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9화 (9/297)

〈 9화 〉 1. 내 눈에만 보여.(9)

* * *

1. 내 눈에만 보여.(9)

늦게까지 이어진 촬영 때문에 이미 퇴근한 직원들도 있었다.

성기형은 퇴근한 직원들까지 불러 회식 자리를 마련했다.

퇴근해서 쉬는 직원을 부르는 악덕 사장이라는 타이틀은, 한우 A++ 이라는 위대한 이름 앞에 모두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오늘 제대로 쏠 모양이다.

식당직원들이 고기를 구워 주는 족족 빠르게 사라져 갔다.

더불어 성기 형의 안색도 점점 검게 변한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어렵게 성공을 했지만,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지 성기형의 씀씀이는 아주 알뜰하다.

나 때문에 코가 꿰어 한우 A++ 회식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성기형의 표정으로 보아 본인이 생각하던 가격과 그 갭이 큰 모양이다.

‘크크큭. 많이 벌었으면 좀 쓰라고.’

술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유롭게들 마시고 있다.

옆에 있는 김나연의 술잔은 처음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모습.

마시고 취하는 걸 보고 싶은데... 그렇다고 억지로 권하지는 않았다.

자리가 그리 넉넉하지 않다 보니 그녀와 나의 거리가 꽤 가깝다.

이전에 넘어졌을 때 빼고는 이렇게 가까이 붙어보기는 처음이다.

고기 냄새 가득한 이곳에서도 선명하게 맡아지는 김나연의 향기.

오늘은 이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뭘, 그렇게 빤히 봐?”

내가 주시하는 것을 눈치 챈 김나연이 물었다.

조금 놀랐지만 태연함을 가장하며 말을 돌린다.

“그냥~ 누나가 회식에 온 게 신기해서~”

“싱겁긴.”

확실히 김나연은 예리한구석이 있다.

많은 시선을 받다 보니 감각이 발달이라도 한 것일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지면 귀신같이 알아챈다.

“자자~ 오랜만에 제가 비싼 한우A++ 쏘는 겁니다. 밥들 많이 드시고~ 고기는 적당히 드세요~”

성기형이 우렁차게 말했다.

처음에 검게 죽었던 얼굴은 활력을 되찾았다.

쉼 없이 사라지는 한우 A++ 속에서 모든 번뇌와 고민을 내려놓은 모습.

그의 얼굴은 초탈의 경지에 올랐지만, 입만은 일말의 미련이 남아 있는 듯하다.

“한우는 처음인데? 왜 오랜만?

“우~~~~ 쫌생이~”

“사장님~ 속셈이 너무 노골적이에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 반대로 하고 싶더라.”

먹음직스러운 한우가 불판위에서 구워지고 성기형이 술을 돌리기 시작한다.

야들야들한 육고기에 집착하는 이들을, 알콜로 유혹하는 능숙한 손놀림이다.

“한우에는 쏘주가 빠질 수 없지~ 받으시오~ 소주가 힘든 분은 미리 말씀 하세요~ 맥주로 바꿔 드립니다아~”

성기형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술을 내밀고 채워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김나연 에게까지 당도했다.

여전히 김나연의 술잔은 조금도 비워지지 않은 모습이다.

“누나~ 좋은 날인데 한 잔만 해~ 설마, 술 못 마시는 거야?”

머뭇거리던 김나연이 결국 잔을 들어 입으로 털어 넣는다.

이게 뭐라고 사람들은 환호하면서 박수까지 쳤다.

“이렇게 잘 마시는데, 어떻게 참았데?”

내 말에 잠시 눈을 흘기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마냥 싫지는 않았던지 김나연의 입가에 살포시 미소가 얹혔다.

그리고 몇 잔의 술을 더 마시기까지 했다.

자고로 술기운이 오르면 사람은 풀어지기 마련.

오늘도 나무꾼의 심정으로 안 넘어가는 나무를 찍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무려 30인분을 먹어치운 직원들로 인해 성기형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다.

역시 모든 걸 떨쳐 내진 못한 모양이다.

여전히 자리가 끝나지 않은 가운데 슬쩍 엉덩이를 떼고 밖으로 향하는 김나연.

나도 그녀를 따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자연스럽게 뒤를 따랐다.

그저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나온 척, 자연스럽게 말을 붙인다.

“누나 식탐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 알았는데? 히히히~”

예쁘게 눈을 흘기는 그녀.

“농담인 거 알지?”

재빠른 처세에 어깨 위로 들리던 김나연의 손이 내려왔다.

“푸훗. 맞기 전 네 표정 조금 귀여운 거 알아?”

“변태야?”

“변태라면 매일 맞아줄래?”

“누나는 정상인이야~”

“귀엽긴.”

술기운의 영향일까? 그녀에게 두 번이나 귀엽다는 말을 들었다.

“귀엽다니! 내가 얼마나 남자다운데?”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애매한 기분이 되었다.

애 취급당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내가 낮져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싶은데 말이야.

“그래, 참 남자답네. 후훗.”

짧게 대답한 그녀가 멍하니 허공을 주시한다.

살짝 붉어진 얼굴, 말 없는 그녀.

오늘 있던 약속 때문에 신경이라도 쓰이는 걸까?

“볼일 못 봐서 신경 쓰여?”

“무슨... 별일 아니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별일이 아닌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것은 그녀의 표정이 답을 해 주고 있다.

어색한 침묵.

나는 슬그머니 턱을 괘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본다.

솔솔 불어오는 살랑바람에 김나연의 머리칼이 하늘하늘 춤을 춘다.

너무나도 새하얀 피부, 그녀의 얼굴엔 조금의 각진 부분도 없다.

