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31화 (31/297)

〈 31화 〉 2. 사냥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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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2)

고형사를 찾아가 봤지만 15년 전 형사 일을 그만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연락처를 아는 이는 한 명도 없었고.

주소를 알 고 싶었지만,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알아낼 수 없었다.

다만, 하나 알아 낸 것은 그의 이름.

고정욱.

“고정욱이는 왜 찾는 거유?”

종이컵을 들고 홀짝이며 들어오는 한 남성.

쉰은 넘어 보이는 얼굴과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모양새가 그와 아는 사이 라는 것을 직감했다.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자료를 통해 그의 이름을 알아낸 것 빼고는 그를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를 직접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제가 어렸을 때, 사고가 있었는데 담당하셨던 형사 분입니다. 여쭈어 볼 것이 있어서...”

그 말에 피식거리며 입가를 말아 올린다.

고정욱에 대한 비웃음이 여실히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아~ 오해는 말고. 그런 일로 그놈을 찾아오는 건 처음이라 신기해서 그러우. 어떤 사건 이었수?”

호기심이라기 보단 그저 지나가는 듯 물어보는 어투.

서로 호의적인 사이는 아니었다고 짐작되었지만, 그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단서를 얻을 수 있기에 그날의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는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를 기억하려는 입술을 긁적이며 미간을 좁힌다.

“아... 기억났어. 혹시, 그때 아들 생존자?”

“네... 그렇습니다.”

그러곤 쯧 하고 혀를 찼다.

“쯧쯧쯧, 그놈이 또 헛소리를 지껄였던 모양이구만.”

헛소리?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괜히 되물었다간 나올 말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놈 말 너무 신경 쓰지 마쇼. 툭하면 살인사건이니 미스터리니 괴이니 하면서 정신 나간 소리만 하는 놈이니 말이야.”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미스터리와 괴이라는 말에 집중했다.

“미스터리라면...?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왜? 설마, 그런 소리를 믿기라도 하는 거요?”

***

반장이라는 그의 말에 따르면 고정욱은 음모론이나 미스터리에 미친놈이었다.

종결 난 사건을 살인사건이라 우기며, 이를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조작한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찍찍 내뱉는 불란 인자.

반장은 고개를 내저으며 그런 말에 마음 쓰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꼰대 같은 말로 마무리 지었지만, 나는 직접 사건을 겪은 당사자다.

고정욱의 말은 누군가가 그날의 사건을 묻으려 했고, 그는 자연재해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용의선상에 오른 이가 정체불명의 여인.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고정욱은 형사 일을 그만두었다.

그 여인을 찾았을까? 여인은 용의자가 아니다.

사건의 범인은, 정염귀.

정염귀는 전부 남성이다.

헛수고라며 넘겨 준 고정욱의 예날 주소를 얻은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

그의 말대로 주소지에는 고정욱이 살고 있지 않았다.

짐작했음에도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사람 찾는 일이 처음인지라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머릿속이 번뜩이며 생각나는 놈들이 있었다.

이런 일에 전문인 놈들.

아무리 꽁꽁 숨어 달아나도 지긋지긋하게 찾아내 쫓던 놈들.

옥토퍼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이상연에게 전화를 걸며 발걸음을 옮겼다.

*

스카이클럽.

이상연이 회사원처럼 오픈시간에 출근해 마감시간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번씩 들려 확인을 하는 정도.

출근이라기 보단 불심검문에 가까운 것 같다.

더군다나 그녀는 요즘 이것저것 배우느라 바쁜 상황.

나는 비어있는 사장실에 홀로 들어섰다.

사실, 클럽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대로 남아 있기에 그녀가 세세하게 신경 쓸 부분은 없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스카이클럽을 (구)구상두파에서 봐주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기에, 다른 조직의 시비에 휘말릴 일도 없다.

지금은 구상두파가 아니라, 강일파라고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사장이 없는 사장실에 홀로 앉아 나대명을 기다린 것도 20여분.

똑. 똑. 똑.

사장실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네.”

문이 열리고 옥토퍼스가 안으로 들어오며 90도로 꾸벅 인사를 한다.

덕분에 조명에 반사된 반질거리는 정수리가 빛을 뿌린다.

정말로 대머리가 눈부시다는 것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구상두 사건이후로 처음 대면하는 자리.

그의 과한 인사에 절로 미간이 좁혀진다.

“형님... 이요?”

되묻는 말에 옥토퍼스의 얼굴에 당황이 묻어난다.

“그럼... 어떤 호칭으로...”

“저보다 나이도 많은 것 같은데,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네넵!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건지.”

정수지가 이야기는 잘해놨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까지 공손할 줄은 몰랐다.

내심, 때로 덤벼들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감도 조금 있기도 했고.

그렇다고 상대를 못 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날을 떠올려보자면 일반인이 보았을 때 나는 초인에 가까웠으니, 이렇게 불러들일 수 있었던 거다.

뭐, 욕심 부리지 않고 잘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일상생활은 잘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

흠칫.

내 말에 그날의 일이 떠올랐는지 나대명이 몸을 들썩인다.

“그... 그건...”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습니까?”

옥토퍼스는 그날의 일을 제법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수지에 대해서는 백발의 여성이라는 것 정도만 기억했다.

정확한 인상착의는 살피지 못한 모양이다.

두려워 눈도 마주치지 못 했다나 어쨌다나.

나대명은 내가 구상두에게 당하는 장면보다 피해를 입히는 장면을 더욱 정확하게 목격한 모양이다.

이야기하는 옥토퍼스의 눈동자는 어울리지 않게 반짝였다.

