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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34화 (34/297)

〈 34화 〉 2. 사냥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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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5)

한바탕 분풀이를 해서 그럴까?

쫓기듯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다.

예약했던 렌터카를 취소하고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 늦은 시간에 가서 뭘 어쩌겠다고.’

무작정 강원도로 향하려던 나는 머리가 개운해지면서 제대로 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3대 욕구, 성욕, 식욕, 수면욕 사이에 폭력을 넣어도 되지 않을까?

온몸은 아직도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깡패들을 때려눕히던 감각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

‘중독되겠는데?’

부재중 전화를 보니 이상연과 정수지가 번갈아 가며 전화해 왔다.

그녀들을 생각하자 푸근한 가슴에 안겨 푹 자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일단, 나가자.”

몸을 일으킨 나는 홀을 지나 밖으로 향했다.

한창 영업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꾸벅 하고 인사를 하는 직원들.

이런 대우는 처음 받아보지만, 나쁜 기분은 아닌 것 같다.

괜히 뭐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우쭐해진다.

나는 손을 휘휘 저어 인사를 해 주며 스마트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걱정 했잖아!­

“걱정할 정도는 아냐~”

­일 있었다며? 지금 스카이클럽이지? 그쪽으로 가는 중이니까 기다려.­

“옥토퍼스한테 이야기 다 들은 거 아냐?”

­들었어. 그래도, 금방 갈게.­

“괜찮다니까. 나 나왔어. 내일 다녀 올 곳도 있고. 일찍 들어갈 거야.”

­휴우... 다친 곳은 없지?­

“응 없어. 그리고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걱정을 안 하겠어?­

“그게 왜 누나 때문인데? 마침 걔들이 쳐 들어온 거지.”

­칫! 아무튼! 딴 데로 세지 말고 일찍 들어가!­

아쉬운 음성의 이상연이었지만, 지금 만나면 끌려갈 것이 뻔했다.

오늘은 왠지 커다란 정수지의 가슴에 안겨 보고 싶은 마음이다.

내일 펜션을 찾아가는 것도 정수지를 데려갈 예정이기에 그녀를 만나는 것이 좋겠지.

나는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

“서... 서방님!”

정수지의 오피스텔에 도착하자 격하게 환영하는 그녀.

짧은 핫팬츠에 배가 훤히 드러나는 크롭탑.

안에 항상 무언가를 받쳐 입던 것과는 달리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뽀얀 다리와 튼실한 골반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위로는 터칠 듯 빵빵한 거유가 작은 움직임에도 흔들렸다.

집에서는 항상 이런 차림인지, 아니면 내가 와서 갈아입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떻게 저 몸에 저런 가슴이 달려 있을 수 있지?’

당장에라도 달려와 안겨들 듯 하더니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우물쭈물하며 얼굴을 붉힌다.

피트니스클럽 비상계단 이후로 아무런 진전도 없었기에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런 옷차림을 하고 있다고?

당장에 날 잡숴~ 하는 옷차림이다.

“오~ 집 좋은데?”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향기가 코 속으로 퍼진다.

이것이 정수지의 향기인가? 괜히 가슴이 설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거실과 일체형 주방이 눈에 들어온다.

창은 커다란 통 창으로 되어 있는데, 10층이라는 층고 덕에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명당이라, 이곳에 살려면 꽤 많은 비용을 지급해야 할 것 같다.

“여기 비싸겠다.”

“언제든 서방님이 쓰셔도 돼요.”

“밥은 먹었어?”

“네... 저는 먹었는데...”

시간을 보니 벌써 10시에 가까워져 있다.

당연히 먹고도 남았을 시간.

나는 온종일 먹은 것도 없고, 몸까지 격렬하게 움직였던 터라 상당히 허기졌다.

어슬렁거리는 나를 보던 정수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서방님?”

“응?”

“무슨 일이 있었나요? 옷은 왜 그렇고... 피 냄새도 나는 것 같은데...?”

“아... 별일 아니야.”

그렇게 말했지만 정수지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나를 향해 축 내려갔던 눈초리는 언제 저렇게 날카롭게 올라갔는지 매섭기 그지없다.

“말씀해주세요.”

착 가라앉은 그녀의 음성에 절로 등이 싸해진다.

눈앞에 무사한 내가 있는데, 그렇게 화낼 일인가?

가만 생각해 보면 신체적인 접촉만 없었을 뿐이지, 그동안 정수지는 내가 정말 서방이라도 되는 듯, 하나하나 챙기려 했다.

지극정성을 들이는 조강지처처럼(?).

어쩔 수 없이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연신 상명파에 대한 분노를 터트렸다.

“아무튼, 그렇게 된 거야. 이제 됐지?”

“제가 서방님을 못 도와드린 것이 정말 화가 납니다.”

나는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거리는 정수지를 달랬다.

“정말 괜찮다니까? 다 해결했어. 그보다 나 배고픈데...”

“아차! 이걸 어쩌지?”

벌떡 일어나 안절부절 못 하는 그녀.

“집에 서방님을 대접해드릴 것이 별로 없는데... 큰일 입니다!”

“배달시켜 먹자. 수지 먹고 싶은 거 있어?”

“저... 저는 이미 밥을 먹었는지라... 원래 과식하지 않습니다. 서방님이 드시고 싶은 것 시키시면 될 것 같아요.”

“그래?”

나는 배달 어플을 뒤적거리며 검색해 본다.

“조금은 먹을 거지?”

“서방님, 혼자 드시기 그렇다면 조금은 거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하며 음식을 고르던 중, 눈에 먹음직스러운 대게가 보였다.

“음... 그래? 오오~ 오랜만에 대게나 먹어볼까?”

꿀꺽.

