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2. 사냥꾼.(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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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13)
헨드드립 전문점 마들렌을 나와 고정욱의 차에 탑승했다.
은색의 고대유물 수준의 낡은 겔로퍼.
강인한은 자신과 연배가 얼추 비슷할 이 유물이 과연 시동은 걸릴까 싶었지만, 그의 염려와는 달리 한 번에 시동이 걸렸다.
푸다다당.
방정맞은 소리와 함께 검은 배기가스를 크게 한 번 뿜어낸 덕에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린다.
그는 환경법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잠시 하며 고정욱에게 물었다.
“그 여자의 정체는 알아냈습니까?”
고정욱의 가족을 유린하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죽음의 손길을 내밀던 놈은, 돌연 창밖으로 몸을 날리며 달아났다.
놈이 빠져나가고 직후 등장한 여인.
고정욱은 그 여인이 강인한을 병원으로 데려다준 여인이라 직감했다.
하지만 여인은 그에게 별다른 말도 없이 놈을 따라 사라졌다.
“아니.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
“혹시,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하십니까?”
“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웠지...”
그는 마지막 단어가 오글거리는 듯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여인을 표현할 방법 중 그 말밖에는 마땅한 표현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자세히 표현하려면 더더욱 오글거리는 말을 뱉어야 했으니.
“설마... 그 기억이 전부이신가요?”
“백발이었다.”
그 말에 강인한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백발... 이라고요?”
“왜? 그때의 기억이 나나?”
순간 혼란을 느낀 강인한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품에 안고 병원에 데려간 여인의 머리색이 백발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 특징을 가진 여인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수지?’
정말 수지 일까?
백발이라는 것이 그렇게 흔한 모발은 아니다.
아니, 그 정도의 백발은 전 세계로 따져도 몇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희귀하다 생각되었다.
‘만약에 수지라면 왜 거기에 있었지? 설마, 수지가 그놈을 쫓던 것일까?’
만약에 그녀가 놈을 쫓던 것이라면?
강인한의 이야기를 듣고 모른 척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을 텐데...’
22세로 생활하고 있지만, 정수지의 실제 나이는 122세.
그 때도 정수지는 지금의 모습이었을 거다.
‘구미호가 수지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혹시...”
강인한이 무슨 말을 하다 머뭇거리자 고정욱이 물었다.
“왜 그러지?”
“아... 아닙니다. 생각을 떠올려보려는데 잘 떠오르지 않네요. 그런데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내가 쓰는 안 가 중 한 곳으로 가다네. 정말 사냥꾼이 되고 싶은 건가?”
고정욱의 물음에 강인한이 단호하게 답했다.
“네.”
“흠... 직장은...?”
“지금은 간간이 쇼핑몰 모델을 하고 있습니다.”
“사냥꾼은 제법 돈이 많이 들어.”
“그... 렇습니까?”
“내가 반대해도 어떻게든 하려고 하겠지?”
“네.”
“일단은 신체테스트를 한번 해 보자고. 그리고 결정을 하도록 해.”
이 후 둘은 대화 없이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강인한은 정수지에 대한 것으로.
고정욱은 과연 이 어린 청년을 끌어들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에 대해서.
***
30여분을 달려 도착한 것은 외곽마저 벗어난 폐건물 이였다.
예전에는 창고로 쓰였던 모양인데 건물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여기저기 갈라져 흉가를 떠올리게 했다.
고정욱이 창고의 철문으로 다가가 주먹만 한 자물통을 열쇠로 열었다.
미닫이 형태의 커다란 철문을 한쪽으로 밀어내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끼기기기긱.
“들어와.”
그를 따라 안으로 진입하자 수많은 운동기구들이 보였다.
창고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 강인한에게 재차 입을 연다.
“운동은 얼마나 했지?”
“네? 아... 예전에 격투기를 몇 년 배웠습니다. 홈트레이닝은 거의 매일 같이 하고 있고요.”
고개를 끄덕인 고정욱이 중앙의 매트위로 올라서며 말했다.
“스파링 한번 뛰어보지.”
고개를 끄덕인 강인한이 그를 따라 매트 위로 올라섰다.
가로세로 5미터 이상은 될 것 같은 매트는 생각만큼 푹신하지는 않았다.
고정욱이 위에 입고 있던 헐렁한 티셔츠를 벗었다.
40대 중반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몸.
그의 근육은 흉기처럼 쩍쩍 잘게 갈라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길게 자리한 흉터들이 빼곡했다.
강인한은 저도 모르게 감탄 성을 내뱉었다.
어떤 생활하면 저런 몸이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근육이 촘촘하다.
강인한도 고정욱을 따라 티셔츠를 벗었다.
고정욱 역시 드러나는 그의 몸에 나직이 감탄했지만 표현하지는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단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강인한을 향해 글러브를 던졌다.
이종격투기를 배울 당시 쓰던 것과 비슷한 글러브.
“신체는 뛰어나군. 그럼 시작해 보지. 먼저 덤벼봐.”
낮게 자세를 잡으며 양손을 들어 올리는 고정욱.
그를 보며 강인한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강인한의 신체 능력은 보통을 훨씬 뛰어넘는다.
‘괜찮을까?’
그의 생각이라도 읽었는지 고정욱의 갈라진 음성이 들려왔다.
“무슨 고민하지?”
