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1. 내 눈에만 보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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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눈에만 보여.(2)
이상연은 구상두의 마누라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다.
그 것은 악몽이 아닌 예지몽 이었을까?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한 그 때의 상황과 기억.
몸에는 잔 상처하나 남지 않았지만, 그때의 고통은 아직도 뼈 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진짜... 좆 됐네...”
그 것이 악몽이었든, 아니면 예지몽이었든, 지금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다.
나는 강북어둠을 평정한 구상두파라는 조직 두목의 마누라와 두 번이나 동침한 상태이다.
발각이 된 것은 다섯 번의 만남이후이긴 하지만, 어떤 연유로 걸리게 된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아직은 두 번밖에 만나지 않은 상황.
지금이라도 이상연과의 연락을 끊어야 했다.
이럴 거면 한 번 더 먹고 왔어야 했나?
못내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휴대폰을 해지하고 새로 개통했다.
이 참에 필요 없는 연락처들은 전부 정리했다.
물론, 그 필요 없는 연락처 중 이상연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고혹적인 그녀의 자태는 충분히 아깝지만,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으니까.
예지몽을 꾼 것이든, 어쩌면 회귀를 해서 몇 주 전으로 돌아왔든 죽기 전의 그 감각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어이없는 건 회귀를 했다면 고작 몇 주가 뭐란 말인가?
나도 당연히 과거의 바꾸고 싶은 기억과 시간들이 있다.
기왕 쓰는 거 화끈하게 후회가 물든 시간으로 보내주면 어디 덧나나?
“이건... 재수가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야? 아니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야?”
목숨은 구했으니 재수가 있는 것이긴 한데, 고작 몇 주 전으로 회귀라면 재수가 없는 것 아닌가? 아니지? 살아 있으니 재수가 좋은 거지? 아 씨발 모르겠다.
예지몽 이었더라도 로또번호를 외운 것도 아니고, 회귀를 했더라도 고작 몇 주다.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무언가가 주어져야 하는데 나에겐 아무것도 없다.
그냥 목숨을 구했으니 그것에 만족하라는 건가?
그렇게 부유한 삶을 살고 있지 않기에 괜히 씁쓸해진다.
“그나저나 김동운 이 씹새끼.”
내가 구상두파 졸개들에게 잡힌 것은 너무도 쉽게 불어 버린 김동운의 주둥이 덕이다.
친구라는 놈이 언질이라도 줄 것이지, 깡패 몇 놈의 협박에 그대로 입을 털어버렸다.
놈들에게 잡혀 있던 김동운의 얼굴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그 것이 시사 하는바는 명확하다.
“개새끼.”
지금 기분으로는 두 년 놈 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기상황을 무난하게 넘기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던 일로 치부하고 조용히 가늘고 길게 살아가는 것이 전부다.
***
내가 하는 일은 피팅 모델이다.
몸 관리야 워낙에 꾸준히 했고, 최적의 스펙은 아니었지만, 비율은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다. 덕분에 일은 끊이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지만, 평생직장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얼굴이 죽여주게 잘나서 연예계로 진출할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하겠다.
이 일을 하다보면 괜찮은 여자들이 제법 꼬인다.
괜찮다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겉모습을 이야기 하는 거다.
그래도 나름 매력은 있는지 친분이 생기다보면 좋은 기회들이 종종 찾아왔다.
그 기회를 살려 함께 밤을 지새우면 대부분의 여성은 에프터를 보내온다.
내가 타고난 물건 하나는 죽이거든.
물건도 죽이는데 몸에 좋다는 것은 돈도 아끼지 않고 잘도 먹는다.
나름 정력을 유지하는 비법이려나?
이쯤 되면 진지하게 만나는 여성이 있을 법도 하지만, 아쉽게도 난 솔로다.
왜냐고?
그 여성을 정복했다하여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모든 것을 내주다간 낭패당하기 십상이다.
잘난 외모 탓에 꽃에 모여드는 벌들은 많고, 그 중에는 물건과 정력마저 이기는 절대 권력을 지닌 말벌이 있기 마련이다.
하찮은 서민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지배권과, 그들을 부리는 재물까지 지닌 자들.
결국, 돈이라는 절대 권력에 내 마음은 무참히 유린당하고 버려진다.
그런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인 후부터는 나만의 방법으로 그들을 유린하기로 했다.
축복이랄 수 있는 존슨으로 유린한 꽃들을 괘념치 않고 넘겨주기로.
뭐 어때. 내 여자가 될 것도 아닌데.
내가 싸질러 놓은 정액에 절여진 꽃들을 맛있다고 씹고, 뜯고, 맛보며 즐기는 이들을 보며 나름의 만족감을 느꼈다.
그렇기에 나에게 사랑은 하룻밤의 정열이고 불타오르는 불장난이다.
