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2. 사냥꾼.(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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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10)
무작정 찾은 과거의 펜션.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놈의 정체를 어느 정도 특정했다는 것만 해도 큰 수확이다.
특별한 놈.
특별한 놈이기에 나타난다면 확실하게 특정할 수 있다.
문제는 위험한 쪽으로 특별하다는 것이다.
수지의 반응으로 보아 당장 마주친다면 복수의 대상을 찾은 것에 대한 기쁨은 누릴 수 있겠지만, 동시에 놈의 일용한 양식이 되어 뱃속으로 들어가게 될 거다.
서울로 돌아와 마마를 보고 오겠다는 수지를 돌려보냈다.
그 놈에 대한 것을 알아보기 위함이겠지.
크게 한 것은 없지만.
이렇게 기운이 빠지기는 오랜만이다.
회귀를 한 후, 이렇게 피곤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나 싶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반증이겠지.
씻기도 귀찮아 옷도 벗지 않은 채 누워있자니 메시지 알림이 들렸다.
띠링.
[인한아, 모레 촬영이다. 나올 수 있겠냐?]
발신인은 성기형.
회복이라는 핑계로 쉴까도 싶었지만, 가겠노라 답장을 보내고는 드러누웠다.
아직은 이룰 수 없는 복수에 목을 매고 있을 수는 없다.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만큼은 자제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답일까?
그렇다면 복수는?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나의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냥꾼.
말 그대로 사냥꾼이다.
요괴를 사냥하고 인간이 아닌 것들을 사냥한다.
그들만이 이용하는 웹 사이트가 있는데, 그 곳에서 내려지는 수배 명단을 토대로 사냥에 나선다.
수배가 내려진 놈들을 사냥해 사진 등으로 증거를 남기고 신고를 하면 이를 뒤처리하는 이들이 도착한다.
위험등급에 따라 현상금이 달라지는데 그 현상금은 확인과 즉시 원하는 방식으로 받게 된다.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
하지만 이는 현실이었고, 정말로 그런 흉악한 놈들과 싸우는 이들이 존재했다.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놈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어떤 자들일까?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런 흉악한 놈들을 사냥하는 거지?
나처럼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들일까?
아니면, 총화기를 동원해서?
수많은 의혹이 떠올랐지만, 직접 찾아가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찾아보기에는 꺼림칙한 마음도 없지 않아있다.
내가 몰랐던 이면세계에 대한 불안감.
그 세계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지만, 이를 무난히 넘길 정도로 내 정신력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다.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보자.’
***
오늘은 촬영이 있는 날이다.
이틀이 지났지만 수지에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떠나기 전 연락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말도 했고 말이다.
‘무슨 일이야 있겠어?’
사무실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커피한잔 하며 성기형과 김나연을 기다렸다.
반 정도 마실 때 쯤, 등장한 김나연이 인사를 건네 왔다.
“몸은 괜찮아?”
오늘도 굴욕 없는 아우라를 뽐내며 등장한 김나연.
나날이 빛이 나는 이상연과, 존재만으로 눈이 확 돌아가는 정수지와는 또 다른 매력.
그녀의 색은 여전히 노란색.
하지만 3단계까지는 도달한 모습이다.
확실한 관계발전을 알 수 있으니 대하기가 편하다.
“보시다시피~”
팔을 들어 한껏 부풀려 보인다.
“팔은 두껍네.”
“왜. 안겨보고 싶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깜짝 놀랐다.
이런 식의 농담은 건네 보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 넌 안아보고 싶니?”
별거 아닌 농담의 조합들이지만, 김나연의 입에서 나온 말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상당히 가까운 관계이긴 해도 그녀에겐 언제나 벽이 있었다.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
철옹성.
완벽한 철벽녀인 탓에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포스.
그런 그녀의 입에서 저런 말이 역으로 나올 줄이야.
확실히 내가 많이 편해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푸훗. 긴장한 거야? 귀엽긴~”
두 번째 듣는 귀엽다는 말.
처음에는 기분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애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긴장이라니? 모태솔로 한 번 안아주는 영광을 줄까 싶었지.”
이 말은 정도가 좀 쌨는지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너무 나갔나?
“호호호~ 모태솔로라니? 떨릴 정도로 안겨보고 싶은 남자가 없었을 뿐이거든?”
저런 식으로 과장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본다.
필시 당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긴 했는데, 떨릴 정도로 안겨보고 싶은 남자가 없었더니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나한테 안기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볼까?”
김나연은 허리에 손을 척 얹더니 오연하게 내려다본다.
“어디 한 번 해 보시던가. 아는 동생에게 안긴다고 떨리기나 하겠니?”
그녀의 도발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성큼하고 한 발 다가서자 그녀와의 거리가 바짝 좁혀졌다.
이제는 제법 키 차이가 나기에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 봐야했다.
쌍꺼풀이 거의 드러나지 않음에도 크고 긴 눈.
풍성한 속눈썹이 깜빡이는 눈을 따라 날개 짓을 한다.
김나연의 눈빛은 장난기가 진하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단숨에 그녀의 어깨위로 팔을 두르며 등에 양 손을 얹었다.
