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2. 사냥꾼.(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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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44)
노빠꾸가 강인한을 룸으로 안내하고 주문을 받고 나오자 카운터에 팔을 걸치고 있던 권혁수가 손짓한다.
“분위기 어때?”
“헤헤헤~ 잘 풀어줬습니다.”
“자주 드나들면서 다른 쪽 놈인지 잘 알아보고.”
“네.”
“그리고 정실장.”
“네~”
“그 새끼가 뿌린 돈은 일단 가지고 들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한 번 손에 들어온 돈은 나가는 법이 없음을 말하는 거다.
“호호호~ 그걸 모를까 봐요? 아예 비상금까지 쫙쫙 뽑아 올 테니까 노여움 푸세용~”
텐프로의 마담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마담 중에도 확실히 서열은 있다.
정실장이 마담 중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텐프로 에이스 출신으로 남자다루는 것은 누구보다 뛰어난 인물이다.
당연히 사내들의 감정을 읽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권혁수의 기분이 똥창에 처박혔다는 것쯤은 알고도 남는다.
정실장이 튼실한 골반을 흔들며 룸으로 향하자 권혁수가 입맛을 다신다.
파릇파릇한 영계는 아니지만 몸에 배인 섹기가 절로 심금을 울린다.
“쩝... 쌍년... 방댕이 흔드는 것하고는...”
남자를 잘 다루는 것만큼 따르는 아가씨들도 많다.
쌍 팔 년도라면 좆 집으로 쓰며 기둥서방을 톡톡히 했을 터인데 요즘 세상이 그렇게 쉽지 많은 않다.
그러다 보니 괜히 쑤시지 못하고 이렇게 입맛만 다실 수밖에.
아직은 쓸모가 많은 년 이니까...
***
엔틱한 인테리어로 고풍스러운 느낌의 룸.
룸 안에는 룸빵에는 당연히 있는 노래방 기계조차 없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밴드를 추가로 불러야 했고, 밴드비용과 팁을 주자면 그 돈도 적잖이 나간다.
빈티지한 엔틱도어가 열리며 화사한 외모의 정실장이 들어온다.
말아 올라간 입꼬리와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
풍기는 분위기로 삼십 대는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워낙에 관리를 잘한 탓인지 많이 봐줘야 이십 대 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비처럼 사뿐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정실장.
“안녕하세요. 정실장이라고 해요.”
강인한의 시선이 정실장에게로 향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줄줄 흐르는 섹기.
뇌기의 열기에 달아오른 강인한의 눈에는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으로 보인다.
끄덕.
강인한이 열기를 억누르며 그녀를 주시했다.
“오빠가 입구에서 부장님들 떡으로 만든 사람이구나?”
첫 인사와는 달리 짧아진 혀로 말을 내뱉으며 자연스럽게 자리에 착석한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며 종이봉투에 담긴 현찰을 올려놓는다.
손님을 대할 때 적당히 시선을 마주치며 리드를 하지 않는다면 만만하게 보인다.
그녀의 시선은 적절하게 강인한의 눈을 주시했다.
‘흐으응?’
강인한과 눈이 마주친 정실장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인사를 건넬 때는 몰랐는데 막상 지척에서 눈빛을 마주하니 절로 시선이 떨어지려 한다.
둥근 인상에 순진하게 생긴 호감형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눈빛은 너무나 강렬했다.
그리고 가까이에서 본 몸은 비에 젖어 잔근육들이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왔다.
운동만 하는 헬 창들도 이 정도로 잘게 쪼갤 수 있을까 싶은 몸.
꿀꺽.
한눈에 보기에도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 덩치 큰 부장들이 어쩌다 그렇게 떡이 되었는지 알고도 남을 것 같았다.
“여기는 손님한테 반말하는 게 컨셉인가 봐?”
자연적으로 강인한도 말이 짧아진다.
상대의 말이 짧으면 같이 해 주는 것이 도리.
“호호홍~ 오빠~ 농담도 참~ 그러게 왜 비를 맞으면서 걸어왔어~”
“뭐, 예쁘면 상관없나?”
“어머!? 지금 나보고 한 말이지? 이 오빠 보는 눈 있네? 호호호~ 술은 어떻게 넣어 줄까?”
서로 대화의 주제가 어긋나고 있지만 중요하지는 않다.
그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관건.
