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눈에는 다보여-72화 (72/297)

〈 72화 〉 2. 사냥꾼.(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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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43)

쏴아아아아.

비를 뚫고 오는 샌드백의 모습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비에 쫄딱 젖은 탓인지 옷이 바짝 들러붙었는데, 은연중 보이는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다.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지는 샌드백의 모습.

막상 앞에 도달한 샌드백은 키도 제법 크고 몸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균형이 잡혀 있다.

흑곰파 3년차면 한창 운동으로 값어치를 올릴 시기이기에 샌드백의 몸이 얼마나 대단한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이종격투기 대회까지 나갔던 경력도 있었다.

‘씨발... 이 새끼 뭐야?’

고개를 살짝 삐딱하게 기울이며 바라보는 샌드백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제법 순박하게 생긴 호감형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눈동자는 살벌하기 그지없다.

‘무슨... 눈이...?’

사냥하기 직전 최 상위 포식자의 눈빛을 닮아 있다 느껴졌다.

단숨에 기세로 압박하려던 방대식은 내뱉으려던 말도 잊은 채, 껌뻑거리며 사내를 바라봤다.

“뭐 해요. 손님 왔는데.”

“네... 네? 아... 아니. 뭐라고? 손님?”

당황한 덕에 말까지 더듬는 참사를 일으키고 만다.

방대식은 혹시 누가 있나 싶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주위를 확인했다.

저 뒤쪽으로 주차장의 뒤통수만이 보일 뿐이다.

이 쪽팔린 모습을 누군가가 봤더라면 쪽이란 쪽은 다 깔 뻔했다.

“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온 거야? 다른 데 가서 놀아라.”

최대한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려 했던 방대식은, 본능이라는 직감 하에 저도 모르게 나긋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텐프로 아니야? 여기 유명하다 들었는데.”

방대식의 반말에 반말로 응대하는 사내.

비록 조금은 쫄(?)았었지만, 방대식은 강남 최고의 조직 흑곰파의 조직원이다.

사내의 반말에 그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어진다.

“좋은 말로 할 때 가라.”

그런데도 사내는 전혀 위축되지 않고 말을 지껄였다.

“하아...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손님한테 이따위로 대해도 돼?”

그리고 완전히 선을 넘어 버렸다.

방대식이 당장에라도 주먹을 휘두를 듯 위압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이 개새끼가. 사람 말이 좆 같이 들리나 보네?”

***

비너스의 수문장 역할은 부장 세 명이 번갈아 가며 한다.

그리고 그 위에는 상무.

보통, 조직의 5~6년차 이상은 되어야 기대라도 할 수 있는 자리다.

더군다나 쩜오나 기타 룸빵의 상무가 아닌, 텐프로의 상무라는 자리는 정말 웬만한 영향력으로는 맡을 수조차 없다.

최소 중간간부 이상은 되어야 맡을 수 있는 자리.

그리고 그 위로는 텐프로 다섯 개를 관리하는 이사가 있다.

물론, 흑곰파의 업장은 강남최고의 클럽 투썸부터 해서 수많은 업소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최고의 자리를 꼽으라면 텐프로의 이사일 것이다.

그만큼 제일 큰돈이 들어오는 업소라는 말이다.

이사가 업소를 방문하는 경우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이고, 비너스의 실세는 상무인 권혁수라 할 수 있겠다.

비너스는 텐프로답게 직원의 수만 해도, 아가씨 포함 백 명이 넘어간다.

예비 룸 포함 25개의 룸이 있었고, 실장만 열 명이상이 유지되었다.

아가씨만 해도 초특급으로 80명 이상을 항시 유지했으며, 웨이터만 40명에 주방직원도 다섯이나 된다.

거기에 더해 주차장 직원까지 있었으니, 말 그대로 하나의 중소기업이었다.

그런 기업의 사장이나 마찬가지인 권혁수.

권혁수의 귀에 웬만한 소란이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정신 나간 타 조직의 꼬장이나, 큰 손들의 호출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그의 사무실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오늘 매상이 영 시원찮은 상황에 인터폰까지 울리자 인상이 와락 일그러진다.

큰 손은 없고 애매한 조막손들밖에 없는데 어떤 놈이 찾는지 벌써부터 짜증이 슬금슬금 몰려든다.

“뭐야.”

­사... 상무님... 저... 전 주차장인데요. 크... 큰일 났습니다.­

어차피 이름을 알 턱이 없기에 자신을 주차장이라 말한 직원.

“뭐가 큰일인데?”

­부... 부장님들이 떡이 되고 있는데요...­

부장들이 떡이 되고 있다니?

황당한 주차장의 말에 권혁수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진다.

“씨발. 무슨 개소리야?”

지금의 보스 오대석이 흑곰파를 잡은 이후 감히 영역을 침범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강남의 어둠은 흑곰파의 시대나 마찬가지였다.

세력이 커지면 자연적으로 밑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생기는데, 흑곰파 간부들은 그런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흑곰파 보스 오대석은 말 그대로 괴물.

사십 대 중반이 무색하게 전설이라 불릴 정도의 격투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일례로 한차례 반란을 일으켰던 넘버 투와 조직원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진 일이 있었다.

그 사건을 목격한 몇몇 조직원들이 말한다.

몇 개의 칼 빵을 몸에 박히고도 서른이 넘는 놈들을 전부 때려잡던 모습을.

그리고 이튿날 오대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칼빵 맞은 몸을 이끌고 모든 조직원들을 소집해 경고를 했다.

불사신.

그 때부터 오대석에겐 불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부... 부장님들이 두드려 맞고 있습니닷!­

그런 흑곰파에 대적하는 조폭이라니.

