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1. 내 눈에만 보여.(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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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눈에만 보여.(19)
쇠 파이프로 구상두의 팔을 멈추게는 만들었지만, 이내 반대손이 날아든다.
나는 그 상태로 공중제비를 넘어 바닥에 착지하고는 쇠 파이프를 놈에게 던져 버렸다.
카앙.
쇠 파이프가 구상두의 손에 맞아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나도 던진 쇠 파이프가 큰 역할을 해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잠깐의 틈이 필요했을 뿐.
그대로 이상연의 허리를 감싸고 뛰었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귓가에 스치는 구상두의 음산한 목소리.
퍼억.
그리고 옆구리를 파고드는 충격.
나는 이상연을 다시 한 번 힘껏 밀어냈다.
“제발! 가!”
내 간절한 마음이 닿았을까?
눈물 콧물 범벅된 얼굴로 벌떡 일어나서 입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크흐흐, 어딜!”
구상두가 나를 지나쳐 이상연에게 향하려 했다.
앙증맞게 달랑거리는 구상두의 소추가 눈에 들어온다.
남성의 성기는 만고불변의 약점.
그것은 짐승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괴물이라도 저 덜렁거리는 게 달려 있다면 약점일 터.
놈의 중앙을 향해 힘껏 주먹을 내지른다.
퍼어억.
주먹에 느껴지는 뭉클하고도 소름 끼치는 감촉.
괴물의 성기가 손에 닿은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것 같다.
“크아아악! 이런 망할 놈이!”
역시나 통했다.
하지만 부여잡고 쓰러질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오히려 손톱을 길게 세우고 휘둘러 온다.
저 손톱에 사람이 댕강 잘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바닥을 구르며 놈의 공격을 피했다.
스가각.
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손톱에 화끈함을 느낀다.
곧이어 등을 타고 올라오는 고통에 이를 악문다.
퍼서석.
그렇게 지나친 손톱이 콘크리트 바닥을 두부처럼 쑤욱 하고 파고들었다.
구르는 원심력으로 몸을 일으켜 땅을 박찼다.
콘크리트에 손톱을 단단히 박아 넣은 구상두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도약과 동시에 무릎을 바짝 치켜 올렸다.
뻐거걱.
일명 플라잉 니킥.
무릎에 느껴지는 묵직함.
제대로 들어갔다.
놈의 두꺼운 목이 홱 하고 돌아간다.
타격을 주긴 한 것 같은데 이내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욱신.
‘으윽!’
턱을 가격한 무릎이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 틈에 구상구가 정신을 차렸다.
“이런 건방진!”
정신을 차린 구상두의 공격은 쏜살같았다.
터질 듯 한 팔 근육의 힘으로 또다시 할퀴기를 날린다.
눈으로 확인하기조차 어려운 속도.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반 조각이 나는 것만은 피했다.
“크아악!”
30cm 길이의 손톱이 어깨를 한 뼘이나 베고 지나가며 자상을 만들어낸다.
소추를 맞고 턱주가리를 가격당한 구상두의 눈깔은 실핏줄까지 돋아 벌겋게 번들거렸다.
놈은 어깨를 찢은 것 따위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손톱이 좌우로 폭풍처럼 몰아친다.
저 손톱에 한 번이라도 맞으면 그대로 반 토막 행이다.
보통의 육체 능력을 뛰어넘었다지만, 내구성을 실험해 볼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극도의 집중을 발휘해 아슬아슬하게 구상두의 공격을 흘려 냈다.
극도의 집중력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매직아이를 발동했다.
구상두 주변의 색이 변한다.
검은색.
새카만 검은색은 필시 나를 향한 살의라고 봐야겠지.
매직아이가 발동하며 손끝으로 느껴지는 전류.
긴박한 상황에서 전기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것마저 잊고 있었다.
이를 상기하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놈은 내가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파파팟.
손끝에서 전류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해서 뿜어낸다는 것은 시도해 본 적 없다.
다만, 보통 사람이 기절할 정도의 전류는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cctv도 쉽게 먹통으로 만들었지.’
나는 구상두의 눈을 향해 손을 뻗어 올렸다.
그러곤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낙뢰를 떠올렸다.
파지지지직.
전기가 구상두의 눈가에서 시퍼런 빛을 내며 번쩍였다.
그 번쩍임은 내가 상상한 낙뢰의 발가락의 때만큼도 미치지 못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소추를 가격 당했을 때보다 더욱 커다란 비명성이 구상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크아아아악! 내 눈!”
공격을 멈추고 눈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린다.
‘효과가 있어!’
문제는 내 기운도 급격히 빠져나갔다는 것.
상처 입은 부위도 고통의 아우성을 내뱉고 있다.
나는 쉽게 찾아올 수 없는 기회에 미련 없이 몸을 돌리고 입구로 달렸다.
그러곤 이내 절망에 휩싸이고 만다.
입구에서 나가지 않고 버둥거리고 있는 이상연.
그녀 곁에 도착한 나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입구를 꽉 틀어막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아아악! 죽여 버리겠다! 크아악!”
고래고래 악을 쓰며 구상두가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때마다 구상두의 피눈물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나는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쇠 파이프, 내가 던졌던 과도, 그리고... 육각빠루?