정실장의 말에 강인한이 테이블에 카드를 툭 하고 던졌다.
“술은 알아서 넣고, 두 군데 들려서 1200 뽑아와.”
굳이 두 군데라 한 것은 현금 인출기의 한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
이 남자가 호구가 될지, 아니면 진짜 큰 손일지는 두고 보면 될 일이고.
일단 돈을 쓰는 것에 거리낌 없는 모습은 합격이다.
그렇다면 이 쪽에서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보답인 것.
“초이스 할 거야? 아니면 내가 추천해 줄까? 응?”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실장의 눈은 뜨겁게 빛난다.
순박한 얼굴에 숨어 있는 야성.
잊었던 성욕이라는 것이 올라오기라도 하는지 절로 침이 넘어갔다.
슬쩍 내려간 시선에 묵직해 보이는 가운데 다리의 흔적이 보인다.
비에 젖었기에 눈에 넣을 수 있는 존재감.
저 물건이 깡패 양아치들의 인테리어가 아니라면 그야말로 대물이다.
반듯한 굴곡으로 보아 자연산이라는 것에 확신을 한다.
“뒷방 보는 애들 돌리려는 건 아니지?”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해. 나 정실장이야~ 정실장.”
강인한은 오늘 정실장을 처음 본 것이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이 타오르는 욕구를 풀 상대가 필요한 것뿐이다.
죽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짓을 하고 있지만, 백 프로 욕구만으로 이곳을 찾은 것은 아니다.
보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전설이라 일컬어지는 흑곰파 오대석이 애지중지하는 텐프로의 염탐도 포함되었다.
오대석이 인간이 아닐 확률은 지극히 높다.
그놈인지 아닌지는 만나게 된다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터다.
구상두도 마주쳤을 때, 직접 손을 쓰려하지 않았다.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인간사회의 룰대로 행동하겠지.
‘그저 확인만 하는 거다.’
그날을 떠올리자면 절로 몸이 떨려온다.
수지나 마마 또한 경계를 할 정도이니 어느 정도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분노로 일을 그르치는 트롤짓은 하지 않는다.
그저 강북 강일파의 보스이고, 술을 마시고 여자를 먹으러 왔을 뿐이다.
존재감을 내보이고 마주칠 수 있기만 해도 된다.
“그건 가지고나가.”
“호호호~ 알겠어~”
강인한의 말에 정실장이 재빠르게 봉투를 집어 들고는 일어났다.
푸짐한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밖으로 향하는 정실장.
“실장도 같이 마시면 좋고.”
“진짜? 파릇파릇한 애들 많은데?”
나가려던 상태로 멈춰 고개를 돌린 정실장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린 애들에게 꿀리지 않는다고 자신하지만, 결국은 세월의 무게를 견딜 수는 없다.
확실히 여자나이 서른 중반이면 관리도 쉽지 않았다.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노력해서 지금의 체형을 유지하는 것.
화류계 생활은 일반인보다 배는 빠르게 노화가 찾아온다.
아무리 조절을 한다 해도 마셔야 하는 독한 술.
그로 인한 수면부족.
접대와 원치 않는 성 생활은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조금만 방심해도 금방 주름이 생기고 피부는 푸석해진다.
그 것을 노력으로 치환했다.
도도한 이미지의 그녀이지만,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여성 누구라도 환영할 일이다.
그 것이 저물어가는 꽃이라면 더더욱.
물론, 저물어가는 꽃이라기엔 그녀에게 목매는 고객이 줄을 서 있긴 하지만.
“편한 옷도 좀 준비해 주고, 너무 젖었어.”
룸을 나온 정실장이 노빠꾸를 부른다.
“예, 누님.”
“예린이 준비시키고, 승아 대기하라고 해.”
정실장의 말에 세팅준비를 하던 노빠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보조 말고 네가 직접 가서 돈 찾아오고. 아! 손님이 입을 옷도 좀 준비해 줘.”
평소보다 열성적인 정실장을 보며 노빠꾸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네, 누님.”
노빠꾸가 경쾌하게 대답하고 보조웨이터에게 세팅을 맡기며,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화장품을 꺼내 화장을 다시 한 번 손을 본다.
비너스의 탑 마담답게 오늘 같은 날에도 그녀의 손님은 다섯 개나 된다.
하지만 유독 강인한이 신경 쓰였다.
“언니, 저 왔어요.”
“저도...”
