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2. 사냥꾼.(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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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42)
나는 인간의 형상을 잃어버린 두 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냥꾼 웹의 운영자를 잘 아는 것처럼 주절거리던 제임스의 정보는 별다른 영양가가 없었다.
다만, 사냥꾼 웹이 정의로운 신념하에 운영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정말 제임스를 처리한 것에 불만이 있다면 알아서 찾아올 거라는 생각이다.
충분히 위협이 되는 일 일진대 별다른 감흥은 없다.
그런 것에 겁먹어 병신처럼 있었더라면 눈앞의 덩어리는 내가 되었을 테니.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피에 절어 있는 두 주먹.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크크크크큭...”
자조적인 웃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이런 쓰레기들을 치워 버렸으니 정의구현이라는 표현이 맞다.
정의구현을 하고 죄책감 따위로 나를 채찍질할 필요는 없다.
그 건 정말 쓸 대 없는 심력의 낭비일 뿐이다.
나는 계속해서 살인에 대한 합리화를 시킨다.
“씨발...”
털썩.
차가운 지하의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천창을 바라본다.
분명히 올바른 일을 했음에도 자기 합리화라는 마법은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은 사람인 모양이다.
하루나절에 네 명을 죽여 놓고 정상이라면 그야말로 사이코패스겠지.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속이 울렁거린다.
안가에서 그렇게나 올렸음에도 비어 버린 위는 계속해서 욕지기를 내뱉는다.
“꺼억... 꺼어억.. 크흡... 컥컥...”
그래 봤자 나오는 것은 쓰디쓴 신물.
쓰레기들을 없애버렸는데 도대체 왜 기분이 이렇게 좆 같은 거야!
두 고기 덩어리의 모습에 과거의 기억이 투영된다.
정염귀에게 한낱 고기 덩어리로 변해가던 부모님의 모습.
“으아아아악!”
거친 고함이 지하를 쩌렁쩌렁 울렸다.
흐릿하게 지워 이성을 유지하던 정신이 무너질 것만 같다.
너무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이 내 가슴속 짐승을 울부짖게 만든다.
“크아아아아! 죽여 버린다! 으아아아!”
그렇게 고독한 짐승은 코를 쑤시는 혈 향속에서 끈임 없이 포효했다.
정염귀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면서.
***
하나 남은 이성을 애써 부여잡고 피를 닦아낸다.
전신에 물을 뿌려 핏자국을 지우지만 진득하게 들러붙은 피는 제대로 닦여지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고 정욱아저씨에게 문자를 보낸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하듯 창고에서 저지른 일과, 이곳에서의 일을 적어 보냈다.
훈련하는 동안 친분을 꽤 다지긴 했지만, 이후의 판단은 아저씨가 알아서 하겠지.
어쩌면 경찰에 넘겨질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뒷수습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걸리게 될 터.
수지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겠지만, 지금 이 모습을 그녀에게 보이기 싫었다.
반인반요.
완전한 인간은 아니지만 순수한 그녀에게 나라는 먹물을 묻히는 것은 죄악이다.
수지가 살아온 세월 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추악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거울에 비치는 살인마의 얼굴.
당장에라도 상연누나와 수지의 푸근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죽은 듯이 잠을 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그녀들의 곁으로 가지 못하고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한다.
쏟아지는 비는 나에게 드리운 더러운 얼룩을 전부 씻어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정욱아저씨에게 무책임한 문자를 덜렁 보내고 스마트폰의 전원을 꺼 버렸다.
지금쯤 불이 나도록 내 전화번호를 두드리고 있겠지.
조금은 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은 것 같은 느낌.
서로의 복수를 위해 협력하는 관계이면서도 나는 그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투영시켰다.
복수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복수는 자신이 할 테니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
아저씨의 그 마음은 알게 모르게 전해지고 있었다.
무뚝뚝한 얼굴 안 걱정이라는 주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안타까움이라는 씁쓸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좆 같이도 쏟아 붙는구나...”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의 마음이 보인다.
이제는 색이 아닌 글자를 써 내려가듯 사람들의 마음이 보였다.
경계.
장대비를 맞으며 큭큭 거리며 웃는 나에게 보내는 마음들이다.
비웃음.
초라하게 걷는 내 모습이 우습게도 보였나보다.
강남역을 지나는 내 발걸음의 눈앞에 한 뺀질이가 늘씬한 여성에게 우산을 씌우며 자신의 외제 차에 태우며 보내는 감정이다.
에스코트를 받아 차에 탑승하던 여성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로 향했다.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향한 혐오.
‘지랄... 별것도 아닌 년 놈들이?’
겨우 B사의 5시리즈 세단으로 저따위 눈빛이나 보내다니 가소롭기 그지없다.
나는 강북제일의 조직에서 은연중 보스로 인정받고 있다.
스카이클럽 매출의 일부분도 내 수중에 쌓이고 있었고, 내 결정 하에 강북전체에 술을 유통하는 회사까지 소유할 수 있다.
저 딴 일반인 따위는 상상도 못 할 초인적인 능력까지 나에게는 있었다.
