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1. 내 눈에만 보여.(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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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눈에만 보여.(24)
정수지는 안절부절못하고 집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삼 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강인한에게서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하아~ 많이 다쳐서 아직 정신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저에게 연락을 하기 싫은 걸까요?”
그날 저도 모르게 서방님이라고 떠들어댔지만, 그가 자신을 알아 볼일은 없을 거다.
그녀가 구미호라는 것을 알게 되면 기겁을 할지도 모르는 일.
그런 것이야 추후의 문제이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그에게서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고 있다는 것.
“여자가 있기 때문인 걸까요?”
케톡.
정수지는 알림음이 들리자마자 스마트폰을 후다닥 확인해 본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눈동자.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렇게나 기다리던 연락이 당도한 것이다.
“드... 드디어! 서방님께서 연락을 주셨군요. 저는 잊혀 지지 않았어요.”
또 연락이 늦어지면 오해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했다.
[미안해요. 연락이 많이 늦었죠? 사고가 생기는 바람에 이제야 연락을 드리네요. 잘 지내고 있죠?]
정수지의 눈가가 촉촉하게 물들었다.
그렁한 눈으로 메시지를 확인하며 빠르게 답장했다.
[네! 몸은 괜찮으세요? 혹시 입원하신 건가요?]
[네. 병원에 입원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헙!”
정수지는 입으로 내뱉은 것도 아닌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또, 시... 실수를 해 버렸군요. 이를 어째...”
[사고라고 하셔서... 그렇게 짐작했답니다. 어느 병원인가요? 제가 병문안을 가도 될까요?]
[ㅎㅎㅎ 그랬군요. 한국병원이에요.]
그럼 지금 갈게요! 라고 쓰려면 정수지는 쓰던 글자를 지우고 다시 작성했다.
[그럼! 내일 가도 되나요?]
[네. 3시가 좋을 것 같은데...]
[네! 3시에 갈게요! ㅎㅎ]
강인한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정수지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졌다.
“이럴 때가 아니군요! 병문안을 가기 위해서는 옷이 필요하겠어요.”
***
이상연이 검사와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 사이에 정수지에게 연락했다.
삼일이나 지났지만,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답장을 해왔다.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자, 내일 바로 병문안을 오겠다는 그녀.
이상연이 치료를 하러 가는 시간으로 약속을 잡았다.
아무래도 그녀가 있을 때 오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웠던 탓.
‘사실, 병문안을 올 줄도 몰랐고 말이야.’
정수지의 색은 무슨 색으로 바뀌었을까?
더욱 짙어진 노란색일까? 아니면 분홍색이 조금 섞여 있을까?
그런 생각하던 나는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하... 씨발... 매직아이를 쓰는 것도 이제 무섭네...”
처음에는 색만이 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에게서 다른 모습이 겹쳐보였었다.
아마도 매직아이를 사용할 때마다 능력이 늘었다는 생각이다.
생각 없이 사용하다 괴물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몸이 부르르 떨린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기억.
앞으로 이 능력을 봉인해야 하는 걸까?
구상두와 죽은 졸개들은 실종처리가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실종처리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거야?
언젠가 언뜻 본 실종자들에 대한 말이 떠올랐다.
별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스마트폰을 켜 인터넷에 접속한다.
키워드 : 대한민국 한 해 실종자 수.
검색을 하자 놀라운 결과를 알 수 있었다.
한 해 공식적으로 실종 처리되는 숫자만 4만 명이 훌쩍 넘었다.
그중 사망으로 확실시 되는 숫자만 수 천 명.
공식적으로 신고 된 실종자가 4만 명이 넘는다면 비공식 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실종자가 발생한다는 말일까?
이러한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쟁도 아닌 이 시기에 놀랍다 못해 경이로울 정도다.
이렇게나 많은 실종자가 발생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신경한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나라로 꼽히는 대한민국이 이러할 진데, 다른 나라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실종자가 있다는 말인가...
실종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기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실종에 대해 무관심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저 의문을 품은 기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지만, 실종자들의 가족이나 연관된 이들이 아닌 이상 관심을 갖는 이는 별로 없었다.
음모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보통은 그렇지만, 직접 괴물이란 것을 겪고 그 처리에 대해 알게 된 지금, 실종자들이 그렇게나 많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그러자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느낌이 올라온다.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무섭고, 많은 비밀이 감추어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닐까?
똑. 똑. 똑.
상념을 깨는 노크 소리에 화들짝 정신이 돌아온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눈에 들어오는 얼굴.
“인한이 이시키! 그 붕대들은 뭐야? 많이 다쳤잖아?”
“어~ 형 왔어? 나연이 누나도 왔네?”
커다란 덩치의 성기형 뒤에 김나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응. 괜찮니?”
“죽을 정도는 아니야.”
“많이 아파 보여.”
“내가 많이 튼튼하잖아. 괜찮아.”
성기형이 성내듯 말한다.
“강인한! 도대체 무슨 짓 하고 다니는 거야?”
“아... 별 건 아니고, 창고 아르바이트하다가 물건박스가 무너지는 바람에...”