“응응~ 일단 예린이 들어가자. 승아는 기다리고 있어. 다른 데 들어가지 말고.”
“넹~”
둘 다 다른 테이블을 보고 있었지만 과감하게 뺐다.
어차피 진짜 큰 손이 아니라면 따블 따따블 정도는 텐프로에서 흔하디흔한 광경이다.
“자 들어가자.”
***
한국 사람들, 위스키 하면 유난히 발렌에 목을 맨다.
그중에서도 압도적 고급양주로 취급되는 것은 30년.
물론 좋은 술이기는 하지만 이런 업소에서 200만원씩 주고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도 항상 상위 룸빵에는 꼭 이 술을 최고로 치고는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적으로 비싼 술이라는 인식이 생겨 버리고,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는 당연히 마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면세점에서 소장용으로 한 번 사봤을 뿐, 내 돈을 내고 룸빵에서 마셔본 기억은 없다.
당연히 룸빵은 여러 곳 다녀본 경험이 있지만 텐프로에 온 것도 처음.
정실장이 아가씨를 데리고 들어오자, 그 뒤로 웨이터가 술을 들고 들어온다.
다소 노출이 있는 민소매 원피스 차림의 여성이 상석인 내 옆으로 앉는다.
“안녕하세요. 예린이라고 해요.”
정실장이 테이블의 한 면을 차지하고 앉으며 술을 손으로 가져간다.
“오빠~ 오픈 할게.”
고개를 끄덕이자 면세점에서도 30~40만원에 달하는 200만 원짜리 발렌 30년을 능숙하게 오픈한다.
“우선, 오빠 한 잔 받으세요.”
정마담이 술을 따르는 것에 맞춰 옆의 아가씨가 어느새 반듯하게 세팅을 마쳤다.
쪼르르.
“저도 한 잔 주세요.”
정마담의 술잔에 꽉꽉 눌러 담아 주자 옆의 아가씨도 잔을 내민다.
“오빠, 저도요.”
잔을 전부 채우자 건배를 하고 독하디 독한 위스키를 목구멍으로 넘긴다.
양주 특유의 뜨거움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배까지 뜨끈해진다.
정실장과 예린을 바라보자 그녀들도 첫 잔이라 그런지 단숨에 목으로 넘겼다.
동시에 뜨거움을 식히려 각자의 음료나 물을 들이키는 모습.
아무리 비싼 양주라도 그녀들에게는 억지로 마시는 독주일 뿐이다.
“오빠, 예린이 어때요? 혹시 마음에 안 들면 말해~ 한 명 더 대기시켜 놨어.”
“아잉... 오빠~ 저 별로에요?”
“그냥 밖에 있는 애도 데려와.”
“어? 정말?”
“기왕이면 둘보다 셋이 낫잖아?”
“오빠, 진짜 나도 나가지 말라는 거야? 깔깔깔~”
“그럼, 농담으로 알았어?”
“흐응~ 그래도 한 번씩은 내 보내 줘야 해. 애들도 그러고.”
“그래? 별로 마음엔 안 드는데. 그런데 왜 자꾸 오빠라고 해? 누나 같은데?”
“어머! 오빠~ 어딜 봐서 우리 실장님이 누나처럼 보인다는 거야~ 여자한테 정말 실례야~ 우리 오빠 못 됐네~?”
농을 주고받으며 정실장이 인터폰을 들었고, 술을 세팅한 웨이터가 아닌 처음의 노빠꾸가 헐레벌떡 들어온다.
“네. 부르셨습니까.”
“승아도 들어오라고 해.”
“누... 누님? 그럼, 4번에서 클레임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들여 보네.”
“네.”
노빠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종이백을 건넨다.
정마담이 이를 받아 보고는 나에게 전해준다.
종이백에는 청바지와 티셔츠, 운동화와 양말 속옷까지 들어있다.
그리고 노란 신사임당 한 뭉치와, 세종대왕 여섯 뭉치.
나는 신사임당 열 장을 꺼내 노빠꾸에게 건넸다.
센스를 보인 그에게 이 정도는 줘도 아깝지 않다.
“감사합니다! 형님!”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데 졸지에 형님이 되었다.
“술 몇 병 더 넣어 주고, 얼음도 미리 넣어 줘요. 그리고 부를 때까지 들어오지 말고요.”
처음부터 공손했던 노빠꾸에게는 말을 올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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