그의 음성에 마음을 고쳐먹은 강인한.
그는 요괴를 사냥하는 사냥꾼이다.
최선을 다한다.
“생각보다 빠를 겁니다.”
처음으로 고정욱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애송이의도발이 꽤나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고정욱처럼 살짝 몸을 낮춘 강인한이 땅을 힘껏 박찼다.
팡.
휘이익.
공기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어느새 다가온 강인한의 모습.
고정욱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든다.
지척까지 숙이고 파고드는 그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고정욱이 고개를 힘껏 뒤로 젖히며 뻗어오는 주먹을 피해냈다.
동시에 반사적으로 무릎을 차올린다.
0.1초만 늦었어도 그대로 적중 당했을 거다.
그가 피해내며 강인한의 얼굴은 숙여진 상태로 비어 있는 상황.
강인한의 눈에 코앞까지 다가온 무릎이 확대되어 들어왔다.
그의 왼쪽 어깨가 꿈틀거렸다.
뻐엉.
왼손으로 몸을 비틀며 훅으로 고정욱의 옆 무릎을 가격했다.
그로 인해 몸이 흔들린 고정욱이 이를 악물었다.
그 상태로 옆 무릎을 쳐 낸 것도 놀라운데 그 충격이 상상을 초월했다.
헤비급.
아니 헤비급 프로 선수라도 이 정도 파워를 실을 수 있을까?
인간이 아니라면 가능할 수 있다.
고정욱은 버티기보단 밀리는 힘을 이용해 몸을 빙글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팔꿈치를 뾰족하게 세우고는 사선으로 찍어 내린다.
강인한은 몸을 옆으로 굽히며 훅을 날렸기에, 몸이 비틀리며 시선이 살짝 들려있었다.
살짝 들린 시선에 찍어 내려오는 팔꿈치가 보였다.
이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
목숨 건 실전을 겪어온 고정욱의 반사 신경은 놀라울 정도였다.
수십 명의 깡패들과도 뒹굴었던 강인한은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가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싸워왔다는 것을 여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강인한이 몸을 반 바퀴 돌리며 고정욱을 등졌다.
그러고는 그대로 뒤로 몸을 튕긴다.
“허업!”
등으로 고정욱을 밀어내고는 그대로 앞으로 굴러 재빨리 일어난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 고정욱도 재빨리 흐트러진 자세를 고정했다.
“대단하군.”
“아저씨야말로 대단하네요.”
정말로 잠깐의 공방이었지만 고정욱은 강인한의 실력을 파악했다.
고정욱이 자세를 풀며 턱을 매만진다.
처음 날아왔던 스트레이트가 살짝 스쳤는데 상당히 얼얼했다.
“그만하는 겁니까?”
“괴물 같군...”
그는 진정으로 강인한이 괴물 같다고 생각했다.
인간 같지 않은 스피드에 헤비급을 훨씬 웃도는 파워.
그리고 그가 체중으로 몸을 부딪쳐 올 때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100kg은 훨씬 웃도는 이와 충돌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죽이자 하면 죽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스파링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솔직히 이런 스파링으론 이길 수 없겠어.”
“그럼, 통과인가요?”
“내가 통과니 뭐니 할 자격은 없지.”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고 웬만하면 그가 스스로 포기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강인한의 신체 능력은 그가 생각했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의 지식을 공유해 준다면 빠른 시간 안에 자신보다 뛰어난 사냥꾼이 될 것이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철제의자를 세워 앉는 고정욱을 따라, 강인한도 플라스틱 편의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고정욱의 색깔은 노란색 2단계.
처음 만났을 때보다 한 단계 색이 진해졌다.
“그럼, 알려주세요. 사냥꾼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사냥꾼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사냥꾼의 추천을 받아 지점으로 가서 회원등록을 하는 것.
그 이외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가 무슨 일을 하던, 무슨 죄를 지었던.
그저 사냥꾼 웹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절차일 뿐이다.
웹을 사용하지 않을 거라면 굳이 사냥꾼등록을 할 필요도 없다.
사냥하는 것을 누군가가 제재하는 것은 아니기에.
다만, 사냥꾼 웹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무기나, 퓨리다크니스를 구하려면 등록을 하는 것이 좋을 뿐이다.
“확고한가?”
강인한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복수에 정수지만을 의지할 수 없는 일이다.
“네. 그리고 부탁이 있습니다.”
고정욱이 말해 보라는 듯 턱을 툭 하고 올렸다.
“훈련을 부탁드립니다.”
신체 능력은 확실히 고정욱을 웃돌고 있지만, 실전감각을 익히는 것은 경험자의 훈련을 따르는 것이 좋다.
“좋아. 돈은 좀 있나?”
강인한의 눈이 잘게 떨렸다.
설마, 돈을 요구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가 요구하는 것은 정당했다.
그의 시간과 그의 안 가를 이용하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훈련에 필요한 것도 구입해야 할 터다.
“어... 얼마나...?”
“필요할 때마다 청구하도록 하지.”
“네...”
‘다른 쇼핑몰도 들려 봐야 하나?’
“사냥꾼 등록은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 조금 더 두고 봤으면 좋겠군.”
아무래도 고정욱은 강인한이 발을 들이는 것이 끝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강인한도 그의 마음정도는 알 것 같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제는 정말로 세상의 숨겨진 이면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렇게 복수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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