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65화 (65/297)

〈 65화 〉 2. 사냥꾼.(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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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36)

대한 주류.

술을 나르며 돌아다니는 지게차가 창고를 쉼 없이 들락날락거리며 트럭에 싣고 있다.

거친 시멘트가 깔린 공터를 지나 안으로 쭉 들어가자 2층짜리 조립식 건물이 나온다.

강일파에서 하는 사업 중 하나.

강북 스카이클럽 일대의 술집 대부분은 강일파가 운영하는 대한 주류에서 술을 공급받고 있다.

지금은 상명파가 점거했던 구역까지 확대된 상황.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는 것보다는 조금은(?)비싸게 술을 공급받는 것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다른 구역에서 간간이 넘어오는 조직들의 손길을 피할 수 있기에 업소의 사장들은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물론, 일반 업소이외의 룸빵이라던가 클럽 등, 비싼 주류를 파는 곳은 영업부장이라는 직책으로 강일파 조직원을 고용해야 하는 조건이 붙기는 한다.

사실 이것도 구상두가 사라지고 상명파가 강일파로 흡수되면서 조금은 합리적으로 변한 것이다.

구상두파와 상명파가 합쳐져 강일파로 통합되면서 실질적으로 강북은 강일파의 주 무대라고 보면 된다.

어느 정도 콧방귀 끼던 조직들도 거대해진 강일파의 위세에 숨죽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구상두를 물리치고 두 조직을 합친 인물이 뒤에 있음에야...

조립식 건문을 열고 들어가자 조직원이 아닌 직원들이 정신 사납게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직원의 숫자는 남자 셋과 여자 둘.

요즘 밀려드는 주문에 눈 코 뜰 새 없는 직원들은 강인한의 등장에도 신경 쓰는 이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모습을 한차례 바라본 강인한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이를 본 여직원 중 한 명이 다급하게 묻는다.

“자... 잠깐만요. 어떻게 오셨어요?”

강인한이 여직원을 바라보던 찰나, 쿵쿵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반짝이는 두상의 나대명이 허겁지겁 내려오고 있던 것.

“사장님?”

“아... 내 손님이시다. 하던 일들 해.”

빠르게 말을 끝낸 나대명이 앞으로 다가와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이쪽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반질반질한 머리에 송골송골 맺힌 땀.

그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정신없이 일에 열중하던 직원들도 나대명의 그런 모습에 하던 일을 멈추고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큰 키에 한눈에 보기에도 운동을 한 듯 체구는 좋았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강아지를 연상시키는 순둥순둥한 얼굴.

‘잘생겼다.’ 정도는 아니지만 꽤 호감이 가는 인상이기는 하다.

그런데 저 청년이 누군데 사장님이 저리 공손할까?

직원들은 조직원이 아니지만, 나대명의 진짜 정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은 구상두의 뒤를 이어받아 대한 주류의 사장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조직폭력배를 이끄는 두목.

아무리 폭력조직이라도 일반인을 상대로 험한 상황을 발생 시키지는 않는다.

이렇게 합법적인 일과는 확실하게 선을 그어 놓는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2층과 관련된 것은 확실한 선이 있기에 이내 관심을 거두고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전화라도 주셨으면 미리 나왔을 텐데 말입니다.”

그들은 그저 주류회사의 직원들일 뿐이다.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월급을 받으려면 월급 값만 하면 될 일이었다.

***

2층으로 올라서자 조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고개를 숙여 온다.

나를 모르는 이들도 나대명과 다른 조직원에게 들었는지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다소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주며 나대명이 안내하는 사장실로 들어왔다.

“조직원들이 드나들어도 괜찮아요?”

“건물 뒤쪽에 2층으로 올라오는 입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 그래도 의외네요. 주류회사를 하고 있을 줄이야.”

사무실이 이런 주류회사의 2층에 있는 줄은 몰랐다.

“이전 사무실을 비우면서 임시로 쓰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사무실을 따로 구할 예정입니다.”

“아... 그렇군요.”

“이곳 주류법인도 사모님이 넘겨주시면서 제가 맡고는 있습니다만, 회사의 대표를 형님으로 올리시는 것은 어떨는지...”

나대명에게 이상연은 형수님에서 사모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래도 형수님이라고 하면 구상두와 연관이 되기에 그렇게 바꾼 듯했다.

“네? 이 회사대표요?”

“사모님이 넘겨주시기는 했는데, 대표는 형님이 들어가시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왜요? 저는 스카이클럽에서 나오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만.”

“이런 말씀드리기는 그렇지만, 형님에 대한 소문은 이미 강북전체에 났습니다.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형님이 아니면 사실... 강일파가 감당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큽니다. 조응수이사님도 형님이 아니었으면 조직을 합치지도 않았을 겁니다.”

멀쩡한 회사를 준다는데 혹하는 마음이 생기는 반면, 깡패조직의 보스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다소 꺼림칙했다.

그 기색을 읽었을까?

나대명이 다급하게 말을 잇는다.

