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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26화 (26/297)

〈 26화 〉 1. 내 눈에만 보여.(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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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눈에만 보여.(26)

자세히 보니 완전한 백색이라기 보단 살짝 회색빛이 감도는 백발이다.

주먹을 입에 물고 무언가 고민이라도 하는 듯 잘게 떨리는 눈동자.

눈을 깜빡일 때마다 나비처럼 날갯짓하는 풍성한 속눈썹, 그 아래 큰 눈동자는 은은한 붉은빛이 감돌며 보석처럼 빛난다.

그리 크지 않은 오뚝한 코와 부드럽게 떨어지는 얼굴라인.

새하얀 피부는 분을 바른 것만 같다.

붉은 입술은 립 밤을 바른 것처럼 윤기가 흐른다.

당장에라도 혀를 가져가 맛을 본다면 새콤달콤한 체리 맛이 날 것만 같다.

가녀린 목선을 타고 내려와 폭발할 듯 존재감을 드러내는 볼륨.

저 가슴은 두 손으로 쥐어야 한 덩이를 쥘 수 있을 거다.

그 밑으로 개미처럼 가느다란 허리가 자리했는데 골반으로 가면서 급격하게 경사를 이룬다.

탐스럽게 익은 애플 힙.

말 그대로 만화 속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다.

인간이 아니므로 이런 비주얼이 가능한 것일까?

고양이상이 분명한 얼굴인데 나를 바라볼 때는 강아지처럼 바뀌는 것이 신기하다.

지금껏 보아 온 여자 중에 김나연을 따라갈 이는 없었는데,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그만큼 서로가 다른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여성은 그 누구보다 눈에 확 들어오는 존재감이 있다.

“우선, 그날 구해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네? 아! 네네...”

별말을 한 것도 아닌데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라니.

그날의 모습과 전혀 매치가 안 된다.

한 방에 구상두를 날려 버리던...

“제가 왜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제가 무섭게 변한 걸 봐서...”

“저는 무섭지 않은데 솔직히 말해서... 정말 예뻤어요.”

“네...네?”

예쁘다는 말이 부끄러운지 또다시 허둥지둥하며 얼굴을 붉힌다.

도도해도 전혀 밉지 않을 것 같은데, 저런 행동까지 하니 조금이나마 존재했던 벽이 무너지는 것 같다.

“예쁘다고요. 그날도, 지금도 정말 매력 있어요. 그런데 꼬리는 진짜였던 거죠?”

“그게... 네... 진짜입니다...”

“그래서 무섭다는 생각은 못하겠네요.”

“그럼... 제가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것입니까?”

“네. 전혀 무섭지 않아요.”

“제가 아직은... 완전히 인간이 아닌 데도요?”

아직은 이라... 그럼 완전한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인가?

“그럼요.”

“와~ 신난다! 다행이에요. 너무 걱정했는데... 히~”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는지 얼굴이 한결 환해졌다.

이제는 그녀가 누군지 알아내야 할 시간.

“그런데... 이제 말해주세요. 왜 내가 서방님인지.”

“그... 그런... 제 처음을 가져가셨고... 음...”

내가 처음을 가져간 여자.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 처녀는 한 번도 없었다.

요즘 세상에 처녀라는 천연기념물이 있을 턱이 없지.

그러던 중 번뜩이는 기억.

‘어...? 아니지? 한 명 있었지?’

불현듯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오후에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가만...? 그러고 보니... 들어... 있다.

꼼지락거리며 눈치를 보는 얼굴에 분명히 내가 아는 얼굴이 겹쳐 보인다.

신체테스트를 하기 위해 갔던 피트니스센터의 비상계단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던 여인.

“서... 설마... 저... 정수지씨?”

“허업!”

깜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는 모습에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의 여인은 정수지가 맞다.

어쩐지 그날 창고에서도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어... 어떻게? 그럼, 그 모습은 뭐예요?”

“죄... 죄송합니다. 서방... 아니, 인한오빠! 속이려고 한 건 아닌데... 그게 그러니까...”

들썩거리며 허둥거리는 모습이 꽤 당황한 것 같다.

나는 그 모습에 그만 실소를 터트리고 만다.

“푸훗.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돼요.”

“그게 아니라... 히잉... 제가 싫어지신 건 아니겠죠?”

“아니에요. 그때 정수지씨가 오지 않았다면 제가 이렇게 살아 있었겠습니까?”

나는 정수지에게 어떻게 그곳에 오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나를 찾을 수 있었던 경위부터, 보고자 했던 이유까지 남김없이 하나하나 이야기 했다.

정수지는 인간이 된 구미호에게서 태어났으며 200년간 남성의 간접적인 양기로 정기를 쌓아야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성관계를 하게 되면 너무 많은 양기가 한 번에 들어오게 되어 요기가 더욱 날뛰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의 수행은 모두,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린다.

말 그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면 그 힘에 취해 계속해서 남성을 탐하거나.

나와의 섹스는 정말로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재수 없었으면 나는 양기를 홀라당 다 빼앗기고 미이라 처럼 말라죽었을지도...

“저도 서방님... 아니, 오빠랑 그런 일이 있고... 오히려 더 좋은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뇌전의 기운 때문인 것 같은데, 요기를 줄여주고 정기로 바꿔주었어요.”

