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2. 사냥꾼.(1)
* * *
2. 사냥꾼.(1)
뚝... 뚝... 뚝...
괴인의 손에 들린 머리 잃은 시체.
솟구치던 피는 이내 시체의 몸통을 따라 흘렀고, 전신을 붉게 물들이며 발끝에서 뚝뚝 떨어져 내린다.
우득. 우드득. 우득.
머리를 통째로 뜯어 으적으적 씹어 먹던 괴인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아... 안 돼! 도망가! 어서!”
피 웅덩이의 미끄러운 바닥을 손톱으로 박박 긁으며 기는 모습이 처절하다.
여인은 품으로 감싼 소녀를 괴력을 발휘해 힘껏 밀었다.
여인에 의해 밀쳐진 소녀가 서럽게 울어댔다.
“흐아아앙! 엄마아~~~!”
소녀는... 괴인보다, 피를 뚝뚝 흘리는 아빠의 시체보다, 엄마의 품에서 떨어졌다는 것이 더욱 두렵고 무서웠다.
이 모습을 괴인의 붉은 눈동자가 흥미롭게 바라본다.
씨익.
입꼬리가 귀에 걸리며 짐승처럼 커다란 송곳니가 입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이 어찌 재미없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든 생명체의 정점에 올랐다 여기는 오만한 족속.
크크큭...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인간 따위는 한낱 포식자의 먹잇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 생각하는 생태계의 정점위에 또 다른 포식자가 있다는 것을.
우르르르릉. 콰콰콰쾅.
번쩍.
요란한 풍악을 울리며 장대비를 쏟아 내던 하늘은 푸른 조명을 번뜩이며 어둠을 밝혔다.
커다란 통 창을 뚫고 들어오는 푸른 번쩍임에 어두웠던 내부가 환하게 밝혀졌다.
족히 인간의 두 배에 달하는 덩치.
커다란 얼굴만큼 더욱 커다란 입은 귀밑까지 쭉 찢어져 있다.
붉게 번들거리는 피부는 갑각류의 외골격처럼 단단하면서도 잘게 갈라져 움직임에 무리가 없다.
와그작.
한 손에 감싸 쥔 남성의 목 없는 시체를 또다시 입에 넣는다.
동시에 커다란 발을 내디뎌 여인의 으깨진 다리를 밟았다.
“꺄아아악!”
여인은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댄다.
괴인... 아니, 괴물의 두터운 허벅지 사이 앙증맞게 달랑거리는 물건이 힘차게 기지개를 켰다.
덩치에 비해 한 뼘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지만, 외형만큼은 흉물스럽기 그지없다.
으깨진 다리를 밟히는 고통에도 여인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어서 가!!!!!”
여인의 외침이 들려오는 찰나, 또다시 울리는 굉음.
우르르르릉.
콰콰쾅.
번쩍.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진 내부.
여인의 눈에는 넘어져 엉엉 우는 딸과, 구석에 웅크려 덜덜 떨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간질이라도 걸린 듯 전신을 바들거리며 떨고 있는 아들의 모습.
“인한아!!! 제발!!!”
그녀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강인한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탁한 눈으로 덜덜 떨며 눈앞의 참상을 바라볼 뿐이다.
아빠의 시체를 씹다 던진 괴물이 엄마를 잡아들었다.
부우욱. 부욱.
우악스러운 괴물의 손에 엄마의 옷이 찢겨나가며 살점도 함께 찢겨진다.
엄마의 찢어지는 비명과 여동생의 울음소리가 귀를 어지럽게 울렸다.
“흐아아아앙! 오빠아!! 어마! 어마가 흐아아앙!”
현실을 외면해 버린 강인한은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이를 외면하며 지독한 죄책감이 밀려든다.
하지만 죄책감보다 더욱 짙은 공포가 정신과 육체를 잠식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꿈이라도 꾼 것처럼 모든 것이 없었던 일이 되길 빌었다.
얼마나 눈과 귀를 막고 있었을까?
더 이상 엄마의 비명 소리도, 동생의 울음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지독한 악몽은 끝났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면 원래의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렇게 되면 엄마의 간절한 눈빛과 동생을 외면한 죄책감도 함께 없어질 거라 여겼다.