마치 동경하는 이를 보며 선망하는 눈빛.

나이 서른이 넘은 대머리의 눈빛은 충분히 부담스럽다.

어찌 되었든 그로 인해 억제력이 발생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나는 매직아이를 발동해 나대명의 색을 확인해 본다.

노란색과 파란색?

노란색은 신뢰에 기반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노란색이라니.

옥토퍼스가 나를 신뢰할 일이 있기나 하나?

그리고 파란색은 처음 보는 색이다.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당장에 알 수 없는 것은 일단 묻어두기로 했다.

언젠가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지.

“사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옥토퍼스의 말에 그를 빤히 주시했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웠던지, 슬쩍 고개를 떨어트린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옥토퍼스가 아무것도 없는 뒷머리를 긁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희 쪽에서는 간간이 들려오는 말이거든요. 한 번씩 인간 같지도 않은 싸움꾼들이 있고. 전설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이들이라고. 그들은 기행을 일삼는 일도 있고, 인간이 아니라는 말까지 돌고는 했습니다. 이 생활을 하다 보면... 이게 정말 사람이 한 짓일까? 라는 일도 종종 보기도 하고...”

“거기에 구상두도 포함되었습니까?”

“네... 상두형님... 아니, 죄송합니다. 구상두도 전설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어쩌면 괴물이 아닐까라는 말까지 돌았었는데... 정말로... 괴... 괴물이었을 줄이야...”

그는 그리 말하며 나를 향해 불안한 눈초리를 보내온다.

아마도 구상두와 싸우던 나 또한 괴물은 아닐까 싶은 모양이다.

“저는, 사람이 확실합니다.”

“하... 하하하. 형님이 괴물이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저 형님이라는 말은 습관인가 싶다.

자기보다 강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나는 굳이 이를 꼬집지 않고 물었다.

“구상두도 기행을 일삼았습니까?”

“아... 조금... 일단, 사람을 죽이는 것이 너무 거리낌 없고... 그게... 또...”

나는 그를 향해 눈을 매섭게 떴다.

자꾸 머뭇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특히, 여자들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저... 맛있게 먹었다고 하며... 이런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사모님... 아니, 사장님을 항상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고 했습니다. 배... 배를 가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나... 그저, 사장님 집안의 병원을 거위라고 하는 거겠지 했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나는 짐작 가는 바가 있어 그저 묵묵히 경청했다.

정수지의 말에 의하면 이상연에게 기형적일 정도로 많은 음기가 있다고 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천성적으로 음기를 타고났는데, 구상두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비정상적인 상태라고.

“또 다른 이들은 어떤 사람들 입니까?”

그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말을 풀어냈다.

서울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인물로, (고)구상두, 그리고 강남에 자리 잡은 흑곰파의 오대석을 이야기했다.

경기도에는 의정부의 정일우, 안산 차이나타운의 왕루이, 인천의 장보고를 이야기했다.

‘그 새끼들도 정염귀일까?’

확신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는 정염귀 외에도 괴이 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니.

기회가 된다면 매직아이로 정체를 확인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조사를 더 해 보면 더 나오겠지만, 당장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람 한 명 찾아봤으면 하는데.”

“네. 형님! 말씀만 해 주신다면 당장 잡아 오겠습니다.”

“잡아 오라는 말은 아닙니다. 은밀히 찾아서 저에게 알려주시면 됩니다.”

나는 고정욱에 대해 얼마 알지도 못하는 정보를 옥토퍼스에게 넘겨주었다.

볼일이 끝났기에 나가려니 했는데,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지 뭐 마려운 개처럼 끙끙거린다.

“무슨 할 말 있습니까?”

“그... 그것이...”

“뭡니까?”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

“구상두가 실종되고... 다른 조직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해결이 어려운 문제인가요?”

“어떻게든...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스카이클럽 운영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르는지라...”

그 말에 절로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들이 지지고 볶든 나와는 상관이 없지만, 스카이클럽을 가지고 도마 위에 올린다면 말이 틀려진다.

이 클럽은 이상연이 운영하는 클럽이다.

“상연이는 알고 있습니까?”

“그...그게... 사모님은 아니... 사장님은 쉽게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나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경찰에 신고?

그런 것이 제대로 통했으면 깡패들도 전부 사라졌겠지.

이런 시비에 휘말리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다.

뒤에서 조금 돕는 정도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문제가 커질 것 같으면 연락 주세요.”

“네. 형님!”

자꾸 형님 소리 들으니까 무슨 깡패 두목이 된 것 같다.

예전이라면 목에 힘이 바짝 들어가 거들먹거렸을 테지만, 어찌 된 일인지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만큼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 급작스럽다는 말이겠지.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일단은 고정욱을 찾아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나대명이 아무리 귀신 같이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해도, 십 수 년 동안이나 모습을 감춘 이를 하루 이틀 만에 찾아낼 수는 없을 거다.

그렇다면 당장 살펴봐야 할 것은 현장 조사.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한 번쯤은 가 보는 것이 좋으리라.

부모님과 인아가 마지막으로 숨을 쉬었던 장소.

쿵쾅. 쿵쾅.

장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한다.

정확하지 않은 기억으로 옛 기사들을 검색했다.

기사들을 토대로 장소를 유추해내자 떠오르는 기억.

위성지도를 이용해 장소를 찾아봤지만 숲에 가려져 건물의 흔적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때의 기억보다 더욱 울창해 보이는 나무 숲.

일단은 직접 가서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스카이클럽을 나오면서 렌터카를 예약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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