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2. 사냥꾼.(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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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22)
수지를 보듬고 또 보듬었다.
그녀와 몸을 섞는 것은 밤새도록 하고 싶었으나 본능에만 충실한 짐승은 아니다 보니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서방님이 너무 그리웠지만 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답니다.”
어깨까지 이불을 덮고 내 품에 안겨 있는 수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부드럽고 말랑한 살결에 아랫도리가 계속해서 껄떡 인다.
하지만 난 짐승이 아니기에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주며 진지하게 들었다.
“난, 수지가 연락도 없어서 까였다고 생각했다니까?”
“저... 절대로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서방님을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고양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수지가 놀란 얼굴로 올려다보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이제 알아. 수지가 얼마나 날 좋아하는지.”
나는 수지의 몸을 내 품에 꼭 안았다.
그녀의 숨결이, 그녀의 체향이 코 속 가득 스며든다.
너무도 달콤하면서도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향기다.
“읍! 수... 숨 막혀요. 서방님...”
“어쩜, 이렇게 예쁘고 귀여울까?”
“네... 네?”
쪼옥.
수지의 이마에 키스하자 금방 달아오르는 얼굴.
나는 여자를 그렇게 믿는 편이 아니다.
몇 번, 안 좋은 일을 당하다 보니 여혐 비슷한 것도 생겼더랬다.
하지만 수지는 그 누구와도 달랐다.
실제 나이가 122세임에도 너무나 순수했다.
일단은 세상에 스스로 나온 것이 10여 년밖에 되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수지의 처음은 내가 가져갔고, 수지는 나 이외에 관계를 할 수조차 없다.
그랬다가는 요기의 폭주가 아니라 폭발을 일으킬 거다.
그것도 그렇지만, 지금 내 능력으로 관계하면 누구라도 놓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이것들을 제하더라도 그녀가 나에게 보내는 신뢰의 눈빛은 누구라도 믿을 수밖에 없을 거다.
아니, 어쩌면 정말로 내가 홀리기라도 한 것이거나.
어찌 되었든 수지가 돌아왔으니 이제는 절대로 그녀를 놓치지 않을 거다.
“앞으론 절대로 사라지지마.”
“저는 절대로 서방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서방님도 절대로 절 떠나지 마세요.”
수지에게서 보이는 너무나도 선명한 분홍색.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미 눈동자는 은은한 붉은 기가 감도는 검은색으로 바뀌었고, 꼬리도 사라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체모의 색은 여전히 흰색이었다.
지금의 모습이 원래 수지의 모습이다.
평소에는 술법으로 살짝 존재감을 감추었다.
그때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예뻤는데, 지금은 그런 말자체도 실례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술법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도 요기를 사용하는 것.
큰 힘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좋을 턱이 없다.
요기를 크게 사용할 때는 구미호의 모습으로 바뀌는데, 내가 보기에는 거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이는 수지의 경우가 특이한 것이었고, 진짜 구미호는 늑대와 여우의 중간 모습이라고 한다.
“수지는 왜 인간이 되려고 했어?”
“네?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마마가 그렇게 했으니 저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고... 또... 음... ”
“내가 수지를 도우면 확실하게 사람이 될 수 있는 거지?”
“네! 서방님하고 그... 그 걸 하면...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부끄러운 듯 그녀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다행이다. 내가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그런데 사람이 되면 평범한 사람이 되는 거야? 마마를 보니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뭐랄까...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사실, 잠깐 이었지만 보통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풍기는 기운이 장난 아니었거든.”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마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럼, 수지는 마마의 피를 물려받았으니 사람이 되어도 평범하지는 않겠다.”
“아마도...”
확실한 것은 없지만, 내 생각이 맞을 것이다.
수지를 낳고도 그때부터 전혀 모습이 변하지 않은 마마.
인간이 되기 위한 수행을 하여 인간이 되었음에도 인간과는 다른 무언가가 된 듯하다.
그러기에 수지도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초월적인 존재.
인간은 기껏해야 100세 언저리를 살며 늙어간다.
하지만 수지의 수명은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다.
당장 마마만 해도 최소 천 년 이상은 살아왔을 테니 말이다.
나는 점점 늙어갈 것이고 수지는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겠지.
내가 생명이 다해 죽었을 때도 그녀는 똑같은 모습으로 계속해서 살아갈 거다.
이런 생각을 하자니 괜히 심장이 뛰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뱉어 어떻게든 확신이라는 감정을 부여잡고 싶지만, 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기에 애써 꾹 눌러 삼켰다.
내 표정이 심각해 보였는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수지.
쪽.
나는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웃어 보였다.
‘그래, 지금 행복을 즐기자.’
화악.
바로바로 반응이 나타나서 더욱 귀여운 것 같다.
