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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8화 (8/297)

〈 8화 〉 1. 내 눈에만 보여.(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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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눈에만 보여.(8)

완전히 뻗어 버린 이상연을 두고 호텔을 나왔다.

한 번 펑크를 낸 전적이 있기에 오늘은 꼭 가야만 한다.

이래 보여도 약속은 철저하게 지키려 노력하는 편이다.

김나연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꿩 먹고, 알 먹고.

김나연도 보고, 돈도 벌고.

기왕이면 꿩 먹고가 김나연을 먹고가 되었으면 싶지만.

그것은 기약 없는 기대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이상연이 의심받지 않으려면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할 텐데...

뭐, 관계를 계속 이어 나가려면 알아서 하겠지 싶다.

성기형의 쇼핑몰은 무덤이라 불리는 온라인 쇼핑몰계에서 제법 잘 나간다.

초창기 오픈했을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덕에 나에게는 제법 후하게 대접해주고 있었다.

당연히 고마운 형이긴 하지만 내 의리도 한몫했다.

피팅모델 구할 비용도 없을 정도로 열악했을 때, 대한민국 평균을 조금 웃도는 사이즈를 소화해 준 것이 나다.

항상 말하지만 몸 관리하나만큼은 절대 빼놓지 않고 한다.

얼굴은 조금 달리더라도 비율하나는 상위권이라 자신했다.

“여~ 인한이~”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성기형이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성기형은 190cm가 넘는 키에 체구도 커다랗다.

덥수룩한 수염과 커다란 체구는, 사람이라기 보단 곰에 가깝게 보인다.

이렇게나 상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소추다.

문득 구상두랑 성기형 중 누가 더 소추인지 궁금해졌다.

‘그래도 성기형은 자연산이지.’

의미 없는 한 표를 성기형한테 던져 주며 물었다.

“어~ 형. 오늘 물건 많이 들어왔다며?”

“그래. 신상 좀 뺐지.”

“맘에 드는 옷 좀 가져가도 되지?”

“오브 콜스~”

“오~ 영어 공부 했어?”

“지랄.”

나는 형에게 모델 비를 받는 것 외에, 옷을 뜯어 가기도 한다.

내 옷의 대부분은 성기형 쇼핑몰의 옷이다.

형은 물어볼 필요 없이 가져가라고 하지만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적당히 신상 중에 비싼 것 몇 개 챙겨 갈 뿐이다.

“운동 좀 빡씨게 했나보다? 사이즈 미스 나는 거 아냐?”

“어? 어... 요즘 단백질을 덜 뺐거든~”

물론, 나는 꾸준히 이상연과 섹스했다.

단백질을 500미리는 빼지 않았을까?

“큭... 덜 뺐다는 건 빼기는 했다는 거네? 부러운 시키! 그런데 눈높이가 달라진 것 같은데? 깔창 좀 깔았어?”

“아~ 형~ 내가 깔창 까는 성격이야? 거참.”

“그건 그렇지. 그런데 진짜 많이 달라졌는데? 어? 너 이리 와 봐.”

성기형이 다가와서 내 옆에 반듯이 섰다.

“달라진 정도가 아니잖아? 와~ 씨발 이거 뭐지? 야 신발 벗어 봐.”

“아~ 진짜 봐봐! 안 깔았다니까?”

신발 한쪽을 벗고는 들어 보였다.

“좆나 골 때리네? 코까지도 안 오던 놈이 눈높이까지 올라왔으니 안 놀라겠냐?”

“아~ 몰라~ 그럼 키가 컸나 보지.”

“야! 이건 의학적으로 말도 안 된다고! 세상의 미스터리에 나가도 될 일이야.”

세상의 미스터리는 제법 유명한 장수 프로그램이다.

“고졸이 무슨 의학적 소견을 말해? 형 토목과잖아?”

“너는 고졸 아니냐? 야! 아무튼 너 병원 가 봤어? 거인증 그런 거 아냐?”

“아~ 씨~ 이 형은 재수 없는 말 하고 있어? 그런 거 아냐.”

그 말에 괜히 불안감을 느꼈다.

이대로 계속 자라면 어떻게 하지?

일반적인 것은 아니기에 이 주제로 한참을 투닥 거려야 했다.

잠깐 못 본 사이에 체형이 완전히 바뀌었으니 경악스러운 것도 당연했다.

“나연이 누나는?”

“아직 안 왔는데? 어~ 마침 저기 오네. 나연씨 안녕~?”

