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2. 사냥꾼.(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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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39)
“허억... 허억... 허억... 쿨럭!”
피에 절여진 양손을 들어 올렸다.
거칠게 호흡을 내뱉으며 땅바닥에 너부러진 흑인놈과 저격수놈에게 시선을 던진다.
피... 피... 피...
두드려 맞아 죽은 두 놈의 몰골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더러운 놈들의 피로 물들어 버린 주변.
‘정말 이 일을 내가 저지른 건가?’
분명 놈들에게 목숨을 위협받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때려죽여도 되는 걸까?
갑자기 복부에서부터 꿀렁거리며 욕지기가 올라온다.
“우웨에에엑! 우웨엑! 우웨에에엑!”
목구멍을 때리며 올라오는 구토는 위액마저 나오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멈출 수 있었다.
빌어먹을.
“허억... 허억...”
살인.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정말로 사람을 죽이고 말았다.
알 수 없는 죄책감과 공포가 물밀듯이 밀려든다.
마치 깨워서는 안 될 것 같은 심연을 깨운 기분이다.
‘씨... 씨발! 안 죽였으면 내가 죽었어!’
나는 정당하다.
목숨을 위협받았고 죽이지 않았으면, 저 차가운 땅바닥에 드러눕게 된 것은 나였을 것이다.
저놈들은 거침없이 사람에게 총을 쏘고 살인을 일삼던 놈들이다.
쓰레기들을 손수 치워주었으니 나의 살인은 정당하다!
“크... 크크크크크... 씨발... 기분 좆같네...”
그리고...
아직 한 놈 남았다.
제임스.
아니, 그놈 이외에도 죽어야 할 쓰레기는 한 놈이 더 있었다.
정은식.
두 놈의 쓰레기를 치워 버렸는데, 두 놈 더 치워 버린다고 문제가 될까?
문제 될 것 없다.
***
강인한의 처리에 콜먼과 정윤을 보낸 제임스는 김동운을 불렀다.
이미 둘을 보냈기에 처리한 것과 마찬가지이기에 수금을 하면 될 일이다.
일반인을 죽이는데 받는 비용은 2억.
일반인도 등급이 있지만, 강인한의 경우는 고아출신의 연고 없는 놈.
아주 간단한 사냥감이기에 기본비용이면 충분하다.
터엉. 터엉. 터엉.
계단을 울리는 발자국 소리.
기다렸던 손님이 오는 모양이다.
발소리가 멈춤과 동시에 철문이 끼이익 하며 열린다.
“오~ 미스터 킴~”
어색한 얼굴로 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김동운.
“어어~ 제임스.”
보통은 근거지로 고객을 불러들이지 않지만, 내일이면 새로운 곳으로 이사하기에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면 사냥감이 될 터고.
“그동안 잘 지냈어? 거기 앉아~”
“그... 그래.”
쭈뼛거리며 제임스의 맞은편 의자에 앉는 김동운.
불타는 밤을 함께 보냈지만, 맨 정신으로 보니 어색한 기운이 감돈다.
“돈은 제대로 가져 왔나 보네?”
“어? 으응...”
“뭘 그렇게 풀이 죽어 있어?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건 아니지?”
김동운의 어깨가 짧게 움찔거린다.
“아... 아니야.”
“크크큭~ 그 강인한이라는 놈은 끝났어~”
김동운의 몸이 긴장으로 바짝 굳어온다.
직접 죽이라고 의뢰를 넣었지만, 정말로 죽여 버렸다니...
“곧 있으면 강인한이 죽은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 올 거다.”
“아... 그래... 무... 물건은?”
제임스의 파란 눈이 반달을 그렸다.
“물론, 여기 있지.”
제임스가 탁자 밑에서 상자를 꺼내 올리자 김동운이 날렵하게 상자를 낚아챈다.
“두 개는 서비스로 더 넣었다고.”
제임스의 말을 들으며 상자를 열어 확인했다.
라이트버전을 보는 김동운의 긴장이 풀리며 자연스럽게 입가가 말아 올려진다.
그런 의뢰를 넣은 후부터 여기까지 오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의뢰를 넣은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살인의뢰를 그렇게 거리낌 없이 넣을 줄이야.
그러나 약을 보자 잠깐이나마 들었던 죄책감도 훨훨 날아가 버린다.
“여.. 열두 개.”
하나에 천만 원이나 하는 것을 두 개나 서비스로 주었다.
김동운이 가방을 탁자에 올리며 제임스 앞으로 밀어 준다.
“우리 사이에 그 정도야. 마실 거라도 줄까?”
“흐흐흐~ 아니. 괜찮아. 오늘도 한 번 즐겨보는 건 어때? 내가 시원하게 쏠게.”
김동운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천 만원이 굳었다는 생각에 괜히 이득을 본 것 같았다.
제임스의 입가도 그를 따라 반원을 그린다.
그때, 계단을 울리는 발소리.
“어? 동료들이 처리하고 온 모양이야.”
왜 여직 사진을 안 보냈나 했더니 직접 와서 확인시켜 줄 모양이다.
“그... 그래?”
제임스의 말에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저질러 버린 일.
후회 따위는 자신을 좀 먹을 뿐이다.
끼이익.
지하의 철문이 열리며 제임스의 표정이 굳어진다.
제임스를 바라보던 김동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곤...
“허억!?”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김동운의 표정.
그곳에는 있지 말아야 할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김동운이 다급한 표정으로 제임스를 바라본다.
제임스 역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리고 있다.
“뭐... 뭐냐...? 네가 어떻게? 콜먼... 정윤은?”
이곳을 찾은 이는 죽어다 생각한 강인한 이었다.