“편하게 불러도 괜찮아요.”

“정말이요? 그럼... 서... 서방님?”

서방님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보지만, 그녀가 그렇게 부르는 게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입가가 씰룩이는 것을 애써 참아내며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지했다.

서방님이라면 자고로 조금은 근엄해 보여야 할 것 같았다.

“듣기 좋네요.”

“저... 저도... 좋아요... 그런데... 한 번 더...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그녀가 확인해 보고 싶은 것.

그것은 또다시 섹스해도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것일 거다.

나야 당연히 환영할 일이지.

뇌전의 기운이 보호하고 있다는데.

그날도 정수지의 몸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봉인이 풀린 지금은 대단하다못해 경이로울 정도다.

처음을 가져갔으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

사실, 외모에 혹한 것이 99프로라는 것은 감출 수 없는 진실이다.

이런 미녀를 거부한다면 그 남자는 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설령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꼬리... 꼬리가 너무 궁금해.’

“당연히 확인해 봐야죠.”

“그렇죠!? 앗! 목소리가 너무 컸다...”

“괜찮아요. 여기 방음 잘돼요.”

“저기... 서방님? 서방님이 존댓말을 쓰는 건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편하게 불러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돼요?”

그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수지야.”

“수... 수지야라니... 와~ 너무 좋습니다~”

내 한마디에 저렇게나 좋아하는 걸 보니, 괜히 우쭐해지는 기분이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뭐든지 말씀하세요! 서~ 방~ 님~ 히히~”

귀... 귀엽다.

정말 심장이 아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행동 하나하나가 심장을 마구 옥죄어온다.

“수지같은 사람... 이라고 하나? 뭐라고 불러?”

“대부분 요괴라고 부른답니다.”

“아... 요괴... 그럼, 귀신이나 그런 것들도 있나?”

“네. 대부분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땅에 남기도 해요. 그렇다고 전부 나쁜 건 아니고.”

헐... 설마 귀신이 정말 있을 줄이야.

이러다가 흡혈귀나 늑대인간도 있다고 하는 거 아냐?

“흡혈귀나 늑대인간도 있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역시 우리 서방님은 대단합니다~”

“하하하...”

이거 아무래도 잘못 엮이면 큰일 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수지는 요괴나 그런 것들하고 자주 만나고 그러나...?”

“그럴 일은 별로 없어요. 서방님이 만난 정염귀처럼 나쁜 짓을 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대부분은 모습을 감추고 지낸답니다.”

일단은 구상두같은 경우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했다.

“하지만... 정말 위험한 것들이 있기는 한데... 서방님이 그런 것들을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요? 그리고 제가 지켜 줄 겁니다!”

“아하하하... 그거 든든하네...”

남존여비 사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여자가 지켜 준다고 하니 기분이 좀 그렇다.

정수지의 말을 토대로 생각하면 그녀와 만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절로 아랫도리가 욱신거린다.

선명한 분홍색의 정수지.

당장 일을 치러도 오케이 할 것 같긴 한데, 문제는 내 상태가 상당히 에바다.

제대로 씻지도 못 해 찝찝하기 그지없고, 상처의 통증도 다 낫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정수지의 몸을 감상하고 있자니 너무나 괴롭다.

정말 요물은 요물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때 계단에서 봤던 모습이 이 모습이었네.”

“네?”

그녀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본다.

“수지를 처음 봤을 때, 지금 모습이 겹쳐보였었거든. 그때는 워낙 찰나만 보여서 헛것을 봤나 싶었지.”

“설마요... 제가 요기를 쓰지 않는 이상 원래 모습을 볼 수 없는데...?”

나는 아차 싶었다.

그리고 내 눈에 사람으로 분신한 요괴들이 겹쳐 보이는 것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리고 말해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녀는 목숨까지 걸었던 이상연처럼 선분홍색.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다.

안다고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색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사실, 사람으로 분신한 것들의 모습이 겹쳐 보여.”

“정말요? 역시... 서방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아닙니다! 기운을 꺼내지 않는 이상, 요괴끼리도 서로를 알아볼 수 없어요.”

“정말이야?”

그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요괴끼리는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구상두나 정수지를 보게 되면서 내 능력이 참으로 하찮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꽤 대단한 능력이었다.

내 눈에만 보이니까 놈들을 잘만 피해 다니면 된다.

“정말 대단해요. 뇌전까지 지녔는데, 심안의 능력까지 있습니다. 서방님은 저랑 천생연분이예요!”

왜 천생연분으로 마무리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그녀가 나를 이만큼이나 좋아해 주는데, 덩달아 좋을 수밖에.

그렇게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수지의 나이가 122세라는 말에서는 다소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100을 빼면 22니까 스물두 살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상연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는데, 본인이 인정하겠다고 하니 얼씨구나 하고 넘어갔다.

이상연은 아마도...? 이해해 줄 거로 생각하니까...

아직은 내 생각일 뿐이다.

심안인지 뭔지가 있으니 요괴들은 피하면서 두 여친과 알콩달콩 살아야겠다.

아니지? 김나연까지는 어떻게 해 봐야 하는데...

첫사랑에 가까운 김나연을 포기할 수는 없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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