“뭐라고!? 어... 어디 놈들이야!”

버럭 소리를 지른 권혁수가 CCTV로 시선을 돌린다.

사무실에선 가게의 내부와 외부 곳곳을 볼 수 있었다.

감히 흑곰파의 세력인 비너스에서 부장들을 공격하고 있다니.

그렇다면 이것은 흑곰파에 대한 도전이라 볼 정도의 사건이었다.

­조... 조직이 아닌 것 같은데용...­

한 인물이 눈에 들어온다.

흑곰파에서도 가장 싸움 실력이 뛰어난 놈들을 데려오려 얼마나 공을 들였던가.

데려온 세 놈은 이종격투기 대회까지 나가 본 놈들이다.

하나하나가 성인 남성 서너 명은 상대가 가능하다.

그런데 고작 한 놈에게 샌드백처럼 터지고 있었다.

그놈은 이미 정신을 잃고 넘어진 부하들을 하나하나 일으켜가며 두드리고 있었다.

죽이지만 않았을 뿐이지 정말이지 독한 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저 상태라면 정말로 죽어버릴지도 모를 일.

저런 갑툭튀가 어디서 튀어나왔다는 말인가?

정말로 타 조직에서 꼬장을 부리기 위해 보낸 걸까?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허술하지 않은가?

비록 엄청나게 잘 치는 놈인 것 같기는 하지만.

“이런 씨발! 웨이터놈들은 뭐 해! 저 새끼 안 잡고!”

웨이터중 절반은 흑곰파에 들어오고 싶은 조폭 꿈나무들이다.

그런 놈들이 저런 상황에 그저 구경이나 하고 있다니.

­그... 그게. 덤비면 똑같이 만들어 준다고 해서... 그리고 손님 대접이 이래도 되냐면서... 책임자를 불러오라는데... 어떻게...­

“하아... 씨발.”

거칠게 전화를 끊은 권혁수가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눈을 굴리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뭐 해! 노는 놈들 따라와!”

권혁수가 으르렁거리며 밖으로 향하고 그 뒤를 웨이터들이 뒤따랐다.

정문을 열고 나오자 안절부절못하는 비너스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고작 한 놈인데 저러고 있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을 지경.

하지만 막상 부하들의 모습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린다.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떡이 되어 있고, 둘은 나자빠져서 가쁜 숨만 내뱉고 있었다.

한 놈은 멱살이 잡혀 뺨을 얻어맞고 있는데 소리 한 번 살벌하게 찰지다.

쫘악. 쫘악. 쫘악.

이미 정신을 잃은 놈을 비 오는 날 먼지 날 때까지 때리려는지 신명 나게 손바닥을 마찰시키고 있었다.

그러던 놈의 시선이 이제 막 나온 권혁수에게로 향한다.

“책임자?”

움찔.

‘쓰... 쓰벌... 눈빛하곤...’

권혁수는 직감했다.

저놈은 사람 한 둘만 죽여 본 놈이 아니라고.

전신에서 뻗어 나오는 살기는 누구라도 단번에 느낄 정도로 오싹하다.

이런 놈이 호의로 이곳에 왔을 턱이 없다고 장담했다.

‘도대체 어디 놈이야?’

100kg이 넘는 성인 남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괴력.

실로 범상치 않다.

“그... 그렇다. 크흠... 흠... 누가 보냈냐? 여기가 흑곰파 관리지역이라는 건 알고 있지?”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한 권혁수의 표정.

“아니, 무슨 고급룸빵이라는 곳이 손님대접을 이따위로 해?”

“손님...?”

주차장에게 듣기는 했지만, 정말 손님이라도 되는 양 지껄이는 놈.

“그럼, 여기에 술 마시러 오지. 사람 패러 올까? 왜 자꾸 개소리들을 지껄여?”

떡대 한 놈을 들고 있던 강인한은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마음 같아선 정말로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

이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CD기에서 현찰까지 찾아 이 곳으로 왔다.

그런데 다짜고짜 반말에 주먹질까지 해 오는 통에 손을 쓰고 말았다.

강인한이 주머니에 손을 쑤욱 집어넣어 쥐고 있는 것을 허공에 뿌렸다.

신사임당 뭉치가 흩뿌려지며 떨어져 내린다.

척 보기에도 백장은 되어 보이는 심사임당이 뿌려지고.

내리는 빗줄기에 애처로운 모습으로 젖어간다.

오만 원 권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일순 탐욕이 어리지만, 그것을 줍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다.

“우선 선불.”

그 모습을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던 권혁수.

‘씨발. 진짜 손님인가?’

큰 손 중에도 3세들은, 기행을 벌이는 놈들이 더러 있었다.

이번은 도가 좀 지나쳤지만.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수상하기 그지없다.

저 살기와 싸움 실력은 큰 손이라 보기에는 상당히 미심쩍었다.

‘쯥.....’

손님은 손님.

일그러지는 얼굴을 가까스로 영업용 미소로 바꾼다.

아무리 권혁수가 깡패라도 비너스를 운영하는 실세.

처세술 정도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제대로 익히고 있었다.

“아... 우리 부장들이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꾸벅.

권혁수가 허리를 숙였다.

“뭣들 해! 손님 안 모시고!”

권혁수의 고함에 눈치를 보던 웨이터 중 하나가 황급히 나와 강인한에게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노빠꾸입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제야 들고 있던 덩치를 옆으로 휙 던진 강인한.

노빠꾸가 강인한을 안내하며 비너스로 들어가자 권혁수가 눈을 부라렸다.

“돈 안 줍고 뭐 해? 삥땅치지 말고 제대로 모아서 가져와!”

권혁수도 으름장을 놓고는 몸을 돌려 비너스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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