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2. 사냥꾼.(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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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25)
정수지가 정염귀에 대해 물어보러 갔었기에 짐작했을 거로 생각했다.
“네...”
마마는 딸아이를 떠나서 정말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에 대해 별다른 감흥은 없지만, 그녀가 구했던 아이가 사냥꾼이 되려는 것에 마음이 쓰인 것이다.
“그쪽과 너무 엮이는 것은 좋지 않아요.”
강인한도 세상의 이면과 마주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쯤은 안다.
“알고 있습니다.”
마마의 걱정스러운 음성에서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긴 머리칼을 쓸어 올리자 진한 커피 향 사이로 달콤한 향기가 섞여 들어온다.
꿈틀.
강인한의 눈썹이 휘어졌다.
마마의 음성과 풍겨 오는 달콤한 향기가 낯설지 않다고 느껴졌다.
“평범하게 우리 수지와 지낼 생각은 없는 건가요?”
그가 위험해진다면 정수지 또한 곤란한 상황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강인한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의 눈앞에서 딸을 잃게 된다면 자신 또한 그 일을 잊을 수 없을 터이니.
강인한은 마마의 눈빛에서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음을 느꼈다.
“수지에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꼭 잡아야 할 놈이 있습니다.”
“알아요. 인한군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하지만 그 정염귀는 인한군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위험합니다.”
일순 강인한의 눈이 번뜩였다.
“알고 계시는군요?”
“알고 있어요. 저조차도 몇 번이나 놓쳤던 정염귀입니다.”
“몇 번이나...?”
그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
고정욱이 묘사했던 여인의 이미지가 마마와 겹쳐졌다.
수지 또한 체모가 흰색이었기에 혹시 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지금 마마의 머리칼은 검은색이지만, 이 또한 수지처럼 색을 바꾸었을 뿐이다.
매직아이를 발동하면 마마가 눈치 채지는 않을까 싶어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사용해야 할 것 같았다.
매직아이를 발동하자 그녀에 대한 색이 전해진다.
노란색 3단계.
그리고 보기 민망한 것도 눈에 들어올까 싶었는데...?
마마에게선 성감대가 보이지 않았다.
‘뭐지?’
마지막으로 마마의 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행스럽게도 매직아이가 발동한 것은 모르는 모양이다.
‘아...’
역시나 그녀의 머리칼은 흰색이었다.
역시 어제 봤던 모습이 본 모습이 확실하다.
“혹시... 15년 전... 아이를 구한 적이 있습니까?”
강인한의 물음에 우아하게 커피를 들어 입술로 가져가는 마마.
한 모금 마시고는 천천히 잔을 내려놓는다.
그 잠시간의 침묵에 강인한의 손에 땀이 흥건해진다.
“네. 그랬어요. 그 소년이 인한군 맞습니다.”
강인한은 덤덤하게 말하는 마마의 대답에 잠시 넋을 놓아버렸다.
그날의 포근했던 품과 달콤한 향기.
자신에게 말을 건네던 온화한 음성.
그때부터 이어진 운명의 끈이 결국은 이렇게 재회를 만들어냈다.
“가... 감사합니다. 그때... 구해주셔서...”
“마침 그곳에 인한군이 있었을 뿐이에요.”
“그렇다 해도 구해주신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마마의 양쪽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처음 대면했을 때와는 확연하게 따뜻한 온도가 느껴진다.
“그럼, 우리 수지에게 더 잘해주세요. 수지는 대부분을 월성촌에서 보냈기에 세상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것을 인한군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네요. 기왕이면 여러 가지 일도 해 보고 자연스럽게 많은 경험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네... 당연히 제가 돕겠습니다.”
“복수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굴어 일상을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대신, 저도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 볼 테니까요.”
마마는 놈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녀의 손에서도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는 놈이, 그렇게 쉽게 강인한에게 발각될 리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세월이 지난 지금.
얼마나 강해졌을지는 마마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저도...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정수지는 웬만해선 사람들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 않는다.
