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1. 내 눈에만 보여.(18)
* * *
1. 내 눈에만 보여.(18)
나는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졸개들의 머리칼을 잡아끌어 한군데로 모았다.
뿌드득 거리며 머리칼이 뽑히는 건 내 알 바 아니다.
눈가를 꿈틀대는 옥토퍼스놈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무래도 정신이 든 것 같은데, 계속 기절한 척을 하는 모양.
나는 그대로 놈의 마빡을 후려 갈겼다.
잡아 챌 머리카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썩.
야들야들한 궁댕이를 친 것처럼 손맛이 좋다.
“야. 정신 차린 거 알고 있으니까, 저쪽으로 가.”
어쭈? 안 일어나?
나는 옥토퍼스의 민둥산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철썩. 철썩. 철썩.
“으... 으음...”
그제야 인상을 잔뜩 쓰며 힘겨운 척 눈을 뜬다.
좆나 어색한 연기력이다.
아무리 인상을 써 봤자, 누렇게 뜬 눈탱이가 웃길 뿐이다.
“이 자식이...!”
“그냥 좋은 말로 할 때 가자. 응?”
한껏 눈을 부라리던 옥토퍼스가 구상두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이동한다.
나는 놈들을 한 대 뭉쳐 놓고 테이프로 둘둘 말았다.
찌이이익. 찌이이익.
무려 열 개의 청 테이프를 사용해서 작업을 마쳤다.
작업을 마칠 때까지도 말없이 지켜보던 구상두.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증거도 남기지 않고 전부 죽여 버리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긴 한데, 어디 사람을 죽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
반대로 이대로 간다면, 구상두는 결국, 내가 누군지 알아내고 보복을 준비할 것은 뻔했다.
참으로 진퇴양난이다.
“이혼해라.”
“..........뭐?”
구상두는 말뜻을 이해 못 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폭소를 한다.
“아...? 파하하하하. 너 설마, 강인한인가하는 애송이냐?”
놈은 뭐가 그렇게 웃긴 지 출렁이는 배까지 잡고 웃어 재낀다.
그런 구상두를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봤다.
“뭐가, 우습지? 상연이가 원해서 한 결혼도 아니었잖아? 그냥 이혼해 줘.”
“상연이...? 미친 새끼... 아직 어려서 혈기에 이런 일을 벌인 것 같은데, 그냥 조용히 가거라.”
나는 놈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어차피 날 살려 둘 생각은 없었잖아?”
구상두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지금은 네 부하들이 전부 나자빠져서 보내주는 척을 하는 것뿐이고.”
“그래서,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나와 구상두의 대화를 듣던 이상연이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나는 그녀를 부축하며 허리를 감싼다.
“인한아... 흐윽... 왜 왔어... 흐흐흑...”
퉁퉁 부은 눈으로 또다시 눈물을 흘리는 그녀.
그녀는 지금 상황이 꽤 두려운 듯, 덜덜 떨고 있었다.
“네가 위험한데 당연히 와야지.”
나와 이상연을 보던 구상두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놈과 이상연은 법적으로 부부다.
당연한 반응이겠지.
“지랄들을 하고 있군. 바람난 여편네가 아주 신파를 찍는구만!”
구상두가 위협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술병을 들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나는 이상연을 뒤로 물리며 놈의 앞길을 막았다.
“꼬마야. 정말 여기서 죽고 싶은 거냐?”
나는 그가 든 술병을 주시하며 구상두를 견제했다.
아직도 덜덜거리며 손을 떨고 있는 모습.
조폭두목이라는 것이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그 모습에 한껏 비아냥거렸다.
“손까지 떨면서 떠들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놈의 부하들을 단신으로 물리쳤다.
눈앞의 구상두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놈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으르렁댄다.
“이 건 네놈을 죽이고 싶은 걸 참느라 떨리는 거다.”
잘 익은 누런 이빨 사이로 고약한 시궁창 냄새가 난다.
쉣!
“면상 좀 치워줄래?”
“내가 널 죽일 수 없어서 그냥 내버려 둔거라고 생각하나?”
“냄새 쩔어.”
“내 손으로 처리하기엔 보는 눈이 많아서 내버려 둔 것뿐이야.”
“하수구 마시니?”
“그렇게 되면 전부를 죽여야 하니까.”
“전부를? 무슨 개소리야!”
정신이 어떻게 되기라도 한 모양이다.
헛소리를 저렇게 지껄이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럼, 앞으로도 제발 그냥 내버려 둬라. 어차피 복수한다고 지랄할 것 같기는 하지만, 오늘은 그냥 간다. 가자, 상연아.”
이상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팔목을 잡았다.
부하들이 묶여있는 지금, 놈은 이빨 빠진 호랑이다.
여기서 몇 대를 쥐어박아도 의미가 있을까 싶어 미련 없이 몸을 돌린다.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어. 그냥 다 죽여 버려야겠어.”
나는 손을 높이 들어 흔들며 말했다.
“그래~ 그건 알아서 하고. 난 간다~”
“크크크크큭. 크하하하하. 오랜만에 피를 보겠군.”
미친놈의 헛소리를 들으며 발을 옮기던 나는 오싹한 기분에 이상연을 감싸며 몸을 날렸다.
“꺄악!”
쿠당탕.
동시에 머리 위를 스쳐 가는 싸늘함.
파사삭.
구상두가 던진 병이 벽과 충돌하며 깨졌다.
야구 좀 했니?
“괜찮아?”
바닥을 구르긴 했지만, 이상연은 다행히 무사한 것 같다.
그녀를 부축하기보다, 먼저 구상두에게로 몸을 돌렸다.
예고 없이 머리 위를 스친 술병.
내 능력을 너무 과신해, 한 순간 방심했다.
