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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25화 (25/297)

〈 25화 〉 1. 내 눈에만 보여.(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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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눈에만 보여.(25)

강인한과 연락 후, 쇼핑까지 마치고 돌아온 정수지.

그녀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구입한 옷들을 입어보고 있었다.

서방님과 만나는 것에 행운이 뒤따른 것일까?

꽤 만족스러운 쇼핑을 할 수 있었다.

“흥~흐흐흥~ 흐흥~”

키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옷을 살 때마다 적지 않은 고초를 겪어야만 하는 그녀.

눈속임으로 모습을 살짝 고쳤지만, 몸의 형태를 완전히 바꾸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것과 실제 사이즈는 완전히 달랐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는 항상 문제가 되었다.

커다란 골반과 엉덩이에 비해, 허리는 너무나도 가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상복은 신축성이 좋은 레깅스다.

상의도 마찬가지.

어깨가 맞는 상의를 선택하면 옷의 앞섬이 한계치까지 늘어나 젖무덤이 훤히 드러난다.

그렇다고 가슴에 맞는 옷을 사면 너무 박시하게 보이고.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옷을 구입했군요~ 원피스는 이 소라색이 좋을까요?”

허리라인을 제대로 잡아주지 않으면 가슴과 히프 때문에 뚱뚱해 보인다.

하지만 오늘 산 원피스는 허리라인이 제대로 잡혀 있다.

“이 청바지도 마음에 드네요~”

하렘스타일의 청바지라서 골반까지 잘 들어맞는다.

한참을 옷과의 씨름을 하던 정수지.

“하아~ 오늘 밤은 정말 길겠네요.”

오늘 밤만 지나면 보겠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진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던 그녀.

순간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그녀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아니면... 살짝 가서 서방님 자는 모습을 보고 올까요?”

***

한국병원 앞.

주차창의 나무 그늘 밑에 모습을 드러낸 정수지는 불이 꺼진 한 병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시각은 새벽 12시30분.

병실의 불이 꺼진 것은 1시간이 넘어간다.

스마트폰의 희미한 불빛도 없는 것으로 보아 서방님은 확실히 잠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병원으로 진입했다.

응급실을 제외하고는 지나다니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에서 한 번만 보고 오는 거야.’

재빠르게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

계단에 진입하자 하나의 추억이 떠오른다.

첫 경험을 그에게 주었던 그날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진 것이다.

화끈.

“하아... 부끄럽군요.”

그녀는 상념을 떨쳐 버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계단을 오르는 정수지의 움직임에 발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이윽고 옥상으로 이어지는 철문이 드러났다.

끼이익.

손잡이를 돌려 문을 잡아당긴다.

덜컹.

“허업! 노... 놀랐습니다.”

오래된 철문이라 아귀가 잘 맞지 않았던지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잠시 떨리는 심장을 다독이고 옥상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강인한의 병실이 있는 곳으로 이동, 고개를 슬쩍 내밀어 창문을 확인한다.

강인한의 병실은 5층.

병실의 창은 통 창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 밑에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미닫이창이 있다.

정수지의 검은 머리칼이 흰색으로 탈색되고 가슴과 엉덩이가 더욱 볼록해졌다.

힘을 쓰게 되면 자연적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정수지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밑을 향해 훌쩍 뛴다.

터업.

4미터 아래에 있는 창턱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낸 그녀.

누가 본다면 정말이지 아찔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턱걸이를 하듯 천천히 팔을 굽혀 눈까지만 얼굴을 걸쳤다.

그녀의 은은하게 붉은 눈동자가 병실 안을 주시한다.

‘앗! 서방님!’

붕대를 감고 있지만 얼굴은 멀쩡해진 서방님이 눈에 들어온다.

콩딱콩딱.

정수지의 심장이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몰래 찾아와 스토커처럼 지켜보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짜릿하지?

드르르륵.

창문을 열었는데 생각보다 비좁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든 욱여넣으면 들어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작은 머리는 쉽게 통과.

양팔과 어깨도 충분히 들어갔다.

문제는 역시나 무거운 가슴.

정수지의 얼굴이 난감함으로 물든다.

“끄으응...”

크기만 한 가슴은 정말이지 실생활에 도움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축소 수술이라도 받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지요? 그 전에 보니까 서방님이 큰 가슴을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차!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정수지는 힘겹게 가슴을 밀어 넣었다.

꾸그긋. 꾸긋.

거대한 가슴이 창틈에 끼어 힘겨운 비명을 지른다.

기운으로 감싸면 이렇게 아프지 않겠지만, 그렇게 되면 창틀이 부서지고 말 거다.

눈물이 핑 도는 걸 참아가며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다.

출렁.

“읍!”

‘돼... 됐습니다.’

창에 끼어 비명을 토해내던 가슴이 자유를 찾고 축 늘어졌다.

상체는 안으로 들어왔지만, 하체는 창밖에서 버둥대는 상황.

누가 본다면 기겁을 할 상황이다.

어서 들어가야 한다.

“으윽!”

그녀는 낭패감으로 물들었다.

또다시 이런 상황에 부닥치다니.

“으으음...”

그때 그녀의 귀를 파고드는 낮은 인기척.

바닥을 향해 있던 정수지의 고개가 슬쩍 올려졌다.

그리고 마주친 시선.

“누... 누구세요!”

정수지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해 버렸다.

“히잉... 서... 서방님... 흑...”

***

얼마나 잤을까?

무언가 꾸물거리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1인 병실을 쓰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있을 리는 없고.