도자기 장인이 정성스럽게 어루만져 탄생시킨 필생의 역작처럼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어둑해진 하늘 위로 달이 차오른다.

은은한 달빛은 그녀를 내리비추며 한 폭의 수채화를 탄생시킨다.

고고한 달빛아래 여인.

그 고혹적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언제나 알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지만, 다시 한 번 감탄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반쯤 넋이 빠져 있을 즈음 김나연이 비스듬히 고개를 돌렸다.

매혹의 마법을 담은 초록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나를 주시했다.

나는 홀린 듯 멍하니 그 신비한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녀를 둘러싼 노란색이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장미처럼 유독 붉은 입술이 살며시 벌어졌다.

그녀의 입이 벙긋거린다.

“....... 가 안나.”

화들짝.

매직아이는 언제 발동 된 거지?

나는 너무 뚫어지게 본 것이 민망해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넋을 놓고 바라본 탓에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다시 본 김나연의 눈동자는 원래의 검은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를 두른 노란색이 보인다.

아무래도 내가 잠시 착각이라도 한 모양이다.

“미안, 제대로 못 들었어. 뭐라고 했어?”

“별말 아니야. 사람들이 오해하겠다. 들어가자.”

말을 돌리며 몸을 일으키는 그녀.

몸을 돌려 식당을 향하는 그녀의 빵빵한 엉덩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가 내게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더욱 진해진 노란색에 만족하며 몸을 일으켰다.

어찌 되었든 조금은 발전한 것 같다.

***

‘귀여운 거 같다고?’

귀엽다는 말에 약간의 실망감도 들었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매직아이로 본 노란색도 더 진해졌지.’

어쩌면 거근을 휘두를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내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피식.

기분 좋은 마음으로 오랜만에 피트니스센터를 찾았다.

하루 이용료 15000원.

달 단위나 연 단위로 등록하는 것보다 훨씬 비싼 가격이다.

그렇다고 달 단위나 연 단위로 등록할 생각은 없다.

그 돈으로 몸에 좋은 걸 하나라도 더 먹고 말지.

대부분 운동을 시작할 때 모든 기구가 구비된 피트니스센터를 먼저 등록한다.

이것만으로 당장 몸짱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부터 하지만... 글쎄... 그 결과가 모두 같지는 않을 거다.

운동은 그야말로 자신과의 싸움.

긴 시간을 투자해 오랜 담금질을 해야만 하는 노동인 것이다.

어설픈 객기로 등록비를 던지고는 수많은 핑계를 들며 피트니스센터 장비의 수명에 이바지 한다.

운동도 결국은 인생과 같다고 할까?

운동도 인생처럼 당장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한 달 후, 두 달 후, 일 년 후의 결과만을 보고 있다면 그 시간은 너무나도 길고 고되게 생각될 거다.

그저 오늘 하루만 열심히 하면 된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매우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보다 좋은 말이 없다.

최소 하루 이틀은 가능하다는 말이 아닌가?

긴 계획을 잡고 오래 할 필요는 없다.

작심삼일이면 충분하다.

아니, 그것도 길다.

고작 하루 만 있다면, 그 하루 만을 제대로 산다면 바뀔 수 있다.

오늘 하루, 오늘 하루, 그리고 오늘 하루.

그렇게 매일의 단 하루 만을 바라보고 실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하루는 일 년이 되어 있을 거다.

그리고 생각하겠지.

아! 내가 일 년 동안 잘 살았구나?

그리고 거울을 보라.

그래! 지금 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일 년의 하루를 보낸 네 모습이다.

정말 할 사람은 어디서든 최상의 하루를 산다.

그렇게 나는, 좁은 원룸에 있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중고 장비로도 지금의 몸을 만들어 냈다.

챙겨 온 나시티와 반바지를 챙겨 입고 나오자 힐긋거리는 남정네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게이가 아니기에 그 시선이 불쾌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뿌듯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게이라서 힐긋거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피트니스센터는 정글이다.

서로를 은근히 견제하며 자기 남성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오늘도 으르렁 거린다.

상대보다 더 커 보이기 위해, 여성회원에게 야성미를 뿜뿜하기 위하여 그들은 연신 헉헉대며 어김없이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그들은 오늘도 얼굴의 노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헬창전용 젖꼭지가 보일랑말랑하는 나시를 입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퍼펙트! 완벽해!”

살짝살짝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근육이 살아 움직인다.

운동한 직후가 아니라면 조금은 늘어지기 마련인데, 나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회귀를 한 이후부터 운동하는 족족 그 성과가 너무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늘 피트니스센터에 온 이유는 제대로 중량을 쳐 보기 위해서다.

집에 있는 잡스러운 기구로는 내 한계를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달려볼까?

“후욱. 후욱. 후욱.”

워킹머신 10km를 금방 뛰어 버렸다.

쉬지 않고 뛰었는데 생각보다 수월하다.

‘더 뛰어도 되겠는데?’

10km를 추가로 더 뛰고 나서야 제법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낀다.

키가 커지고 근육양이 늘어난 것뿐 아니라 체력도 확실히 업그레이드된 것을 알았다.

이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

참고로 이상연과 연속 5번의 섹스를 하고도 멀쩡했다.

잘하면 연속 10번이라는 전설을 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20km를 달렸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데드리프트는 스쿼트와 함께 웨이트 트레이닝을 대표하는 3대 운동 중 하나.

헬스 좀 했다하는 남자들은 빼놓지 않고 하는 운동이다.

여기에 덤벨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일단 오늘은 신체 테스트하기 위해 방문 했으니 대표적인 3가지만 해 볼 생각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