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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38화 (38/297)

〈 38화 〉 2. 사냥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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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9)

전보다 울창해진 숲과 길게 자란 풀이 파다다닥 거리며 차를 긁어댔다.

사람의 발길이 오랫동안 없었다는 듯, 너저분하게 시멘트 길을 뒤덮은 풀.

펜션이 있었던 곳에 도착하자 내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우중충한 하늘이 우리를 반겨 준다.

아직 오전임에도 어두컴컴한 잿빛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불길한 기운을 뿜어낸다.

“하아...”

15년이 지난 펜션의 모습은 더 이상 집의 형태를 하고 있지 않았다.

천장이 뚫렸던 펜션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완벽하게 무너져 있었다.

있는 것이라곤 건물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콘크리트 잔해들.

“서방님...”

정수지의 목소리에 머리를 한차례 흔들었다.

사진이나 예약링크가 없다는 것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눈으로 보니 허탈하기 그지없다.

“뭐... 오래되었으니까...”

“제가 살펴봐도 될까요?”

“그래...”

내가 이곳의 주인인 것도 아니고 허락까지 받을 건 없지만, 그녀의 물어 오는 말에 대답해 주었다.

수지는 주변을 살피며 이제는 잘게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굵직한 나무 기둥에 기대앉아 있던 나는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봤다.

한참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정수지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너무 지나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약간의 기억은 읽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수지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

기억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말의 가능성은 있다는 소리로 들렸다.

“정말? 어떻게? 아니... 부탁할게...”

“서방님의 일인데... 당연히... 그런데... 잠시 자리를 피해주시면...”

자리를 피해 달라는 수지의 말.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얼굴을 붉힌 그녀의 모습에, 일순 호기심이 일었다.

그것을 알아챈 것인지 수지가 말을 이었다.

“장소의 기억을 읽으려면... 요기를 한계까지 써야 할 텐데... 그러면 모습도 바뀌고... 서방님이 거부감이 생기실수도 있고...”

모습이 바뀐다고?

그 말에 수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얗게 변한 백발과 붉은 눈.

그리고 살랑거리던 새하얀 꼬리.

나는 수지의 그 모습을 매직아이로 볼 수 있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잊기라도 한 모양이다.

“나는 네 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거부감이 있었다면 다신 만나지 않았겠지.”

“저... 정말인가요?”

그 말에 감동이라도 받은 듯 그렁한 눈으로 바라보는 수지.

이 정도로 감동할 일인가?

수지의 구미호버전 모습이 떠오르자 기대감이 불끈 솟아오른다.

모습이 변한 수지의 알몸을 보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녀에게 들어서 알 고 있는 것이 있다.

한계치까지 요기를 끌어올리면 그동안 쌓아온 정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

그녀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공든 탑을 무너트리는 일과 같다.

“당연하지. 그 모습도 너무 예뻐.”

“헤~ 서방니임...”

“하지만 네가 요기를 써서 정기를 소모하는 것은 원하지 않아.”

“괜찮습니다! 서방님하고 어제... 그 거... 하고... 정기가 마구 쌓여서... 무리하면... 또 서방님이 해주시면... 하악... 너무 부끄럽습니다아...”

얼굴을 잔뜩 붉히며 두 주먹으로 눈을 가리곤 몸을 이리저리 비튼다.

저런 모습을 보니 정수지는 정말 요괴이고 구미호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관계를 하며 더욱 친밀해졌지만, 작은 움직임에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럼, 내가 당연히 나도 도와야지!”

“아... 서방님...”

아련해진 눈으로 마주쳐오는 시선.

그녀는 나에게 온 최고의 선물이다.

지금 내가 홀리고 있는 것이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수지와 함께 콘크리트 잔해들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노동은 내가 하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거들고 있는 수지.

그 앙증맞은 손으로 커다란 덩어리를 들어 던질 때면 그저 헛웃음이 나온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무게 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집중까지 받으며 우쭐했던 내 모습이 괜히 부끄러워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손을 터는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수지의 말에 들고 있던 콘크리트더미를 마저 던져 버렸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어? 그래.”

“잠깐... 시선을 돌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기라도 한 것인지 얼굴을 붉히며 말하는 그녀.

“아... 알겠어.”

“정말, 보시면 안 됩니다?”

“응. 안 볼게.”

눈을 돌리자 묘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쿵쿵하고 뛰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그녀의 모습을 훔쳐봤다.

눈을 살포시 감은 수지의 모발이 뿌리에서부터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한다.

직접 변하는 모습을 보니 신비롭기까지 하다.

동시에 묘하게 피부를 찌르르 하게 만드는 요사한 기운.

모발이 전부 하얗게 변하자 눈썹이 탈색되듯 흰색으로 변했다.

안 그래도 붉은 입술은 피를 머금은 듯 더욱 요염하게 붉어졌다.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 부분이 불룩해지기 시작했다.

‘꼬... 꼬리!’

지금, 이런 생각할 상황은 아니지만, 그 모습이 마치 엉덩이 사이에 무언가를 꽂아 놓은 것 같아 심장이 벌렁거렸다.

꼬리가 팬츠사이로 삐져나오며 불쑥하고 튀어나왔다.