혹시 이상연이 들어온 걸까?

떠지지 않는 눈을 힘겹게 뜨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때, 창 쪽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굳게 닫혀 있는 병실 문.

화들짝 놀란 나는 창을 향해 외쳤다.

“누... 누구세요!”

알 수 없는 한 밤의 침입자.

결코, 좋은 의도라고 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것이 평범한 것이 아니기에, 그 두려움은 더 컸다.

“히잉~ 서... 서방님... 흑...”

창으로 스며드는 가로등의 불빛에 희미하게 보이는 음성의 주인공.

‘배... 백발?’

몸을 황급히 일으켜 병실의 불을 켰다.

덕분에 수술한 부위가 아릿한 통증을 불러온다.

“다... 당신은?”

좁은 창틀에 끼어서 올려다보는 백발의 미녀가 눈에 들어왔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애처롭게 올려다보는 모습.

시선이 마주치고 있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하고 숙인다.

“도대체 왜 그렇고 있습니까?”

사람이 아니라고 짐작되는 여자가 왜 여기에?

“절 만나러 오신 겁니까?”

끄덕. 끄덕.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럼 정상적으로 보러 오면 되는데, 왜 이 새벽에 창문으로...?”

“죄... 죄송합니다...”

기운 없이 축 늘어서 사과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창에 끼어서 저러고 있는 모습이 왠지 귀여워 보였다.

저번에도 가슴과 골반이 걸려 버둥대더니, 두 번이나 같은 모습을 보게 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상당히 어수룩한 것 같다.

“혹시, 창에 끼어 버린 거예요?”

끄덕.

“도와드려요?”

끄덕.

그녀가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확실히 나와 이상연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고.

그것보다 밖에서 저러고 있는 것을 본다면 난리가 날 터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양손을 잡았다.

구상두의 가슴을 한 방에 뚫어 버리던 무력과는 달리 그녀의 손은 작고 부드러웠다.

마치 솜털을 쥐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당깁니다.”

“네...네...”

“흐읍! 끄으응”

“아악... 아... 아파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흐읍! 네... 넵!”

“흐아압!”

걸렸던 엉덩이가 빠져나오자 그녀의 몸이 단번에 주욱 하고 당겨졌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내 몸 위로 겹쳐지며 함께 병실 바닥을 뒹굴었다.

쿠당탕.

“으으윽...”

덕분에 상처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치며 고통을 호소한다.

“죄... 죄송합니다!”

당황한 얼굴로 백발의 여인이 빠르게 일어났다.

그리고 걱정되는지 나를 부축하고 일으켜 주었다.

어쩌다 보니 그녀의 어깨를 의지해 일어난 상황.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는 그녀와 얼굴이 바짝 가까워진다.

간질간질.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향기.

‘조... 좆나 예쁘네...’

시선이 마주치자 백발여인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내 얼굴도 뜨끈한 것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저... 저기 앉으세요.”

침대에 걸터앉으며 소파를 가리켰고.

“아...? 네... 네...”

그녀는 쭈뼛거리며 소파에 가서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하하하... 당연히 처음일 수밖에.

“저기...”

“저기...”

“아 먼저 말하세요.”

“아... 아니요. 먼저...”

결국, 내가 먼저 묻기로 했다.

“그런데... 꼬... 꼬리가...?”

“아! 꼬... 꼬리! 그건... 힘을 많이 쓸 때...”

“아... 힘을 쓰면 나오는구나... 그럼... 눈도 빨갛게 막 변하고... 송곳니도 나오고...?”

“네...”

또다시 이어지는 침묵.

이거 무슨 소개팅도 아니고 분위기가 이상하게 흐른다.

“왜... 오셨는지 말씀을 안 하셨는데...”

“아! 그... 그게... 서방님이 보고 싶어서...”

아직도 서방님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왜 서방님인지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아직도 제가 서방님인 것이 확실한가요?”

“네...”

“왜... 요?”

그 물음에 얼굴이 확 하고 달아오른다.

시선도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상당히 동요하는 듯하다.

“그... 그야... 저를 취하시고... 제 처음이시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

나는 봉인하리라 생각했던 매직아이를 발동시켰다.

어차피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다른 것이 더 보이겠나 싶었던 거다.

그녀에게서 보이는 것은 분홍색.

그날 보았던 색은 착각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날 보다 더 진해졌다.

거의 이상연과 맞먹을 정도의 진한 농도다.

나는 그녀의 꼬리가 보일까 싶어 슬쩍 엉덩이 쪽에 시선을 가져갔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의 모습이 본래의 모습이라는 걸까?

힘을 쓰면 그 때의 모습처럼 변하는 것이고?

“정말 죄송한데... 저는 그쪽이 누군지 짐작할 수가 없어요.”

벌떡.

“그... 그렇죠... 죄송합니다. 그냥 잊어 주세요. 저... 전 이만 가 볼게요.”

그렇게 일어난 그녀가 다시 창문으로 향했다.

나는 빠르게 그녀의 팔목을 낚아챘다.

“창으로 나가려고요? 위험해요!”

가만 생각해 보니 위험하기는 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죠?! 죄송합니다.”

그녀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병실 문으로 향하려 했다.

나는 그녀의 잡은 팔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잠깐만요.”

“네?”

“그냥 잊어달라면서 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게... 제가 무서우실 수도 있고...”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저... 정말요?”

“네. 정말입니다.”

“......”

그녀의 정체를 물로, 다른 물어볼 것이 많았다.

그리고...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예쁘다.

어쩌면 내가 진짜 서방님이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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