성기형이 입구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순간 김나연이 들어오는 입구가 환하게 바뀌는 착각을 느낀다.

이상연이 몸을 기대와 아양을 떠는 서큐버스라면, 김나연은 가랑이를 슬쩍 내비치며 고고하게 손짓하는 여신이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아.’

그녀에게서 보이는 색은 여전히 노란색.

나는 매직아이를 이용해 성기형에게 눈을 돌렸다.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게 되겠지만, 형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주황색.

아주 진한 주황색이다.

그나저나 보라색이... 젠장할 못 볼 것을 봤다.

형... 비밀은 지켜 줄게.

이상연의 경우 분홍색에 가깝게 변했다.

성기형은 완전한 주황색이었다.

남자랑 여자의 색이 차이가 있음이 확실하다.

우정과 사랑의 차이?

어찌 되었든 성기형은 나를 아주 신뢰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당연히 성적인 호감은 아니다. 절대로!

“내가 좀 늦었네? 안녕하세요. 성기씨.”

새하얀 스키니진에 민트색 블라우스를 입은 김나연.

긴 팔의 블라우스는 팔뚝의 중간까지 몇 번이나 접었다.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 긴팔을 잘못 입었다가, 귀찮아서 그냥 접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화장도 안 하고 다니는 여자가 세세하게 신경 써서 옷을 입고 나왔다고는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웬일로 늦었데?”

“친구 좀 만날 일이 있어서.”

친구? 그녀의 입에서 친구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 보는 것 같다.

괜한 호기심이 일었다.

“누나가 친구도 있었어?”

“난 친구가 없겠니? 쓸 대 없는 말은 그만하고 빨리 일하자. 오늘 바빠~”

“누나가 바쁠 일이 뭐가 있다고~”

“너어? 그거 또 뼈 때리려고 하는 거지?”

“아... 아니야~ 하하하.”

그녀의 눈초리에 저절로 자라목이 되었다.

이상하게 그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날의 촬영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졌다.

안 그래도 하찮은 김나연의 촬영 실력이 오늘따라 더욱 최악을 쳤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는지 그녀의 컨디션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생각이다.

겨우 촬영을 마치고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김나연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자 휴대폰을 핸드백에 넣어 버린다.

‘괜히 신경 쓰이네?’

“누나 피곤하지?”

“휴우~ 오늘 컨디션이 좀 그랬어.”

“바쁘다며? 안 가 봐도 돼?”

“늦는다고 이야기 했어.”

김나연은 어깨가 결리는 듯 팔을 들어 주물렀다.

덕분에 그녀의 한쪽 가슴이 도드라지며 튀어나왔다.

“불편하지 않아? 내가 주물러 줄까?”

“됐어~”

쉽게 내 줄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라는 말을 실천할 뿐이다.

나는 김나연을 보며 매직아이를 발동시켰다.

그녀의 색깔은 여전히 노란색.

지금까지는 그저 이정도거리에 만족했는데, 오늘따라 새로운 각오가 다져진다.

‘언젠가는 꼭 따 먹을 거다. 꼭 분홍색으로 만들고 말겠어.’

여지도 주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은 서운하고 화도난다.

아무래도 이상연을 만나서 화끈하게 풀어야 할 것 같다.

김나연은 촬영한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세심하게 살피며 말했다.

“확실히 달라졌어.”

심각한 표정으로 몰두하는 그녀의 모습은 여느 프로 못지않은 모습니다.

그렇다고 실력이 아마추어 인 것은 바뀌지 않지만.

“뭐가?”

그녀는 내가 볼 수 있도록 모니터를 돌려주었다.

“네 신체스펙 차이가 확연하게 나잖아. 오늘은 전부 꽝이야. 옷들도 너무 달라붙어.”

“아무래도 모델을 한 명 더 구해야겠는데?”

뒤에서 성기형이 오렌지주스를 쭙쭙 빨려 다가왔다.

뭔가 추잡한 모습과는 달리, 두꺼운 손에 들린 컵만은 유독 귀엽게 보인다.

“그럼 나는?”

“왜? 자를까 봐 겁나냐?”

“뭐래~ 설마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건 아니겠지?”

“요즘 준이 눈치 보니까 일하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네가 하면 되잖아. 그리고 원래 네 사이즈는 사람 새로 구하고.”

“왜? 준이형 무슨 일 있어?”