쇠 파이프는 속이 텅텅 비어 단숨에 꺾여 버린다.
나는 재빠르게 과도와 육각빠루를 집어 들었다.
이거라면 쇠 파이프도 구겨 버리는 놈의 단단한 몸뚱이에도 타격이 있을 거다.
“이... 인한아... 나... 나도 싸울게.”
내가 싸우려는 것을 아는지 걱정스러운 음성의 이상연.
그러곤 쇠 파이프를 고운 두 손으로 집어 든다.
그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상연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고, 이 전에도 그러했다.
도망치려 하지 않았고, 구상두에게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진심이다.
두려움과 함께 공존하는 애틋함이 느껴진다.
“푸훗, 고맙지만 누나, 물러서 있어. 다녀올게.”
나는 쇠 파이프를 움켜쥔 이상연을 뒤로하고 구상두에게로 달려들었다.
***
전화해 볼까, 아니면 케톡을 보내 볼까?
이틀 넘게 확인하지 못한 케톡이 눈에 들어온다.
변화될 모습이 두려워 연락을 차마 못했지만, 늦게나마 하려니 괜히 망설여졌다.
그날의 일을 상상하자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콩딱 콩딱 뛰었다.
절로 아랫도리가 저릿한 기분이다.
“혹시... 내가 연락하지 않아서 화나지는 않았을까요?”
그녀는 고민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발걸음을 놀렸다.
연락하지 않더라도 그를 찾을 방법은 있다.
정수지의 체취가 잔뜩 뿌려진 강인한에게선 그녀의 냄새가 강하게 남아 있다.
그 체취는 못 해도 일주일 이상은 갈 것이다.
그녀에게서 가장 강한 체취를 그가 가져갔으니.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있는 곳에 당도할 것이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걸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고민하다 보니 그녀는 어느새 강북의 번화가에 도착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족히 몇 시간은 서성이며 빙빙 돌아온 것 같다.
정수지에게 몇 시간을 걷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다.
“결심했습니다! 저도 케톡을 보내겠습니다.”
몇 번이나 작성하고 지우길 반복하다, 결국은 문장을 완성해 보내버렸다.
괜한 기대감에 심장이 또다시 콩딱콩딱 거린다.
“보... 보냈습니다. 어서 확인해 주세요! 인한 오빠!”
[오빠, 연락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정이 생겨서 케톡을 확인하지 못했어요. 혹시,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연락이 늦어서 화나신 건 아니죠? 꼭! 연락 주시면 좋겠어요.]
너무 질척거리는 메시지였나?
어디냐고 물어 본 것은 오버였을까?
그냥 짧게 보낼 것을...
덜덜덜.
“어서 확인해 주세요.”
알람소리를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마음에 뒤늦게 이모티콘을 하나 더 추가했다.
1분... 2분... 5분... 10분...
15분이 지났지만, 그녀의 간절한 마음에도 숫자 1은 지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푸욱.
고개를 숙이며 낙담한 정수지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10시.
정처 없이 걷다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조바심이 찾아온다.
어쩌면 너무 늦어 자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생활 사나이가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시무룩해졌던 마음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을 느낀다.
“오빠는 벌써 주무시는군요. 그럼, 내일 답장이 오겠네요. 그런데 오빠의 집은 여기 어딘가... 일까요?”
정수지는 어두운 밤을 활짝 밝힌 네온사인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봐도 주택가로 보이는 건물은 전혀 없는 모습.
가만 생각해 보니 그의 흔적이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옮겨졌었다.
그렇다면 걷는 동안 강인한은 이동을 했다는 건데...?
“아! 일하고 돌아와 바로 주무시는 거겠죠?”
나름 혼자만의 정의를 내리고 냄새를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사는 곳까지 확인하고 갈 생각이다.
“이런 내 모습... 너무 스토커 같을까요?”
그러면서도 조그만 코를 킁킁거리며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강인한의 얼굴정도는 한 번 확인해야 마음의 안정을 얻을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유흥가의 네온사인이 괜히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냄새를 추적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찾았다.
그녀의 시선에 SKY CLUB 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냄새가 가리키는 위치는 이 곳이 맞다.
하지만 강인한의 집이 저 스카이 클럽 일리는 없다.
그녀의 눈썹이 살짝 꿈틀 거린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
이상하게 짜증이 슬금슬금 몰려온다.
“설마, 인한오빠는 클럽 빠돌이였던 걸까요?”
강북 최고의 클럽답게 문 앞은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클럽을 즐기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
이 시간부터 클럽에 죽치는 이들은 말 그대로 빠돌이다.
정수지라고 그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
대한민국 클럽 역사 이상으로 오래 살아온, 산 증인이니 말이다.
주구장창 다니지는 않지만, 유행이 변할 때마다 한 두 번씩은 발걸음을 했었다.
그런 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그 긴 세월이 하염없이 지루했을 거다.
“휴우... 이상하게 마음이 좋지 않아요.”
쉽게 볼 수 없는 외모와 죽여주는 몸매의 여성.
클럽 앞에 우뚝 서 있는 정수지를, 주변의 남자들이 힐끔거렸다.
그들의 눈은 감탄과, 입에는 탄성이 어린다.
슬금슬금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정수지의 근처로 모여든다.
잠깐 사이에 어슬렁거리는 이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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