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2. 사냥꾼.(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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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30)
“으아아아~! 씨발! 씨발! 씨발!”
나대명과 전화를 끊은 김동운이 마구 발광했다.
남들 앞에서는 항상 차분한 듯, 척을 하곤 했지만 아무도 없는 지금 거리낄 것이 없다.
이성적인 척, 올바른 척, 현명한 척.
나름 그렇게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가까운 이들은 김동운의 본성이 지독히 이기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억... 허억... 허억... 씨발... 진짜 열 받네...”
그깟 부모 없는 고아새끼 때문에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 자체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켰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안 그런 척하면서도 사사건건 테클을 걸던 새끼.
마음속에 폭력성을 잔뜩 품고 아닌 척 하던 그 새끼 말이다.
배운 것 없는 고아새끼가 언제나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러웠다.
그런데도 불쌍해서 달고 다녀줬더니 이제는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른다.
“좆 같은 대머리 새끼는 왜 또 이 지랄이야! 지 아니면 부탁할 곳 없을까 봐?”
항상 자신만이 제일 잘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박힌 김동운.
어쩌면 그를 지독하게 괴롭히는 것은 강인한에 대한 열등감일지도 모르겠다.
자신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데, 은근히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것이 정말 고깝게 보였더랬다.
은근히 나대명에게 이상연과 강인한의 관계를 흘려 곤란하게 만들려 했다.
더 나아가 제대로 손을 봐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런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갑작스레 쓰레기란 소리까지 들었더니 강인한이 너무나 미워 죽을 것만 같았다.
“씨익... 씨익... 씨익...”
거친 숨을 몰아쉬던 김동운의 머릿속에 한 사내가 떠올랐다.
홍대 클럽에서 만났던 파란 눈의 백인 사내.
유쾌하면서도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사내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날 천 만원 넘게 썼던 것 같다.
그 사내 덕에 새하얀 백마까지 타보고 좋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게 고마웠던지 명함을 한 장 건네주며 했던 말.
그 당시에는 농담이라 생각했던 그 말이 생각났다.
헤이~ 킴~ 죽이고 싶은 놈 있으면 말해. 유에겐 특별히 싸게 해 줄 테니까.
그 말을 하던 사내의 눈빛은 오싹할 정도로 싸늘했는데, 금세 호탕하게 웃는 탓에 같이 웃어넘겼다.
후다닥.
김동운은 지갑을 찾아 뒤적거려 백인사내가 건넸던 명함을 찾아냈다.
검은 명함에 적힌 것은 헌터라는 단어 하나와 비밀 메신저의 아이디 하나가 적혀 있다.
***
나는 카페 마들렌의 뒷골목에 주저앉아 윤지의 말을 들어 주고 있었다.
그녀가 연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리가 한정되어 있어 멀리까지 이동할 수 없었던 탓이다.
카페 안에서 대화를 나눌 수 없던 우리는 그렇게 뒷골목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래, 이제 네 이야기해 봐. 들어줄 테니까.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나는 윤지가 하는 말을 들어 주게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내내 한 인간에 대한 분노가 휘몰아쳤다.
“무슨 그런 씨발 새끼가 다 있어!”
윤지는 평범하게 죽은 것이 아니었다.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연지와 윤지.
비록 넉넉하지 않은 삶이긴 했지만, 그녀들의 아버지는 모진 일도 마다하지 않고 둘의 뒷바라지를 했다.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작은 건설사임에도 일반 노동자들처럼 일을 했던 자매의 아버지.
친구 덕을 보자고 시작했던 일이 아니기에 친구가 매정하게 굴어도 꿋꿋하게 일했다.
배운 것 없고 나이 많은 그를 받아주었다는 것만도 감사하다며 허리를 숙였다.
하지만 친구는 유난히 자매의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눈에 뛸 때마가 그렇게 못살게 굴었다.
그래도 딸들을 생각해서 하루하루를 버텨 냈다.
그러던 사장이 어느 순간부터 자매의 아버지에게 잘해주기 시작했다.
임금도 재깍재깍 주며 딸들 챙겨 주라고 그녀들의 용돈까지 얹어 주곤 한 것이다.
자매들은 자주 얼굴을 보이는 아버지의 친구와 제법 가까워졌고 삼촌이라 부르며 따르게 되었다.
그동안 자매의 아버지에게 매정하게 굴었던 이유는 보는 눈들 때문이었다며, 직급까지 올려주니 그 얼마나 좋은 친구라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사장이 변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의 태도가 그렇게 한순간에 변한 이유는 바로 연지와 윤지 때문이었다.
소극적인 성격의 자매였지만 그 외모만큼은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조금은 꾸밀 줄 아는 윤지가 더욱 돋보였는데, 그 당시에도 연지는 커다란 안경에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반은 가리고 다녔었기에 윤지보다는 존재감이 적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윤지는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게 되었다.
휴대폰을 새로 개통했다는 말에 별다른 의심도 하지 못한 그녀.
목소리는 삼촌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학교근처라며 위치를 알려주고 용돈을 핑계로 불러냈다.
당시 16세였던 윤지는 한창 멋을 부릴 나이로, 삼촌의 용돈은 언제나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윤지는 그를 친 삼촌처럼 따랐기에, 아무 의심 없이 그가 말하는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곳에는 그자가 없었고, 몇 번 이나 장소를 바꾸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쯤, 윤지가 위치한 곳은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는 굴다리 근처였다.
조금은 무서운 생각에 자리를 벗어나려던 중 삼촌이라는 작자가 차를 몰고 나타났다.
거래처 때문에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던 그.
미심쩍은 마음이 들었지만, 아빠의 친구이기에 애써 불안감을 꼭꼭 눌렀다.
