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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46화 (46/297)

〈 46화 〉 2. 사냥꾼.(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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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17)

축 처진 모습으로 집으로 향하는 딸의 모습.

벌써 한 달이나 잡아 놓았기에 슬슬 명분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나가기를 원한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보내주어야 할 터다.

사실, 걱정과는 달리 일주일이 지났을 즈음해서 상태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것 정도는 확신했다.

“그런데... 정염귀는 도대체 왜 찾아다니는 걸까?”

정수지가 찾고 있던 정염귀.

네 번의 탈피, 아니 다섯 번의 탈피를 마친 정염귀는 극도로 위험하다.

정염귀가 다섯 번의 탈피를 하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필요한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정수지가 찾는 놈은 잘도 그만큼이나 해내었다.

옛 자료에조차 제대로 명시되어 있지 않은 정염귀의 왕.

정염귀가 여섯 번의 탈피를 마친다면 세상의 위기가 도래할 정도로 위험하다.

균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저 욕망을 채우려는 화신이다.

처음 놈을 발견했을 당시 네 번의 탈피를 마치고 다섯 번의 탈피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얼마나 교활한지 그때 잡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 이었다.

아직 잡지 못한 지금 전설에서나 존재하는 정염귀의 왕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마마라도 쉽지 않은 일이 될 수 있었다.

10년이 훌쩍 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놈.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정수지가 그놈을 찾는 것부터 해서, 딸을 홀린 사내놈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부모의 마음이다.

일단, 정염귀를 당장에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외출을 해야겠어.”

***

마마에게 강인한을 찾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딸의 순결을 가져간 그 냄새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일주일이면 그 냄새의 흔적은 없어지지만, 마마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 흔적을 따라 찾아 낸 원룸건물.

인간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돈은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한다.

하지만 아직 어린 20대답게 사회적 지위는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마마에게 그런 돈쯤은 상관없지만, 스스로 해내지 못 하는 사내만큼 보 잘 것 없는 것도 없다.

이른 아침임에도 상당히 부지런한 듯 일찍부터 모습을 드러낸 사내.

이렇게 일찍부터 움직이는 것을 보면 부지런 한 것은 분명하다.

마마는 조금은 호기심이 동해 강인한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커다란 키와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몸.

한눈에 보기에도 꾸준히 단련을 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마의 눈이 청년의 얼굴까지 이르러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악할 만한 수준.

사내의 완벽한 몸 따위는 우습게 보일 정도로 잘난 얼굴이다.

나이를 잊을 만큼 오래 살아 온 마마조차도 놀랄 정도의 미남.

“역시, 우리 아가가 아무에게나 몸을 허락할 리 없지.”

마마는 딸 정수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그녀조차 한순간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의 외모였으니, 그 여린 딸이 어찌 견딜 수 있었겠는가.

사내의 외모는 그 자체로 피할 수 없는 색공이었고, 웬만한 여인들은 저 사내의 외모에 헤어날 수 없으리라.

스스로 옷을 풀어 헤치고 달려드는 여인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마마의 고운 미간이 내 천자를 그린다.

저런 천상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니 주변에 따르는 여인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너무나 평범한 외모의 강인한이 그녀의 마음을 안다면 기가 찰 노릇이지만.

마마와 정수지의 보는 눈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마마는 스마트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벨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아 굵은 저음의 사내가 전화를 받았다.

­예. 대모! 전화를 다 주시고 영광입니다.­

“사람 한 명 조사해 주세요.”

강인한의 조사를 맡긴 마마는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

그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한적한 곳에 자리한 낡은 건물에서 온종일 훈련을 한다.

그리고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사냥꾼으로 짐작되는 한 인물.

마마는 스마트폰으로 전송된 강인한의 자료와 사냥꾼에 대해 살피고 있었다.

두 장 분량의 너무나도 짧은 보고서.

두 사람의 일생이 이 짧은 보고서에 들어 있었다.

자료를 읽어 내려가는 마마의 눈이 다소 놀람으로 물든다.

세상에 존재하는 우연.

모든 우연들이 얽히고 얽혀 필연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강인한과 고정욱.

그리고 딸 정수지와 자신에 이르기까지.

마마는 기억 속에서 정염귀를 쫓던 중 구해내었던 잘생긴 소년이 떠올랐다.

그녀가 구한 이가 한둘이겠느냐 만은, 소년의 외모가 너무나 잘났기에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랬던 소년이 저렇게나 늠름하고 잘생긴 청년으로 변모했다.

뿐 만 아니라, 그 일로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던 형사 한 명이 사냥꾼이 되었다.

사냥꾼 또한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그녀를 찾아다니다 놈에게 아내와 아들을 잃고 울부짖던 모습이 떠올랐다.

“참으로... 오묘하구나...”

그녀가 구한 소년은 청년이 되어 그녀의 딸과 만나고 있었다.

가족을 잃었던 형사는 사냥꾼이 되었다.

그리고 소년과 형사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의기투합했다.

어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하늘이 정해 놓은 필연이라는 말인가?

강인한을 며칠 살펴본 바,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복수를 다짐하고 있었다.

