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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다보여-55화 (55/297)

〈 55화 〉 2. 사냥꾼.(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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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26)

요즘 김나연은 신경을 거슬리는 문제 하나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녀의 일이라고 해 봐야 취미로 하는 촬영 아르바이트.

아마 이 취미도 강인한이라는 동생이 없었으면 금방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워낙에 재능이 없어 그냥 포기했을지도 모를 사진촬영.

강인한을 알게 된 후부터 만족할 만한 사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결과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계속해서 해 왔었다.

사진이 잘 나오는 이유 중 하나는 강인한의 노고가 컸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했던 것도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어 버렸다.

그녀의 답답한 삶 중 가장 자유로웠던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과도 제법 어울리게 되었고, 무엇보다 이성이지만 괜찮은 동생도 생겼다.

강인한.

불과 얼마 전까지는 제법 친한 동생일 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묘하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촬영장에서 함께 넘어지면서 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처음 메시지가 오지 않았던 때 허전함이 느껴졌다.

그다음은...

“하...”

질투라도 했던 것일까?

강인한은 그저 동생일 뿐인데?

그가 입원한 병원에서 아는 사람이라 소개받았던 예쁜 여성.

여자의 날카로운 촉은 둘의 관계가 단순한 사이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장난을 치다 품에 안겼을 때를 생각하자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런 감정이 설레는 것 같으면서도 짜증스럽기 그지없다.

그녀에게 누군가와의 관계는 사치에 불과하다.

답답한 가슴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평소라면 별 의미도 두지 않았을 것들이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똑. 똑. 똑.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온 김나연.

이 집안에서 자신을 찾아올 이는 한 명밖에 없다.

“들어오세요.”

그녀의 말에 문이 열리며 반백의 노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으로 김나연의 곁에 있는 인물.

“아가씨. 회장님께서 부르십니다.”

구집사의 말에 김나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네... 알겠어요.”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음성은 그리 탐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부르는 이유는 짐작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정말로 내키지 않는 일.

아버지의 말을 따르는 대가로 2년의 자유를 얻었지만, 그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

“누나 왔어?”

아버지와의 독대를 하며 출근이 늦어버렸다.

정해진 일에 늦는다는 것은 그녀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그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순둥순둥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강인한을 보며 마주 손을 흔들어 준다.

“응.”

그녀의 평범한 유희도 이제 슬슬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어쩐 일로 지각을 했데?”

“조금... 일이 있어서. 괜히 민폐를 끼쳤네. 미안.”

“우리 사이에 무슨 미안할 것까지야~”

순간 ‘우리사이가 무슨 사인데?’ 라고 묻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던 중 왕성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입을 열었다.

덕분에 헛소리를 지껄일 뻔 한 입을 고이 걸어 잠굴 수 있었다.

“여어~ 나연씨,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칼 같은 나연씨가 늦었다면 다 이유가 있겠죠. 그나저나 인한이 저 녀석 앞으로 일하기 어렵다고 하네요.”

왕성기의 말에 김나연의 시선이 빠르게 돌아간다.

그녀의 눈빛은 정말이냐고 묻고 있었다.

자신은 언제라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강인한이 그만둔다는 것을 듣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응. 그렇게 됐어. 사람구할 때까지는 나올 거야.”

강인한의 대답에 김나연의 울렁거리던 가슴은 이를 넘어 답답한 기분마저 들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먼저 말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 서운하기까지 했다.

‘하... 정신 차려. 김나연...’

“그래서 말인데, 다음 주에 인한이 송별회 겸 펜션잡고 회사 차원에서 놀러가려고 하는데 나연씨는 시간 괜찮아요?”

그 말에 강인한도 처음 듣는다는 듯 말한다.

“송별회? 갑자기?”

“그동안 수고했는데 그 정도는 형님이 해 줘야지.”

“아니... 그건 고마운데 왜 나한테는 괜찮은지 안 물어봐?”

“넌 무조건 와야 하는 거고. 나연씨는 어때요?”

원래라면 묻는 즉시 거절했을 터이지만, 김나연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강인한이 그만둔다고 완전히 못 보는 것도 아닐 텐데, 영원히 떠나는 것처럼 괜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 전... 생각 좀 해 볼게요...”

“와~ 나연씨가 생각해 본다니 의외네요. 하하하. 아무튼 좋은 방향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누나가 간다면 나도 꼭 가야겠는데?”

“무슨 소리야. 너는 결정권이 없다니까? 무조건 오는 거야.”

둘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김나연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출근 전 아버지의 통보와 겹치며 지금의 감정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극대화 되었다.

‘이건... 마치...’

그녀나이도 벌써 스물아홉이다.

