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2. 사냥꾼.(35)
* * *
2. 사냥꾼.(35)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잘했더랬다.
그런데 이제는 잘하는 경지를 넘어 머릿속에라도 들어온 듯 원하는 것을 알아서 척척 한다.
정말 궁합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것.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읽을 수 있는 것.
이상연이 보는 강인한은 그녀의 가려운 부분을 완벽하게 긁어 주었다.
아니, 그와의 관계에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어떻게 그렇게나 원하는 부위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그와의 관계는 황홀하다 못해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싶을 정도로 극적이다.
관계를 마친 후 몰려드는 절정과 함께, 몸속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기분.
이제는 그 이유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의 기운이 몸속의 기운을 복돋아주며 젊음을 되돌려준다는 것을.
물론, 그 이유로 강인한을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 외도했던 그날부터 쭉 가슴 한편에 자리했다.
그러던 것이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으며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다.
강인한과의 관계 후 기절하듯 잠들었다 깨어난 이상연은 얌전하게 눈을 감고 있는 강인한을 시선에 담는다.
‘신기한 사람...’
전에 다섯 번까지 관계를 했지만, 그때는 버틸 만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 번만 해도 힘에 겨울 정도로 강인한의 능력은 대단했다.
그와의 관계에서 얻게 되는 이로운 작용과는 달리, 계속되는 절정은 심신을 지치게 만든다.
아무리 좋은 보약이라도 과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녀는 붉게 물들어 팅팅 부어 버린 중심부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앞뒤로 느껴지는 알싸한 통증이 그와의 뜨거웠던 밤의 증거로 남아 있다.
아마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항복 선언하지 않았다면 기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과분한 사람...’
확실히 그를 혼자 독차지하는 것은 버겁다는 것을 느낀다.
한 명의 여인으로서 누가 다른 여인과 한 남자를 공유하고 싶겠는가.
그에게는 그저 자신을 내치지 말아만 달라 했지만, 마음 한 편에는 나만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후훗...”
이제는 안다.
그가 자신을 절대로 내치지 않을 것을.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음을 비우고 현실을 직시하자 절로 인정이 되었다.
강인한의 성욕은 이상하리만치 강렬했다.
사실, 점점 홀로 만족시키기에는 힘들다 생각했다.
정수지가 사라졌을 때, 안도하는 마음 한 편에는 어서 돌아와서 함께 감당해 주길 바라는 마음 또한 있었다.
이상연이 강인한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으으음...”
그녀의 손길이 기분 좋은 듯 입가에 피는 미소.
이상연 또한 그 미소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면서도 깊숙이 자리한 일말의 불안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세상의 이면을 마주하게 되며 느끼는 불안감.
그저 외면하며 모른 척하고 살아가고 싶지만, 강인한은 너무도 깊이 관계되어 있었다.
반인반요 구미호 정수지.
뿐만 아니라, 강인한 또한 보통의 사람이 아니다.
이 전에는 몰랐지만, 자신 또한 보통 사람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평범한 여성보다 몇 배나 많은 음기를 지녔으며, 구상두에 의해 음기의 증폭까지 이뤄졌다.
강인한과 관계를 하며 벌어진 알 수 없는 작용까지.
요즘 들어 자신이 정말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일상에서 느껴야할 피로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힘 또한 넘쳐서 성인 남자도 뻘뻘 거리는 무게를 가뿐하게 들어 올리곤 한다.
“상관없어... 자기가 어떻게 변하든...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든, 나는 항상 옆에 있을 거니까.”
그녀의 눈에 이불위로 불쑥 솟아오른 기둥이 들어온다.
소중한 그의 물건으로 향하던 손을 거둬들인다.
괜히 자극했다가 짐승처럼 달려든다면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잠시 미간을 좁히고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
“그래도 만지고 싶은데?”
그녀는 결국 우뚝 솟은 기둥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가 달려들면 입으로 받아주면 될 일이라 생각하며.
***
언제부터였을까?
원래 자신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씩 툭 튀어나온 모난 돌 같은 강인한이 거슬린 적도 있었고.
하지만 강인한과는 제법 케미가 잘 맞아 그 정도 튀어나온 것 정도는 상쇄할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렇게까지 분노를 느낄 정도로 싫어했던가?
도대체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은 뭐란 말인가.
김동운은 점점 강렬해지는 강인한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름 카멜레온처럼 욕망을 숨기는 것에 탁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백화점에서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그 정도로 입에 욕을 담는 것 자체가 자신답지 않았다.
왜?
언제부턴가 가슴속 심연에서 올라오는 알 수 없는 유혹의 목소리.
이것은 착각이 아니었던 것일까?
김동운은 서랍에서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이제는 세 개밖에 남지 않은 상황.
이 주사기에 든 액체의 정체는 뭘까.
홍대 클럽에서 만난 백인에게서 구입한 약물.
마약이라고는 손을 데본 적 없었지만, 그날은 불가항력이었다.
유쾌한 외국인과의 그날은 즐거웠고, 백인미녀까지 안겨 주며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냈다.
만취한 상황에서 그가 내민 주사기.
당연히 김동운은 그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김동운의 의사에 반해 그대로 주사기를 팔뚝에 꽂아버렸고, 약물의 효과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대단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기운과 하늘을 걷는 것 같은 황홀함.
