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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33화 (33/297)

〈 33화 〉 2. 사냥꾼.(4)

* * *

2. 사냥꾼.(4)

강북에서 노른자로 불리는 스카이클럽과 그 일대.

누구나 노리는 명당이지만, 그곳은 구상두파가 독식하고 있었다.

강북만 해도 조직이 한 두 개가 아닌 만큼 침 흘리는 조직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구상두파를 건드릴 정도로 배짱 있는 조직은 없었다.

조직원의 숫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구상두의 무력.

그는 홀로 열이 넘는 조직원을 상처 없이 해치운 전적이 있는 괴물이었다.

또한 조직원들도 정예라 불릴 정도로 실력들이 뛰어났다.

강북의 넘버2를 차지하는 상명파.

조직원의 숫자는 구상두파보다 많았지만, 구상두라는 거목이 버티고 있었기에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구상두의 실종소식을 듣게 되었고, 처음에는 이빨을 드러내는 조직들을 정리하기 위한 수작이라 여겼는데, 조사해 본 결과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더군다나 조직이름까지 바꾸어 버렸으니, 확실하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랬는데...

상명파의 보스 조응수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2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괴물이라고 불리는 구상두보다 더 한 괴물이 눈에 들어온다.

수십 명의 부하들이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저 어린놈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나잇대로 보아 구상두의 숨겨진 아들은 아니다.

피 칠갑한 놈이 눈을 번들거리며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흠칫.

주춤. 주춤.

구상두파 아니, 강일파까지 도착하면서 이 싸움은 패배나 다름없다.

놈들이 도착해서?

아니다.

저 어린 괴물 놈 혼자 있었더라도 자신이 무사할 수는 있었을까?

“괴... 괴물...”

“형님, 피하셔야 합니다!”

옆에서 부하가 팔을 흔들며 외친다.

피해야 한다고? 어디로?

우드득.

“크아아악!”

퍼억.

우당탕.

“크흑... 크흑....”

자신을 보호하려던 오른팔이란 놈은 어린 괴물의 손에 너무도 쉽게 땅을 굴렀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

“형니임!!!”

머리를 번쩍이며 어린놈을 향해 형님이라 부르며 달려오는 나대명이 보였다.

(구)구상두파의 오른팔.

지금은 강일파 조직의 보스다.

‘나대명이 형님이라고 불러?’

“앉으십셔! 형님!”

*

나대명이 가져온 의자에 강인한이 털썩 하고 앉았다.

온몸이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것보다 아직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감히, 스카이클럽에서 깽판 친 것에 대한 셈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강인한이 조응수를 지그시 바라봤다.

털썩.

남자의 무릎은 자존심이라고 하지만 강인한의 시선을 받은 조응수가 털썩하고 무릎을 꿇었다.

구상두를 뛰어넘는 괴물.

‘구상두는 이놈에게 제거 당했을지도 모른다.’

조응수의 생각과는 달리, 정염귀로 변한 구상두를 처리한 것은 강인한이 아니었지만 이를 알고 있는 이는 이상연과 정수지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인 강인한의 무력은 평범한 범주를 벋어났다.

전설.

어쩌면 전설이라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

조응수는 제 눈으로 목격한 것에 두려움이 느껴지면서도 알 수 없는 희열이 번졌다.

그는 고개까지 숙여 부복하며 외쳤다.

“형님! 저희 상명파는 앞으로 형님을 따르겠습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태세 전환이야 당연할 것이겠지만, 갑자기 따르겠다니.

강인한은 앞에 부복한 조응수를 지그시 내려다본다.

‘내가 깡패 두목이 될 건 아닌데...’

어쩌면 전설이라는 놈들 중 원수 놈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은 아직 정염귀를 변한 구상두를 홀로 상대할 자신도 없었다.

펜션에서의 그놈은 어쩌면 구상두 이상으로 강한 놈일지도 모른다.

그런 놈이 조직까지 이끌고 있다면?

강인한이 나대명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그의 시선을 받은 나대명이 눈치 빠르게 입을 열었다.

“형님. 상명파는 강북에서 알아주는 조직입니다. 저들을 흡수하면 강북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저희를 쉽게 볼 수 없을 겁니다.”

