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40화 (40/297)

〈 40화 〉 2. 사냥꾼.(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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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11)

고정욱이 자취를 감춘 지 십 수 년.

그런데도 굳이 그를 찾아보는 이는 없었다.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를 트러블메이커 취급을 했고, 가깝게 지낸 동료도 몇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고정욱이 은퇴를 하고 모든 연락을 끊었음에도, 굳이 그의 행적을 궁금해 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그는 점차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잊혀져갔다.

그런데 엊그제부터 심상찮은 놈들이 자신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작정하고 숨지는 않았다고 해도 충분히 은밀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경찰도 작정하고 찾지 않으면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생활을 유지했다.

사람 찾는 것에 익숙한 놈들이었다.

‘설마... 눈치 챈 건가?’

짐작 가는 곳은 한 곳.

놈들의 행색으로 보아 그 짐작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그가 거슬렸던 거겠지.

아니면 그가 생각하는 것이 맞았던가.

‘총 여덟.’

형사 시절에도 실력은 알아주던 그였다.

깡패 여덟 정도라면 몸을 피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이 전부 보통 인간이라는 전제하의 이야기다.

세상에는 인간이 아닌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눈에 뛰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에게는 철퇴가 내려졌다.

사냥꾼 웹 사이트에는 그런 것들의 수배가 뜨고, 고정욱처럼 놈들의 존재를 아는 사냥꾼들은 문제를 일으킨 것들을 사냥했다.

‘드러나지 않은 것들은 수배자체가 뜨지 않지.’

그 말 대로다.

버젓이 사회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면 수배가 뜨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배가 뜨지 않는 놈들을 처리한다고 제제를 당하는 것도 아니다.

놈들을 스스로 추적해 사냥해도 등급에 따라 금액을 지급해 준다.

그저 운영자의 판단에 그것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들만 공개적으로 수배할 뿐이었다.

지금도 대한민국에서만 하루 수백 명의 실종자가 발생하고 있다.

웹 사이트의 운영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정의의 사도가 아님에는 분명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저 현상유지.

그것들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뿐이다.

의도가 분명함에도 그는 사냥꾼 웹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의 정보와 물건 그리고 보상금은, 어찌 되었든 유용하니 말이다.

빠드득.

고정욱이 이를 악물었다.

그날의 일이 떠오르자 그의 눈은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사건 속에 숨어 있는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을 직접 겪고 나서야 알게 된 현실.

그는 인간이기에 무력했고,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면서 강했다.

끈질기게 사건들을 파헤치며 정체불명의 여인을 추적하던 중, 숨겨졌던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진실은 권력자의 음모론이나 진실은폐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괴물.

세상에는 인간이 아닌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제 그의 철천지원수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

고정욱은 은신처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무리들을 살폈다.

명령을 내리는 대머리 놈이 이리저리 손짓하자 집을 둘러싼다.

놈들이 인간이 아니라면 뛰어난 육체 능력으로 급습을 했을 터.

저 정도의 조심성이라면 그냥 깡패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잘못 집었던가?’

그가 주시하는 조직.

어쩌면 자신이 잘못 집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은밀하게 움직이는 놈들이기에 쉽게 그만둘 수는 없다.

확신이 설 때까지는 파고들어야 한다.

인천 해안파.

그가 주시하는 인물은 해안파의 보스 장보고다.

고정욱이 허리의 수납포켓에서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주사기 안에는 은은한 붉은색의 액체가 들어 있다.

퓨리다크니스.

사냥꾼 웹에서 구입할 수 있는 약물로 등급에 따라 효과와 지속시간이 다르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3등급의 퓨리다크니스.

이 약물을 주사하면 평범한 인간도 초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훈련받은 이가 주사하면 그 능력은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물론,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고 등급이 높을수록 그 부작용은 줄어든다.

쾅 쾅 쾅.

“계십니까?”

고정욱의 시선이 고정된 모니터에는 대문을 두드리는 대머리의 모습이 보였다.

나머지는 집을 둘러싸고 그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움직였다.

쾅 쾅 쾅.

“잠시 여쭈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안에 계십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내심 있게 대답을 기다리는 대머리.

이쯤 되니 저들의 의도가 조금은 궁금해졌다.

분위기를 보고 충분히 살폈으면 치고 들어와도 될 상황에 저 정도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진 것이다.

그는 언제든 주사기를 찌를 준비하고 입을 열었다.

“누구요?”

“혹시, 고정욱 형사님이십니까?”

그의 입에서 말라비틀어진 음성이 갈라져 나온다.

“그런 사람 살지 않습니다.”

그 말에도 대머리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고정욱 형사님. 형사님께 해를 끼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찾는 분이 계셔서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15년 전 00펜션 사건 기억하십니까?”