백마를 눕히고 밤새도록 관계를 했음에도 전혀 지치지 않았고, 무슨 일이라도 전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눈을 뜬 김동운은 그 외국인을 다시 찾았고, 약물에 대해 물었다.
그건, 마약이 아니야. 그리고 약에 대한 것은 절대로 발설하면 안 돼.
정말이라니까? 못 믿겠으면 당장 가서 약물검사를 해 보던가.
뭐? 더 구하고 싶다고? 생각보다 비싼데?
김동운은 결국 1억을 지급해 열 개의 주사기를 구매했다.
그때 명함을 건네며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아끼고 아끼며 주사하던 약물.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된 김동운은 주사기를 팔뚝에 꼽았다.
주우욱.
주사기에 든 약물이 몸속으로 들어오며 환각과 같은 작용을 한다.
세상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 같은 착각.
아니, 확실히 초록색으로 보이고 있다.
그리고 전신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미증유의 기운.
온몸에 힘이 넘치고 기분이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한다.
더불어 강인한에 대한 분노는 광기로 바뀌어 갔다.
“씨발놈... 그냥 가서 확 죽여 버려?”
지금 상태라면 그놈 정도는 한 주먹으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백화점에서의 이상연과 그 옆에 있던 죽여주는 여자가 머릿속에서 아른거린다.
“아니지. 크크큭... 그런 고아새끼를 죽이는데 내 손을 쓸 필요는 없지. 살인자가 될 수는 없잖아?”
김동운은 스마트폰을 들어 그날의 외국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어차피 이 약을 구하려면 언제고 연락을 해야 하긴 했다.
***
띠링.
제임스는 휴대폰을 울린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호~ 고객님께서 드디어 중독증세를 보이는 건가? 이 고객님은 제법 오래 걸렸어~”
그런데 퓨리다크니스 라이트버전 이외에도 다른 의뢰가 들어왔다.
“누구를 손봐주고 싶다고?”
뭐,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3등급 퓨리다크니스를 10분의 1로 희석한 라이트버전이라도 작용되는 반응은 대단하다.
운동선수는 간간이 자신의 한계점을 초월하여 신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그때 작용하는 초월에 대한 감각은 쉽게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다시 한 번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쉽지만은 않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찾게 되는 도핑.
도핑을 통해 초월을 엿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약물이 퓨리다크니스다.
그 감각을 떠올리기 위해 마약처럼 계속 찾게 되는 것이다.
문제라면 아무리 라이트버전이라도 준비된 자가 아니라면 요괴화가 진행된다는 것.
그만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단단해져야 퓨리다크니스에 견딜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미 주사를 한 시점에 인간의 신체는 변화를 하는데, 이 변화를 최대한 억누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완벽하게 컨트롤 했을 때에는 퓨리타크니스를 주사하지 않더라도 50프로의 효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100프로 효율에 대한 감각을 잊지 못하고 계속 찾는 것이지만.
제임스는 사냥꾼으로 활동하며 점점 회의감을 느꼈다.
결국은 약물에 이기지 못하고 요괴로 변하는 사냥꾼들을 본 탓이다.
그저 요괴라고 치부하기엔 이성조차 없는 마물이라 하는 것이 옳겠다.
그렇게 변한 사냥꾼 마물은 사냥꾼 웹에 등록이 되어 수배가 된다.
그리고 다른 사냥꾼들에 의해 사냥을 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그것이 사냥꾼 웹 운영자의 의도인지 무엇인지는 모른다.
다만, 제임스는 이것을 이용해 자기 이득을 챙길 뿐이다.
사냥꾼 웹에서 구입한 퓨리다크니스를 민간에 유통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걸리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제임스는 비싼 퓨리다크니스를 이용해 수없이 연구를 거듭했고, 라이트버전을 만들어냈다.
10프로의 효율이기에 민간인이 사용해도 요괴화를 최대한 지연시킬 수 있고, 그동안 라이트버전을 계속 공급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리고 요괴화가 진행되어 문제를 일으키면 사냥을 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미 요괴가 된 인간의 신상은 제일 잘 알고 있기에, 어김없이 그의 손에 들어온다.
재수가 좋으면 마물이 되기 전, 그 중간에 한 번 더 벌이를 할 수 있는데.
지금과 같은 살인 의뢰이다.
광기가 도지긴 했지만 아직은 이성을 잡고 있기에 차마 자기 손을 쓸 수 없어 의뢰를 해 오곤 한다.
죽여야 할 이유 따위는 크지 않다.
그저 광기로 인해 분노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으음~ 한 번 더 라이트버전을 팔고, 의뢰받아 주고 나면 사냥할 타이밍이 얼추 맞겠는데?”
이 손님은 삼박자가 딱딱 들어맞는 완벽한 vip였다.
이미 이성이라는 것이 반은 날아간 덕에 의뢰 금을 두둑하게 불러도 동의할 것이다.
불만 따위는 퓨리다크니스 라이트버전을 10+2로 제공해 주면 얼씨구나 좋다고 받아들일 터.
제임스는 고객님의 전화번호를 누르고는 귀로 가져간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폴더 형식의 휴대폰.
관리하는 손님마다 각각 다른 대포폰을 사용한다.
귀로 가져간 대포폰의 뒷면에는 ‘김동운 고객님’ 이라는 글자가 친절하게 쓰여 있었다.
사냥이 끝난 후에는 이 폰도 고객님과 함께 매장 될 거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