“허어~ 씨발. 거기 어디야? 얼마나 관리가 허술하면 물건이 무너져? 이런 건 그냥 넘어가면 안 돼.”
“아니야... 내가 실수한 것도 있어. 그쪽에서 치료비랑 다 해 주고, 보상도 해 준 데.”
“제대로 해준다고 해? 너 일 못하고 그런 것도 다 보상받아!”
“걱정 말래도? 병실도 vvip잖아. 충분히 해 준다니까 진정해.”
그제야 콧김까지 내뿜던 성기형이 조금 진정하듯 숨을 크게 내쉰다.
“형 숨은 저쪽으로, 입 냄새 쩔어.”
“이 새끼. 농담이 나오냐?”
“농담 아닌데?”
성기형이 김나연을 곁눈질로 보며 얼굴을 붉혔다.
“빌어먹을 새끼.”
으레 병문안의 단골로 등장하는 과일 바구니가 탁자에 올려지고, 성기형과 김나연이 소파에 앉았다.
“언제까지 입원해?”
“그건 잘 모르겠네.”
“으응...”
“무슨, 할 말 있는 얼굴인데?”
김나연은 말을 삼키는지 계속해서 입을 우물거렸다.
그 모습이 어울리지 않게 귀엽다.
“음... 모델들이 마음에 안 들어.”
나는 단번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모델들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건... 그녀의 촬영 실력이 가장 클 거다.
그녀의 하찮은 촬영 실력을 가장 빛내주는 것이 나였으니.
그동안의 내 노력이 빛을 발하는 중일 테지.
“크크큭... 역시 나만한 모델 없지? 내가 누나 전속이잖아~”
“그 말, 이상하게 기분이 별로야.”
“설마, 환자를 치려는 건 아니지?”
들었던 손을 고이 내려놓으며 미간을 찌푸리는 것도 예쁘다.
그녀의 호감이 궁금해져 매직아이를 발동하려던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성기형과 김나연을 봤다.
그냥 내가 아는 형과 누나.
그런데 혹시라도 다른 모습이 겹쳐 보인다면?
엄습하는 불안감에 몸이 덜덜 떨릴 지경이다.
그리고 언젠가 착각이라 생각되었던 김나연의 모습이 떠오른다.
눈이 파랗게 보였던 그날의 기억.
설마... 겨우 그 정도로... 아니겠지...
어쩌면 렌즈나 그런 것을 착용했기에 빛에 반사된 것은 아닐까?
모습이 겹쳐 보이던 이들은 대부분 확연하게 구분될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파? 간호사 부를까?”
성기형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어? 별거 아니야. 생각 좀 하느라고.”
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이상연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 손님...?”
이상연의 등장에 성기형과 김나연이 돌아본다.
그리고 나를 향하는 시선에 누구냐는 물음이 담겨 있다.
슬쩍 시간을 보니 5시30분.
그녀가 물리치료와 검사를 받는데 2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서로들 처음 보지?”
바보 같은 말로 입을 열었다.
당연히 처음 보겠지...
“이쪽은 왕성기 형이라고, 나랑 친한 물주 형. 그리고 이쪽은 김나연. 나랑은... 으음... 친한 누나?”
그러면서 김나연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나는 꽤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이 없다.
내 소개에 살짝 찌푸려진 얼굴.
하지만 그 얼굴은 금방 풀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기형이 속삭인다.
“야... 성은 붙이지 말라니까?”
나는 성기형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며 이상연을 소개했다.
“저쪽은 상연누나. 나이는... 여기서... 제일... 많... 이런 실수. 히히~”
“진짜? 저보다 한참 어린 줄 알았습니다. 그냥 성은 빼고 부르시면 됩니다. 성기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상연이에요.”
왕성기나 성기나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다.
“김나연입니다.”
“이상연이에요.”
그런데 두 여자의 대치가 묘하게 느껴지는 건 내 기분이지?
“인한이랑은 무슨... 관계이신지...?”
“네?”
김나연의 직설적인 물음에 이상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당황한 내 모습을 본 것인지, 이상연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래저래 친하게 지내는 누나예요. 인한씨가 제 부탁으로 아르바이트하다가 다쳤네요. 혹시 여자 친구? 그렇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괜히 제가 일을 부탁하는 바람에...”
그 짧은 시간에 내가 김나연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한 것일까?
이상연의 말은 자연스러웠다.
“네...네? 여... 여자 친구는 아니고... 그냥... 친한 누나예요.”
친한 누나? 그런데 그 김나연이 말을 더듬는 다고?
“휴우...”
나는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대처한 이상연의 얼굴을 보자 괜한 죄책감이 밀려온다.
김나연은... 어쩌면 내 첫사랑일지도 모르지.
아직도 김나연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상연을 외면하는 것은 차마 못하겠다.
“상연이 누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하자 이상연이 재빨리 말을 끊었다.
“인한씨? 컨디션은 어때?”
나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이상연을 바라봤다.
고개를 저어 보이는 그녀.
아... 그녀는 지금 유부녀다.
공식적으로는 아직 구상두의 와이프라는 것을 깜빡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활짝 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칫... 괜히 울렁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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