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 2. 사냥꾼.(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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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29)
형님, 그런데 혹시 그거 아십니까?
“뭐를?”
전에 강인한이라고 기억나세요? 걔가 그... 누구냐... 전 보스님 와이프분을 아직도 만나는 것 같더라고요.
나대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머리는 한 톨도 없지만 눈썹은 제법 풍성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강인한의 이름이 나오자 절로 목소리가 낮아진다.
아무래도 좋은 뜻으로 지껄이는 것은 아니라고 짐작했다.
그냥...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하하...
김동운도 눈치가 제법 있었기에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새끼 좆나 웃긴 놈이네? 네 친구 아니야? 그런데 그걸 나한테 말하는 저의가 뭐야?”
그... 그게... 그러니까... 하하하...
“야이 새끼야. 헛짓거리 말고 그냥 조용히 살아라. 앞으로 전화도 하지 말고. 알겠어? 이거 순 쓰레기 새끼 아니야?”
나대명은 잔뜩 으름장을 놓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가끔 보면 깡패 새끼들보다 더한 쓰레기들이 있는데, 이놈도 똑같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형님한테 뭔 짓 하려는 건 아니겠지?”
잠시 김동운을 확 치워 버릴까 생각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형님 강인한이 누구던가.
사람이 아닌 것으로 짐작되는 구상두를 처치하고, 깡패 놈들 수십을 홀로 상대하던 분이었다.
겨우 건물주 아들놈이 어찌해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전화를 끊고 얼마 후 영훈이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인한아, 동운이가 아무래도 피박 제대로 먹은 것 같다.
영훈이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하며 입맛을 다셨다.
불알친구니 뭐니 전부 정나미가 떨어졌었는데, 연락이라도 주는 것을 보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진다.
괜찮다고 답장을 보내주기 무섭게 상연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동운을 만나고 기분이 나빴는지 한참이나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했다.
그리고 둘은 제법 친해진 듯 조금 더 돌아다닐 거라고 했는데, 일 다 보고 연락하라고 답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쇼핑하며 돌아다니는 여자들 옆에 있어 봐야 개고생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카페 마들렌에 가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오늘은 상연누나와 한 빠구리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들렌으로 들어선다.
“어서 오... 아... 오빠. 안녕하세요!”
나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수줍게 미소 짓는 이연지.
오전과는 다르게 안경도 벗고 머리도 질끈 동여맸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온 것일까?
덕분에 귀여운 외모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화장은 할 줄 모르는 듯, 맨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피부가 돋보인다.
“어~ 연지도 안녕. 커피는 연지가 추천하는 걸로 한잔~ 안경 벗고 머리 묶으니까 훨씬 예쁘네.”
“아! 가... 감사합니다.”
연지가 부끄러운 듯 얼굴에 홍조를 띄운다.
적당히 살집이 있는 연지의 모습은 색다른 맛이 있을 것 같다.
‘음... 커피보다 연지가 더 맛있겠는데...’
통통한 연지의 몸을 매의 눈으로 훑어보던 내 눈에, 아직 카운터 뒤에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소녀가 보였다.
“안녕? 아까부터 계속 그러고 있네?”
소녀를 향해 인사를 건네자 무릎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올린다.
“네? 오빠 뭐라고요?”
소녀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연지에게서 들려왔다.
“어? 연지 말고 저 애한테 말한 건데? 연지 동생이야?”
소녀를 가리키며 말하자 연지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네...? 오빠? 무슨 말이에요? 거기에 누가 있다고...”
나는 황당한 기분에 연지와 소녀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연지의 당황하는 눈빛에서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뭐... 뭐지?’
고개를 든 소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친다.
오싹.
“어? 하하하... 그렇지?”
“장난치신 거죠...?”
“어? 어...”
왠지 모르게 연지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란스러워 진다.
내 눈에만 보이는 저 소녀는 뭐란 말인가?
소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어 보인다.
얼핏 봐서 눈치 채지 못했는데,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전체적으로 옅어 보이는 모습이다.
살짝 투명화 효과가 있는 듯 하다고할까?
어찌 되었든 나는 소녀의 정체를 확신하게 되었다.
믿을 수 없게도 소녀는 귀신이 분명했다.
지금은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긴 하지만 소녀는 오전에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귀신은 밤에만 나타난다는 상식이 무참히 깨져 버렸다.
정염귀를 봤을 때와는 또 다른 오싹한 기분이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눈을 굴리며 소녀와 마주친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리고 안 보이는 척 고개를 돌리며 테이블로 몸을 옮긴다.
굳어진 몸은 어색하게 삐걱거리며 힘겹게 테이블 앞까지 당도했다.
그리고 어떻게 앉아야 할지 고민에 휩싸인다.
소녀와 마주 보게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는데, 등을 돌리고 있는 것도 소름이 돋는다.
‘하... 이제는 귀신도 보이는 거야?’
매직아이를 얻고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귀신까지 보인다니.
