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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3화 (3/297)

〈 3화 〉 1. 내 눈에만 보여.(3)

* * *

1. 내 눈에만 보여.(3)

사람에게 색이 보이는 것은 그때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모든 이에게서 색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부터 그 이유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1. 지나가는 대다수의 사람은 흰색을 두르고 있다.

하지만 보라색은 모든 이들에게서 보여 지는데, 그 부위가 실로 애매모호하다.

2. 한 번씩 눈길을 주는 이성에게선 옅은 아이보리에 가까운 색이 보였다.

불쾌하게도 날 훑는 남자에게서 아주 가끔 옅은 아이보리 색을 발견하기도 한다.

3. 나와 친분이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노란색이 보인다.

그 진하기가 조금씩 달랐는데 아무래도 호감이나 신뢰가 깊을수록 진해진다는 생각이다.

결론은 색으로서 그 사람의 호감이나 신뢰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라색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 가는 바가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검증을 거칠 필요는 있다고 파악된다.

왜 이런 현상이 나에게 일어나게 된 것일까?

이 능력들이 내 생활에 이바지 하는바는?

당연히 남들이 없는 이 능력으로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확실히 예지몽이 아닌 회귀라는 것에 무게추가 기운다.

아니러니 하게도 빌어먹을 벼락을 맞았기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사람을 걸러내고 주의를 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더군다나 보라색을 잘 이용하면 더욱 알차게 뜨밤을 보낼 수도 있겠지.

잘만 사용한다면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될 터다.

“흠... 나연누나는 노란색인가?”

흰색은 무관심, 아이보리색은 ‘좀 괜찮은데?’ 정도이고, 노란색은 그래도 어느 정도 친분이 쌓였다는 것이 분명하다.

김나연과 나는 얼굴 본 시간이 있는 만큼, 그만큼의 신뢰는 쌓였다는 뜻이겠지.

그것이 이성적인 것인지,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나를 대하는 것으로 보아, 그저 아는 동생에 대한 신뢰도 일 가능성에 무게추가 기울어진다.

나야 그 것을 순순히 인정하고픈 마음은 없다.

“이거 일감 전부 떨어지는 거 아냐? 성기형한테는 전화라도 해 줄 걸 그랬나?”

갑자기 벌어진 죽음과 회귀, 알 수 없는 능력의 발현으로 무엇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스마트폰의 벨 소리가 거슬려 며칠이나 전원을 꺼 놓은 상태였다.

그만큼 요 며칠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때, 꺼 놓은 스마트폰 대신 현관을 울리는 벨 소리가 귀를 어지럽힌다.

삐익삐삐삐삐. 삐익삐삐삐삐.

오래된 건물의 원룸답게 벨 소리는 방정맞기 그지없다.

원체 집까지 찾아오는 이가 없기에 간만에 들어 보는 오두방정이다.

그 요란한 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며, 저렇게 벨을 눌러대는 이가 누굴까? 란 의문이 떠오른다.

내가 사는 곳을 아는 사람이라 해봤자 성기형이나, 김동운개새끼 정도이다.

더군다나 김동운도 집 안까지 들어 온 적은 없다.

‘누구지?’

연락도 없이 일까지 펑크 냈기에 성기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쯤이라면 찾아올 때도 됐구나 싶었다.

만약에 김동운이라면 나도 모르게 아구창을 후려갈길지도.

비록 몇 주 회귀하면서 부활남이 되었다지만, 내 기억 속에서 그 새끼가 한 짓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쾅. 쾅. 쾅.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자 답답했는지 문까지 두드린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름다운 미성이 귓가를 간질였다.

“야! 강인한! 정말 없는 거야?”

조금은 화가 껴 미성에 쇳소리가 섞였지만, 나에겐 그마저도 천상의 음률처럼 들린다.

그 음성은 내 예상과는 한참 동떨어진 김나연의 목소리였다.

여기서 왜 누나가 나와?

그런 의문도 잠시 또다시 귓가를 강타하는 그녀의 음성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강인한!”

쾅. 쾅. 쾅.

나는 벌떡 일어나 거울 앞으로 다가가 내 모습부터 점검했다.

살짝 흐트러진 머리를 빠르게 정리하고, 어깨에 앉은 먼지도 툭툭 털어냈다.

이 정도면 양호하다.

어쩐지 평소보다 몸도 더 두꺼워 보이고 남성미가 물씬 풍긴다.

위에 입은 반팔 티가 어쩐지 꽉 옥죄어오고 바짓단이 한참 짧아 보이지만, 나름의 패션으로 승화시켰다.