“형님은 지금처럼 그저 뒤에 계셔주면 됩니다. 더러운 일은 저희가 다 할 테니 그저 회사를 운영 한다 생각해주십시오.”

“저는, 회사를 운영해 본 적도 없는데요?”

“저 같은 놈도 하는데, 어느 정도 지켜보시면 어려움 없이 하실 수 있습니다.”

흠... 당연히 군침이 도는 일이기는 한데... 이렇게 합법적인 일도 하면서 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일까란 생각이 든다.

그냥 깡패 짓을 그만두고 회사를 운영하면 안 되는 건가?

“그냥 조직운영 말고 회사운영하면 안 됩니까?”

너무도 순진한 물음이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나대명의 답변을 들으며 생각보다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 찾아와 때려 부수지는 않겠지만, 조직이 힘을 잃으면 그 자리를 차지한 놈들이 업소들에 찾아가 거래를 끊어 버리고 회사를 망하게 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결국은 이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려면 강일파가 유통하는 지역을 꽉 잡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의 말을 듣고 고민정도는 해 보기로 했다.

“흐음... 일단 생각은 해 볼게요. 그나저나 알아 본 것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놈... 생각보다 더 한 쓰레기 같더군요. 오성건설 정은식. 납치 강간에 대한 혐의도 몇 번 있었는데, 운 좋게도 증거 불충분으로 모두 풀려났습니다.”

그 말에 절로 구겨지는 얼굴.

하긴 윤지를 한 번 묻어 봤던 놈이 또 그런 일을 벌이지 말란 법은 없지.

나대명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여성들이 모두 실종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중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역시 그놈은 쓰레기 새끼가 맞다.

“혹시... 형님 아시는 분과 연관이라도...?”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본 탓일까?

나대명의 표정에는 다소 조심스러운 표정이 드러난다.

“밝혀낼 방법은 있습니까?”

“경찰도 찾아내지 못한 증거를 찾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과연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란 생각을 했는데, 그런 놈이라면 죽여 버린다 해도 죄책감조차 들지 않을 것 같다.

“다른 방법은요?”

나조차 음산하게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낮게 깔린다.

이미 조폭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비록 정의의 사도는 아니지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은 도가 넘었다.

놈에 대한 살의가 절로 일어났다.

정염귀에게 강간당하고 목숨을 잃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트라우마 처럼 떠오른다.

“계획을 잘 짠다면...”

조금은 머뭇거리는 나대명의 모습.

“사실대로 말해 보세요. 쉽지 않은 모양이죠?”

“아무래도... 놈과 연결된 조직이나 경찰들이 있다 보니 조금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형님께서 원하신다면 어떻게든 성공 시켜 보이겠습니다.”

나대명이 손수건으로 정수리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냈다.

그 모습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 육체 능력이라면 가능하지는 않을까?

지금 심정으로는 인간으로서 저지르지 말아야할 선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놈의 동선을 주기적으로 파악만 해주세요. 절대, 섣불리 나서지는 말고요.”

각오를 다지자 진한 살의가 머리까지 뻗쳐오른다.

‘정은식이라...’

이것은 놈에 대한 단죄다.

나는 놈을 인간이 아닌 요괴로 대할 작정이다.

인간의 탈을 쓴 요괴만도 못한 놈.

“알겠습니다.”

***

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두 명의 사내.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둘은 놀랍게도 얼굴마저 똑 닮아 있다.

창백한 피부와 나른한 눈동자.

다소 말라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드러난 팔은 자잘한 근육들이 촘촘하게 갈라져 있다.

이들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건 귀에 걸린 피어싱의 유무였다.

“제임스라는 놈은 그냥 두고 볼 거야?”

쌍둥이 중 피어싱을 한 이가 입을 열자 고개를 흔들거리며 갸웃거리는 다른 쌍둥이.

“어어~ 조금 더 봐도 될 것 같아. 퓨리다크니스를 희석해서 유통하다니 꽤 유능하잖아.”

“그건 그래. 그런데 너무 확대시키는 것 같은데? 이러다간 괜히 곤란해 질 수도?”

“킥킥킥~ 그래도 알아서 실험까지 해 주는데 조금 더 지켜본다.”

“리엔님이 알면 정말 곤란한데...”

“멍청아. 혹시 알아? 그놈이 성공이라도 하게 되면 오히려 칭찬받는다고! 그때는 그놈을 눈감아준 것 따위는 신경도 안 쓰실 걸?”

“으으... 그래도 성공 못하고 걸리면 버림당할지도 모르는데.”

“킥킥킥~ 대신 성공하면 큰 선물을 받을지도 모르지.”

“오오~ 그건 기대된다.”

“킥킥킥~”

“큭큭큭~”

두 사내는 서로를 향해 웃으며 사이트의 회원 구매내역을 바라보며 키득거린다.

제임스.

3등급 퓨리다크니스 10병 구매.

제임스가 퓨리다크니스 라이트버전을 유통하며 이 쪽과는 관계없는 일반인이 요괴가 되는 것 따위는 이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리엔의 마음에 들 수만 있다면 더 한 짓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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