이를 알고, 딸아이가 그 정염귀의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을 찾아 온 것이다.

그녀조차 쉽지 않은 상대.

아니, 어쩌면 더욱 위험한 존재가 되어 있을 놈.

그놈과 엮인다면 저들은 물론이고 딸도 위험하게 된다.

“후우... 어렵구나.”

어떻게 해야 할지 실로 난감하기 그지없다.

***

훈련을 마친 강인한이 길을 나섰다.

며칠이나 뒤를 따르는 이가 있었지만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정수지의 마마라는 것을 알았다면 기겁했을 터이지만, 이를 알 수 없는 강인한은 카페 마들렌에서 이연지를 작업하는 중이다.

며칠 동안 오로지 훈련을 반복하는 그를 보고, 이제는 돌아가려던 마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커피를 내려놓은 카페의 여주인이 강인한의 맞은편에 앉아 얼굴을 붉히는 것.

여자와 얽히는 일이 없었기에 안심하고 있던 차에, 꼬리를 치는 여성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 여성을 보며 살인미소로 답하는 강인한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저런.”

일부일처제보다 일부다처제의 세상을 훨씬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딸은 인간이 되기 위해 수행을 하는 중이다.

행여 질투라도 일으켜 다른 짓을 하게 된다면 어떤 상황으로 치달을지 알 수가 없었다.

최소 딸이 수행을 끝낸 후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에게는 평생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이겠지만.

뭐가 그리 좋은지 1시간이 넘도록 웃고 떠드는 두 사람.

마마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아름다운 딸을 만나면서 저런 여인과 헤벌쭉 하고 있을 수 있는지 말이다.

여사장이 빼어나긴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딸만큼은 아니다.

***

말을 할 때마다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기는 하지만 1시간이 넘게 이루어진 대화는 제법 분위기를 매끄럽게 만들었다.

‘귀엽다.’

이연지는 보면 볼수록 정말 귀여운 것 같았다.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숨겨진 원석.

“그래도 그 나이에 이 정도 카페를 낼 정도면 대단하다.”

“아... 아니에요. 다 빛이에요. 그래서 사실, 요즘 고민이 많았어요.”

“대출 때문에?”

외곽이라곤 하지만 서울인데다 인테리어도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정도라면 한두 푼으로 될 일은 아니다.

꼼지락. 꼼지락.

여전히 말을 할 때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그녀.

“대출은 아니고... 아빠 아는 삼촌이 도와주셔서...”

“아빠 친구? 좋은 분이네.”

“네... 저한테 잘해 주세요... 그러데 오... 오빠는 일 재미있어요?”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지 이연지가 말을 돌렸다.

“쇼핑몰 모델?”

“네...”

“재미는 모르겠고... 음... 대부분 아는 형 쇼핑몰 일해서 편하게 일해. 전에는 이곳저곳 많이 일했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한 군데서만 하고 있어.”

“아... 그... 그 일 하면... 예쁜 여자들 많겠다...”

“생각보다 손 댄 사람들이 많아.”

이해를 잘 못 하는 이연지를 위해 강인한이 손바닥으로 얼굴로 가져가 흔들어 보였다.

“아...”

딸랑. 딸랑.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아? 손님 왔다. 오... 오빠. 그럼 전 주문받으러...”

카운터에서 메뉴판을 보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치고 상당히 큰 키에 모델처럼 늘씬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뒷모습만 보더라도 절로 얼굴이 궁금해진다.

“그래. 그럼 우리 연...”

황급히 이연지의 연락처를 받으려던 강인한은 괜히 등골이 싸한 느낌에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엉거주춤 서 있는 이연지.

“아니, 다음에 또 커피 마시러 올게. 일 봐.”

“네... 네...”

그녀도 무언가를 기대했던 듯 아쉬운 표정으로 주문을 받으러 갔다.

강인한은 카운터로 향하는 이연지를 잠시 보고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괜히 싸하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연지와 친분을 충분히 쌓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신상에 이로울 거라는 강렬한 촉이 온다.

덕분에 뒷모습이 끝내주는 여자 손님에 대한 생각도 잊었다.

평소라면 남자의 본능으로 어떻게든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싶었겠지만.

“오늘 무리했나?”

카페 마들렌이야 당장에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몸을 일으켜 이연지에게 손을 흔드는 강인한.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보던 마마는 강인한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얼마 후,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마마가 탁자에 커피를 내려놓는 이연지에게 슬쩍 물었다.

“조금 전에 나간 분, 잘 아는 분인가요?”

마마의 물음에 이연지가 당황했다.

“네...네? 왜... 왜요?”

연예인처럼 엄청나게 아름다운 여성.

연예인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눈앞의 여성처럼 아름다운 사람도 처음 봤다.

아니, 실제로 연예인을 봐도 이 여성처럼 아름다울까?

그런 그녀가 방금 나간 강인한에 대해 물어보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후훗. 별 건 아니랍니다. 그냥 낯이 익어서 물어봤어요.”

“아... 그냥... 이 동네 살고 계시는 손님이신데...”

“아~ 그냥 손님인가요?”

“네? 네...”

“감사합니다. 커피는 잘 마실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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