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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45화 (45/297)

〈 45화 〉 2. 사냥꾼.(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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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16)

딸랑딸랑.

레트로 감성의 맑은 종소리가 울리며 마들렌의 문이 열렸다.

카페 마들렌의 여사장 이연지의 눈에 비치는 사내의 모습.

일주일에 한 번은 꼬박 찾아주는 고마운 단골이다.

순해 보이는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대충 보기에도 엄청나게 몸이 좋아 보이는 사내.

그녀가 아는 남자사람 중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본 이 일거다.

학창 시절부터 너무나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남자와는 거의 대화도 해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동성의 친구와 무난하게 관계를 유지한 것도 아니다.

그만큼 소심한 성격의 그녀.

성격과는 달리 출중한 외모 덕에 은근히 말을 걸어오는 남자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너무나 곤욕스러웠기에 자연적으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려고 했고, 펑퍼짐한 옷으로 몸을 가리려 했다.

그녀에게 남성의 관심은 그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천성적인 성격이 그러다 보니 조용하게 장사하기 위해 이런 외곽에 카페를 차렸다.

그녀가 제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아줌마들을 중심으로 장사하기 위해서.

물론, 자본금역시 무시할 수는 없었고.

거창하게 돈을 벌 목적보다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치이지 않는 선에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면 만족했다.

그런데... 장사가 안 돼도 너무 안 되었다.

오픈한지 네 달째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월세를 내기에도 버거울 정도다.

그나마 저번 달부터 단골이 조금 붙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안녕하세요.”

이연지가 인사하기 전 먼저 인사를 건에 오는 사내.

그날은 무슨 용기가 생겨서 적극적으로 말을 건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저 순해 보이는 푸근한 인상 때문이라 생각했다.

다소 평범해 보이는 외모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조금만 더 잘났으면 두려움에 뻣뻣해졌을 게 분명했다.

그것도 지금에 와서는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지만.

“아! 네! 안녕하세요. 오... 오늘은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먼저 인사할 타이밍을 놓치면서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기계적으로 하는 인사는 알바를 하며 익숙해졌지만, 올 때마다 저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눈웃음을 치면 참으로 곤란했다.

“하하하, 다른 생각했어요? 말까지 더듬고 그러세요?”

“네... 네? 그런 건 아니고...”

“와~ 어떻게 이미지가 이렇게 바뀌는 거예요? 처음 왔을 때랑은 완전히 다른 거 아시죠?”

“그게... 죄송합니다.”

“네? 그게 뭐가 죄송해요. 오늘은 새로운 것으로 마셔볼게요. 추천해주실 거 있어요?”

하지만 이런 당혹스러움은 언제나 그랬듯 오래가지 않는다.

사내의 말은 언제가 그녀가 가장 자신 있는 관심사로 이어진다.

커피.

커피에 대한 주제가 나오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반짝이는 이연지.

“아! 그럼 오늘은 이 원두로 마셔 보시는 건 어떠세요? 산미가 있는 커피를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그건 뭔가요?”

“에티오피아의 예가체프에서 생산되는 원두예요.”

사내 강인한의 눈이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마들렌의 커피는 충분히 맛있다.

하지만 강인한의 더욱 큰 관심사는 여사장이었다.

처음 방문 이후로 그녀는 쉽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커피.

커피 이야기를 꺼낼 때야 비로소 제대로 된 대화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더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 보니 원치 않게 커피에 대해 웬만한 이들보다 많이 알게 되었다.

“사장님이 추천해주면 당연히 맛있겠네요. 그럼, 일단 커피부터 주문하고 테이블에 가 있을게요. 와서 설명해 주실 거죠?”

이연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의 본 판을 제대로 본 강인한에게는 그 모습이 꽤 귀엽게 보였지만, 다른 이가 본다면 그저 얼빵하게 볼 수도 있는 표정이다.

“그...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빙긋 웃고 테이블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평범한 외모지만 볼수록 매력 있는 훈남이다.

더군다나 쩍 벌어진 어깨는 정말로 듬직해 보였다.

저 태평양 같은 어깨에 기대면 어떤 기분일까?

어깨에 비해 잘록해 역삼각형을 이루게 하는 허리를 지나 두툼한 엉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과하지 않을 정도로 볼록 튀어나온 엉덩이는 섹시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아이돌과는 다른 남자의 냄새가 물씬 느껴졌다.

저 엉덩이를 만지면 어떤 느낌일까?

찌릿.

순간 아랫배가 찌릿해졌다.

가랑이 사이가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화들짝 놀란다.

‘무슨 생각을!’

단골손님을 두고 불순한 생각한 것에 홀로 수치심을 느끼며 머리를 흔들었다.

이연지는 지금의 생각을 한시라도 빨리 잊기 위해 부산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그런 여사장을 슬쩍 바라보던 강인한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저 안경을 벗기고 머리를 걷어내면 어떤 모습인지 알기에 보일 수 있는 미소였다.

어울리지 않는 펑퍼짐한 옷가지 안에는 육감적인 육체가 숨어 있다.

노란색 4단계.

거의 무르익은 색.

그녀를 정복할 수 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숨겨진 원석.

오늘은 작정하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평소에는 앞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다 커피를 들고 왔지만, 오늘은 일부러 테이블로 그녀를 불러들였다.

커피를 내리며 집중하는 표정이 정말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품에 꼭 안아주고 싶은 강아지 같다.

잠시 정수지가 생각났지만, 재빨리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강인한에게 각인된 정수지의 기억은 너무나 강렬하다.

한시라도 빨리 잊는 것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리라.

