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2. 사냥꾼.(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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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27)
김동운은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의 중심에 있었다.
또래들 중에서 키도 컸고 운동신경도 제법 좋았다.
언변도 좋았으며 적절하게 사람다루는 방법도 알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리의 리더가 되었고, 싸움을 한 적도 없건만 언젠가 부터는 짱짱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론, 타고난 키와 운동신경으로 웬만한 놈들은 이길 자신도 있었다.
한 번씩 반발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기에 그런 아이들의 반발쯤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음에도 친구들과의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돈.
돈은 머리가 굵어진 친구들에게도 여지없이 먹혀들었다.
어차피 20대였기에 많은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굵직하게 한 두 번씩 쏘기만 해도 빌빌거리며 붙어줬으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만의 카르텔을 형성했는데, 항상 모난 돌은 있기 마련이고 한 번씩 튀어나와 거슬리게 만들었다.
강인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부분이 한 번씩 있었지만, 강인한과는 제법 맞는 구석도 있었다.
주변의 친구 중 외모도 나쁘지 않았고, 옷 입는 센스도 좋기에 달고 다니기에 좋았다.
한 번씩 의견충돌이 있을 때는 이가 갈릴 때도 있었지만, 결국은 모든 것에서 뛰어난 자신의 뜻대로 되곤 했으니 말이다.
“젠장. 알고 있으려나?”
“뭘?”
혼자 중얼거리는 김동운의 말에 이영훈이 되묻는다.
“아... 별거 아냐.”
그날 이후로 강인한에게서는 먼저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 일 때문인지, 사는 게 바빠서 인지는 모르겠다.
본인 자신도 찔리는 부분이 있어서 먼저 연락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구상두파의 보스인 구상두가 실종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조직의 세계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기에 그러려니 하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놈들에게 잡혀가서 강인한에 대해 주둥이를 턴 직후, 구상두가 실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뭐, 어찌 되었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고 주변에 슬쩍 알아보니 강인한은 멀쩡하게 일하고 있다는 것도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심심하면 또다시 연락이 될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만큼 불알친구라는 족쇄는 이 나이 때 강하게 작용한다.
‘여자는 인한이가 잘 꼬시는데 말이야.’
김동운은 옆에서 두리번거리며 백화점을 구경하는 이영훈을 바라봤다.
강인한만큼 자주 어울리는 놈으로, 일명 제일 친한 절친 중 한 명이긴 하다.
이빨도 잘 까고 나름 웃기는 캐릭터인데, 사이즈가 너무 구리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래도 자신을 돋보이게 해 주는 악세사리 역할은 잘 수행하고 있다.
“야야! 와~ 씨발~ 저기 완전 죽이는데?”
이영훈의 촌놈처럼 부산스러운 모습에 얼굴을 한껏 찌푸리던 김동운은, 이영훈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이영훈의 헌팅 성공률은 쓰레기지만 눈은 제대로 박혀 있기에.
그런 김동운의 눈에 두 여자가 포착되었다.
요즘 워낙에 수술이니 시술이니 쉽게 접할 수 있어 많이들 손을 대기에 예쁜 여자들이 많다.
거기에 더해 자기관리가 유행하며 몸매마저 뛰어난 여자들이 많으니, 서울 시내를 걷다가도 쉽게 차이는 게 사이즈 좋은 여자들이다.
그런데 저 두 여자는 그런 여자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본인 스스로가 얼굴에 칼질을 하고 신경을 쓰다 보니, 상대방이 어디에 손댔는지 정도는 빠삭하게 알 수 있었다.
두 여자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초S급 이였다.
저 정도라면 당장에 연예인으로 데뷔를 해도 통할 정도다.
취향에 따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는데, 그중 조금 더 어려 보이는 쪽은 벌린 입조차 다물 수 없을 정도였다.
볼수록 풍기는 이미지가 달라 보이는 게 신비한 느낌마저 든다.
“와 씨발. 몸매 무슨 외국인이야? 장난 아닌데?”
이영훈의 말대로 몸매 또한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저 정도면 노력만으로 부족하다.
타고난 몸매에 노력이 곁들여져 있을 터였다.
두 여자를 주시하는 이들은 자신들만이 아닌지, 아닌 척하며 흘깃거리는 수컷들이 상당히 많았다.
도를 넘어 스마트폰으로 슬쩍슬쩍 사진을 찍는 놈들도 있었다.
“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구?”
“저기, 치마.”
“이 새끼. 또 언제 꼬신거냐?”
그리고 이내 낯익은 여자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강인한과 클럽에서 꼬신 여자 중 한 명이었다.
자신이 노렸지만, 강인한에게 빼앗겨 버려 이를 갈았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구상두파에 끌려갔을 때, 엮이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와... 저렇게 예뻤나?”
처음 봤을 때도 군침이 돌 정도였다.
그런데 그 때 보다 훨씬 괜찮은 것 같다.
남에 떡이 맛있어 보인다는 말이 여기서 비롯된 것인가 싶다.
“야. 알면 말 걸어 봐. 저기 노리는 새끼들 좆나 많아.”
그 사이 몇 놈이 가서 말을 걸고는, 거절당했는지 벌게진 얼굴로 되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미친놈아. 쟤 조폭 마누라야.”
“헉... 진짜? 씨발...”
‘하지만... 구상두는 실종 됐잖아?’
주인 없는데 거리낄 것이 있나?
