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2. 사냥꾼.(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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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40)
김동운은 강인한이 상자를 집어 드는 것을 보며 절망했다.
퓨리다크니스.
이제는 저 약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말도 안 되는 육체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힘.
착각이라 생각했던 그 힘은 착각이 아닌 현실임이 분명했다.
제임스가 약을 주사하고 강인한에게 당해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움직임.
덩치 큰 저 백인을 힘들이지 않고 잡아 던지는 괴력까지.
날아간 제임스는 턱이 빠지고 얼굴이 피로 얼룩졌음에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회복력을 보이었다.
마치... 영화 속의 뱀파이어? 아니, 늑대인간인가?
초현실적인 상황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저 약을 주사하면 자신도 똑같은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이 생겼었다.
하지만 상자는 강인한의 손에 들어갔다.
강인한도 저 약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녀석도 약을 복용했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능력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한 손으로 사람을 수 미터나 날려 보낸단 말인가.
반면, 제임스는 연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직접적인 사냥에서 손을 놓은 것도 오래되었다.
그는 퓨리다크니스 라이트버전의 유통과, 거기서 파생되는 꿀사냥으로 돈을 벌어왔다.
그러다 보니 이런 긴장감이 실로 오랜만이었다.
정말 위험한 것들을 사냥하며 느꼈던 죽음의 공포가 그의 마음을 잠식해간다.
강인한.
옆에 멍청한 얼굴로 있는 김동운이 의뢰한 인물.
당연히 사냥꾼으로서 들어 본 적도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은 오싹할 정도로 살벌하다.
한눈에 보기에도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한 사냥꾼이 아니다.
도대체 저런 놈이 어디서 툭 하고 튀어나온 것이란 말인가.
세상에는 온갖 괴이가 존재하고, 평범하지 않은 인간들 또한 존재한다.
어쩌면 눈앞의 강인한이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냥꾼과는 괘를 달리하는 이들.
사냥꾼의 대부분은 그저 사연이 있는 자들이 이 세계에 발을 디딘 것뿐이다.
그리고 퓨리다크니스를 통해 초인이라는 영역을 맛본다.
어떻게 보면 약물에 의존하는 짝퉁 초인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강인한과 같은 존재들은 그런 짝퉁이 아니다.
자신들처럼 약물을 남용하다 마물이 되어 버리는 밑바닥이 아니라는 거다.
으드득.
그런 생각을 하자 절로 이가 갈린다.
말 그대로 선택받은 존재들.
세상은 그야말로 불공평하다.
자신이라고 처음부터 이런 쓰레기 같은 생활을 했겠는가.
그저 복수하고 싶었을 뿐이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요괴에게 말이다.
미친 이면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정신은 점점 퇴폐해져갔다.
많은 이들이 마물이 되었고, 한때는 동료였던 이들에게 하나둘 사냥당해 갔다.
그의 손에 죽어 간 옛 동지가 한둘이겠는가.
제정신으론 버틸 수 없는 세계.
사냥은 사냥꾼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수배된 괴이들도 거치적거리는 사냥꾼을 사냥한다.
이면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정말이지 피를 말리는 일이다.
어느덧 복수심은 점점 멀어져가고 생존에 대한 두려움만이 가슴속 깊이 각인된다.
이를 참지 못한 사냥꾼들이 결국에 사고를 저지른다.
‘내가 어떻게 버텼는데!’
제임스의 눈이 번들거렸다.
그리고 그의 손이 천천히 허리춤으로 향한다.
‘빌어먹을.’
직접 사냥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인데... 아직도 퓨리다크니스가 허리춤에 꽂혀 있지 않으면 불안하다.
물론, 복용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퓨리다크니스의 감각은 어느 마약의 유혹보다 더욱 유혹적이기에.
고개를 슬쩍 돌려 김동운을 눈에 담는다.
그의 허리에는 언제나 1등급 퓨리다크니스 1개 2등급 2개 3등급 2개가 준비되어 있다.
1등급은 자신에게 주사했다.
그는 3등급 두 개를 집어 든다.
이미 라이트버전으로 김동운의 요괴화는 진행되고 있을 터.
일반인이 3등급을 견디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두 개를 한 번에 주사한다면 당장에라도 요괴로 변할 소지가 충분하다.
휘익.
제임스가 단숨에 땅을 박차 김동운에게 뛰어든다.
“뭐... 뭐야!”
강인한이 아닌 자신에게 뛰어드는 제임스.
그 모습을 보며 김동운이 놀라며 몸을 들썩인다.
하지만 제임스의 속도는 일반인인 김동운이 어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푸욱.
“어...?”
반항도 하기 전 가슴에 꽂히는 두 개의 주사기.
제임스는 단숨에 퓨리다크니스를 밀어 넣는다.
“허업!”
이를 본 강인한이 제임스를 향해 뛰어 들었다.
제임스는 미련 없이 몸을 빼 내며 2등급 퓨리다크니스를 가슴에 박아 넣는다.
아무리 단련을 해 온몸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결정.
당분간은 절대로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하면 안 될 터다.
다행이라면 1등급과 2등급이기에, 그나마 3등급보다는 안정성이 우위에 있다는 것.