몽실몽실한 털로 뒤덮인 꼬리가 어찌 그리 야해 보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살랑 살랑.

좌우로 부드럽게 움직이며 시선을 자극한다.

‘만져 보고 싶다...’

그녀의 팬츠를 내려 실물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번쩍.

눈을 뜬 수지의 붉은 눈동자가 나와 마주친다.

동시에 당황으로 물드는 얼굴.

“서... 서방님! 흐윽... 거짓말쟁이 입니다!”

입을 벌리고 바라보던 나는, 입꼬리를 타고 흐르는 침을 쓰읍 하고 들이켰다.

“수지야... 나 지금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네... 네?”

깜짝 놀란 수지가 황급히 내 앞으로 다가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모습조차 요사하기 그지없다.

“서방님? 갑자기 심장이 왜 아파요? 어... 어떻게 해요. 병원! 병원부터 가야 합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는 수지의 양어깨를 잡아준다.

“그런 거 아냐. 수지야. 진정해. 그냥... 네가 너무 예뻐서 심장이 아파.”

“네... 네?”

***

수지 덕분에 우중충하던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뺏기는가 싶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층 시야가 환해지는 것 같다.

비록 요기라는 것이 조금은 음습한 느낌이지만.

몇 군데 이동하면서 요기를 뿜어내던 수지.

한결 나아진 나와는 달리 그녀의 얼굴은 점점 굳어져 가고 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니면 요기를 과하게 써서 무리라도 온 것일까?

조금씩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금방 끝날 것 같던 그녀의 작업은 두 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다.

“서방님...”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다가온 수지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문제 있어?”

입을 우물거리며 대답을 못 하는 그녀.

나는 손가락을 가져가 그녀의 미간을 살살 문질러준다.

얕게 주름졌던 그녀의 얼굴이 다소 풀리는 느낌이다.

“흐윽... 우리 불쌍한 서방님...”

코까지 훌쩍이던 그녀의 눈에서 결국은 닭똥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보다 한참이나 가녀린 수지의 몸을 감싸 안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어떻게...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훌쩍.”

“그만 울어. 나는 괜찮아. 혼자 왔다면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도 못하겠어. 수지가 같이 와 줘서 지금은 하나도 슬프지 않아.”

“훌쩍... 정말이죠?”

“당연하지. 내가 그날 피트니스텐터에 간 것도 운명인 것 같아. 그렇게 수지를 만났고, 수지가 내 목숨도 구해주고, 과분할 정도로 좋아해 주고 옆에 있어 줘서 너무 고마워. 네가 없었으면 목숨을 잃었거나, 아니면 완전히 무너졌을 거야. 그에 비해 나는 해 준 게 아무것도 없네?”

“히잉~ 서방님도 저를 좋아해 주면 되는 겁니다. 아... 아니! 사랑해 주셔야 합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강아지 털처럼 너무나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

그 느낌에 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다.

“응. 당연하지! 그럼, 뭘 봤는지 이야기해줄래?”

고개를 끄덕인 수지가 내 품을 빠져나와 입을 열었다.

“그날의 일을 대략 봤어요. 그리고 요괴의 정체도 무엇인지 알아냈습니다.”

요괴는 짐작했던 정염귀가 맞았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구상두와 같은 하급의 정염귀가 아닌, 네 번의 탈피를 마친 정염귀.

대부분의 요괴들은 정체를 숨기고, 인간들과 동화되어 살아간다.

인간들에게 우호적인 요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요괴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요괴들은 인간의 음기나 양기를 먹이로 살아가기에 인간과의 공존은 필수다.

하지만 정염귀의 대부분은 그 정도가 지나쳐 사냥꾼들의 척살 순위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놈들이다.

따라서 정염귀가 네 번의 탈피를 마칠 때까지 살아남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본능적으로 욕구를 참기 힘든 놈들은 큰 사고를 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지가 본 정염귀는 네 번의 탈피를 마친 놈.

15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정염귀가 잡혔다면 알려지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놈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지.’

놈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수지는 안절부절못하는 모양새다.

수지도 당해낼 수 없을 만큼 위험한 놈인가?

사실, 수지가 얼마나 강한지 가늠할 수 있는 잣대는 없다.

“그렇게 위험한 놈이야?”

“네...”

“수지도 힘들 정도로?”

“아무래도... 더군다나 그런 정염귀가 잡혔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을 보면, 지금은 다섯 번의 탈피를 마쳤을 수도 있습니다...”

“다섯... 번...”

“마마에게 여쭈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복수할 대상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구상두와 같은 하급 정염귀도 어쩌지 못하는 지금, 놈을 마주치게 되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무력한 먹잇감에 불과하겠지.’

처음 능력들을 얻었을 때의 우쭐함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

지금의 내 능력이 얼마나 미천한지 깨달았기 때문에...

나를 바라보는 수지의 얼굴은 복잡하게 굳어 있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복수의 대상이 너무나 강한 존재라고.

네 힘으로는 할 수 없다고.

그냥 포기하면 안 되냐고.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원망스럽지는 않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위험해지는 것이 싫을 뿐일 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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