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1. 내 눈에만 보여.(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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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눈에만 보여.(22)
늘씬한 다리가 천장의 구멍을 빠져나왔다.
여자사이즈의 앙증맞은 나x키 런닝화가 먼저 보였고, 그 뒤로 쫙 달라붙는 레깅스가 구멍으로 딸려 들어왔다.
한 눈에 보기에도 보기 좋게 탄력 있는 다리다.
그런데 귀신이 나x키 운동화에 레깅스라니.
구멍을 통해 훌쩍 뛰어 들어오려던 그녀는? 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넓은 골반이 구멍에 걸린 듯 두 다리를 버둥거리는 모습에 실소마저 터져 나올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귀신의 개그를 보게 될 줄이야.
버둥거리던 귀신이 육중한 둔부를 구멍으로 힘겹게 비집어 넣는다.
투웅.
그렇게 힘겹게 골반이 구멍을 빠져나오고, 탄력 있는 엉덩이가 몇 번이나 출렁이더니, 금세 원래의 봉긋했을 모양을 찾아갔다.
실로 경이로운 엉빵이다.
정수지 이후로 저런 엉덩이를 보게 될 줄이야.
어쩌면 정수지보다 더 탄력이 넘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저건 뭐야?’
탐스러운 엉덩이 중앙에 달고 있는 꼬리모양의 악세사리.
귀신이 나x키 런닝화를 신고, 레깅스를 입은데 이어, 코스프레까지.
저 여자는 귀신이 아니라, 구상두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살짝 맛탱이가 간...
물리법칙을 벗어나 한 순간에 몸을 불리며 괴물로 변해버린 구상두도 있는데, 저런 맛탱이 간 여자모습의 존재라고 없을까?
이미 이상한 일에는 면역이 되어가는 중이다.
구멍에서 탈출해 빠져나올 것 같던 그녀는 또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잘록한 허리를 지나 가슴이 구멍에 끼어 버린 것.
“엄마앗!”
한 편의 개그를 시전하며 엄마까지 찾는다.
바둥 바둥.
5미터가 넘는 창고의 지붕에 올라가서, 콘크리트를 동그랗게 잘라 낸 존재가 평범한 사람일리는 없다.
그런데 저런 어수룩한 모습이라니, 기가 막히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다.
입고 있던 크롭탑이 위로 들리며 가슴을 감싼 검정 탑브라가 눈에 들어온다.
구멍에 끼어 짓이겨진 가슴 사이즈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이상연도 상당히 큰 사이즈인데,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런 만화영화 같은 몸매가 실제로 존재한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지금의 상황이 어이없는 것은 구상두도 마찬가지 인 듯, 그 흉악한 얼굴에 입까지 헤 벌리고 내 존재마저 잊은 듯한 표정이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타악.
힘겨운 사투 끝에 사뿐하게 착지한 알 수 없는 존재의 여인.
자기 추태에 부끄러움이라도 들었던 것일까?
상기된 얼굴은 은은한 붉은기를 내비치고 있었다.
귀신인지 괴물인지 모를 여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5m 높이에서 뛰어내렸음에도 어떠한 충격도 받지 않은 모습.
조금은 수줍은 모습으로 흐트러진 은 백발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고양이처럼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와 피처럼 붉은 눈동자.
피를 머금은 듯 붉은 입술 위를 선분홍의 혀가 쓸고 지나간다.
그 뇌쇄적이고 도발적인 모습에 꿀꺽하고 침이 넘어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양옆으로 귀엽게 움직이는 무언가.
살랑. 살랑.
오른쪽 왼쪽으로 살랑거리는 꼬리는 가짜가 아니라는 듯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코스프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리얼하다.
아마도 저 꼬리는 진짜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런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꽂혀든다.
고양이처럼 치켜 올라갔던 눈이 단숨에 강아지처럼 축 늘어진다.
꼬리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더욱 요란하게 오두방정을 떤다.