정말 안을 줄은 몰랐는지 움찔거리는 것이 팔을 통해 전해졌다.
김나연의 몸은, 둘러진 팔에 쏘옥 들어왔고 등에 얹은 손을 바짝 당기자 완전히 품으로 안겨졌다.
“너...? 흐읍!”
짧게 헛바람을 내뱉은 김나연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내 가슴에 묻힌 그녀의 얼굴.
그리고 그 보다 조금 밑에서 느껴지는 말랑하고 푹신한 감촉.
‘크다.’
수지보다는 작지만, 이상연보다는 확실히 크다.
이 전에 얼굴로 느낀 크기와 지금을 비교해 보니 확실히 E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로를 향해 농담을 던지던 둘의 입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다물어졌다.
두근 두근.
심장이 방망이질이라도 치는 것처럼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한다.
동시에 멈춰졌던 김나연의 숨소리가 색색 거리며 귓가를 두드렸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숨결이 가슴언저리를 달군다.
팔딱거리는 물고기처럼 뛰는 심장소리를 김나연이 들을까 싶어 긴장감이 밀려들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적막감.
귀밑까지 빨개진 김나연의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주름하나 없이 매끈하고 가는 목덜미 밑으로 쇄골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170이 넘는 키에 쇄골이 도드라질 정도로 늘씬한 몸.
이와는 정 반대로 E컵에 달하는 거유와 넓은 골반.
꿀걱.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행여 이 소리를 들었을까? 괜히 등허리가 축축해진다.
여자를 안아 본 것이 한두 번도 아니거늘 입 안이 바짝 마르고 몸이 뜨거워진다.
에어컨이 충분히 돌고 있음에도 스며나오는 땀이 곤욕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지금의 포지션을 절대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영원히 이렇게 굳어진다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 때 귓가를 울리는 소리가 멈췄던 시간의 흐름을 되돌린다.
벌컥.
“어어어어어?”
동시에 깜짝 놀란 김나연이 내 가슴을 거칠게 밀어내고는 후다닥 물러났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뻗어있는 팔조차 내리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는 이 순간을 방해한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경악한 표정으로 커다란 주먹으로 입을 막고 있는 성기형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곰탱이가!’
주춤. 주춤.
“두... 둘이... 왜 여기서... 뭐... 뭐야... 지금?”
말을 더듬거리며 주춤주춤 물러나는 성기형.
성기형을 향해 김나연이 바짝 달아오른 얼굴로 외친다.
“서... 성기씨. 오해에요!”
무엇이 오해라고? 저러니까 둘이 사귀는 것 같잖아?
잠깐 기분이 나빠졌다.
“어... 언제부터...”
끝까지 말을 흘린 성기형이 뒤돌아서며 문고리를 잡았다.
“성기씨! 오해라고! 나가기만 해? 가만히 안 둬!”
저렇게나 터프한 모습도 처음 본다.
오늘 정말 김나연의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본다.
그녀의 고함에 문고리를 잡아 돌리던 성기형의 손이 우뚝하고 멈춰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성기형이 뒷머리를 긁으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나연씨. 저는 모른 척 하겠습니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고! 오해라고! 당장 이리 와서 앉아!”
성기형이 씩씩거리는 그녀의 반응에 움찔하며 나를 향해 시선을 슬쩍 옮긴다.
으쓱.
내가 어깨를 으쓱이자 김나연이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강인한, 빨리 성기씨한테 제대로 설명해.”
“뭐를?”
나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발뺌을 했다.
“너, 진짜 그럴 거야? 빨리 설명해. 저 눈 봐. 오해하고 있잖아!”
남녀가 안은 게 뭐가 그리 큰일이라고 저러는지.
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어색한 동작으로 슬그머니 의자에 앉는 성기형을 바라본다.
“음... 형이 본 데로 우리 안고 있었어.”
힐끔.
김나연을 슬쩍 바라보자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초딩도 아니고. 쯧쯧쯧.
“누나는 그걸 들킨 게 부끄러운가봐.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게 무슨 잘못이라고.”
그 말에 입이 쩌억 벌어지는 성기형.
동시에 김나연의 고성이 귓가에 때려 박힌다.
“야!!! 강인한!”
나는 그녀의 경악에 찬 외침을 뒤로 하고 문을 박차고 냅다 줄행랑을 쳤다.
그 뒤로 악을 쓰며 따라오는 김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사무실 직원들의 호기심어린 눈길이 나와 김나연을 파고들었다.
나는 친절하게 직원들을 향해 외쳐준다.
“별 거 아니에요~ 사랑싸움이에요~ 사랑싸움!”
“가... 강인한!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오해들 하지 마세요! 야! 강인한 안 서!?”
“나 잘 선다고!”
“너 진짜 잡히면 죽어!”
나는 킥킥거리며 그녀를 피해 사무실 책상을 엄폐삼아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분위기를 타고 장난 같으면서도 장난이 아닌 고백을 날렸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으나, 묵은 체증이 한 번에 화악 하고 내려간 것 같다.
김나연의 색은 노란색 4단계.
품에 안겼던 것이 작용을 한 것인지, 나에 대한 호감이 거의 무르익었다.
‘아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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