대머리의 말에 고정욱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당연히 그 사건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수많은 미제 사건 중 그가 유일하게 누군가를 추적하게 된 시발점이었으니 말이다.

그의 눈이 스산하게 변했다.

그리고 주사기를 조심스럽게 심장부위로 가져간다.

대머리의 말이 이어졌다.

“그때, 생존한 아드님이 고정욱 형사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합니다.”

이어지는 그 말에 심장으로 향하던 그의 손이 우뚝 하고 멈춰 섰다.

그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한 소년.

초등학교 4학년이나 5학년 쯤 이었던 것 같은데...

그 사건이후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저런 이들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고정욱은 머리를 휘휘 저었다.

“그런, 사람 살지 않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형사님. 그럼, 통화라도 부탁드립니다. 강인한씨의 연락처는 문 앞에 두고 가겠습니다.”

대머리가 연락처를 적고는 문 사이로 끼워 넣었다.

그러곤 정말로 가려는 것인지 몸을 돌려 걸어 나간다.

집을 둘러싸고 있던 일행들도 그를 따라 하나둘 움직였다.

고정욱은 그가 여기저기 숨겨 놓은 cctv에서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주사기를 포켓에 넣었다.

끼이익.

낡은 현관문을 열자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메모지.

대머리가 발로 한 번만 찼어도 쉽게 부서질 만큼 낡았다.

허리를 숙여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메모지에는 연락처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강인한...’

15년이 지났지만 그는 소년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어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사건이후로 그의 인생도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소년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 소년도 결국은 자신과 같은 피해자일 테니.

‘갑자기 무슨 일일까...’

혹시 그날의 일을 떠올린 것일까?

소년은 사건에 대한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다.

부분적 기억 상실.

잃었던 기억이 떠올랐다면 자신을 찾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지금 조사하는 것은 인천에게 세력이 가장 큰 조폭.

강인한이 보냈다는 이들도 그쪽의 인물들이 확실하다.

그 소년도 그놈을 의심해 조폭을 거느리게 된 것일까?

직접 대화해 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그 어렸던 소년이 복수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고정욱의 아들이 무사히 자랐다면 곧 스무 살이 되었을 거다.

그는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

오늘은 김나연과의 관계가 부쩍 급진전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그런 장난은 하지 말라며 타박을 받기는 했지만, 나는 그녀의 호감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에 불안한 마음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더 진해진 노란색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눈을 매섭게 흘기고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우물우물.

“니들 정말 뭐 있냐?”

체격 유지를 위해서인지 빵을 입에 욱여넣으며 말을 건네는 성기형.

“몰라~”

우물우물.

꿀꺽.

“너, 그래도 되는 거냐?”

“그만 좀 먹으면서 말해.”

그렇게 말해 놓고는 나도 빵을 가져가 입에 넣었다.

이 몸무게를 유지하려면 제법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다.

“그때 보니까... 상연씨랑 수지씨가 널 보는 눈이 심상치 않던데.”

“됐고~ 형 연애나 신경 쓰싶셔~”

“개 부러운 새끼. 너 그러다 좆 되 봐야 정신 차리지.”

그 말이 맞기는 한데 김나연을 포기 못하겠는데 어쩌라고.

성기형은 인상을 팍하고 쓰며 다시 빵을 입에 가져갔다.

부러움과 질투를 가득 담고 나를 흘겨본다.

불순한 눈빛이지만 그가 나에게 보내는 색은 주황색.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러던 중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진동을 울렸다.

‘모르는 번호? 고정욱형사일까?’

옥토퍼스에게서 고정욱에게 연락처를 건넨 것까지 들었다.

일단은 멀리 떨어져 잠복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경계가 심한지 얼굴도 못 봤다고 하니 직접 찾아갈까 하던 중이었다.

“여보세요. 강인한입니다.”

내 목소리를 들은 그는 몇 초간 말이 없었다.

잠시 무슨 생각이라도 한 것일까?

이윽고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영욱이네. 나를 만나고 싶다고 들었네.­

“네.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음...­

그는 또다시 수 초간 침묵했다.

멀뚱거리는 성기형의 눈빛에 간다는 손짓을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어버버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통화하는 것을 방해할 만큼 눈치 없는 인간은 아니다.

­그날의 기억... 돌아온 것인가...­

“네.”

­어디까지 알고 있나.­

“범인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 내가 그쪽으로 가지.­

이어서 만날 곳의 장소를 일러 주고 전화를 끊었다.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말.

하지만 그 말을 들고도 고정욱은 꽤 담담한 음성이었다.

그도 요괴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의 만남에 응했다는 것은, 아직 놈을 쫓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여자?

무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렇다면 왜 형사를 그만둔 거지?

어쩌면 그놈을 특정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만난다면 그 궁금증은 풀릴 것이다.

이르지만 약속 장소를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가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이 길게만 느껴질 것 같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괜한 갈증이 밀려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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