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1. 내 눈에만 보여.(16)
* * *
1. 내 눈에만 보여.(16)
내 눈에는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이 보인다.
타인이 나에게 품은 호감도, 사람들의 성감대.
정확하게 무슨 이유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짐작하는 건 번개를 맞고 회귀하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번개에 맞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조사 결과에 따르자면 0.0002%.
로또에 당첨될 확률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이 2번이나 번개에 맞을 확률은?
그것까지는 통계를 찾을 수 없어서 패스하겠다.
아마도 내가 유일무이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회귀를 할 확률을 따진다면, 이것 또한 알 수가 없다.
회귀했다는 말을 지껄인다면 당장에 미친놈 소리 듣기 십상이다.
누군가가 수 년 에서 수십 년 전으로 회귀를 해, 예언짓거리를 떠들어 댄다면 모르겠으나, 나는 고작 몇 주일의 회귀를 했을 뿐이다.
이런 말을 지껄이는 이유는, 나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성장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성장을 하고, 육체 능력은 평균을 훌쩍 뛰어 넘었다.
여기까지로 본다면 나는 정말로 선택받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세상의 주인공은 나야나~ 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내 눈은 또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다.
사람들 중 이상하게 다른 모습으로 겹쳐 보이는 이들이 있다는 거다.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으나, 이것이 반복되면 실제가 되는 거다.
도대체 멀쩡한 사람이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이유는 뭘까?
“나 정말 어떻게 되는 거냐...”
다른 모습이 겹치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다.
그리고 그 극소수 중에는 두려울 정도로 무섭게 보이는 이도 있다는 것.
마치 싸구려 호러 영화의 분장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워낙에 찰나 간 보이는지라 놀라기도 전에 그 모습이 사라지기는 하지만...
밤길에 마주친다면 소리라도 질렀을 거다.
“전생의 모습 그런 건가?”
호기심에 미행까지 하며 살펴봤지만,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뭐,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고민한다고 당장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 일단은 그저 모르는 척 지켜보자는 생각이다.
그 보다는 정수지가 은근 신경 쓰였다.
이틀이나 지났는데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로 따먹히고 버려지다니.
“씨발. 처녀막도 그 뭐냐... 수술인가 뭔가 한 거 아냐?”
지나가는 말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요즘은 처녀막도 새로 만들 수 있다고.
참 세상 좋아졌다하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전화가 한 통 들어온다.
“김동운?”
나름 불알친구라고 자주 연락하는 사이긴 했는데, 회귀 전의 좆 같은 기억 때문에 돌아오고 나서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받아보기로 한다.
“여보세요.”
뭐 하냐? 요즘 연락도 안 하고.
“그냥, 똑같지 뭐.”
나와라.
그냥, 평소처럼 심심해서 전화했나보다.
그래도 녀석과 여자 꼬시는 건 꽤 쿵짝이 잘 맞는다.
“딴 애들하고 놀아라. 오늘은 쉴래.”
쉬기는 뭘 쉬어. 나와~ 내가 쏠게.
참고로 녀석은 돈이 좀 많다.
쏜다는 말에 잠깐이나마 솔깃했지만, 그 일에 대한 앙금이 남았던지 썩 내키지 않는다.
“됐어. 쉴래.”
와... 이 새끼, 내가 너 발정 났을 때, 같이 놀아준 게 얼만데, 이딴 식으로 배신이냐? 나와~ 오늘은 네가 좀 도와줘.
“진짜, 안 나간다고. 병신아.”
야! 진짜 그럴 거냐? 친구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네가 살면서 나한테 부탁할 일이 한 번이라도 없을 것 같아?
언제나 이런 식이다.
사실, 녀석의 저런 방식은 꽤 잘 통한다.
은근히 불안감을 실어 주거든.
괜히 내가 손해 볼 것 같고, 힘들 때 혼자가 될 것 같은, 언젠가는 녀석의 도움이 필요할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
하지만 나는 달라졌거든.