이게 뭔...
이런 상황임에도 그녀의 모습에 영혼마저 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왜 눈앞의 여인에게서 낯설지 않은 모습이 겹쳐 보이지?
본능적으로 매직아이를 발동시킨다.
분홍색...?
나는 힘겹게 몸을 앉히며 상채를 세웠다.
오늘 처음 본 낯선 여인일 것 같은 존재에게서 분홍색이라니.
나와 밤을 지새운 그 누군가가 구상두처럼 변신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지?
“이... 이곳에는 무슨... 볼일이오...”
조금은 공손해진 어투로 구상두가 조심스레 묻는다.
그녀의 눈이 구상두에게로 향하며 날카롭게 치켜 올라갔다.
나를 보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눈빛이다.
사뿐사뿐.
너무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구상두를 향해 다가가는 여인.
그때마다 흔들리는 가슴과 둔부가 아찔하게 움직인다.
부드러워 보이는 꼬리는 덤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요.”
“그... 그건, 하지만 눈에 뛰지는 않을 것이오.”
“그래도 저는 그냥 넘어가지 못하겠어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는 다들 넘어가는 것이 도리 아니오?”
오싹.
구상두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오싹함을 느꼈다.
그 시작점은 저 정체불명의 여인인 듯, 구상두도 몸을 떨며 잔뜩 움츠렸다.
아마도 저들의 서열은 여인이 위인 것 같다.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여인과 구상두.
도대체 저 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이제는 저런 인외적인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저러한 존재들은 인간인 척 모습을 감추고 인간처럼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알겠다.
어쩌면... 한 번씩 사람에게 겹쳐보이던 다른 모습이...?
“이제 한 번 탈피한 정염귀 주제에 규칙을 논하는 건가요? 이런 어설픈 결계를 쳐 놓고 도심한복판에서! 그것도 내 서방님을 공격하다니욧!”
“서... 서방님?”
구상두의 괴물 면상이 의문으로 일그러진다.
그러곤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나를 왜 보는 거야? 내가 서방님이라고? 그런 거야? 이게 뭔...?
구상두의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데룩데룩 굴러간다.
‘위험해.’
놈이 결심하듯 지체 없이 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저 정체불명의 여인은 나를 서방으로 여기고 있고, 구상두는 저 여인에게 잔뜩 쫄아 있다.
흉흉한 여자의 기세로 보아 구상두를 가만 둘 것 같지는 않다.
이를 느낀 구상두는 나를 잡아 인질로 쓸 작정인 것 같다.
움찔.
“크으윽!”
몸을 움직여보려 하지만 풀려 버린 몸은 고통만을 호소하며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가 서방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든 어떤 것이든, 이런 상황쯤은 염두에 넣었어야 할 것 아닌가?
미리 나부터 보호를 했어야지!
구상두가 막 몸을 날려 손을 뻗는 그 찰나, 내 시야는 새까맣게 물들었다.
출렁거리며 검정의 레깅스가 눈앞을 가로막은 탓이다.
그 폭발적인 모습에 상황이고 나발이고 손으로 움켜쥘 뻔했다.
아무리 주물러대도 금방 제 모습을 찾을 것 같은 탐스러운 엉덩이.
살랑. 살랑.
레깅스의 밴드 위로 삐져나온 꼬리가 얼굴을 스치며 간질인다.
‘부... 부드러워...’
저 레깅스를 내리면 저 꼬리가 그대로 달려 있을까?
이 부드러운 털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지?
레깅스안의 모습을 상상하자 머리가 띵 한 것이 코피라도 쏟아질 것 같다.
“크어억! 사... 살려주십쇼! 크허허억...”
나는 창고를 울리는 구상두의 처절한 음성에 화들짝 하고 정신을 차렸다.
구상두를 막고 선 여성의 팔이 그의 가슴 쪽으로 쭉 뻗어져 있다.