세탁을 잘못한 건지, 성기형네 옷의 질이 한참 떨어져서인지는 모르겠다.

옷들이 죄다 줄어 버린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남자는 언제 어디서나 여성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점검을 마친 후 현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연이 누나? 누나가 어떻게 온 거야?”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태연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입가의 여유로운 미소는 덤으로 붙여 준다.

조금씩 열리는 현관 틈 사이로 오후의 햇볕이 스며들 즈음, 눈부신 김나연의 모습을 영접한다.

이렇게나 강렬한 햇볕에도 전혀 굴욕 없는 얼굴이 경이롭다.

아니, 이 밝은 빛은 오히려 모공하나 보이지 않는 피부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 주었다.

오늘도 열일하는 그녀의 외모에 찬사를!

“좀 들어가자. 더워.”

김나연이 나를 밀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신체접촉을 꺼려하는 그녀가 이렇게 쉽게 몸을 밀쳐주다니 황송할 따름이다.

설마, 안까지 들어올 줄은 몰랐기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

지나가는 김나연에게서 은은하게 배어 나온 땀방울이 확대되어 눈에 담겼다.

그녀를 따라 미세하게 춤추는 공기 속에는 그녀의 체취가 잔뜩 섞여 있었다.

‘아... 날 것 그대로인 여성의 향기.’

“뭐 해? 거기 멀뚱히 서서?”

“어? 어어.”

나는 김나연의 말에 문을 닫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왔다.

“뭐야? 어떻게 온 거야?”

“야! 전화는 왜 꺼놨어?”

그녀는 내 물음은 처참하게 묵살하고 본론부터 꺼냈다.

“어?”

“뭘 자꾸 되물어. 전화는 왜 꺼놨냐고.”

조금은 날이 선 그녀의 음성에 살짝 위축된다.

“아... 조금 몸이 안 좋아서 푹 쉬려고...”

“야! 강인한!”

“어... 어?”

“그날 그렇게 되고 갑자기 잠수타면 걱정이 되겠어, 안 되겠어?”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나를 쏘아본다.

내 목은 자라처럼 잔뜩 움츠러들었다.

참고로 내 배 아래 깔린 여자치고 이처럼 나를 막 대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

누나도 내 밑에서 가랑이를 벌리게 되면 꼼짝도 못 하지 않을까?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이 정도로 반응한다는 것은 좋은 쪽으로의 변화가 아닐까?

“되겠어.”

“이렇게 보니 멀쩡해 보이기는 하네.”

“응. 괜찮다니까? 아침에 운동도하고 건강하다고~”

나는 괜히 팔에 힘을 주며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평소보다 팔이 훨씬 두꺼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 보이기는 하네. 그런데 손님이 왔는데 마실 거 하나 안 줘?”

“마실 거? 아! 미안. 뭐 마실래? 내가 금방 나가서 사 올게.”

“됐고. 그냥 냉장고에 있는 거 아무거나 줘.”

그녀는 아직도 더운지 손으로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에어컨을 틀어놓기는 했는데 출시일이 내 나이보다 많다는 것에 열 손가락을 걸겠다.

원룸은 위치가 좋은 대신 옵션이 구리다.

에어컨의 상표는 무려 금별이다.

떨어지지 않는 온도 덕분에 그녀가 사용했을 바디워시의 냄새와 본연의 채취가 후각을 자극한다.

그녀가 내 방에 있다는 것에 알 수 없는 흥분마저 느껴졌다.

“인스턴트커피 괜찮아? 누나 핸드드립 아니면 안 마시잖아?”

“됐어. 그냥 줘.”

나는 그녀에게 커피를 건네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를 두른 빛은 역시나 노란색.

그리고 겨드랑이와 유두 쪽에 강한 보라색과 음부의 정 중앙에 보라가 점멸하고 있다.

혹시 클리토리스가 그녀의 최애 성감대일까?

그런데 노란색이 더 진해진 것 같은데?

‘호오...? 왜 진해졌지?’

그날 이후로 나에 대한 호감도가 조금은 더 높아졌다는 것일까?

알 수 없는 희망이 샘솟는다.

휘둘러지다 버려지더라도 그녀 품에 한 번이라도 안길 수 있다면~

“그런데 누나 어떻게 우리 집 알았어?”

“성기씨한테 물어봤어.”

“아~ 성기형.”

성기형의 성은 왕. 왕성기다.

정말로 안타까운 사실은 이름과는 달리 그 형의 물건은 소성기라는 것.

절대로 대중목욕탕을 안 가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나와는 꽤 친분이 있어 일감을 많이 주곤 하는데, 가깝게 지내다 보니 예기치 않게 형의 소추를 목격하게 될 상황이 생기고는 했다.