그런데 감히 나에게 저따위 눈길을 보내다니.
순간적으로 열이 뻗쳐 두 년 놈들을 땅바닥에 패대기치고 싶었다.
그런 나와 시선이 마주친 두 년 놈들이 움찔하며 황급히 차의 시동을 걸었다.
부아아앙.
시동을 걸자마자 사라지는 5시리즈.
운전석의 창문이 내려가며 주먹이 내밀어졌다.
그리고 힘차게 뻗어지는 중지.
FUCK YOU!
“저... 씨발 것들이?”
순간 욱해서 달려 나가려던 나는 겨우 마음을 다스리며 심호흡을 했다.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내 감정이 생소하게 느껴진다.
‘씨발... 정말 사이코패스야!?’
살인이라는 것을 통해 정말로 사이코패스기질을 개화하기라도 한 걸까?
벅찬 숨을 내뱉으며 머리를 털어낸다.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 같다.
단전부위에 웅크린 뇌기가 꿈틀거리며 으르렁 거린다.
지금, 이 기분을 식힐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 열기를 식히지 않고는 절대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그리고 성큼성큼 이 열기를 해소할 곳을 향해 걷는다.
***
예전보다 성세가 줄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텐프로.
보통은 대한민국 상위 10%의 미모를 가진 여성들이 종사한다 해서 텐프로라고 알고 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사실 미모 상위 10%라면 특별하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음이 분명하다.
텐프로와 이십프로의 믹스시스템인 쩜오(15%)라면 몰라도.
텐프로라 함은 매니저가 가져가는 수수료가 10%라고 해서 텐프로 라고 불리게 된 것이 정확한 이야기일 것이다.
즉, 메니저가 수익의 10%로 밖에 가져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그만큼 그 여성의 미모가 받쳐 주기에 우대를 해 준다는 뜻일 거다.
말 그대로 연예인급.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준 연예인급의 아가씨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고 사회 초년생 여성들의 유망직종(?)으로 취급 받기도 한다.
제대로 된 스폰서를 잡게 된다면 신분상승도 꿈만은 아닐 테니 말이다.
실질적으로 열에 두 세 명은 한 번쯤 화류계 경험이 있다고 하니, 그 조사가 잘못되지 않았다면 유망직종(?)임에는 분명할 터다.
지금은 텐프로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아직 살아남은 곳은 그야말로 추리고 추린 정예들만이 모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살아남은 업소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큰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강남의 돈을 제대로 쓸어 담고 있는 것.
당연히 업소의 이권에는 조폭이 엮이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고.
강남의 열 개 텐프로 중 다섯 개나 되는 업소가 흑곰파의 관리 하에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개는 흑곰파 이외의 조직이 갈라먹는 실정.
흑곰파가 전부를 먹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았으나, 음지라는 것이 생각보다 양지의 개입을 많이 받는다.
아무리 흑곰파의 위세가 대단하다고는 해도, 못이 너무 튀어나오면 망치로 두드리는 게 본능인지라 적정선 정도는 지키는 것이 조직을 오래 운영하는 노하우인 것이다.
이곳 비너스도 흑곰파가 관리하는 업소 중 하나이다.
경기침체에 맞물려 어중이떠중이는 줄어들었지만 진짜 큰 손들은 여전히 찾아오는 곳.
그렇다고 매일 같이 풀 방을 채울 수만은 없었고, 특히나 오늘처럼 장대비가 내리는 날은 더욱 심했다.
“에이~ 쓰바. 비 오는데 하루쯤은 쉬어도 되는 거 아냐?”
방대식은 3년차 흑곰파 조직원으로 비너스의 정문에 바짝 붙어 앉아 비를 피하며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댔다.
보통 쩜오나 그 이외의 싸구려 업소는 정말 갓 들어온 햇병아리들이 문지기를 하거나, 적당한 양아치들을 세워 놓고는 한다.
하지만 이곳은 텐프로라는 위상에 걸맞게 3년차 조직원인 자신이 문지기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계집하나 잡아 놓고 굴리면 제법 괜찮은 벌이가 되겠지만, 그런 능력은 없었기에 2년이 지나 3년차에 접어들었음에도 업소의 수분장이나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에 비 사이를 가로지르며 다가오는 남성이 들어왔다.
“저건 또 뭐야...? 설마, 여기로 오는 거야?”
설마 하는 그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정확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
대부분 손님들은 고급 차를 몰고 오기에 저런 식으로 얼쩡거리는 것들은 백이면 백 이곳이 텐프로라는 것조차 모르는 놈들이다.
아니면 극소수에 해당하는 정신 나간 패배자들이라던가.
그런 놈들은 그저 매가 약이다.
안 그래도 장대 같이 쏟아지는 비 때문에 꿀꿀했는데, 샌드백을 자처하는 놈이 제 발로 찾아들고 있으니 괜한 기대감마저 생긴다.
방대식은 앉아 있던 의자에서 육중한 몸을 일으키며 샌드백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안 그래도 더러운 인상을 최적화로 맞추어 일그러트리고 가슴을 쭉 내밀어 몸을 부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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