“크으으으으...”
제임스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터져 나온다.
동시에 빠르게 혈관을 타고 들어가는 퓨리다크니스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다.
온 세상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환상을 느낀다.
달려드는 강인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보다 그의 움직임이 정확하게 보인다.
날아오는 발차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옆으로 몸을 날려 굴렀다.
제임스가 몸을 굴린 곳은 책상이 있는 방향.
책상에 도달하자 서랍을 부수듯이 열어 재낀다.
드르륵.
서랍에서 그가 꺼내 든 것은 총.
만약을 대비해 항상 소음기를 달아 놓았기에 꺼내는 동시에 강인한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다가오던 강인한의 당황하는 눈빛.
제임스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퓨슛.
총구를 빠져나온 총알이 공기를 밀어내며 강인한에게 다가들었다.
순간, 강인한의 고개가 옆으로 숙여진다.
‘총알을 피해?’
완벽하게 피한 것은 아닌지 그의 볼을 스친 붉은 실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해도 지척에서 쏜 총알을 피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제임스는 옆으로 한 번 더 몸을 굴리며 총구를 겨눈다.
퓨슛.
“어...?”
분명히 완벽한 연계였는데, 어느새 강인한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황급히 고개를 올린 제임스의 눈에 도약한 강인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4미터가 조금 안 되는 천장고지만 그 정도라면 도약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강인한의 발꿈치가 제임스를 향해 찍어 눌러 온다.
다시 한 번 몸을 굴리며 피해내자 애꿎은 책상 한쪽이 부서져 나간다.
퍼거걱.
퓨리다크니스를 두 개나 주사했음에도 놈의 공격을 제대로 인식조차 할 수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두 주먹에서 스파크를 튀기는 시퍼런 기운은 오싹하기 까지 하다.
강인한은 공격이 실패하자 바로 따라붙으며 그 무시무시한 주먹을 뻗어온다.
처음보다 더욱 선명해진 푸른 뇌전.
파지직. 파직.
어느새 다가온 주먹이 그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흐아악!”
차마 맨몸으로 막을 생각은 못 하겠고 쥐고 있는 총으로 공격을 막아 냈다.
우직.
총이 우그러지며 튕겨 나갔다.
하지만 강인한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언제 다가왔는지 비어 있는 옆구리에 틀어박히는 주먹.
퍼걱.
으드득.
“크허억!”
갈비뼈 몇 대는 나갔는지 느껴지는 고통이 어마어마했다.
퍼억.
이어서 발에 채여 수 미터나 나가떨어진다.
쿠당탕탕.
“커어억... 커헉...”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황에서 제임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도... 도망가야 해.’
그의 눈이 뒤 쪽의 비상구로 향했다.
‘도망갈 수 있을까?’
만약에 미리 결계를 쳐 놓았다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결국은 등을 보이게 되는 결과만 남을 뿐.
저 정도의 능력을 지닌 이가 결계조차 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제임스의 눈이 김동운에게로 향했다.
‘역시!’
고통으로 꿈틀거리던 김동운이 비척거리며 일어난다.
불긋. 불긋.
혈관이 마구 팽창하며 지렁이처럼 튀어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놈이 마물이 되면 우선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자신이 아닐 터.
자신은 퓨리다크니스를 복용한 덕에 우선적으로 강인한부터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크아아아아!”
저 포효가 지금처럼 기쁘게 들리는 것은 처음이다.
원액을 두 개나 주사했기에 마물의 전투력은 더욱 뛰어날 것이다.
전신이 붉어진 김동운이 충혈된 눈으로 강인한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임스에게 다가가던 강인한은 김동운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적중당하며 튕겨져 나갔다.
끊어진 연처럼 날아간 그를 받쳐준 것은 단단한 콘크리트.
쿠웅.
그 충격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강인한과 충돌한 벽이 쩌저적 하고 갈라진다.
그 사이 제임스가 빠르게 일어나 김동운의 뒤로 이동했다.
제임스의 손에는 또 하나의 퓨리다크니스가 들려 있다.
푸욱.
제임스는 망설임 없이 김동운에게 나머지 퓨리다크니스를 주사하고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잠시 김동운의 시선이 제임스에게 향했지만, 이내 강인한을 향해 몸을 날린다.
“크아아아! 강인한!”
놀랍게도 아직은 정신이 있는지 김동운의 입에서 강인한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김동운이 몸을 일으키는 강인한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마물화가 진행되며 1.5배는 커진 주먹이 흉흉한 기세로 날아든다.
강인한은 그 공격을 밑에서 쳐 올려 방향을 틀어 버린다.
퍼거거거걱.
빗겨나간 공격이 벽을 긁고 지나가며 긴 크렉이 생기며 움푹 패었다.
그 와중에도 김동운의 몸은 조금씩 덩치를 불리고 있다.
눈빛 또한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주둥이에서는 타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크크큭. 그래. 완전히 요괴가 되었네?”
그 모습을 보는 강인한의 입가가 길게 늘어진다.
사람의 모습보다는 요괴의 모습이 죽이는데 거리낌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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