강인한은 나대명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처박고 있는 조응수를 내려다본다.

“물론, 형님이 계시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지만, 형님이 전면에 나서시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상명파를 흡수하는 것이 맞습니다.”

“으음...”

나대명의 말을 들은 강인한이 고민하는 듯 턱을 문지르고 있자 조응수가 바닥에 머리를 쿵쿵 하고 내리찍었다.

“저희 상명파는 목숨을 다해 형님께 충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저희를 받아주십시오!”

그 꼬락서니를 보는 강인한이 콧방귀를 뀐다.

“하... 다른 놈한테 밟히면 그 충성은 금방 옮겨 가겠네.”

“저... 절대 아닙니다!”

“이름.”

“네?”

“이름 뭐냐고요.”

“조응수입니다!”

“뭐, 옥토퍼스... 아니, 나대명씨가 합치는 것이 좋다고 하니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상명파분들? 지금, 이 자리에서 강일파와 합치는 것에 불만인 사람은 저 문밖으로 조용히 나가시면 됩니다. 뒤탈은 절대 없을 거라는 것을 약속드리죠. 괜히 옆 사람 눈치 본다고 남아 있지 말고 소신껏 행동하세요. 괜히 뒤통수 맞는 거 좆나게 싫으니까. 그렇죠?”

강인한이 나대명을 바라보자 그가 고개를 숙여 보인다.

“예 형님. 절대 뒤 탈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웅성거리던 것도 잠시.

스카이클럽을 빠져나가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어차피 깡패 밥 먹던 놈들이, 나가서 다른 일을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들도 기왕이면 강한 조직에 속하는 것이 출세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강일파의 두목이 형님이라 부르는 괴물 같은 이가 강일파에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겉으로 두목은 나대명이지만, 진짜 주인은 강인한이라 생각한 것이다.

물론, 강인한은 조직을 이끌 생각도 뭣도 없었지만.

그저 필요할 때 이용하고, 이상연의 업장이 안전하게 지켜지면 될 일일뿐이었다.

“자~ 그럼 나대명씨랑 조응수씨만 남고 전부 해산!”

강인한이 빨리 해산하라고 손을 휘휘 내젓자 나대명이 두 부하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 둘은 나대명과 함께 구상두에게서 살아남은 이들.

두 사내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빛내며 강인한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장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

옥토퍼스와 조응수를 사장실로 불러들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인한이 얼굴도 들지 못했을 깡패조직의 두목 둘이 시선을 아래 두고 공손하게 기립해 있다.

“깡패들의 일은 깡패들이 알아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내가 깡패인 것도 아니니 그 부분은 나대명씨가 알아서 하시고.”

“형님, 그냥 이름을 부르시든 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나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한테 뭘 어떻게 더 편하게 부릅니까?”

“그냥 이름을 부르시던가... 아니면 직함정도로...”

“그럼, 나두목님, 나보스님 이렇게 불러요?”

“그... 그게... 그냥, 나사장 정도가 어떻습니까? 나이사나...”

안절부절못하며 머리를 긁적이는 나대명을 보며 조응수가 눈을 빛낸다.

어쩌면 저 둘의 관계가 생각보다 깊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자신이 나대명의 자리를 꽤 찰 수도 있다는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럼... 나사장으로 하죠.”

“예 감사합니다. 형님.”

“감사까지야... ”

나대명에게서 고개를 돌린 강인한의 시선이 조응수를 향했다.

이에 조응수는 살짝 몸을 떤다.

자신을 낱낱이 해부하는 것 같은 예리한 눈빛.

‘무슨... 사람이...’

20년이 넘도록 조직세계에 발을 담근 조응수의 촉은 정확했다.

강인한은 매직아리로 둘을 살피는 중 이었으니.

‘옥토퍼스는 생각보다 충성심이 좋은 인간이네.’

노란색에도 농도가 대략 5단계쯤 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3단계 정도의 노란색이 지금은 4단계.

반면, 조응수의 색은 아직도 회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무참하게 깨지면서 진한회색에서 바뀐 게 이 정도였다.

괘씸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확실하게 정리를 하지 않는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강일파의 보스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나사장입니다. 조응수씨는 아... 조이사 정도로 하겠습니다. 깽판 친 놈을 이 정도로 대우해주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잘 아시겠죠?”

