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2. 사냥꾼.(12)
* * *
2. 사냥꾼.(12)
2시간이나 걸으며 복잡한 머리를 달랜 강인한은, 번화가 외곽에 위치한 집근처 커피숍에 발을 디뎠다.
한두 달 전인가 새로 생긴 것으로 알고 있는 커피숍.
일부러 인적이 드물기에 선택한 곳이다.
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손님이 거의 없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지나가면서 눈으로는 몇 번 봤지만,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곳이다.
김나연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핸드드립을 전문으로 하는 곳.
기다리는 것이 귀찮아 찾아 마신적은 없지만, 여기는 핸드드립 커피만을 취급하고 있었다.
주문한 커피를 직접 내려주고 가져다주기까지 한다.
160이 조금 넘는 아담한 키에 동글동글한 인상.
작은 키에 비해 볼륨감이 느껴지는 강아지형 얼굴이었다.
다른 직원은 없고 혼자 근무하는 것으로 보아 직원이 아닌 주인인 모양이다.
그녀가 커피를 내려놓고는 빙긋이 웃었다.
새하얀 치아가 가지런하게 드러나는 미소.
매직아이를 발동하자 그녀의 색이 눈앞에 떠오른다.
아리보리에 가까운 옅은 노란색.
목, 가슴, 엉덩이, 음부중앙.
대체적인 성감대이고 그중 점멸하는 부위는 음부중앙이다.
섹스하며 실험해 본 결과, 보이는 곳이 영원하지는 않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감이 개발되기도 한다.
그날에 따라 약간씩 바뀌기도 한다는 것도 알게 된 사실.
아무리 이리저리 바뀌어도 내 눈을 피할 수는 없다.
“저희 커피숍은 처음이시죠?”
“네.”
“핸드드립은 즐기시는 편인가요?”
“거의 마셔보지 못했습니다. 하하...”
“어머... 그러시구나. 그럼, 먼저 커피향을 한 번 맡으시고, 한 모금 입에 담으셔서 천천히 혀 전체로 느껴보시겠어요?”
강인한은 그녀가 알려주는 데로 마셔봤다.
누군가가 이렇게 주문한다면 ‘그냥 마시면 되지 뭘 느껴?’ 라고 타박했을지도 모르지만, 사장으로 짐작되는 여성의 무기는 외모였다.
그는 미녀에게 누구보다 협조적인 사내다.
“으음... 잘은 모르겠는데... 커피가 신데요?”
항상 쓴 커피만을 마셨던 탓에 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지 않으시다면, 간단하게 커피에 대해 설명 드려도 될까요?”
강인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웃는 낯으로 말을 이어갔다.
“먼저 지금 드신 커피는 케냐에서 재배되는 원두이고요. 특징은 묵직한 바디감과 오묘한 과일 향, 가볍지 않은 신맛이 특징이에요. 설마, 상했다고 생각하신 것은 아니지요?”
그녀의 말에 강인한이 찔끔하며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흐흥~ 원래 처음에는 잘 모르는 게 맞아요. 커피도 알고 마시면 더욱 맛있게 마실 수 있어요.”
귀여운 강아지 같은 외모와 잘 어울리는 음성이다.
목소리만 듣자면 10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얼굴도 20대 초반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커피숍을 운영한다는 것은 집이 어느 정도 살거나, 보기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외각이라곤 하지만 서울은 서울이다.
“그렇군요... 하하하... 그냥 아메리카노만 마시다 보니까...”
“커피는 원두마다 맛과 향이 다르고, 로스팅에 따라 그 맛이 달라져요. 지금 마신 커피는 말씀드린 데로 케냐에서 재배된 케냐AA 원두를 사용했어요. 향이 강하고 산도가 높으며 중상의 단맛과 쓴맛을 내요. 그리고 꽤 높은 바디감을 낸답니다.”
사장의 말을 들으며 강인한이 커피를 한 번 더 마셔봤다.
호로록.
설명을 들으며 마시다 보니 그녀가 말 한 그대로의 맛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저 쓴맛에 마시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맛.
어쩌면 미녀사장과의 대화가 더욱 그 맛을 극대화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오~ 정말 그런 맛이 나요.”
“헤헤~ 제 설명이 마음에 들었나요?”
반달처럼 휘는 그녀의 눈을 보며 강인한이 엄치손가락을 처억 올려보였다.
“최고예요!”
“다른 커피들도 각각의 개성이 있으니까 기회가 된다면 한 번씩 맛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보이고 카운터로 향하는 사장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의 눈에 비치는 상당한 힙의 모습.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눈을 확 사로잡는 뒷모습이었다.
그렇게 커피를 음미하고 있을 즈음 입구의 레트로한 종이 기분 좋게 딸랑이며 한 사내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밝은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는 여사장의 음성이 들려오고.
들어온 사내가 여사장에게 고개를 살짝 까딱이며 카페내부를 두리번거렸다.
벙거지 모자 아래의 눈이 매섭게 주변을 살핀다.
며칠은 면도를 하지 않은 듯 듬성듬성 자란 수염.
매서운 눈빛과 각진 턱은 사내를 상당히 날카로워 보이게 만들었다.
그가 구석에 앉아 있는 강인한을 보고는 눈을 빛냈다.