“몰라. 그 싸가지 없는 새끼. 요즘 좀 나가니까 애가 확 변해 버리네?”

“촬영은? 어떻게 해?”

“음... 나연씨가 오늘 바쁘다니까 다음으로 미루자.”

나야 아쉬울 것 없다.

그러면 한 번이라도 김나연을 더 볼 수 있으니.

“그냥 오늘 하죠.”

“어? 괜찮겠어?”

“내가 일 미루는 사람은 아니잖아. 시작한 건 끝내야지.”

김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내기 시작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닌가?

그렇게 촬영은 늦게까지 이어졌고, 핸드백 안의 김나연 휴대폰은 불이라도 난 듯 진동을 울려댔다.

촬영에 열중하는 김나연과 성기형은 못 듣는 것 같지만, 신경을 쓰고 있던 내 귀에는 똑똑히 들린다.

‘중요한 일이었나? 누군지 몰라도 좆나 스토커 같네.’

촬영 내내 그녀의 진동은 열 번이 넘도록 울렸다.

괜히 신경이 쓰여 집중하기가 어렵다.

찰칵. 찰칵.

“강인한! 너 무슨 생각해? 포즈도 엉망이고 표정도 안 좋잖아.”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사과했다.

“아! 미안. 잠깐 딴생각하느라. 그런데, 전화 계속 오는 것 같은데?”

“휴... 잠깐 기다려.”

김나연의 눈가가 짜증난다는 듯 찌푸려졌다.

나를 향한 짜증은 아니겠지만, 괜히 나까지 움츠러든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김나연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휴대폰을 보는 그녀의 눈빛은 상당히 불쾌한 모습니다.

김나연이 휴대폰의 다이얼을 누르며 전화를 걸며 문을 열고 나갔다.

그녀의 얼굴은 문의 유리에 언뜻언뜻 비쳤는데, 역시나 좋은 표정은 아니다.

통화를 마친 김나연이 조금은 거칠어진 숨소리로 들어왔다.

카메라를 들고 다가온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다.

모습만은 프로답군.

“무슨 일 있어?”

“아니, 별일 아냐. 시작하자.”

무뚝뚝하게 들려 온 그녀의 목소리가 괜히 야속해진다.

‘아~ 좆나 궁금하다.’

찰칵. 찰칵.

쉴 세 없이 울리는 카메라 셔터음.

나는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포즈를 바꾸며 다양한 모습을 연출했다.

“휴우~ 여기까지 하면 될 것 같은데?”

김나연이 카메라의 사진을 돌려보며 말했다.

“와~ 오늘 진짜 빡 쌨다. 누나 수고했어.”

“그래. 너도 수고했어.”

“흐흐흐~ 괜히 미안하네. 안 그래도 좋은 몸 더 좋아져서.”

“풋. 자아도취니?”

“누나, 볼일도 있었는데 나 때문에 진짜 미안해. 빨리 가 봐야 하는 거 아냐?”

“다음으로 미뤘어. 성장기 지난 네가 컸다고 해서 네 잘못은 아니지.”

“여~ 수고들 했어~ 나연씨, 나머지 작업은 삼일 안으로만 해 주면 됩니다. 어차피 다른 것도 촬영해야 하니까 급할 건 없어요. 오랜만에 야근도 했고, 그런 의미에서 회식 좀 시켜 주려고 하는데?”

성기형의 말에 나는 냉큼 좋다고 대답했다.

“콜! 누나도 당연히 콜이지?”

“난...”

딱 거부할 것 같은 그녀의 표정.

그때, 성기형이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에이~ 나연씨는 한 번도 회식 안 했잖아. 그래도 알고 지낸 게 얼만데, 오늘은 시간 좀 내줘요.”

나는 속으로 성기형을 응원했다.

‘나이스! 성기형! 형은 역시 왕성기!’

김나연이 거절할까 황급히 말을 이었다.

“누나~ 한 번 가자~ 오늘 A++ 한우 쏘는 거지?”

“뭐... 뭐...?”

당황하는 성기형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어... 어... 그렇지.”

‘그래, 돈도 잘 벌면서. 한우 A++ 정도는 쏴야지. 성기형아~ 자고로 남자는 잘 쏴야 여자가 따른다. 쯧쯧쯧.’

고민하던 김나연이 무거운 입을 뗐다.

“알겠어요. 제가 너무 무심하기는 했네요.”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이로써 한 발자국은 더 나갈 수 있으려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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