조폭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조직의 이름까지 바뀌었다면 실종이 아닌 죽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문제라면 친구인 강인한이 아직도 만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지만...
말 건다고 문제가 될 소지는 없다.
더 이상 만나고 있지 않다면...?
이상연 정도면 친구 놈이 닦아 먹었다 해도, 기꺼이 시식할 용의가 있었다.
더군다나 그 옆에는 더 죽여주는 여자가 있지 않은가?
“지금은 아닐걸?”
씨익 웃으며 두 여자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김동운.
“아니라고? 괜히 쫄았네. 말 걸 거야? 그럼! 나는 그 옆에 레깅스.”
김동운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이영훈의 말을 무참히 씹으며 이상연에게 다가갔다.
둘 다 강인한의 여자이지만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김동운이 알 턱은 없었다.
“와~ 오랜만.”
이상연은 누군가 아는 척하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누구?”
안 그래도 찝쩍거리는 남자들 때문에 귀찮았던 터라 나오는 말투도 그리 곱지 않았다.
“뭐야~ 벌써 누군지 잊은 거야? 인한이 친구 김동운!”
인한이 친구라는 말에 얼굴을 풀었던 이상연은 다시 한 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녀도 그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구상두 앞에서 주절거리던 놈인 것이다.
“하... 너 그때 그 아이 맞지? 인한이 유인해 부르려던 아이.”
김동운은 그 말에 잠시 찔끔했지만, 금세 철판을 깔고 말했다.
“에이 누나~ 유인이라니. 상황 상 어쩔 수 없던 거지.”
“흥! 상황~상? 그래 놓고 인한이 친구라고 하는 거 보니 뻔뻔하네.”
김동운은 그녀의 반응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이상연의 반응으로 보아 강인한과 아직도 진한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괜찮은 여자들은 그 놈한테 가는지 모르겠다.
키로 보나, 외모로 보나, 금력으로 보나, 자신이 딸리는 것은 하나 없는데 말이다.
“어? 인한이 만나는 누나였어? 안녕하세요. 인한이 불알친구 이영훈입니다. 그런데 진짜 동안이세요. 히히히~”
갑자기 끼어드는 이영훈을 가자미눈으로 쳐다보는 김동운.
김동운이 째려봤지만 눈치 없는 이영훈은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아... 네. 안녕하세요.”
“인한이랑 언제부터 만났어요? 저 인한이랑 제일 친한데 여직 몰랐네...?”
친분을 과시하며 능글맞게 웃는 이영훈을 향한 떨떠름한 표정의 이상연.
김동운처럼 미운털이 박힌 것은 아니기에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다.
이영훈이 껄떡거리자 김동운이 그를 밀어냈다.
자신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지껄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에이~ 누나~어차피 내가 말 안 해도 걸릴 거였잖아. 그리고 별일도 없었던 거 아냐? 인한이랑은 그런 거로 서로 안 보고 그런 사이 아니야. 못 믿겠으면 내가 인한이 부를게. 오랜만에 봤는데 술이나 같이 한잔하자.”
되도 않는 말을 하면서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는 김동운.
이상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김동운의 말에 기가 막혔다.
김동운이 아니더라도 벌어질 일이기는 했지만, 미안한 감정도 비치지 않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 날은 정말로 엄청난 일을 겪기도 했다.
“아니야. 별로 그럴 기분 아니야. 우리는 쇼핑하고 들어갈 거야. 나중에 인한이하고 따로 연락해 봐. 가자 수지야.”
“네? 네.”
멀뚱히 상황을 바라보던 정수지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이상연이 몸을 돌리는 찰나, 조급한 김동운이 이상연의 손을 낚아챘다.
“아얏! 뭐 하는 거야!?”
기겁한 이상연이 김동운의 팔을 쳐 내며 반사적으로 손을 휘둘렀고, 그 덕에 김동운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날아가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 씨발...”
얼굴을 찡그린 김동운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순간적으로 정적이 일었고.
이영훈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눈을 데룩데룩 굴렸다.
“그... 그러게 왜 손을 함부로 잡아!”
반사적으로 휘두른 손에 스쳤는지 김동운의 볼에 길게 생채기가 났다.
그런 볼을 쓰다듬던 김동운이 얼굴을 더욱 일그러트렸다.
“아... 좆나게 비싸게 구네. 씨발...”
김동운의 말에 발끈한 이상연.
설마, 욕설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인한이 친구라는 애가 말이 심한 거 아냐?”
“뭐래~ 걔가 친구 말고 불륜상대 편들 거 같아?”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매장에 있던 직원이 나오며 공손하게 말했다.
“고객님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는데...”
덕분에 험악해지던 분위기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그 사이 이상연이 재빠르게 정수지의 손을 잡았다.
“네. 죄송합니다.”
직원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몸을 돌려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가자. 수지야.”
그런 이상연을 노려보는 김동운을 향해 이영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야... 인한이 만나는 사람한테 너무 심한 거 아냐?”
“하... 씨발. 병신아. 저년 결혼한 년인데, 심각하게 만나겠냐? 아... 옆에 있는 애 좆나 괜찮은데... 짱나네.”
김동운의 머릿속에는 그날 나불거렸던 것에 대해 미안함 따위는 없었다.
별 일도 없었던 것 같고, 어차피 자신이 말 하지 않아도 깡패 놈들은 잘도 알아냈을 거다.
그저 이상연이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이상하게 강인한에 대한 짜증이 일었다.
‘진짜, 좆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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