나는 붉어져 달아오른 그녀의 볼을 손으로 살살 어루만진다.
모찌처럼 너무나 부드럽고 탄력이 넘친다.
나중의 일은 나중이고, 지금은 그녀와 함께 있는 것에 만족하자.
그런데 이상하게 뭔가를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끄응...”
“서방님, 왜 그러시나요?”
“아무것도 아냐. 그냥 뭔가 잊은 게 있는 것 같은데, 잘 생각이 안 나네. 수지는 배 안 고파?”
“벼... 별로...”
그 말이 신호가 되었을까.
수지의 배에서 꼬로록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악?”
당황한 수지가 안절부절못하며 얼굴을 이불 안으로 감춘다.
“뭐야? 음식은 그저 맛을 즐기기 위한 거라며?”
수지가 이야기해 준 거다.
음식은 최소한만 섭취해도 상관이 없고, 배고픔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전에 대게를 입으로 쓸어 담을 때를 보면 딱히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이불로 얼굴을 감춘 수지는 대답도 없이 끙끙거리는 소리만 냈다.
“음... 배고프지는 않나보네? 그럼 나는 대게나 시켜 먹어야겠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수지를 바라봤다.
그 말에 동요했는지 이불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소, 중, 대 중에... 혼자 먹으니까 소자를 시키면 되겠네.”
바들바들.
이불이 급격히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니면 대짜? 수지야 맛이라도 볼래?”
그 물음에 머리끝까지 덮고 있던 이불이 슬며시 내려왔다.
벌겋게 변한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인지 눈만 내어 놓는다.
끄덕끄덕.
“푸훗. 이리 와.”
내가 양팔을 벌리며 부르자 이불을 두른 상태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수지.
나는 그녀에게 팔을 뻗어 확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수지를 안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였다.
“꺄악!”
“에구~ 귀여워.”
“서... 서방니임... 힝~”
“난 잘 먹는 여자가 그렇게 좋더라?”
“저... 정말입니까?”
“응.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여자가 얼마나 예뻐 보이는지 몰라.”
수지의 눈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번뜩인다.
“저는 정말 잘 먹습니다!”
***
은은한 갈색 빛 머리칼을 단아하게 당고머리로 묶은 여인.
얼굴을 전부 드러내는 탓에 그 외모에 따라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스타일.
얼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머리 스타일이다.
당고머리를 한 이상연은 확실히 누구보다 잘 어울렸다.
날이 갈수록 꽃봉오리가 피듯 화사하게 피는 그녀의 외모는 누가 봐도 아름다웠다.
탄력 있는 피부와 농염한 몸매는 같은 여자라도 한 번쯤은 뒤돌아볼 정도다.
원래는 웨이브 진 긴 머리스타일을 좋아했던 그녀는 강인한이 당고머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지금의 머리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다.
“뭐야, 갑자기 전화 끊고는 연락도 없고...”
축축하게 젖었던 팬티는 말라버린 지 오래.
잔뜩 달아올랐던 흥분도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지금 강인한의 상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었고, 세상에 감추어졌던 비밀도 공유했다.
이상연은 자신과 강인한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럼에도 서운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러던 둘 사이에 정수지라는 미녀가 끼게 되었다.
지금까지 어디 가서 꿀려본 적이 없던 이상연.
강인한을 만나면서 한층 더 아름다워졌다.
그런데도 정수지를 보는 순간 아찔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나락을 느꼈지만,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더군다나 자신과 강인한의 목숨까지 구했다는 것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녀와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도 없었다.
강인한이 자신을 버릴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어찌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너무 불편하고 불안했지만, 순수한 정수지의 성격에 점점 마음을 열게 되었다.
이미 결혼한 번 했던 그녀가 강인한을 독차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한 남자를 공유하는 것을 인정하고 비워냈는데, 돌연 정수지가 사라졌다.
그렇게나 강인한에게 목을 매더니 한순간에 돌아설 줄은 몰랐다.
매몰찬 정수지의 행동에 서운하면서도, 한 편으론 안도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인한이 힘들어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든 보듬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여자의 촉이 강하게 발동하고 있었다.
그가 훈련하면서 거의 시간을 내지 못했지만, 종종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오늘도 그가 원하는 라이브를 보여주다 보면, 흥분해서 달려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연락도 받지 않고 연락이 오지도 않고 있다.
당연히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오늘 그녀의 촉은 말하고 있다.
정수지.
아마도 그녀와 연락이 되었거나, 찾아왔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자신과 영상통화 중 이었으니 찾아왔다는 것이 맞겠지.
“휴우... 아직도 마음을 비우지 못했네.”
어차피 인정했던 거 생각을 조금 비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시간이 좀 지났으니 즐길 만큼 즐겼겠지? 약간의 심통은 봐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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