릴 적 여러 경험을 시켜보는 게 경영을 시키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계속 이대로 두는 건 안 돼.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어도 아예 손쓸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잖아."

[그럼...아예 꿈을 먹어버리는 건 어때?]

"꿈을 먹어버린다고?"

[상점에 잘 찾아봐. 악몽을 먹어주는 건 얼마든지 있으니까.]

포니가 힌트를 알려주고 사라졌다.

결국 란나의 일을 해결하려면 또 상점밖에는 답이 없는 것이다.

[악몽을 먹는 하마 인형]

[꿈 없는 숙면 알약]

[행복하게 달콤하게 꿀 잠 배게]

그리고 상점을 뒤져 본 결과, 란나의 일을 해결할 방법이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몇몇 상점 물건들이 란나가 겪고 있는 상황을 돌파 시킬 답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