***
놈들의 시체를 창고에 우겨넣고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깜댕이가 알려 준 주소지로 향했다.
지상 3층 지하 1층의 낡은 건물.
워낙에 외곽에 자리해서인지 주변에 인적이 드물다.
나에겐 오히려 좋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건물 앞에 낯익은 차가 한 대 눈에 들어왔다.
“김... 동... 운...?”
왜 여기에 김동운 차가 있는 거지?
“하하하하...”
그저 웃음이 나온다.
왜긴 왜겠어?
그 새끼가 날 죽여 달라고 의뢰한 놈이었겠지.
도대체 왜?
이유 따윈 상관없나?
분노가 극에 달하니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는다.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이 든다.
죽일 놈이 한 명 더 생기긴 했지만.
쓰레기 하나 더 추가될 뿐이다.
죽이라고 한 놈이나, 죽이러 온 놈이나 살인자이긴 마찬가지.
나는 성큼성큼 걸어 건물로 진입했다.
지하의 계단을 밟고 내려와 닫혀 있는 철문을 연다.
끼이익.
듣기 싫은 쇳소리가 들려오고.
마주 앉아 실실거리는 금발의 외국인과 익숙한 뒤통수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린 김동운이 나를 보고는 놀란 얼굴로 헛바람을 들이켰다.
죽었어야 할 놈이 찾아오니 상당히 놀란 모양이다.
빌어먹을 놈.
아무리 그래도 친구인데... 설마 살인 의뢰까지 할 줄이야.
싹수가 노란 놈은 뭘 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뭐... 뭐냐...? 네가 어떻게? 콜먼... 정윤은?”
놀란 얼굴로 물어 오는 금발의 외국인.
역시나 한국어는 현지인처럼 자연스럽다.
나는 살기를 담아 두 놈을 눈에 담는다.
“네가 제임스?”
“어떻게 내 이름을...?”
“깜댕이가 알려 줬다.”
“그럴 리가...! 콜먼과 만났는데 어떻게 이곳까지 온 거냐! 콜먼하고 정윤은 어디 있지?”
“응 그건 지옥에 가서 물어봐.”
단전에 웅크리고 있는 뇌전을 꺼내 양 팔로 흘려보낸다.
파직. 파작.
주먹위로 시퍼렇게 튀는 뇌전에 제임스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다.
“허억! 너 정체가 뭐야!”
놀란 제임스가 벌떡 일어나 의자를 집어 던졌다.
동시에 품에서 퓨리다크니스를 꺼내 들며 심장에 꽂아 넣는다.
“크크큭, 약쟁이 새끼들.”
나는 그대로 제임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옆으로 김동운의 놀란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넌 찌그러져 있어.”
나는 그대로 김동운의 면상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지나갔다.
“아아아아악!”
얼굴에 손바닥을 적중당하며 날아가는 김동운.
나는 놈을 외면하고는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었다.
그러곤 제임스를 향해 힘차게 뻗어낸다.
퓨리다크니스를 주입한 제임스가 주먹을 맞부딪혀온다.
주먹과 주먹의 충돌.
쩌어억.
“끄아아악!”
제임스의 주먹이 으스러지며 팔이 튕겨져 나간다.
놈이 비명을 내지르며 당황으로 물든다.
퓨리다크니스를 사용했다 해도 고통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법.
퍼억.
이어진 펀치가 놈의 턱을 후려쳤다.
덜렁.
턱이 빠진 놈의 금발을 움켜쥐고는 힘껏 던져 버렸다.
휘이익.
우당탕탕.
바닥을 구르며 너부러진 제임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턱을 잡아 고정시킨 그가 소리친다.
“잠깐!”
놈의 다급한 음성.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놈에게 뚜벅뚜벅 다가간다.
점점 일그러지는 놈의 표정.
“으으으... fuck!”
나는 그런 놈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 좆같겠지.
갑자기 찾아들어와 죽일 것처럼 덤벼드니 말이야.
나도 마찬가지였다고.
그러니 너도 그 기분을 느껴봐야 하지 않겠어?
“크크크큭...”
면상을 맞고 날아간 김동운이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피를 줄줄 흘리는 코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두려움에 찬 김동운의 애처로운 눈빛이 나를 향한다.
“이... 인한아...! 우웁... 퉤...”
후두둑.
내 이름을 부르던 김동운이 뱉어낸 핏덩어리에는 허연 이빨이 옥수수알맹이처럼 딸려 나왔다.
비싼 면상을 날려 주었지만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이 전이라면 보수해 줄 생각에 걱정이 들었겠지만, 곧 죽을 놈에게 그런 사치는 필요 없다.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마.”
“오... 오해야...!”
나는 오해라는 말에 피식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떻게 이 일을 오해라고 치부할 수 있는지, 놈의 뻔뻔함에 박수라도 쳐 주고 싶다.
“오해는 무슨. 구상두한테 나불거릴 때부터 알아봤어 새꺄.”
내가 그 사실까지 알고 있는 건 몰랐는지 눈동자가 데룩데룩 굴러간다.
그리고 은밀하게 시선이 자꾸 한 곳으로 쏠린다.
마치 뭔가를 찾는 것 같은 느낌.
놈의 시선을 따라 가 보자 나무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상자로 손을 가져가자 움찔하는 김동운의 모습.
그리고 턱을 잡고 삐질 거리고 있는 제임스.
놈은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하고도 무모하게 덤벼들지는 않고 있었다.
상자를 들어 뚜껑을 열어본다.
빼곡하게 들어 있는 주사기.
“퓨리다크니스?”
제임스의 몸이 덜컥거렸다.
퓨리다크니스는 나도 몇 번 봐서 알고 있다.
그런데 상자안의 퓨리다크니스는 색이 상당히 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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