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2. 사냥꾼.(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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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23)
자꾸 뭔가를 잊은 것 같은 찝찝함이 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복수를 위한 한 달의 훈련은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복수하고 싶은 초조함과, 수지를 향한 그리움에 정신적으로도 꽤 힘들었던 상태였다.
그 후에 찾아온 행복이란 감정이기에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
알몸으로 등장했기에 내 옷을 줬는데, 그 모습마저 아찔할 정도로 예쁘다.
체구의 차이가 있다 보니 아이가 어른 옷을 입은 모양새다.
내가 너무 시선을 집중하고 있어서인가?
입안에 게살을 가득 넣고 정신없이 먹던 수지의 얼굴이 은근히 붉어진다.
먹는 걸 타박하는 게 아닌데... 부디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저 빵빵해진 볼은 정말 귀엽다.
한 얼굴에 너무도 많은 예쁨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던 중 잊고 있던 찝찝함의 정체가 번뜩 하고 생각이 났다.
“아! 상연이랑 통화하고 있었는데.”
그제야,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을 상연누나가 생각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웃긴 상황이다.
자위를 하라고 시켜 놓고는 그대로 방치해 버리다니.
바지의 주머니에 고이 잠들어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했다.
부재중 3통.
메시지 2개.
“언니?”
“응. 어머니랑 수지가 오기 전에 통화하고 있었거든. 너무 정신없어서 잊고 있었어.”
“아...”
표정을 보니 상연누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기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한 달 만에 보는지라 괜한 불안감이 들어 눈치를 보게 된다.
“서방님. 괜찮아요. 언니랑 잘 지내보기로 했는데, 그렇게 눈치 안 보셔도 됩니다.”
질투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부분에서는 꽤 쿨한 모습이 있다.
“고마워.”
고맙다는 말에 그녀는 씨익 웃으며 다시금 발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대게가 눈앞에 있기에 더욱 너그러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30만원어치를 거의 독식하고 계시다.
나는 재빨리 상연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벨이 울리고.
응. 자기야. 좋은 시간 보내고 있지?
전화를 받자마자 뭔가 알고 있다는 듯 이야기하는 그녀.
“어...?”
수지랑 있는 거 아냐?
“그걸... 어떻게?”
여자의 촉을 우습게보면 안 되지. 그나저나 혼자 달아오르게 만들고 방치해 버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하... 하하하... 미안.”
지금, 올라가니까 문 열어놔.
“어? 여기 왔어?”
둘 다 회포는 잘 푼 거 아냐? 아니면 시간이 더 필요해? 하긴, 우리자기 정력이 평범하지는 않지.
“그... 그건 아니고. 배고파서 대게 시켜 먹고 있었어.”
앞이야. 문 열어.
“어어... 바로 나갈게.”
전화를 끊고 현관으로 향하자 수지가 멀뚱멀뚱 바라본다.
“누나가 왔다네?”
“정말요?”
“응. 불편한 건 아니지?”
“우리 많이 친해졌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현관의 문을 열자 화사하게 웃으며 검은 봉투를 흔드는 상연누나가 보였다.
“짠~ 이거 필요하지 않아?”
“술 사 온 거야?”
“응. 가출한 수지가 돌아왔는데 한 잔 해야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수지가 벌떡 일어나 쪼로로 달려왔다.
“언니! 안녕하세요!”
“어머~ 수지야. 어떻게 된 거야. 우리 자기를 얼마나 애태우려고 그랬어?”
상연누나의 말에 수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그게...”
“푸훗. 농담이야~ 자 들어가자 앞에서 이러지 말고.”
상연누나의 등장으로 셋이서는 처음 하는 술자리가 벌어졌다.
그러고 보니 훈련하면서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시원한 맥주를 집어 들자 절로 침이 넘어간다.
“수지 예뻐진 것 봐. 어쩜 볼 때마다 예뻐지니?”
실제로는 수지의 나이가 몇 배는 많지만 그 것까지는 모른다.
반응하는 수지를 봐도 그 나이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누가 봐도 언니와 동생 같은 느낌이다.
“어... 언니도 예뻐지셨습니다.”
“정말? 어디가? 어디가 예뻐졌어?”
“으... 음? 저... 전부다...”
“다행이네~ 나이 먹어서 자기한테 버려질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한데~”
나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버럭 했다.
“누나!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농담이라는 것은 알지만, 어쩐지 완전히 없는 말도 아닌 느낌이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 불안감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농담이야~ 그런데 자기는 이럴 때만 누나더라?”
“뭐래. 자주 하거든? 아무튼, 그런 말은 농담이라도 하지 마.”
“오구~ 우쭈쭈~ 그래~”
그녀가 내 엉덩이를 팡팡하고 쳤다.
그 모습에 수지의 얼굴이 또 한 번 달아오른다.
“이러니까 애 취급당하는 것 같네?”
“그럼, 아주 커다란 애지. 수지야, 들어 볼래? 아마 더 늦었으면 인한이 우는 것도 볼 뻔했다?”
“저... 정말 입니까? 흐윽... 서방님...”
“그건, 아니거든?”
“맞는데? 열흘쯤 되었을 때인가? 훈련하고 만신창이가 되서는 잠들어서 훌쩍거리면서 잠꼬대한 거 모르지? 호호호~ 그거 동영상 찍어 놨는데, 수지야 여기 봐봐, 보여줄게.”
“아씨! 그만해. 정말 왜 그래?”
“왜 그러냐고? 한껏 달아오르게 하고 혼자 재미 본 죄야.”
“윽... 그건... 진짜 미안.”
나는 재빨리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 눈치를 줬다.