조심스럽게 귀에서 손을 떼어냈다.
꿈이라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악취.
너무도 수상한 냄새지만 감았던 눈을 천천히 들어 올린다.
그리고 보았다.
소년의 눈앞에 붉은 눈을 번들거리며 얼굴을 일그러트린 괴물의 모습을.
괴물이 숨을 내뱉을 때마다 구역질나는 악취도 함께 뿜어진다.
손가락처럼 두껍고 날카로운 이빨은 누렇게 번뜩인다.
크크큭, 겁쟁이처럼 여기 숨어 있었구나?
번쩍.
콰콰콰쾅.
괴물의 음성과 함께 겁쟁이를 나무라듯 하늘의 단죄가 떨어져 내진다.
벼락에 강타당한 집 전체가 쩌저적 갈라졌다.
천청이 뚫려 무너져 내리고, 이에 놀란 괴물이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빠르게 물러났다.
동시에 강인한은 보았다.
뻥 뚫린 천장 사이로 기다란 창처럼 내리꽂히는 푸른 뇌전을.
온 세상이 점멸하며, 그 눈부심에 양팔로 얼굴을 감쌌다.
엄마의 간절한 눈빛과, 동생을 외면한 죄를 묻는 신의 심판이 떨어져 내린다.
“으아아아아악!”
*
꿈틀.
볼에 느껴지는 푹신함과 달콤한 향기.
엄마의 품만큼 따뜻하고 아늑하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려다본다.
힘겹게 벌어진 눈꺼풀 사이로 새하얀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소년은 자신을 안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확인해 보려하지만 무거운 눈꺼풀이 다시 덮이는 것을 막지 못했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 포근함은 엄마가 확실하다고 애써 자위한다.
“정신이 들었나요?”
나긋나긋 들려오는 음성.
엄마의 음성이 아닌, 전혀 다른 낯선 음성.
그렇다고 낯을 가려 이 품을 빠져나오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의 포근한 꿈은 악몽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했다.
“살아 있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잘 생긴 꼬마생존자를 발견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점점 음성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소년은 덮쳐 오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든다.
***
거친 숨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
지독한 악몽...
아니, 잊었던 과거를 떠올린 나는 지독한 자기혐오에 몸을 떨었다.
어찌 이 일을 잊고 살아올 수 있었단 말인가.
추악한 뇌의 방어기제는 자신을 보호하려 그날의 기억을 두터운 자물쇠로 걸어 잠갔다.
부들부들.
왜 이제 와서 이런 기억이 돌아온 거야!
나는 머리를 감싸 쥐고 소리 없는 절규를 내뱉는다.
괴물에게 머리부터 씹어 먹히던 아빠의 모습.
동생을 데리고 도망가라는 엄마의 간절한 눈빛.
우악스러운 괴물에게 찢겨지며 범해지던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도망가라 외쳤다.
그저 엉엉 울 수밖에 없었던 어린 여동생의 울음소리를 외면하고 더욱 구석으로 웅크렸다.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현실을 부정했다.
이것은 꿈이라고! 지독한 악몽이라고!
주르륵.
누구를 위한 눈물인가.
내가 외면해 버린 엄마와 여동생을 위한 눈물?
가증스럽다.
가증스럽게 눈물을 흘려대는 눈알을 뽑아내 버리고 싶다.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오지만, 이런 고통조차도 과분한 처사라는 생각이 든다.
오빠를 외치며 우는 여동생에게 뻗어내지 못한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
동생을 데리고 달려 나가지 못한 두 다리를 꺾어 버리고 싶다.
“아아아아악! 흐어어엉... 허어엉...”
역겨움과 분노가 치솟는다.
찐득한 늪에 빠진 것처럼, 시꺼먼 잿더미 속에 파묻힌 것처럼 마음 또한 한 없이 나락으로 빠져든다.
*
날이 밝아오려는지 창 틈 사이로 흐릿한 여명이 밝아온다.
내가 저 밝은 여명을 맞이해도 되는 걸까?
밝아오는 환한 빛에도 시야가 검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검고 진득한 늪이 전신을 집어삼키는 기분.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과거의 기억을 되돌린다.