내일이면 떠나갈 이를 하루만 사랑하며, 모든 장작이 불타올라 잿더미로 화했을 때 그 사랑은 종말을 고한다.
바이바이~ 내가 길은 제대로 뚫어 놨으니 웬만한 건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야.
쓸 대 없는 생각에 빠져있을 즈음.
듣기 좋은 미성의 음성이 귀에 사로잡힌다.
“인한아, 오늘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눈앞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여성은 김나연.
고작 두 살 연상인데 나를 애 취급하는 유일한 여성이다.
무난한 갈색 톤의 긴 생머리와 키170이 넘는 쭉빵의 여인이다.
반듯한 눈썹아래 당장이라도 ‘엘라스틴 했어요~’라고 외칠 것 같은 찰랑거리는 속눈썹.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오뚝한 콧날아래 귀여운 콧방울.
화장기 없는 새하얀 얼굴에 모공하나 보이지 않는다.
살짝 도톰한 입술은 윤기를 발해 하얀 얼굴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붉게 물든 앵두 같은 입술이다.
장담컨대 이처럼 현실불가 미모를 뽐 낼 수 있는 인물은 소설속의 여주인공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녀와 일해 온 것은 나름 긴 시간인데 어떠한 여지조차 잡지 못했다.
예전에 여자모델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그녀가 대신 모델을 하게 된 일이 있었다.
아마도 성기형이 그렇게 부탁하지 않았다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거다.
물론, 그녀의 얼굴은 철저하리만치 가려졌지만.
어찌되었든 우연찮게 탈의실 틈 사이로 비친 그녀의 속옷차림을 보고 말았다.
평소에도 제법 볼륨이 있다 생각했는데, 그 생각은 무참히 무너졌다.
제법 볼륨이란 말은 그녀에 대한 언어도단이요, 신성모독이었다.
확실히 여자는 벗겨봐야 알 수 있다고.
겉으로는 늘씬하게만 보이는데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는 아주 바람직했다.
최소D컵 이상의 가슴과 항아리 같은 순산형 골반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미안.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그럼, 조금 쉬었다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녀의 몸을 쉴 세 없이 스캔한다.
만렙 스캔레벨은 누구도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은밀하고 정확하다.
꿀꺽.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화장기 없는 얼굴만 보더라도 웬만한 여성은 오징어로 만들 정도의 외모다.
또한 웬만한 연예인들은 한 줌의 땅콩으로 변해 버리리라.
그녀를 알게 된 것도 1년이 넘어가지만 화장한 모습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저 외모라면 돈을 쓸어 담아도 모자랐을 텐데, 왜 되도 않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냥 사진 찍는 것이 재미있단다.
대단하다.
재미가 돈의 유혹을 이기는 건 실로 오랜만 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촬영 실력이 딱히 뛰어난 것은 아니다.
겨우 아마추어를 벗어날 정도의 실력.
처음부터 그랬으니 그녀의 실력이 이 이상 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다.
“누나는 왜 연예인 안 해?”
김나연이 커피를 들고 와 내 앞에 탁하고 놓는다.
털썩.
부러운 의자가 그녀의 푸짐한 엉덩이를 포근하게 감싸며 받쳐 든다.
앵두 같은 입술로 빨대를 강하게 빨아들이며 커피를 들이켰다.
그녀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커피마저 부럽다.
“넌 또 그 질문이니? 그냥 집중 받는 거 싫어.”
김나연의 성격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처음 보는 사람과는 상당한 거리를 둘 뿐 아니라 말투도 냉랭하다.
이 정도로 말을 꺼내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나 이외에 누군가와 길게 말하는 것도 못 본 것 같다.
“아니 그냥. 돈 많이 벌면 좋잖아.”
“뭐가 좋은데?”
“어?”
저런 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뭐가 좋으냐고? 당연히 좋은 거 아냐?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하고, 사고 싶은 거 마음껏 사고.
“싱겁긴~ 돈 버는 건 관심 없어. 지금은 사진 찍는 게 더 재미있어.”
“그래. 누나는 정말 재미로만 하길 바란다.”
내 진심이 너무 노골적으로 전해졌나?
김나연의 고운 눈썹이 역팔자로 휜다.
“너...? 지금 내 실력 비웃는 거지?”
그녀의 주먹이 알밤을 먹이려고 날아왔지만, 고개를 옆으로 숙이는 것만으로 피해냈다.
“어쭈? 많이 컸네? 누나 주먹을 피해?”
“뭐래~ 원래 내가 누나보다 더 컸거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드는 김나연을 피해 도망쳤다.
“야! 안 서!?”
“나, 잘 서거든?”
“저 새끼가?”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듯 그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킥킥킥~ 누나 얼굴 봐.”
“너 진짜 잡히면 죽~어!”
날 노려보던 그녀가 방심을 틈타 몸을 날린다.
간단히 피하려던 나는 순식간에 어깨를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오잉?’