남들의 시선에 잠시나마 우쭐해졌던 때도 있었지만, 귀찮은 일이 발생하는 것을 깨닫고는 되도록 일 외에는 외출을 삼가는 편 이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집에만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 아니었기에 다소 답답함을 느끼던 차였다.
그런 와중에 이상연의 제안은 너무나 반가운 것이었다.
“인한이 일하러 갔으니까 우리는 이제 쇼핑하러 갈까?”
쇼핑이라면 대부분 인터넷을 이용했다.
그나마 최근에 강인한을 만나기 위해 나가서 옷을 산 것이 쇼핑의 마지막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재정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
머뭇거리는 정수지를 보며 눈치 빠른 이상연은 그 이유를 짐작했다.
“오늘은 수지가 돌아온 기념으로 언니가 쏜다!”
이상연의 그 말에 초롱초롱해졌던 정수지의 눈망울은 금세 풀이 죽어 버렸다.
아무리 빈곤하더라도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왜? 부담돼서 그래?”
“네...”
“부담 갖지 않아도 돼. 언니 돈 많아. 그리고 인한이 덕에 걱정 없이 잘 벌고 있으니 더욱 부담가질 필요 없어. 서방님 돈 좀 쓴다고 생각하면 되지? 안 그래? 그것도 못 해주면 서방 자격 없는 거야.”
“저... 정말 그래도 될까요?”
“어머~ 얘! 어차피 우리 한 남자를 공유하는 특별한 사이 아니야? 그런데 그렇게 니꺼내꺼 정하다가 나중에는 우리자기도 반으로 자를 거야?”
“그... 그건 안 됩니다!”
“그렇지? 그럼 어서 나가자~ 오늘 제대로 쏠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설득하는 이상연.
그 논리에 정수지는 홀딱 넘어가 버렸다.
“네! 언니!”
그렇게 외출을 한 두 여인.
두 여인이 도착한 곳은 강남구의 SH백화점이었다.
백화점의 주차장에 이상연의 벤스가 주차를 했고 두 여인은 사이좋게 백화점을 활보했다.
두 미녀의 등장에 백화점 내부 남자들의 시선이 쏠린다.
옆에 애인과 함께 온 남자들도 넋을 놓고 바라보는 상황.
“와... 누구지? 연예인인가?”
저도 모르게 감탄하는 남친의 옆구리를 꼬집는 여성.
“아얏!”
“흥! 그렇게 마음에 들면 가서 말이라도 걸어보지?”
“어? 아... 아냐! 그냥, 연예인인가 싶어서 잠깐 본 거야.”
“됐거든?”
토라진 듯 몸을 휙 하고 돌리며 걸어가는 여친을 남성이 다급하게 뒤따랐다.
“자기야! 정말 아니라고!”
그렇게 남성들의 감탄과 여성들의 질투어린 시선을 받으며 두 여인은 속옷 매장에 멈춰 섰다.
속옷을 보는 이상연과 정수지는 눈을 반짝이며 매장을 들러본다.
“와... 이 거 어때?”
“그... 그건... 너무 야한 것 같습니다.”
이상연이 가리킨 망사 속옷을 보며 정수지가 얼굴을 붉혔다.
망사 속옷은 망측스러울 만큼 안이 훤하게 보인 탓이다.
“이 정도가 뭐가 야해? 그럼 이건?”
정수지는 기겁하며 눈을 돌려 버렸다.
이번에 가리킨 속옷은 앞을 최소한으로 가린 채 뒤는 끈으로 되어 있었다.
안 입은 것보다 오히려 더욱 망측해 보인다.
피트니스센터에 나갈 때 T펜티를 입기는 하지만 저 정도로 앞부분이 협소하지는 않다.
“그...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이런 디자인이 좋지 않을까요?”
정수지가 든 속옷은 너무나도 평범한 디자인.
“수지야.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니까? 아마 눈이 뒤집어져서 달려들걸?”
