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53화 (53/297)

〈 53화 〉 2. 사냥꾼.(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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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24)

상연누나가 차려 준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성기형 쪽 촬영을 하는 날이다.

사실, 스카이클럽에서 나오는 돈만도 월급쟁이는 꿈도 못 꿀 정도로 많다.

이렇게 된 김에 쇼핑몰 모델일이야 그만두어도 상관없지만, 그동안 형이 해 준 것을 생각하면 무작정 그만두기도 그렇다.

일단은 오늘이라도 가서 언질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뚜벅이 생활이 그렇게 불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조만간 차 한 대 정도는 뽑아야겠다는 생각하며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스마트폰을 한 번 바꾸면서 연락처 세탁을 했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 올 사람은 별로 없다.

지긋지긋하게 따라 다니는 스팸전화를 제외하고 말이다.

“여보세요.”

보통은 휴대폰 번호로 오는 경우가 드물기에 의심 없이 전화를 받는다.

물론, 요즘은 휴대폰 번호로 발신을 거는 스팸전화도 늘기는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강인한씨 전화 맞나요?­

옥구슬이 굴러가듯 부드러운 여성의 음성.

그 안에 가시가 있다는 기분은 내 착각일까?

조금은 낯이 익은 목소리 같기도 하다.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시대에 개인정보유출쯤이야 일상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맞습니다. 어디신가요?”

­수지 엄마입니다.­

그 말에 길을 걷던 발걸음이 자동으로 멈춰졌다.

괜히 등가죽이 축축해지고 바짝 긴장이 된다.

수지를 두고 간 바로 이튿날 왜 전화했을까?

하루 만에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네네! 어머니! 무슨 일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군요.­

감히 수지의 마마에게 거절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조용한 곳이 좋겠군요.­

***

카페 마들렌.

마마가 이 카페를 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강인한을 지켜보며 한 번 들렸던 적이 있었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그녀도 제법 마음에 드는 카페다.

밤새 잠 못 이루고 근처에서 배회하던 그녀는 강인한보다 먼저 도착했다.

카페를 들어서자 얼굴을 기억한 것인지 여사장이 어색한 미소로 반겨 준다.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를 주문해 마시며 복잡한 심경을 달랬다.

강인한을 본다는 생각에 이상하게도 죄지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심장이 뛰고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 같다.

마마가 구미호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살아온 세월도 2000년이 넘는다.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사내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해 보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딸의 애인으로 인해서라니...

마마는 지금의 기분을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마는 딸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애써 자위한다.

아무리 심정이 들쑥날쑥 제멋대로 일지라도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딸 정수지였다.

애초에 딸이 강인한과 성관계를 맺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저질러버린 후에야 이미 돌이킬 수는 없는 법이다.

어제 딸과 강인한의 성교를 지켜보며 살펴본 바, 꾸준히 강인한의 도움이 있다면 딸의 요기를 정기로 바꾸는 것이 배 이상은 빨라질 것이다.

인간의 짧은 생이 마감되기 전 딸은 인간이 될 수 있겠지.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강인한이 딸의 곁을 떠나게 된다면 또다시 위험에 놓이게 될 거다.

문제는 딸의 요기를 완벽하게 잠재울 때까지 강인한이 별 탈 없이, 그리고 끝까지 딸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그녀가 기거하는 월성촌으로 끌고 가 강제로 붙잡아 놓고 싶지만, 근 한 달이나 딸을 지켜본 결과, 콩깍지가 씌여도 단단히 씌였기에 당장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하필 뇌전의 기운을 가진 사내가 그렇게나 잘생겼을 줄이야.

일단은 경고라도 단단히 해 놓아야 할 것 같다.

***

이연지는 카페를 들어서는 여성을 향해 최대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것이 비록 어색한 미소일지라도 말이다.

마들렌의 커피를 잊지 않고 찾아준 것만도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다시 봐도 여성의 외모는 정말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깨끗한 피부와 단아하고 청순한 외모는 여자라면 절로 질투가 날 정도다.

자신과는 달리 늘씬하게 뻗은 몸매, 그런데도 적당한 볼륨감이 엿보였다.

개인마다 견해는 다르겠지만, 어떤 사내라도 저 여성을 본다면 마다하지 못할 거라고 장담했다.

물론 자신의 장담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만은, 그만큼 보기 드문 외모임에는 분명하다.

어찌 되었든 반가운 것은 당연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가져다주자 천천히 음미하며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가?

하지만 그 모습조차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있는데 카페의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건네려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연지의 눈에 들어온 강인한의 모습.

그 모습을 보자 저 여성이 강인한에 대해 물어봤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서... 설마... 아닐 거야.’

그날의 기억으로 보아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둘이 나타난 것이 우연일까?

콩. 콩. 콩.

이연지의 심장이 콩딱콩딱 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내가 무슨 생각을... 둘이 만나기로 했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라고...’

다소 평범해 보이는 강인하의 얼굴.

그런데도 자꾸 시선이가는 강아지 같은 얼굴은 순박하게 보인다.

순박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짐승 같은 체형은 남성의 냄새를 진하게 풍겼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저 둘이 만나기 위해 온 것이 아니길 빌고 있었다.

강인한이 짧게 미소를 지어 보이곤 손을 들어 보인다.

이번에도 인사하는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이연지가 늦게나마 부끄러운 음성을 내뱉으려는 찰나.

바람과는 달리 거침없이 여성이 앉아 있는 자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길 바랐지만, 어쩌면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여성이 시킨 두 잔 의 커피 중 한 잔은 강인한의 것이라는 것을.