대게라는 말에 꿀꺽 침을 넘기는 소리가 났다.

스윽 고개를 돌려보니 눈을 빛내며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정수지.

과식 안 하고 조금만 먹는다며?

“수지야?”

내가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라며 눈을 깜빡이는 정수지.

그녀의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찾았다.

“네... 네?”

잘사는 거 맞아? 이렇게 좋은 오피스텔에 살면서 대게에 눈이 돌아가네?

오피스텔에는 문도 세 개나 있는 것이 두 개는 방, 하나는 화장실이라 짐작된다.

이렇게 좋은 자리에 이 정도 크기의 오피스텔이라면 서민은 꿈도 못 꾼다.

뭐... 유난히 좋아하는 음식일 수도 있겠지.

“대게...”

정신을 차렸던 정수지는 대게라는 말이 나오자 다시 눈이 번뜩였다.

촉촉하게 젖어 드는 눈빛과 벌어지는 입.

꿀꺽.

“대게... 먹을까?”

“네... 네! 서방님이 원하시면!”

“그럼 작은 거 세트를 시키면 되려나?”

그러면서 수지의 얼굴을 슬쩍 봤다.

확연하게 티가 날 정도로 시무룩해지는 모습.

엄마 잃은 처량한 강아지가 저러할까?

“중 으로 시킬까... 음...”

그러자 덩달아 얼굴이 밝아진다.

“제일 큰 거로 시켜서 배터지게 먹어야겠다.”

이제는 화사하게 핀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입꼬리를 타고 반짝이는 건 침이지?

끄덕끄덕.

마구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환영하는 모습.

그녀는 제일 큰 거라는 말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조금 더 반응을 보고 싶었다.

“아니다. 제일 작은 거로...”

시무룩...

“에이~ 그냥 제일 큰 거로 시키자!”

끄덕끄덕.

얼마 후 주문한 대게가 도착했고, 눈을 번뜩이는 정수지의 눈은 사냥감을 보는 맹수와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날렵한 손놀림.

조금만 먹겠다던 그녀의 손과 입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전투력이 높으면 먹는 것도 이렇게나 빠른 건가?

스그극.

쏘옥.

오물오물.

손톱을 길게 빼고 대게다리를 가른 후, 토실한 살만 발라낸다.

그러고는 그대로 입으로 쏘옥 넣어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저 손톱 활용도가 많은데?’

마치 공장의 단순노동처럼 신속하고 빠른 움직임.

나는 정수지의 먹는 모습을 넋 빠진 얼굴로 바라봤다.

흠칫.

“서... 서방님?”

입 주변에 대게 살이 이리저리 묻어 있는 정수지는, 자기 만행을 깨닫고는 정색하며 내숭을 떨었다.

“비싼 대게를 너무 많이 시키셨어요.”

네가 바란 거잖아?

“음식을 남기면 벌을 받는답니다.”

이미 남길 음식은 없어 보인다만?

“서방님도 어서 드시기 바랍니다.”

나는 모조리 해부가 되어 있는 대게와 정수지를 번갈아 보았다.

내가 먹을 것은 없는 것 같은데?

잘게 흔들리는 눈동자.

애써 시선을 회피하려는 모습.

입가에는 대게 살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푸훗.”

“왜... 왜 웃으세요. 서방님?”

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손을 뻗어 그녀의 입 옆에 묻은 대게 살을 떼어냈다.

그러곤 입으로 가져가 넣는다.

그 모습을 보던 정수지의 얼굴이 용광로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 그건...”

누가 이런 정수를 보고 정염귀를 한 방에 때려죽였다고 볼 수 있을까.

122세의 정수지는 22세의 풋풋한 대학생들보다 더욱 풋풋해 보였다.

***

치이익.

꿀꺽꿀꺽.

적당히 배도 채웠고 소화도 시킬 겸 그녀와 나는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시원한 맥주의 탄산이 목구멍 끝까지 청량한 느낌을 준다.

“대게가 그렇게 먹고 싶었어? 크크큭.”

“서... 서방님! 그건 어디까지나!”

“수지가 다 먹었지?”

“그... 그게...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

“왜? 혼자는 못 먹어?”

“비... 비싸기도 하고...”

이런 집에 살면서 비싸서 못 먹었다고?

그 이유에 대한 것은 그녀의 말을 들으며 알게 되었다.

정수지의 마마. 그러니까 엄마.

오피스텔의 소유는 정수지 엄마의 것이다.

10년 전부터 독립하게 되면서 마마는 살 곳과 일정액의 돈을 마련해주면서, 스스로 생활하라는 조건을 던졌다고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억 소리 나는 지원이었지만, 그녀의 돈 버는 재능은 하찮기 그지없었다.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주식.

폭망.

그다음 선택한 것이 코인.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그녀는 그때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주유소, 편의점, 가구점등 아르바이트라는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해 봤다고 한다.

워낙에 겉모습이 출중해 유흥 쪽에서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정수지가 가장 조심해야 하면서도 필요한 것이 남자의 양기.

그래서 마지막으로 선택했던 것이 피트니스센터였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면 어떻게 해?”

정수지가 고개를 푸욱 숙였다.

“그... 그래서 다시 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주 많이 혼났습니다.”

나는 킥킥거리며 그녀의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기가 막히도록 부드러운 느낌이 손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내 과거를 이야기할 생각이다.

복수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정수지의 도움이 필요할 거다.

그러려면 사건의 발단부터 알아야겠지.

“내 어릴 때 이야기도 들어볼래?”

푹 숙여진 정수지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서방님 어릴 때요?”

눈이 반짝반짝하는 것이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기대하는 아이 같다.

“응. 그렇게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야.”

그렇게 나의 어릴 적, 사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듣는 내내 정수지는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몇 번이나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어야만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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