엉덩이에 가려져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워낙에 덩치가 크기에 여성의 위로 불쑥 솟아 있는 놈의 얼굴만은 정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고통으로 벌어진 입안에서 더러운 타액이 줄줄 흘러내린다.
진득하게 늘어지는 타액을 피하기 위함인지 발을 들어 힘껏 밀어버린 그녀.
2m가 넘는 덩치의 구상두가 아이라도 되는 듯 단숨에 나가떨어진다.
쿠당탕탕.
“커흑... 커어억... 커흑...”
가녀린(?) 여인의 발차기에 차였다 기에는 수 미터나 날아가 구른 구상두.
그는 진물이 흐르는 듯 번들거리는 피부를 꿈틀거리며 연신 컥컥 거렸다.
힘겹게 손을 가져가 구멍이 뻥 뚫린 가슴을 틀어막는 것이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커흑... 개... 개 같은 년... 커흑... 얼마 남지 않았거늘... 쿨럭.”
뭐가 얼마나 남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일그러진 얼굴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두 번째 탈피 말인가요?”
그녀의 말을 채 듣기도 전 구상두의 대가리가 추욱 늘어졌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이렇게나 간단히 죽는다고?
아무리 내가 부상을 입혔다곤 하지만, 저렇게나 쉽게 죽어버리다니.
놈이 죽어서 기쁜 마음보다 왠지 허탈한 마음이 먼저 밀려들었다.
죽음을 생각한 순간 나를 구원한 여인.
아니, 정체 모를 존재.
아무래도 그녀의 착각으로 구해진 것 같은데, 내가 서방님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밝혀질 일이다.
불안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구상두에게 다가가 죽음을 확인한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녀의 눈은 주인을 본 강아지처럼 축 늘어지며 촉촉하게 변한다.
꼬리는 계속해서 정신없이 양옆으로 춤을 추듯 왕복했다.
양손을 모은 그녀가 폴짝 폴짝 뛰더니 도도도 달려온다.
“서방님~ 제가 늦어 버렸네요. 더 빨리 끼어들었어야 하는데... 흐윽. 이렇게 다쳐서 어떻게 하지요?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포옥.
달려온 그녀가 단숨에 품에 안기는 바람에 안 그래도 삐걱거리는 몸이 통증을 호소한다.
“아... 으으윽...”
신음성에 놀란 그녀가 품을 빠져나오며 당황하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이... 이걸 어째. 서방님. 괜찮아요? 흐윽... 제가 실수를 하고 말았군요. 으흐흐흑. 너무너무 죄송해요. 흐흐흐흑...”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그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괜... 찮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나는 말끝을 흐리며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여인을 슬쩍 바라본다.
“흑흑흑... 너무 아파 보여요... 아차! 이럴 때가 아니에요. 어서 치료를! 치료해야 합니다.”
극성떠는 그녀를 보며, 사실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사실을 말하는 것으로 정했다.
오해하고 있다면 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그러다 보면 어차피 사실은 밝혀질 거다.
“진정 좀 하시고 제 말 좀 들어 주세요.”
“아! 죄... 죄송합니다. 서방님 부상이 너무 염려가 되어... 마... 말씀하세욧!”
“아무래도... 저를 다른 이하고 착각하신 것 같은데...”
“네? 아닌데요?”
“지금 얼굴이 엉망이라 잘못 본 것이 확실합니다. 저는 그쪽을 모르거든요.”
“서방님... 아... 아니, 당신은 강인한 오빠가 맞습니다.”
“네에? 강인한은 맞는데... 왜... 제가 서방님인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내가 사람이 아니라고 예상되는 사람(?)을 알 턱이 없잖아?
정말, 관계한 여자 중 한 명인 것일까?
“꺄악! 내... 내 모습! 어... 어떻게 해!”
겉모습과는 달리 머리가 많이 좀 딸리는 것 같다.
상당히... 아니, 아주 많이...
절대미 이외에도 백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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