그렇게 구상두에게 한 방 먹여주려 바로 섰을 때.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고 만다.
“뭐... 뭐야!”
꿀렁. 꿀렁.
기괴하게 꿈틀거리는 구상두의 몸.
저건, 무슨 효과인데 저렇게 리얼해?
놈의 몸 전체가 꿀렁거리며 올록볼록 하게 튀어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그 기괴한 모습에,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놈의 몸이 부푼다.
부푼 몸을 견디지 못한 정장이 찌지직하고 찢어졌다.
파아앙.
그와 동시에 불룩해졌던 살점들도 함께 터져 나가며 살가죽과 시뻘건 핏물이 사방으로 비산한다.
후두둑.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살점들과 핏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꺄아아아악!”
구상두의 괴상망측한 모습에 이상연이 비명을 질렀다.
호러 영화의 여주처럼 고구마를 잔뜩 씹는 클리셰.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럴 시간에 도망이나 가야지! 왜 소리를 질러!’ 라고 씨불이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실제로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지금, 그 연출을 꾀한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나 또한, 이상연이 아니었다면 비명을 터트릴 뻔했으니 말이다.
굳어진 몸은 전신마비라도 왔는지 잔뜩 굳어졌다.
영화감독의 연출은 실감 나는 실제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몸이 절로 떨려왔다.
덜덜덜.
175cm나 될 키였을까?
평균의 키에 불과했던 구상두는, 나처럼 성장기가 지나고도 더 클 수 있다는 여지를 보여준다.
지금 그의 키는 적어도 2m는 되어 보였으니 말이다.
번들거리는 붉은빛의 피부 위로는 터져 버린 살 조각과 구역질이 나는 점액질로 뒤덮여 있었다.
볼록하게 튀어나왔던 배는 어디로 갔는지, 선명한 복근이 자리했다.
완벽한 근육질의 붉은 인간.
눈은 살기로 번들거리고, 이빨은 톱처럼 날카롭기 그지없다.
옷 하나 걸치지 않은 그의 양물이 앙증맞게 튀어나와 있다.
‘자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으헤에엑! 혀... 형님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왜 형님이 저렇게 변한 거야!”
정신을 차린 구상두의 졸개들도 그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본 듯 시끄럽게 앙앙거린다.
구상두가 머리 위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살가죽을 잡아 바닥에 내던졌다.
철푸덕.
살가죽 위에는 옥토퍼스가 부러워할 머리카락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멍청한 놈들. 시끄럽다.”
구상두가 귀찮다는 듯 졸개들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스거걱.
울버린을 벤치마킹한 손톱이 자라나며 그들의 중앙을 세로로 가른다.
손톱이 지나간 자리에 있던 졸개 둘의 얼굴 가운데로 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실선을 중심으로 어긋나기 시작하는 단면.
스르륵.
붉고 매끈한 단면이 드러나며, 사람이 정확히 반으로 동강나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정말로 매스꺼운 장면이다.
“으... 으허헉!”
“사... 살려주싶쇼! 형님!”
“흐이이익!”
청 테이프도 반으로 갈라져 자유롭게 된 나머지 부하들이 경악하고는 뒤로 바닥을 집고 미친 듯이 물러선다.
‘씨... 씨발... 이게 뭐야... 도대체...’
나 또한 굳어 버린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이상연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일으켰다.
이상연은 터져 나오려는 비명과 구역질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꺽꺽 거렸다.
“크크큭... 도망가려고?”
구상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입을 열며 부하들에게 다가간다.
“네놈이 평범하지 않아 보이나, 그 정도론 나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나는 이상연의 손을 찾아 꽉 붙잡았다.
그녀의 떨림이 전해진다.
나는 그녀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외치면 입구로 바로 뛰어.”
이상연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너... 너는?”
“뒤따라갈 거야. 네가 있으면 방해 돼.”
이상연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시... 싫어!”
나는 이를 악물었다.
“씨발! 말 들어! 나 혼자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당장 뛰어!”
나는 이상연을 입구 쪽으로 힘껏 밀었다.
예상대로 움직이자마자 구상두는 부하들을 놔 둔 채 이쪽을 향해 몸을 날린다.
왜 도망갈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스피드다.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온 구상두.
나는 미리 눈에 넣어놨던 바닥의 쇠 파이프를 향해 몸을 굴렸다.
“이상연! 어서!”
팔을 뻗어 쇠 파이프로 가져간다.
그리고 손에 쥐었을 무렵, 구상두의 발이 몸통으로 날아들었다.
퍼억.
“아아악!”
복부를 파고드는 발등에 수 미터를 날아갔다.
쿵.
그리고 등을 강타하는 충격.
날아가던 나를 멈춰 새운 것은 콘크리트 벽이었다.
순간 눈앞에 번갯불이 번쩍이고 튀었다.
“꺄아악! 인한아! 안 돼!”
복부와 등의 고통이 심각했지만, 손에는 쇠 파이프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용케 떨어트리지 않은 모양.
구상두는 나를 차 버리고는 그대로 땅을 박찼다.
놈이 향하는 곳은 이상연.
이를 악물고 일어나, 나 또한 그녀를 향해 뛰었다.
다행이라면 내가 훨씬 가깝다는 것.
하지만 먼저 당도한 것은 구상두다.
구상두의 손이 이상연에게 뻗어나간다.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움켜쥐기라도 할 모양.
나는 그대로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초인적인 힘이라도 발휘되었는지, 3미터 이상은 훌쩍 떠오른 것 같다.
그대로 쇠 파이프를 양손으로 쥐고 번쩍 들어 올린다.
낙하하는 속도를 더해 구상두의 팔을 향해 힘껏 내리찍었다.
까아앙!
놈의 팔에 적중한 쇠파이프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단숨에 기역자로 꺾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