‘칫! 나쁜 년!’

커피를 내린 여사장이 테이블로 다가와 내려놓는다.

강인한은 커피를 들어 코로 향을 들이키고는 감탄 성을 내뱉었다.

“와~ 사장님이 알려 주신 이 방법은 최고인 것 같아요. 이 커피 향은 질리지 않는 것 같네요. 뭐 하세요? 앉으세요.”

“아... 앉아요?”

“설명해 주셔야죠.”

“그... 그렇죠?”

“어서 알려 주세요~”

“이 원두는 에티오피아 남부 시다모 현안의 예가체프 지역 고지대에서 재배하는 커피예요. 에티오피아 커피 중 가장 세련된 커피라 평가되는데, 향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역시나 커피 이야기가 나오자 조잘조잘 잘도 말하는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녀의 말대로 그 향은 정말이지 황홀할 정도.

여사장에게서는 언제나 은은한 커피향이 날 것만 같다.

그곳도 커피향이 나려나?

“어쩐지... 정말 좋은 향이에요. 맛도 당연히 일품이고요. 아차! 그런데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고 있네요?”

“이름이요?”

“네. 그래도 한 달은 본 것 같은데, 이름 정도는 알아도 좋지 않을까요? 전 강인한 이라고 합니다.”

“가... 강인한.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의 강인한 어깨는 정말이지 이름과 찰떡궁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은요?”

“저... 저요? 전... 이연지입니다...”

“갑자기 왜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커피이야기할 때는 그렇게 열정적이시더니.”

“제가... 좀 그렇죠?”

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실례가 안 된다면 나이는요? 저는 27살입니다.”

“저... 저는 스물... 넷...”

“이야~ 전 처음에 봤을 때, 막 대학 들어간 알바생인 줄 알았어요.”

그 말에 이연지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두근두근.

이연지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대화에서 곤욕스러워 두근거리던 것과는 다른 울림.

그녀는 지금의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설렘.

이것은 설렘이다.

맞은편 강인한의 말 한마디가 너무나도 달콤하다.

그의 눈빛, 그의 얼굴, 저 붉은 입술에서 나오는 말 전부가 말이다.

그것이 어떤 말이라 해도.

이연지가 말주변이 끊어져 머뭇거릴 때면 적절한 말로 어색함을 지우는 센스까지.

그녀의 눈에 단추 두 개가 풀린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새하얀 셔츠 안쪽은 근육으로 다져졌을 가슴이 언뜻언뜻 비친다.

저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손을 가져간다면 어떤 느낌일까?

화끈.

그런 생각을 하자 또다시 아래쪽이 찌릿해진다.

축축한 느낌이 전해지며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중심부에서 흐르는 액체가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다.

아무리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스물넷의 성인이 아무것도 모를 수는 없다.

샤워를 하다 우연찮게 알게 된 자위.

그 아찔한 느낌에 이에 대해 찾아보고 알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한 번씩 샤워할 때마다 스스로 성기를 애무하고는 했다.

“집은 이 근처인가요?”

강인한의 물음에 또다시 화들짝 놀라며 대답한다.

“네?”

자꾸만 놀라는 본인 스스로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강인한이 자신을 얼마나 바보처럼 볼까 걱정스럽다.

“저는 이 동네 사는데.”

“아... 저도 이 동네 살아요. 15분 정도 거리...”

“와~ 가깝네요. 우리 말 놓을까요? 제가 나이가 더 많으니 편하게 오빠라고 부르셔도 되는데.”

“오... 오빠요?”

이연지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안... 되겠죠?”

눈을 떨어트리며 축 늘어지는 강인한의 모습에 심장이 철렁했다.

그 안쓰러운 모습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염려스러웠다.

“그럴게요! 오... 오빠!”

화아악.

얼굴이 뜨겁데 달아오른다.

고작 오빠라는 소리가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정말요? 하하하~ 그럼 저도 말 놔도 될까요?”

“네! 그... 그럼요!”

축 하고 쳐졌던 강인한의 얼굴이 밝아지자 절로 안도감이 들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보자 심장어리가 간질간질해진다.

“그래. 연지야. 편하게 부를게, 고마워.”

다정하게 불러 주는 이름.

쿵쾅. 쿵쾅.

이름 불러 주는 것이 뭐라고 또다시 음란한 부위에서 엑체가 흘러나온다.

젖꼭지까지 발딱 섰는지 압박한 브라가 아니었다면 흉한 꼴을 보였을 거다.

이 사실을 강인한이 안다면 얼마나 변태 같다고 생각할까?

실제로 이연지 자신도 변태 같은 반응에 수치심 들고 있었다.

“연지 처음 봤을 때 스타일 정말 괜찮았는데.”

“처... 처음이요?”

“응. 렌즈 끼고 살짝 달라붙는 청바지에 흰 티 넣어 입었을 때. 아~ 머리카락도 깔끔하게 묶었었지?”

이연지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장사가 너무 안 되어서 작정하고 스타일을 바꾸어 봤던 날이다.

물론, 하루 만에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강인한의 한 마디에 또다시 그렇게 입는다면 괜히 더 어색할 것 같다.

“일하는 사람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데. 연지도 마들렌이 활성화 되어야 좋을 거 아냐.”

강인한은 마치 그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듯, 말을 덧붙여 준다.

“그... 그런가요?”

“그럼~ 당연하지. 내일부터는 한 번 바꾸어봐. 연지가 빛나니까 가게도 빛나던데?”

어쩌면 오글거리는 말일수도 있지만, 이연지의 귀에는 너무나도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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