차라리 매직아이가 없어지는 게 낫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등을 돌리고 앉는 것으로 택했다.
또다시 눈을 마주치는 것이 더욱 부담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뻣뻣하게 굳어서 괜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귀신이 있다는 것은 듣기는 했는데 직접 보게 되니 미치고 환장할 것만 같다.
마마도 저 소녀귀신을 봤을까?
왠지 마마라면 알아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그냥 두었다는 것은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말 아닐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었다.
어서 빨리 연지가 커피를 내려서 가져 왔으면 싶었다.
연지라도 옆에 잡아두면 더욱 안심이 될 것 같다.
봤지?
화들짝.
나는 귓가에서 들리는 음성에 몸을 들썩였다.
‘이... 이런 씨발!’
왼쪽 귀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기분에 소름이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나는 못 들은 척 괜히 콧노래를 부르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나 봤잖아. 왜 모른 척해? 스마트 폰 들고 아무것도 안 하네?
‘헉!’
차라리 요괴라면 치고받기라도 하겠건만.
귀신도 때릴 수 있나?
요괴보다 왠지 귀신이 더 꺼림칙했다.
공포 영화를 보며 항상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오면 배우는 항상 고개를 돌려 확인하려 든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고구마를 목구멍에 때려 박은 것처럼 목이 콱 틀어 막혔었는데, 지금 내가 그 짓을 하려하고 있었다.
미친 것도 아닌데 고개를 돌리지 않고는 정말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굳어진 목을 천천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렸다.
“허억!”
깜짝 놀란 나는 헛바람을 들이키고 말았다.
설마, 영화처럼 이렇게나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거 봐. 오빠는 내가 보이는 구나?
씨익.
가지런한 치아를 잔뜩 드러내며 해맑게 웃는 모습.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 그래...”
다행이다. 항상 지켜만 보는 것이 힘들었는데,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는 소녀의 얼굴은 어느새 음울하게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면 미친 게 맞지?
오빠, 우리 언니 좀 도와줘.
“어... 어?”
언니? 언니를 도와달라니 무슨 말일까?
내가 의문스럽게 바라보자 소녀가 손가락으로 연지를 가리킨다.
“설마... 연지가 네 언니야?”
응. 착한 우리 언니야.
소녀의 말에 갑자기 궁금증이 밀려온다.
연지의 동생이라는 말에 무서웠던 마음도 조금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래서 커피숍에 자주 와서 매상 올려주고 있어.”
아니이! 그 말이 아니잖아!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며 가자미눈으로 째려보는 소녀.
그러자 주위의 공기가 급격하게 차가워지는 것 같다.
“그... 그럼. 뭘 도와달라는 거야?”
우리 언니도 위험해. 그 사람이 언니를 그냥 두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이라니? 그런데... 넌 어쩌다 죽게 된 거야?”
소녀귀신의 표정이 더욱 음울하게 변했다.
자세히 보니 확실히 연지의 동생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닮기는 했다.
통통한 체형도 자매의 유전인가 싶다.
그런데 귀신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원한이나 그런 게 있다는 것 아닌가?
그 남자가... 그 남자가 날 죽였어... 그리고 언니도 노리고 있어... 흐으으으... 죽여 버릴 거야! 그놈을 죽여 버릴 거라고!
자신을 죽인 이를 생각하자 분노하며 소녀가 눈을 치켜떴다.
눈동자가 붉어지고 영화처럼 머리카락이 바짝 서며 오싹한 모습으로 변한다.
“내가 도와줄 테니까. 제발 진정해!”
그제야 소녀가 진정을 하며 조금씩 마음을 다스리는 듯하다.
나는 또다시 분노할까 싶어 이름을 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뭐야?”
나는... 윤지. 이윤지.
“아... 윤지구나. 휴... 지금 네 이야기를 계속 들어 주고 싶은데 저기 네 언니가 온다. 어떻게 할까?”
아... 그럼 언니에게 내 말을 전해 줘.
“하... 윤지야. 갑자기 네 이야기를 하면 잘도 믿어 주겠다. 날 이상한 사람으로 안보면 다행이게?”
흑... 믿게 만들면 되잖아. 응?
“일단, 얌전히 있어. 나중에 네 이야기부터 자세히 들어 보자. 알겠지?”
그 말에 윤지가 불만 어린 시선을 보내온다.
“말 안 들으면 네 부탁도 들어 주지 않을 거야.”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다 찔끔하는 윤지귀신.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워 보인다.
‘허허허... 5분 사이에 귀신을 인정하고 적응한 거야?’
이렇게 보니 내 간담도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보통은 기절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오빠?”
커피를 들고 온 연지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흠흠... 왜?”
“아니... 통화하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하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오오~ 역시 연지 커피내리는 실력은 죽여준다니까?”
“가... 감사합니다.”
나는 커피를 호로록 마시며 딴 청을 피웠다.
연지의 바로 옆에는 팔짱을 끼고 불평어린 시선을 보내는 윤지가 보인다.
‘쯥... 후다닥 마시고 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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