이제는 보통 사람이 아닌데 저딴 새끼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조폭이 찾아오자 숨도 쉬지 않고 주둥이를 놀리던 놈이다.
일러라~ 일러라~ 일본 놈. 맛이 좋아 코딱지다. 새꺄!
토착왜구 같은 새끼.
그 상황에서 충분히 무서웠을 거라는 것은 안다.
결국은 피할 수 없는 주먹 앞에 사람은 한없이 작아지니 말이다.
그래도 얼굴이 그렇게나 멀쩡했다는 게 괘씸하다.
최소한 몇 번의 몸빵을 견디고, 나를 불러냈다면 이해라도 했을 거다.
“몰라, 끊는다.”
뚝.
나는 냉정하게 스마트폰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곧바로 다시 전화가 온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이 새끼 오늘따라 왜 이리 집착이 쩔어?
나는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돌려 버렸다.
“상연이는 뭐 하나.”
마지막 자위 영상을 받아보고, 시원하게 딸까지 잡아줬다.
내가 딸치는 것도 찍어서 보내줬는데, 그녀가 딸감으로 썼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육체 능력이 향상되면서 성욕도 늘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빼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아무래도 오늘은 만나서 몇 발 빼야할 것 같다.
요즘 구상두의 집착이 거세지는 것 같아 캠부터 켜 보기로 했다.
“아... 개새끼...”
켜자마자 구상두의 각진 면상을 또 마주하다니.
구상두의 얼굴은 붉게 달아 있었다.
오늘도 술 쳐 마셨나?
너 만나는 새끼 있잖아! 솔직히 말 하라고!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구상두가 내뱉은 말을 들으며 귀를 기울였다.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당신, 정말 왜 그래요! 그런 거 없어욧!
구상두가 이상연의 팔을 거칠게 잡아 흔들었다.
마지막으로 말할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씨발 진짜! 내가 병신 좆으로 보여? 다 알고 하는 말이야!
으흐흐흐흑... 정말 왜 이래요. 아니라고 했잖아요...
파하하하하! 개 같은 년! 운다고 오냐오냐 그냥 넘어갈 줄 알고? 씨발. 이래도 말 안하나 보자! 따라와!
아악! 놔! 놔요!
이거 아무래도 심각한 상황 같다.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미래는 충분히 바뀌었다고 생각하며 너무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것인가?
설마, 내가 뒤지는 미래는 바뀌지 않은 걸까?
생각하는 와중에도 구상두는 이상연을 거칠게 끌고 가서 차에 태웠다.
그리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한다.
이상연이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구상두는 계속해서 이상연을 다그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개새끼가... 내 여자한테...’
이상연이 내 여자가 맞나?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상두의 마누라다.
그런데 알 수 없는 분노가 가슴을 활활 태운다.
어디로 향하는 걸까?
차는 얼마 가지 않아 멈추었다.
거칠게 이상연을 끄는 덕에 캠이 마구 흔들린다.
그 모습에 분노가 피어오른다.
구상두가 이상연을 끌고 간 곳은 낯익은 곳이다.
‘저기는?’
구상두가 운영하는 클럽.
김동운이 나를 불러냈던 곳이 틀림없다.
놈은 이상연을 데리고 뒤편의 창고로 향했다.
창고 문을 지키고 있던 졸개들이 꾸벅하고 인사를 한다.
놈들 중, 집요하게 나를 추적하던 옥토퍼스놈이 보인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그 새끼 잘 잡아 놨지?
네. 안에 있습니다. 형님.
구상두가 이상연을 거칠게 끌고 창고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졸개들의 모습과 무릎을 꿇고 있는 한 새끼가 보였다.
“김동운...”
씨발... 미래는 아직 완전히 바뀐 것이 아닌 모양이다.
저 새끼. 누군지 알지?