“네? 네... 네!”

“지금 딴생각 하는 게 다 보여서 그럽니다.”

흠칫.

“절대, 아닙니다.”

“아니긴... 쯧. 나사장은 저와 목숨이 오가는 상황까지 함께 했던 사람이에요. 그러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세요. 나사장 자리를 꽤 찬다거나 그런 거...”

같은 편은 아니었지만, 다 같이 뒈질 뻔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조응수는 어린 나이임에도 생각을 읽는 것 같은 강인한의 말에 등줄기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낀다.

반면, 나대명의 얼굴은 환하게 화색이 돈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리죠. 스카이클럽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위험에 노출시키지 마세요. 너무 더러운 짓거리는 하지 마시고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나사장이 조이사의 상관입니다. 알겠습니까?”

“예 형님. 확실히 알겠습니다.”

“뭐, 알겠다면 다행입니다. 누구처럼 사라지고 싶지 않으시다면 잘하시리라 봅니다.”

강인한의 흘리듯 하는 말에서 조응수는 짐작했다.

정말 구상두는 강인한으로 인해 세상에서 지워졌다는 것을.

실제로 지운 사람은 따로 있지만.

더군다나 사람을 죽여본 적도 없다는 것을 조응수가 알 턱이 없었다.

“네... 넵!”

강인한은 그저 경고의 의미로 경각심을 일깨워 준 것뿐이다.

‘내가 구상두를 죽였소,’ 라고 한 것은 아니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사장님은 수습할게 많을 테니 이만 나가보시고요. 조이사님은 남아주세요.”

“네. 형님.”

“저는... 왜...?”

남으라는 것에 의문이 든 조응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아직 마무리 지을 게 있잖아요. 전 이렇게나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조이사는 너무 멀쩡한 것 같지 않아요?”

“네?”

“조이사님은 내가 좆나게 패 놓고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하면 ‘아이고 그래 동생아.’ 하고 그냥 보내줄 겁니까?”

“그... 그건...”

“저 쇠 파이프로 세 번, 발길질에 다섯 대, 주먹에 두 대 맞았습니다. 계산은 하고 가셔야죠. 아! 기물파손과 영업 손실에 대한 것은 조이사님 개인자금으로 잘 보상하리라 봅니다.”

씨익.

스산하게 웃는 강인한의 미소에 조응수가 몸을 달달 떨었다.

분위기를 살핀 나대명이 후다닥 문을 닫고 나갔다.

강인한은 절대로 대인배가 아니었다.

아니,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당한 것은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빼앗길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하지 못하면 당한다.

우습게 보여도 당한다.

그런 독기가 있었기에, 남들보다 잘난 것이 없었기에, 제 한 몸이라도 그렇게나 가꾸고 공을 들일 수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힘이 없었기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 부분도... 개인 사비를 털어서... 보상... 혀... 형님... 살려주십시오! 으아아악! 형니임! 크어어어억!”

사장실을 나선 나대명은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몸을 잘게 떨었다.

그 사건이후 깨끗하게 마음을 비워낸 자신이 그렇게나 대견할 수가 없다.

아직도 그 날의 일이 쉬이 믿어지지 않는다.

사람을 단숨에 반 조각을 내버리던 괴물과, 그 괴물을 단신으로 상대하던 강인한의 모습이 그려졌다.

극심한 공포에 정신이 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백발여인의 손에 나가떨어지던 괴물이었다.

괴물을 상대하던 강인한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떻게 백발의여인이 나타나서 구상두의 가슴을 맨손으로 뚫어버리고 발길질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강인한은 괴물과 맞서 싸울 정도로 괴물이었고, 백발 여인은 그런 괴물을 쉽게 처치한 괴물이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던 상황에서도 백발여인의 경고성이 똑똑하게 들렸다.

“이 곳의 일은 없던 일입니다. 그리고 서방님께 함부로 했다간 저를 다시 볼 거라는 걸 잊지 마세요.”

백발여인의 서방님이 강인한 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대명은 감히 여인을 마주보지 못하고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강인한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르는 여인.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던 나대명이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서른다섯 인생 중 제일 잘 한 선택이야. 암~ 그렇고말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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