‘내 주제에...’

시무룩해졌던 이연지는 또다시 들려오는 방울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서 오세요!”

***

손님이 제법 늘기는 했지만 아직은 한적한 카페의 모습이다.

여전한 모습으로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이연지의 모습이 보였다.

나야 이렇게 조용하니 아지트처럼 좋기는 하지만 이연지의 처지에서는 난감한 상황일 거다.

몇 번 지적했지만 스타일을 제대로 바꾸지 못하고 있다.

주인이 예쁘다고 소문나면 손님들도 꽤 늘 텐데 말이다.

어머니가 있는 관계로 친분을 보이는 것은 괜히 눈치가 보여서 슬쩍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얼빵한 이연지의 표정이 귀엽긴 했지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때, 카페의 카운터 뒤쪽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갸웃.

‘누구지? 동생인가?’

나는 별생각 없이 몸을 돌려 마마에게로 걸어갔다.

이미 내가 온 것을 알고 있는지 태연하게 시선을 보내는 눈빛.

마마를 마주하니 어제의 일이 떠올라 버렸다.

‘미... 미친... 아무리 그래도 수지의 엄마 앞에서 섹스해 버리다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현기증이 날 것 같다.

반면 마마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아무래도 구미호였다가 인간이 되어서일까?

“앉으세요.”

차분한 그녀의 음성에 쭈뼛거리며 맞은편에 앉았다.

“네넵!”

후다닥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마른침만 꼴깍 삼키고 있는데 그녀의 음성이 재차 들려온다.

“수지는 뭐하고 있나요?”

“아침밥 먹고, 지금은 쇼핑하러 갔을 겁니다!”

슬쩍 눈을 올려 바라보자 조금은 놀란 표정의 마마가 보인다.

어제는 경황이 없었지만, 다시 본 마마는 정말이지 대단한 미인이었다.

구미호는 다 이렇게 예쁜 걸까?

아니면 마마랑 수지가 특별히 더 예쁜 건가?

수지를 낳은 엄마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누가 보더라도 한두 살 더 많은 언니정도로 볼 것임이 분명하다.

“수지가... 쇼핑을 나갔다고요? 음... 잘 적응하고 있나 보군요. 혼자 갔나요?”

“네? 아... 아니, 아는 언니랑...”

나도 모르게 아는 언니라는 말이 튀어나와 말끝을 흘렸다.

상연누나가 내 여자이긴 하지만 수지도 알고 있으니 아는 언니가 맞는 거겠지.

내 여자와 갔다고 하면 무슨 반응일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어찌 되었든 거짓말은 아니지 않은가.

“언니요?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다니 나쁘진 않군요.”

나는 더 캐묻기 전에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보자고 하신 이유가...”

“수지를 어느 정도까지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당연히, 제가 책임질 여자입니다.”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단아하고 청순한 이미지인데 미소만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어 버린다.

뭔가 상당히 요염하면서도 울렁거리게 만드는...

‘미친... 무슨 생각하는 거야?’

마마나 수지나 남자를 홀리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구미호가 괜히 구미호는 아니다.

물론, 마마는 인간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인간은 아니고.

“대답은 마음에 드는군요. 이미 수지가 어떤 상태인지는 아는 것 같고. 행여, 수지가 마음을 다치기라도 해서 엉뚱한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렇게 되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거예요.”

내가 ‘엉뚱한 짓’ 이라는 뜻을 이해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자, 친절하게도 마마다 뒤에 덧붙여 준다.

“인한군이 얼굴 값 하다가 수지가 홧김에 사고라도 치면 안 된다는 말이에요.”

마마의 말에는 진득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내 얼굴이 얼굴값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하나는 알 것 같다.

수지가 다른 남자와 섹스라도 하면 큰일 난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모전여전이라고 두 모녀의 눈에는 내 얼굴이 최애 얼굴인가보다.

외모로 이렇게나 황송한 대접을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짧은 회귀를 하며 피부가 눈에 뛰게 좋아진 것의 효과일까?

그러고 보니 나연누나와도 상당한 발전이 있기는 했지.

음... 어쩌면 내가 정말 잘생겼는데, 나만 모르고 있던 것일 수도.

그동안 나 자신이 너무 겸손했는지도 모르겠다.

“저는 사내들의 소유욕을 잘 알아요. 하지만 그로 인해 딸이 잘못된다면 참을 수 없을 거라는 것은 알았으면 좋겠군요.”

결국은 괜히 딴 여자한테 직접거리다 걸리면 뒤진다는 말 같다.

수지가 그것으로 질투해서 홧김에 다른 남자랑 관계라도 하면 날 죽인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이미 수지 이외에 상연누나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나연누나도 놓치고 싶지 않고... 이연지도 귀여운데...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여자에 대한 욕심이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 모르겠다.

꿀꺽.

나는 목이 바짝 타는 것을 느끼면 식어 버린 커피를 들이켰다.

마들렌의 커피는 식었음에도 그 맛과 향이 살아 있다.

“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 월성촌에 가둬두고 싶지만, 일단은 지켜보도록 하죠.”

월성촌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잡혀가면 죽을 때까지 못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네...”

아무리 놀랄 정도의 미녀라고는 하지만 수지의 어머니인데다가 보통 사람이 아니다 보니 긴장감이 배가 된다.

한시라도 이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제 이야기는 끝났을까 싶을 무렵, 마마가 또다시 입을 연다.

“인한군은 사냥꾼이 되려는 건가요?”

그 물음에 내 몸은 긴장으로 바짝 굳어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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