구상두가 이상연을 향해 물었다.
제가 어떻게 알아요... 흐윽... 몰라요.
하... 씨발. 저 새끼가 다 불었어.
모른다고욧!
이런 씨발!
짜악.
아악!
이상연이 구상두에게 뺨을 맞으며 넘어졌는지 캠이 크게 흔들렸다.
“저런... 개새끼가!”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들썩였다.
이상연은 나를 강간범으로 몰아 죽이는데 일조했던 여자다.
그런데 막상 맞는 것을 보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그동안 떡 정이라도 든 것일까?
나는 타오르는 분노를 애써 눌러 담았다.
씨발.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해! 한 번은 실수로 봐줄 테니까!
흐흐흑... 몰라요... 난 모른다고요... 으흐흑...
끝까지 가 보자는 거지? 야! 너 이름 뭐야?
저... 저요?
이 새끼가 확!
구상두가 손을 들어 보이자, 김동운이 움찔한다.
기... 김동운입니닷!
아무튼, 요새 새끼들 군기가 덜 들었어요~
죄... 죄송합니닷! 궁금하신 것 확실하게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군대도 안 갔다 왔을 새끼가 군기를 찾는 것을 보니 얼탱이가 없었다.
내 마누라 듣는데서 확실하게 읊어봐.
넵!
그리고 김동운이 주둥이를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보고 있자니 화도 나지 않는다.
확실하겠지?
그렇습니닷! 저는 그 이후론 아는 것이 없습니다.
불러.
네...네?
그 새끼 부르라고.
그... 그게, 전화를 안 받아서...
하, 씨발. 그럼 찾아서 데려와야 할 거 아냐? 이 새끼 얼굴 멀쩡한 거 보니 교육 좀 받아야겠구나?
그때 옥토퍼스가 구상두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 말은 들리지 않았으나, 놈들의 대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오... 너 우리 클럽 vip구나? 칠성빌딩 회장님이 아버지라고?
넵! 그렇습니다!
일단, 알겠다. 강인한인지 뭔지 전화 몇 번 더 해 봐. 안 받으면 네가 가서 잡아 오고.
네 형님.
여... 여보! 정말 아니에요! 그날 잠깐 만난 건 맞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요!
이상연이 다급한 목소리로 구상두의 팔을 잡았다.
하... 이상연! 정신 차려! 밖에서 서방질 해 놓고 누구를 감싸는 거야!
정말! 아니야! 아무것도 안 했다고!
진짜 미쳤네? 너는 그냥 한 번 실수한 거야. 알겠어? 그리고 너는 그놈한테 강간당한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아니야! 구상두! 그냥 내비 둬! 만약에 인한이한테 손이라도 대면 가만 안 둘 거야!
이... 이년이! 진짜 미쳤나!
얼굴이 벌게진 구상두가 이상연의 머리칼을 잡아 흔들었다.
꺅! 놔! 이혼해!
이런 쌍년이!
짜악!
아악! 분명히 말했어! 인한이 잘못되면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거야!
손이 덜덜덜 떨린다.
구상두는 이상연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몇 번이나 뺨을 날렸다.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비호하며 악을 쓰고 있었다.
저 우악스러운 손에 맞으며 얼마나 아플까...
그녀는 전처럼 나를 강간범으로 몰지 않았다.
터질 듯이 분노가 피어오른다.
똑똑히 들어 쌍년아! 그 새끼 사는 거 보고 싶으면, 강간당했다고 말해. 안 그러면 네 눈앞에서 죽여 버릴 테니까. 크크큭, 네가 강간범으로 몰면 그 새끼 표정이 어떨까? 크크크큭.
그리고 이어지는 구상두의 음성.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떨리던 손이 멈추고 미친 듯이 뛰던 심장도 차분해진다.
그때의 상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를 향해 강간당했다 외치던 이상연은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의 의미를 내가 착각했던 것일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