뚜벅. 뚜벅.
호쾌한 발걸음으로 강인한에게 다가선 사내가 물었다.
“강인한군.”
강인한도 그를 보고는 일어나며 답했다.
“고정욱 형사님?”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인한이 앞의 자리를 권했다.
귀여운 강아지상 얼굴의 여사장이 쪼르르 달려오자 강인한이 고정욱을 바라본다.
“주문 먼저 하시죠.”
“같은 것으로 하지.”
강인한이 사장을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를 보고는 말을 걸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강인한은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했다.
그것은 고정욱도 마찬가지였는지 그저 강인한의 모습을 유심히 살필 뿐이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강인한이 먼저였다.
“모습이 상당히 변하신 것 같네요. 어렸을 적 기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에요.”
“그런가... 강인한군은... 잘... 자랐구만...”
고정욱은 강인한이 고아원에 맡겨진 것까지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겉으로 보기엔 구김살 없이 잘 지낸 것으로 보였다.
한순간에 부모를 잃고 친척에게도 외면당한 채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가 제대로 자라는 경우가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강인한이 막 입을 떼려던 중, 사장이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이에 잠시 말을 삼키고 그녀가 커피를 놓고 갈 때까지 기다렸다.
이번에는 고정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를 찾아온 자들은 누구인가. 혹시 그쪽 세계에 발을 들였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쩌다 보니 엮이게 되었는데... 지금은 저를 형님 대하듯 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숨을 크게 내쉬며 강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모든 것을 털어놓아야 그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강인한은 자기 능력과 정수지의 정체를 빼 놓고, 그간 겪었던 일들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야기했다.
어떤 이유로 구상두파와 엮이게 되었으며, 그 와중에 구상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것 정도로 이야기했다.
구상두의 부하들도 일부분을 목격하고는 강인한이 구상두를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자신을 따르게 되었다는 것까지 이야기했다.
숨긴 것이 있지만 이야기 자체는 사실을 바탕으로 했기에 거리낌은 없었다.
“구상두파라... 놈의 외형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군.”
구상두의 외형을 전해들은 고정욱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가 찾고 있던 정염귀가 아니었다.
고정욱이 찾는 놈은 네 번의 탈피를 마친 놈이다.
“이제는 형사님도 말씀을 해 주시지요.”
“이제는 형사가 아니니... 그냥 아저씨가 부르지.”
그렇게 고정욱은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촉을 건드리던 미제사건이나, 의구심이 드는 사건들.
마지막에는 강인한을 데려왔던 여인까지.
그 사건들의 뒤에는 모종의 음모가 숨겨져 있다 여겨 끈질기게 파헤쳤다.
그러던 와중 결국은 요괴가 사람을 헤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고, 정의감으로 나서기에는 그 끔찍한 장면에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목격하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움에 떨며 숨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휴가를 신청하고 집에 박혀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형사라는 사명감보다 그 존재로부터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비상식적인 존재가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
그놈은 이미 숨어서 지켜보던 고정욱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놈은 사냥을 하듯 고정욱의 두려움이 극에 달했을 때 모습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 끔찍한 요괴는 고정욱의 눈앞에서 아내를 강간하고 아들을 무참히 잡아먹었다.
가족의 위험은 극한의 공포에도 그가 발악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 발악은 한낮 지렁이의 꿈틀거림과 다를 바 없었다.
“아마... 그 여인이 아니었다면 나도 놈의 뱃속으로 소화가 되었겠지.”
강인한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노... 놈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그리고 이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강인한의 손은 눈에 뛸 정도로 격하게 흔들렸다.
“또... 똑같아요. 내가 본 그놈하고 똑같다고요!”
강인한의 격한 음성에 카운터에 있던 여사장마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에 더욱 날카롭게 변하는 고정욱의 눈매.
“그렇구만...”
눈빛과는 달리 고정욱의 음성은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잔뜩 갈라져 쉰 소리가 나는 음성.
“하... 하하하... 어떻게 그렇게 차분할 수 있습니까?”
이제 기억을 떠올린 강인한에 비해, 15년에 가까운 시간을 놈에 대한 복수심으로 견뎌 냈다.
오로지 그놈을 잡기 위해 사냥꾼이 되어 요괴들을 사냥하고 추적했다.
“내가 지금 차분한 것으로 보이나?”
그의 갈라진 목소리는 처음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은은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의 음성은 분노가 뒤섞여 있었지만 강인한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
“.......”
“.......”
“죄송합니다...”
“아니. 이해하고 있어. 나는 15년을 사냥꾼이 되어 놈을 추적하고 있네.”
그 말에 강인한의 눈이 번뜩였다.
“사냥꾼!”
“알고 있나.”
강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야 사냥꾼이 될 수 있습니까?”
그 물음에 고정욱은 침묵하며 고민했다.
강인한은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한 것도 아닐 것이고, 놈들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맨몸으로 불가능하다.
아들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그래도 그의 눈에는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다.
강인한을 끌어들이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의 신체조건은 지금까지 봐온 누구보다 뛰어나다.
훈련은 아니라도 꾸준히 운동을 해 왔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고정욱이 강인한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집념이 보인다.
잠시 생각을 마친 고정욱이 입을 열었다.
“우선 자리를 옮기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