입에서는 나조차도 인식하지 못 한 흐느낌이 연신 흘러나왔다.
“흐흐흐...”
정신을 차렸던 병원의 응급실.
그리고 병실을 찾아오던 형사.
추악한 자기방어에 충실했던 뇌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강원도 산골짜기의 펜션에 떨어진 벼락은 일가족 중, 아들만이 생존했다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왔던 한 여성은, 어떤 일인지 그대로 모습을 감추고 찾을 수 없었고.
여성에 대해 꼬치꼬치 묻던 형사는 무슨 일인지 세 번째부터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일을 뇌 속 깊숙이 봉인해 둔 채, 고아원에 맡겨졌다.
벽락이 내려친 펜션 안에는 분명한 흔적이 남아 있었을 터.
나는 그날의 더러운 기억을 떠올리며 미친 듯이 인터넷을 검색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의문이나 수상한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십 수 년이 지난 기사의 내용은 단촐 하기 그지없다.
마치 누군가가 짜기라도 한 듯 일관된 내용.
무엇을?
나는 그날의 괴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괴물의 모습이 조금씩 생생하게 그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신했다.
정염귀.
그때의 내가 워낙에 작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기억 속의 정염귀는 구상두보다 더욱 크고 더욱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구상두를 마주한 일이 잠겨있던 기억을 깨우는 단초가 되었을까?
빠드득.
내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은 그 죄를 가리기 위해 희생양을 필요로 하고 있다.
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는 힘껏 몸을 빼내던 놈의 모습.
놈은 분명히 살아 있다.
구상두처럼 인간의 모습을 한 채, 어딘가에서 인간을 유린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 모든 분노는 놈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놈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날, 나를 병원으로 데려다준 여자는 누구지?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는 그 표현.
그 여인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 고 있다는 생각이다.
두 번이나 찾아와 여성에 대해 집요하게 묻던 형사가, 갑자기 그녀의 행방을 포기한 것도 수상하기 그지없다.
나는 형사의 얼굴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너무도 어린 시절이라 흐릿한 기억.
직접 그 형사를 본다면 기억이 떠오를 것 같다.
아직 형사 일를 하고 있을까?
형사이름이...
고형사.
고씨라는 것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내가 죽음에서 돌아온 것은 놈에게 복수하라는 신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큭큭큭... 지랄.”
신의 유희라는 것이 맞겠지.
신이 있다면 죄 없는 가족이 그 딴 괴물에게 죽게 내버려 두면 안 되는 거잖아?
알량한 능력을 쥐여 주고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지켜보기라도 할 심산인가?
그래... 어울려주마.
놈의 목을 가족의 묘비에 바치는 순간까지는...
우선 고형사를 찾는 것이 첫 번째.
그리고 여성을 찾아내는 것이 두 번째.
사건장소에 가 보는 것도 단서를 얻을지도 모르지.
그리고 내 눈.
내 눈은 둔갑한 요괴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는, 모든 정염귀를 찾아내 죽인다.
혼자의 힘으로 어렵다면, 도움이 될 이가 한 명 있다.
정수지.
그녀라면 내 도움을 흔쾌히 들어 줄 거다.
나는 깨끗하게 정리된 원룸을 눈에 담았다.
어제 퇴원을 축하한다며 술을 사 들고 온 성기형으로 인해 한바탕 술판이 벌어졌다.
야릇하게 변해가던 분위기는 덕분에 산산이 깨져 버렸고, 이상연까지 불러 진탕 마셔댔다.
오랜만에 거하게 마신 폭주로 정신마저 놓아버렸는데...
중간 중간 눈을 떴을 때, 술판을 치우던 이상연이 보였더랬다.
그리고 술 취한 척 있던 정수지를 이상연이 억지로 끌고 나갔던 것 같다.
창가로 다가가 반쯤 열려 있는 커튼을 젖혔다.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낸 아침 햇볕이 방안을 밝힌다.
내 마음과는 달리 빌어먹게도 밝은 하늘이다.
‘죄송해요... 아빠...미안해요... 엄마... 미안하다... 인아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