그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리저리 장소를 바꾸며 대포폰으로 윤지를 유인한 그자는 숨겨 왔던 본성을 드러냈다.
이제 16세 소녀인 그녀가 성인 남성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윤지는 아빠의 친구이자 삼촌이라는 작자에게 씻을 수 없는 일을 당하게 되었다.
너무도 충격적인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던 윤지는 죽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혀를 깨문다고 죽음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윤지를 보며 깜짝 놀란 그놈은 윤지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 갈겼다.
제 나름에는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한 조치이지만 이에 충격을 받은 윤지가 정신을 놓고 말았다.
윤지가 의식을 잃자 깜짝 놀란 그놈은, 이튿날 공구리가 예정된 현장에 윤지를 묻어 버렸다.
당황했던 놈은 윤지가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땅속에 묻힐 때까지도 살아 있었다고 한다.
윤지는 차가운 땅에 묻혀 그렇게 서서히 죽어 갔다.
죽여 버리고 싶어요... 오빠... 제발 그 새끼를 죽여주세요. 이제는 그놈이 우리 언니도 노리고 있단 말이에요.
윤지의 눈은 증오로 번들거리며 붉게 변했다.
그 모습이 정말 귀신같아 오싹하게 느껴진다.
‘아... 정말 귀신이지.’
이... 이 카페도 그놈이 언니를 옭아매려고 차려 준 거예요. 흐윽...
“뭐?!”
나는 깜짝 놀라 반문했다.
그러고 보니 연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삼촌이 가게 차리는 것을 도와줬다고 했던...
제발... 오빠... 흐으윽... 우리 착한 언니 너무 불쌍해요... 저 죽고 아빠도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언니가 너무 불쌍해요... 그런데 나쁜 일까지 당하면... 흑흑흑...
실종된 윤지로 인해 앓아누운 자매의 아버지는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 때서야 암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충격으로 인해 더욱 빨리 전이 되었던 것.
연지는 아빠의 병 수발을 들며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온갖 굳은 일을 견뎌내었고,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에는 윤지를 찾아다녔다.
가증스럽게도 그 놈은 연지를 찔끔찔끔 도와주며 더 큰 신뢰를 얻었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이제 겨우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난 흐느끼는 윤지를 보며 멍한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빌어먹을 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죽여 버려도 싼 놈이긴 한데...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하... 일단, 오빠가 연지는 어떻게든 구해줄게. 그리고... 하아... 진짜 죽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너도 알잖아... 평범한 사람이 살인을 쉽게 할 수 있을 턱이 없잖아. 하지만... 아주 고통스럽게는 만들어줄 수 있어.”
오빠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으음... 윤지야. 일단 진정해... 천천히 생각하자. 우선은 절대로 연지가 위험하게는 만들지 않을게. 응?”
흐으윽... 언니가 위험해지면 평생 오빠 따라다니며 괴롭힐 거예요!
나는 윤지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 그래!”
그건 절대 안 될 말이다.
얘가 따라다니면 내 성생활에도 큰 지장이 생길 것 같다.
‘어? 그런데 얘는 연지 곁에서 멀리 못 떠나잖아?’
내 표정에서 그런 기색을 느꼈는지 윤지가 가자미눈을 하고 째려본다.
저 처음에는 언니 옆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여기까지 나왔네요? 그게 무엇을 뜻할까요?
“아? 아... 그래... 하하하...”
내 복수도 코가 석 자인데 난데없는 귀신의 의뢰까지 맡아야 하다니.
그렇다고 외면하기엔 너무 나쁜 새끼였다.
이렇게 괜찮은 꿈나무를 그런 식으로...
‘으흠... 이따위 생각이나 하다니... 쓰레기 같네... 쯧...’
연지의 동생답게 윤지는 모습은 아주 바람직한 모습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라면 16세의 모습이라는 것.
그래도 발육은 거의 끝났던 것인지 앳된 얼굴과는 달리...
나는 머리를 흔들며 쓰레기 같은 생각을 멀리 날려 보냈다.
오빠, 방금 표정이 별로였어요.
“괜찮아. 잘생긴 사람은.”
구미호 모녀에게 인정받는 외모의 소유자라는 거다.
흐음... 몇 년 사이에 잘생긴 사람의 기준이 바뀐 건가요?
“큭...”
그녀의 말은 뼈를 확실하게 때려주었다.
이로써 마마와 수지의 눈이 나에게만 특화되었다는 것이 뼈아픈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래도 괜찮게는 생겼잖아!”
네? 네... 뭐 나름... 순진하게는 생겼네요.
어째 저 말이 더 기분 나빠지는 것 같다.
“야! 내가 그렇게 별로냐? 네가 몰라서 그러는데 장난 아니게 예쁜 여자 둘이 나 없으면 못산다고 난리야.”
네... 네... 알겠어요. 좋겠네요. 우리 언니나 잘 지켜 주세요.
“야! 부탁하는 사람이 그렇게 성의가 없어! 나 안 해!”
저 사람 아니고 귀신인데요?
“누가 몰라서 물어? 어른이 말하면 알겠습니다! 하면 되지. 토를 달아?”
와... 완전 라떼 아저씨네?
욱하려던 나는 허탈함에 그저 헛바람을 내쉬었다.
순간, 중딩 귀신이랑 뭐하고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에휴... 됐고. 그 새끼 인적 사항이나 불러.”
그 말에 눈을 반짝이며 바짝 다가서는 윤지귀신.
흐윽... 아저씨...
“아까는 오빠라더니 왜 아저씨로 바뀐 거야!”
흐윽... 잘생긴 오빠...
윤지가 알고 있는 놈에 대한 것을 들은 후,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연락처에서 나대명 사장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이런 새끼 손 봐주는 건 이쪽 전문가들이 나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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