수지는 나와 상연누나가 어떤 걸 즐기는지 모른다.
아마 안다면 기겁을 할지도 모른다.
“서방님이 달아오르게 하고 혼자 재미를 봤어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수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등으로 차가운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말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별거 아냐. 자자~ 우리 이렇게 셋이 마시는 것도 처음인데 한 잔 말아보겠습니다!”
나는 킥킥거리는 상연누나에게 눈치를 주며 열심히 소맥을 말고 또 말았다.
덕분에 몇 번이나 나가서 술을 사다 날라야했고.
새벽까지 마신 셋은 좁은 침대에서 누워 함께 잠을 자게 되었다.
상연누나는 완전히 취해 버렸고, 수지는 요기의 폭주를 겪었기에 깊게 잠이 들어 버렸다.
양옆으로 미녀를 끼고 자게 된 나는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향긋한 여체의 향을 느끼며 밤새도록 애국가를 불러야했다.
한 여자는 잔뜩 부푼 성기를 쥐고 잠이 들었고, 한 여자는 젖꼭지를 잡고 꼼지락거리며 잠이 든 탓이다.
양팔을 두 여인의 머리에 헌납한 채, 내 눈도 울고 분신도 울고 참으로 힘겨운 밤이었다.
***
아침이 올 때쯤 잠이 들어 완전히 뻗어 버렸다.
얼마나 깊게 잠이 들었는지 코 속으로 된장찌개 냄새가 풍길 때까지도 세상모르고 잠들었다.
눈을 뜨고 일어나려는데 왼 팔에 안겨 꼼지락거리는 수지의 모습이 보인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에 반짝이는 새하얀 피부.
그렇게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음에도 번들거림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 떨기 꽃처럼 촉촉한 얼굴과 립스틱을 바른 듯 붉은 입술.
새하얀 머리칼과 그린 듯 반듯한 새하얀 눈썹.
그 밑으로 기다란 속눈썹이 약간의 움직임에도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 같다.
가슴은 얼마나 큰지 웅크리고 있음에도 내 옆구리에 닿을 정도다.
그 말랑한 촉감을 느끼며 절로 나오는 미소를 만끽한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가져가 볼을 살며시 눌렀다.
통통한 볼이 쑤욱 들어갔다가 손을 떼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재빨리 원상 복귀를 한다.
“으으응...”
살짝 찌푸려지는 미간.
“일어났어? 뭐야? 그 꿀물 뚝뚝 떨어지는 눈은?”
“어? 아... 아... 하하하... 뭐 해? 밥하는 거야? 재료도 없을 텐데.”
“훈련하면 잘 먹어야 한다고 했지? 그렇게 못 오게 하더니 이게 뭐니? 휴... 진짜... 아침에 나가서 장 봤어.”
“진짜, 그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그랬어. 성할 날이 없었으니까.”
“어서 와서 아침 먹어. 다 됐어.”
“응.”
수지를 깨우려 고개를 돌리자 큰 눈을 껌뻑이고 있는 그녀.
“일어났어?”
끄덕. 끄덕.
이 전에 그녀의 오피스텔에서 함께 밤을 새웠지만, 익숙하지 않은 듯 잔뜩 붉어진 얼굴이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입술을 가져가는데 상연누나의 음성이 들렸다.
“그만들 하고 빨리 와서 밥 먹어.”
화들짝 놀란 나와 수지.
내가 킥킥 거리며 웃자, 그녀도 따라 큭큭 거리며 웃는다.
나는 재빨리 입술에 키스를 쪽 해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흥. 조금 질투 날라고 해?”
상연누나가 토라진 듯 눈을 흘기기에 그녀의 뒤로 돌아가 감싸 안았다.
그러자 고개를 돌리며 올려다보는 상연누나.
나는 입술을 내밀고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춘다.
쪽.
그녀도 조금은 당황한 듯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돌아왔다.
“바... 밥 먹으라고.”
“흐흐흐~ 좋아?”
“뭐가 좋아! 양치부터 하고 와.”
“네네~ 알겠습니다.”
찰싹.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찰기게 쳐 주고는 달아나듯 화장실로 들어갔다.
“야... 야!”
이런 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하는 걸까?
사실, 나에게 행복한 기억이라곤 많지 않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여의고 친척들의 외면을 받고, 보육원에 들어갔다.
약육강식.
보육원은 말글대로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그렇지 않은 곳도 있겠지만, 내가 있던 곳은 분명했다.
너무도 배가고파 몰래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흠씬 두드려 맞기도 했다.
그때의 기억이 나자, 불쾌한 기분이 들어 머리를 휘휘 저었다.
지금은 이 행복을 만끽하기도 벅찬데 그런 더러운 기억을 끄집어 낼 필요는 없다.
“서방님? 저도... 양치하고 싶습니다...”
살짝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수지의 모습에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날려 버린다.
“내가 먼저 쓰고 이거 쓸래?”
“헙!”
농담으로 한 말에 진심으로 놀라는 수지.
하나하나가 나에겐 즐거움이다.
“큭큭큭~ 농담이야~”
나는 욕실 장을 뒤져 쟁여놓았던 칫솔 중 제일 비싸 보이는 것으로 건넸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나가려는 수지를 붙잡았다.
“양치 안 해?”
별것도 아닌 것에 얼굴을 슬쩍 붉히는 그녀.
“서방님... 끝나면...”
“같이 하면 되지?”
“아직은... 부끄럽습니다...”
그러더니 후다닥 나간다.
중요한 곳까지 아주 아주 자세하게 봤는데 겨우 양치하는 게 뭐가 부끄럽다는 건지 모르겠다.
한 번씩 보면 여자들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건 남자들이 영원히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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