운동신경은 둘째라면 서운할 정도라 생각했는데 고작 여자의 손에 어깨를 내주다니.
유단자... 인가?
“흐흐흐, 강인한 잡았다.”
음산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 모습에 놀라 뒷걸음치다 발이 엉켜버리고 말았다.
“어어어!”
뒤로 발라당 넘어가는 나를 보며 김나연도 당황한 눈빛이 역력하다.
우당탕.
마치 로멘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짜 놓은 듯 김나연의 몸이 내 위로 포개어졌고, 내 얼굴은 그녀의 가슴에 푹 하고 묻혔다.
뭉클.
‘가... 가슴?’
언젠가 뜻하지 않게 확인했지만, 안면에서 느껴지는 사이즈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뒷골이 울리는 통증은 어느새 저 만치 달아나 있었다.
확실한 자연산의 거유에 탄력까지 충분히 전해진다.
후다닥.
당황한 김나연이 재빠르게 몸을 일으키고는 조심스레 묻는다.
“괘... 괜찮아?”
그녀의 당황하는 표정을 처음 접한 나는 괜한 장난기가 동했다.
“으... 뒷머리가 너무 아파...”
“어떻게 하지? 저기 좀 누울래?”
“아... 이대로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것 같아.”
나는 지금, 이 상태를 더 즐기고 싶었다.
김나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고 있다.
덕분에 그녀와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넘어지며 풀려버린 것인지 그녀의 블라우스 안으로 깊은 가슴골이 눈에 들어온다.
“아... 거... 거기... 그렇게 문질러줘...”
“미안...”
아니 미안할 거 없어.
나는 그녀의 살 냄새에 황홀함을 느끼며 코를 벌름거리며 크게 들이킨다.
세상의 어느 향기라도 지금 코앞의 향기에 비할 수 없으리.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고.
조금 전 그녀의 가슴에 닿았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그녀의 가슴크기는 E컵에 육박한다는 것을.
김나연을 자빠트릴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단 말인가?
김나연이라면 유린당하고 버려진다 해도 기꺼이 몸을 내줄 용의가 있다.
나는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괜찮아?”
“엉~ 괜찮은 것 같아.”
“진짜 미안. 그러게 왜 놀리고 그래.”
“그건... 나도 미안.”
어쩌면 그녀의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을 내가 너무 쉽게 입에 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녀의 실력은 늘지 않는다.
“그건 됐고. 진짜 괜찮은 거지?”
“응.”
몇 번이나 괜찮느냐는 질문에 답하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한순간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비틀.
잠시 균형을 잃자 김나연이 놀란 음성으로 외쳤다.
“야! 강인한!?”
갑자기 왜 이러지?
나는 머리를 흔들며 초점을 잡아보려 애썼다.
눈을 몇 번이나 깜박여보자 조금씩 돌아오는 초점.
눈앞에 걱정스러운 얼굴의 김나연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에 은은한 노란색의 빛이 보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뜨면서 머리를 한 차례 더 흔들었다.
“야! 정말 괜찮냐고!”
내 양팔을 잡고 흔드는 김나연.
그녀의 몸에 보라색의 빛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빛들은 크기가 달랐는데 가슴부위에 연한 보라색이 손바닥 크기로 보였고, 유두가 있을 부위에 진한 보라색으로 빛났다.
그리고 그녀의 겨드랑이 부분이 진한 보라색이었고, 음부 쪽에서는 깜빡이며 보라색이 점멸등처럼 점멸하고 있었다.
‘뭐야! 넘어지면서 눈에 이상이라도 생긴 거야? 이 빛들은 뭐야! 좀 없어져!’
내 생각에 명령을 받기라도 한 듯, 김나연 주변의 노란빛과 보라색 빛이 없어졌다.
나는 그 현상에 얼이 빠져 멀뚱하게 그녀를 바라본다.
뇌에 이상이라도 생긴 건가?
“왜... 왜 그렇게 보고 있어?”
빠르게 정신 차린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고는 의자에 앉았다.
김나연이 걱정스러운 듯 다가왔다.
“인한아?”
“어... 어? 아!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
“안 되겠다. 일단 병원부터 가 보자.”
“아냐. 누나, 정말 괜찮아. 좀 쉴게.”
나는 애써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는 천천히 커피를 홀짝였다.
내 시선이 다시 김나연에게로 향한다.
그녀의 사슴 같은 눈동자는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다행이도 눈앞에 아른거리던 색깔은 보이지 않는다.
‘뭐지? 진짜 헛것이라도 본 건가?’
어느 정도 쉬고 난 후, 순조롭게 촬영을 마쳤다.
김나연이 계속해서 병원에 가자고 재촉 했지만 나는 괜찮다며 사양했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곧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 가지 않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내 눈에는 형형색색의 색깔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색은 김나연에게서 보이던 노란빛과 보라색 빛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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