“서... 설마요.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에휴... 인한이가 막 잘생긴 건 아니지만, 강아지 같이 순진하게 생겨서 은근히 여자들이 들러붙거든? 한눈팔지 못하게 하려면 한 번씩 어필을 해 줘야 해.”
“네? 서방님이 잘생긴 건 아니라고요? 언니... 눈이 조금 이상하신 것 같습니다! 서방님처럼 완전 잘생긴 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얼굴까지 붉어져서 열변을 토해내기에 이상연은 한순간 당황했다.
당연히 그녀에게 최고의 남자지만, 객관적으로 따져서 완전 잘생긴 것까지는 아니다.
“어? 그... 그래 미안. 완전 잘 생겼지... 호호호. 그냥 해 본 말이야. 아무튼! 섹시어필이 중요하다는 말이야.”
그 말에 마음이 풀린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정수지.
“정말 그럴까요?”
“언니를 믿어. 못 믿겠으면 저기 언니한테 물어봐.”
이상연이 매장 직원을 가리키자 정수지의 얼굴이 잔뜩 붉어진다.
그런 걸 묻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웠던 탓이다.
이상연이 가리키자 자신을 부른다고 생각했는지 직원이 다가왔다.
“어머~ 고객님. 요즘은 그런 디자인이 잘나가는데, 잘 고르셨네요. 대부분 한 번 사셨던 분들은 몇 번이나 구입해 가시는데.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직원은 이상연과 정수지의 몸을 힐끗힐끗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외모도 물론이거니와 몸매는 얼마나 잘 관리하는지 절로 부러움이 드러난다.
“둘 중에 어떤 걸로 할래? 수지가 이걸로 할래?”
이상연이 망사 팬티를 들어 보이며 묻는다.
정수지의 눈이 망사 팬티로 갔다가 T팬티로 향했다.
꼭 골라야 한다면 T팬티보다는 망사 팬티가 그나마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
눈앞의 T펜티는 면적이 작아도 너무 작은 탓이다.
고민하던 정수지는 결국 망사 팬티를 가리켰다.
섹시어필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 탓에 입어보기로 마음을 정한 것이다.
참고로 정수지는 스포츠언더웨어를 즐겨 입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상연이 직원에게 말했다.
“저는 이 디자인으로 주세요.”
“브라는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75D예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직원이 브라를 가져와 건넸다.
그러면서 정수지를 한 번 힐끗 쳐다본다.
한국여성 평균 사이즈가 75A인 것을 감안 한다면 이상연도 거유라 볼 수 있는 크기다.
그런데 가까이 와서 본 정수지의 가슴은 정말이지 대단해 보였다.
하물며 잘록한 허리와 엉덩이볼륨 또한 질투가 날 정도로 대단하다.
분명히 수술을 했을 거라 애써 위안 삼으며 물었다.
“고객님은 사이즈가 어떻게 되시나요?”
조금은 부끄러운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한다.
그 모습이 같은 여자가 보더라도 심쿵할 정도로 예쁘다.
“보통 75E를 입기는 하는데... 좀 작아요...”
“75E가 작아?"
이상연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네...”
“우리나라에 E컵이 있어? 실제로 한 번도 못 봤는데.”
그만큼 여자끼리도 보기 쉽지 않은 사이즈였다.
직원 또한 속옷 매장에서 일하면서 한 번도 팔아보지 못한 사이즈다.
“네... 그래서 사이즈가 별로 없습니다.”
“확실히 그렇겠네. 언니, E컵 사이즈 있나요?”
“네네! 하... 한 번 확인해 볼게요.”
그나마 요즘은 발육이 좋은 여성이 있어 몇 개의 디자인은 한 두 세트 가져다 놓기는 한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직원이 안도하는 얼굴로 돌아왔다.
“다행히 하나가 있네요.”
“와! 다행이다. 수지야. 어서 가서 입어보자! 같이 가서 입어볼까?”
눈을 빛내는 이상연.
그녀는 저 안에 숨어있는 부러운 가슴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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