첫사랑의 기억하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김나연의 배경은 평범하게 연애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마마를 만나고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도착한 사무실.

어찌 된 일인지 나연누나가 지각까지 하는 일이 벌어졌고.

앞으로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내 말에, 성기형은 상의도 없이 갑자기 송별회를 계획했다.

당연히 참석을 거부할 줄 알았던 나연누나의 생각해 본다는 말.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

철벽녀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여자가 나연누나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에는 꽤 놀라운 대답이었다.

그런데 어째 오늘따라 복잡한 얼굴이다.

매직아이를 슬쩍 발동해 봤다.

‘어?’

놀랍게도 선명한 노란색으로 비치는 색깔.

저 선명한 빛을 넘어서면 분홍색으로 바뀐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일하게 진한 분홍색을 띄는 이는 상연누나와 수지다.

두 여인이 나를 사랑하는 것에는 한 점 의심이 없다.

‘이거... 잘하면...’

어째 여자에 대한 욕심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은데...?

방금 전 수지의 마마를 만나서 한 소리 들었음에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살아난 후 신체 변화 이외에 정신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에이~ 모르겠다. 최대한 안 걸린다면...’

요즘 느끼고 있는 거지만, 그날 포옹사건 이후로 어색해진 분위기였다.

오늘은 더 어색한 분위기에서 그나마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몇 시간 동안 이어진 촬영을 마치자 은근슬쩍 다가온 성기형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왜?’

내가 입을 벙긋거리자 능글맞게 웃는다.

‘이 인간이 왜 이래?’

어이없는 얼굴로 바라보자 더욱 진해지는 미소.

씨익.

“그날 이후로 별로 발전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뭐가?”

“에이~ 뭐긴 뭐야. 나연씨랑 관계말이지. 내가 마지막으로 팍팍 밀어 주려고 신경 써 봤어. 잘했지? 크크큭.”

펜션 잡고 송별회 하자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곰탱이 치고는 상당히 기특한 생각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생각을 본인의 연예사업에도 썼으면 하는 마음이다.

숫총각 왕성기.

천연기념물이다.

“음~ 역시 형밖에 없어.”

“그렇지? 크크큭~ 그러니까 그만둬도 형한테 잘해 임마~”

“오키오키~”

성기형이 큭큭 거리며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나연누나에게 슬쩍 다가갔다.

촬영한 사진들을 살펴보고 있던 그녀는 내가 다가서자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누나도 꼭 같이 갔으면 좋겠다.”

“어어?”

대뜸 던진 말에 당황한 것인지 살짝 얼굴을 붉힌다.

꾸준히 쌓여 온 호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누나도 사람들하고 잘 어울렸으면 해서 그래.”

“언제는 못 어울렸던 것처럼 말한다?”

“히히~ 그나저나 나 없으면 곤란하겠는데?”

“뭐야? 또 나 디스하는 거니?”

“오오~ 오늘도 발끈해 주시네?”

“어차피 취미로 하던 거라 상관없거든? 사실, 나도 슬슬 그만둘까도 생각했었고...”

나연누나의 그 말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는 있었다.

누나가 사진 찍는 것은 말 그대로 취미였던 것.

일에 대한 미련이 크지 않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나 때문은 아니지?”

“설마~”

“에이~ 나 보려고 열심히 일한 거 아냐?”

“어쭈~ 또 까분다.”

“하하하, 아무튼 같이 가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나는 그녀의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는 말에 만족하기로 했다.

왠지 같이 갈 것 같다는 촉이 강하게 든 탓이다.

그리고 거짓이 없음을 알리는 파란색도 보인다.

노란색이 무르익은 만큼 확실한 호감을 확인한 이상, 기회만 잘 잡는다면 그만두기 전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

강인한이 다가오자 김나연은 살짝 긴장되는 기분이 든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장난스럽게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예전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마지막이라면...’

이제 그녀의 자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곧 있으면 약혼하게 될 것이고, 결혼하게 되면 한 남자의 여자로서 긴긴 세월을 살아가야 할 터다.

어차피 마지막이라면 한 번쯤은 어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복잡해...’

“아무튼, 그건 그렇고 오늘 뭐 할 거야? 바로 집에 가서 작업할 건가?”

“아마도...?”

“그래? 음... 간단하게 치맥 한잔할래? 작업은 내일 해도 되잖아?”

머뭇거리던 김나연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들어갈래.”

아쉬워하는 강인한의 얼굴이 보였지만, 선뜻 수락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아버지의 통보와 맞물려 강인한과 함께 술까지 마신다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잘 살아왔거늘 이제 와서 이런 기분에 젖어들다니.

일단은 홀로 머리를 식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쉽네. 그럼, 집까지 데려다줄까?”

“..... 아니... 괜찮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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