참고로 남자의 거시기에는 절대 관심이 없다.

군대의 훈련병시절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3분 안에 씻고 나오라는 조교들의 고함에 우르르 몰려 들어간 목욕탕에서 남자들과 부대껴 이리저리 살이 닿는 느낌은 지옥과 같았다.

무간지옥.

딱 그 표현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다.

김나연은 대부분 사람들을 호칭할 때 성까지 붙여서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나마 나와는 친분이 있어서 이름만을 부르기도 하지만.

한 번은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성기 형한테는 성까지 붙여서 부르지 않느냐고.

이유는 단순했다.

성까지 붙여서 부르기에 거북하다는 것.

하긴 왕. 성. 기 씨... 좀 그렇다.

“이야~ 그래도 신기하네. 누나가 사람 걱정된다고 집까지 찾아올 줄이야.”

“나한테도 책임이 있으니까 온 거야.”

책임이라면... 아마도 그때의 일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짐작은 했지만 내심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김나연이 만나는 사람이 없다는 것쯤은 1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어느 정도 확신을 갖게 되었지만, 전에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을까?

이런 여자와 사귄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최대의 축복이 아닐까?

나라면 막 일을 해서라도 황송하게 대접할 의사가 있다.

예전에 슬쩍 떠 봤다가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깨갱했던 경험이 있었다.

헛소리 말라는 무언의 압박.

‘제발... 내가 처음이었으면 좋겠는데.’

처음이고 자시고 가능할지나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과 나이, 그리고 전화번호 정도일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은근히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이 명품이라는 것은 알겠다.

촬영하는 걸로 돈은 별로 못 벌 텐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녀의 실력은 막 아마추어를 넘어선 정도로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발전이 없다.

‘언젠가는 기필코. 내 배 밑에 깔아준다!’

내가 혼자만의 결심을 다지고 있을 때, 그러거나 말거나 꿀꺽꿀꺽 커피를 원샷한 김나연이 일어났다.

역시나 저 커피가 너무도 부럽다!

언젠가는 존슨 너의 눈물로 저 목 안을 적실 기회를 만들어주마!

“무사한 거 봤으니 이만 간다.”

“벌써? 점심때도 됐는데 같이 밥 먹고 가지?”

나는 그녀가 바로 간다는 말에 벌떡 일어났다.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김나연을 사적으로 밖에서 만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거든.

“아니야. 볼일 있어. 그런데 너 오늘따라 좀 커 보인다?”

“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눈높이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무튼 갈게. 성기씨네 쇼핑몰 사진은 찍을 거지?”

“어? 어...”

성기형 일은 전속처럼 하고 있기에 내가 빠질 일은 없다.

또한 이유 중 하나는, 김나연이 항상 그곳에 오기 때문이다.

김나연은 꾸준히 불러 주는 성기형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다.

그녀의 겉모습 때문에 불러 주던 쇼핑몰들도 결국에는 점차 뜸해진다.

그렇다고 김나연의 성격이 싹싹해서 알랑방귀 끼며 여지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찍은 사진이 잘 나오는 것은 전적으로 내 노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김나연이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김나연을 배웅했다.

그녀가 가고 왠지 허탈한 마음이 든다.

처음으로 내 원룸에 여자가 들어왔는데 그냥 보내다니.

그러고 보니...

옷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말대로 몸이 불었나? 유지 말고 벌크를 한 기억은 없는데?

“성장기가 끝나도 키 큰다는 게 진짠가?”

나는 혹시나 해 줄자를 찾았다.

그리고 벽에 기대 대충서서 볼펜으로 체크 하고는 키를 재 보았다.

“어...? 잘못됐나?”

나는 같은 작업을 다시 한 번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키가 183으로 측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쟀을 때, 정말로 키가 커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84? 더 늘어? 이거 도대체 무슨 일이래?”

초자연적인 현상을 겪고, 이상한 색이 보이지를 않나, 이제는 끝났어도 한참 전에 끝났을 성장기가 갑자기 찾아오다니.

1~2cm 정도야 자고 일어나거나 스트레칭만 잘해도 늘긴 하지만, 무려 6~7cm는 말이 안 된다.

그래도 회귀자라는 것인가?

보내도 그냥 보내지는 않은 모양이다.

“씨팔...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참고로 나는 입 밖으로 욕을 내뱉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부쩍 씨발이란 욕이 입에 붙는 것 같다.

내가 8짜를 넘게 되다니.

기분은 좋은데 어안이 벙벙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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