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 2. 사냥꾼.(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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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냥꾼.(51)
고정욱의 지난 15년은 지옥이었다.
오로지 복수에 눈이 멀어 끊임없이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목숨이 여벌이 아님에도 죽음의 순간을 몇 번이나 겪었다.
그러던 그의 품에 날아든 강인한이라는 존재는 그가 조금이라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아들이 제대로 성장했더라면 얼추 강인한과 비슷한 또래일 것이다.
큰일을 겪고 그 충격에 기억을 잃었던 소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소년에 대한 동정을 외면하고 괴이를 쫓던 그의 인생은 완전히 변해 버렸다.
모든 것을 잃고 그에게 남은 것은 분노뿐이었다.
오로지 한 가지 목표로만 달려온 지난 15년.
그런데 강인한으로 인해 그의 굳어진 마음에 한 줄기 금이 생겨 버렸다.
복수를 다짐하는 강인한을 보며 걱정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내밀었다.
“으음...”
그리고 문자를 받고 안가에 도착한 고정욱의 얼굴은 처참하게 변해 버린다.
살인.
저들이 사냥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냥꾼들이 그리 깨끗하지 않다는 것 또한.
하지만 자신은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만 나아갔기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강인한이 행한 것은 살인이 분명하지만 살인을 하지 않았다면 역으로 강인한이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강인한의 초월적인 육체 능력.
뛰어나다곤 생각했는데 전문가 둘을 처리한 모습에 불안한 마음도 든다.
행여, 그 능력을 안 좋은 쪽으로 사용하지는 않을까.
힘에 도취되어 이런 놈들처럼 변하는 것은 아닐까.
고정욱의 마음은 언제부턴가 아버지란 이름의 마음을 닮아가고 있었다.
“후우... 일단 이곳을 처리하고...”
이곳의 일을 수습하고 또 들려야 할 곳이 있었다.
강인한의 문자에 적힌 것을 보자면 이놈들은 죽어 마땅한 놈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그의 성정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부디...’
연락되지 않는 강인한을 찾아 나서고 싶지만, 일의 수습이 우선이기에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
“이런 씨발!”
“그래. 정말 씨발이다.”
“어이가 없네.”
“그래도 그놈의 실험 자료는 미리 받아서 다행이야.”
“이 머저리야! 이 실험을 우리가 직접 할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
“리엔님의 은총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어어? 아아악! 짜증나네?”
두 쌍둥이는 말을 주고받으며 씩씩거렸다.
정신을 유지하고 제대로 명령받는 요괴를 누구보다 빨리 만들어낸다면 리엔의 총애를 듬뿍 받았을 거다.
조직은 연구소의 연구 이외에 외부에서의 연구는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들이 성과를 내려면 희생양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희생양 역할을 하던 제임스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 버린 것이다.
“사냥꾼 고정욱.”
“그래. 10년 넘게 사냥꾼으로 활동하고도 무사한 인간이지.”
“정신력이 대단한 건가? 이놈은 실험재료로 우수하겠는데?”
“그런 그래. 그런데 이놈이 제임스를 죽인 놈이잖아?”
“그 머저리 놈은 왜 갑자기 같은 사냥꾼을 공격한 거야?”
“의뢰였겠지.”
“그런 의뢰받은 것 자체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사건은 의문스러운 점이 많았다.
제임스가 의뢰받아 사냥꾼을 공격한 것.
그리고 제임스의 사무실에서 발견 된 마물화된 요괴.
“그런데 왜 고정욱의 행적과 사건이 따로 노는 거야?”
“멍청아! 그건 일을 벌인 놈이 다른 놈이겠지!”
“어? 그러네?”
“어? 정말이네? 나 천재인가?”
“아무래도 찜찜하다. 제대로 파 봐야 할 것 같아.”
“동의함.”
쌍둥이 훈과 현은 자신들을 주시하는 실루엣을 느끼지 못하는지 연신 떠들어 대고 있었다.
***
문이 열린다.
그리고 낯선 세 명의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는 나사장과 조이사의 모습도 모인다.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가운데, 그 양옆으로 서른 중반 정도로 보이는 둘이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이 룸으로 들어서며 본질이 보이기 시작한다.
희롱을 멈춘 두 주먹이 굳게 쥐어지고 흐르는 땀이 손바닥을 가득 적셨다.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직접 보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둘이 이야기하도록 하지.”
묵직한 음성에 양 옆의 사내 둘이 꾸벅 인사하고 돌아 나간다.
어정쩡하게 서 있었던 나사장과 조이사도 들어오려던 걸음을 멈추고 밖에 대기했다.
드르륵.
보조의자를 스스로 당겨 테이블의 가운데 옮겨 놓고는 털썩 앉는 사내.
바로 이 자가 흑곰파의 보스 오대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흑곰파.
사내를 보고 나서야 왜 조직의 이름이 흑곰파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정염귀는 아니라는 것.
오대석의 시선이 슬쩍 정실장을 향했다.
묘한 눈빛을 보이는 오대석.
그를 바라보는 정윤주의 시선도 잘게 떨리고 있다.
그러더니 오히려 내 손 위로 손을 겹쳐 꼬옥 움켜쥔다...
‘정체를 아는 건 아닌 것 같고, 과거의 연인 그런 건가?’
예린과 승아도 비너스의 실제 주인의 등장에 긴장한 듯 시선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정실장은 요즘 살 만한가 보네? 신수가 훤해.”
정실장을 향해 낮게 읊조리는 말.
오대석의 시선을 슬쩍 외면하는 정실장의 눈동자를 보며 나름 1승을 챙겼다.
“그런... 가요... 두 분이 이야기 나누시는데 애들 데리고 나가 있겠습니다.”
정실장이 예린과 승아에게 눈치를 주는데 오대석이 이를 막는다.
“그냥 있어. 귀한 분께서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묵직한 오대석의 음성에 일어나려던 정실장이 머뭇거리며 엉덩이를 소파에 다시 붙인다.
오대석의 말이 이어졌다.
“그쪽이 새로운 강일파의 보스라고?”
묵직한 오대석의 음성과 무심한 눈동자가 나를 훑는다.
“강인한입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흑곰파의 영향력은 강남의 화류계에만 있지 않다.
강일파처럼 주류유통부터 해서 크게는 알아주는 엔터사업도 하는 거대 조직.
아무리 강북최고의 조직이 뒤에 있다고 해도 함부로 하기는 조금 꺼려진다.
그래서 반말을 지껄임에도 존대를 해 주었다.
들리는 바로는 나이도 사십 중반이라고 하니 억울할 건 없다.
그는 굳이 자신의 소개도 하지 않았다.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소한 오해로 시작이 된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맙고. 그래도 조직원들을 끌고 온 것은 쉽게 생각할 수가 없겠는데?”
“음... 그건 저도 예상을 못 했네요. 입구에서 일이 있어서 혹시 몰라 연락을 했더니 전부 끌고 올 줄이야...”
“그런 건가?”
“설마, 대한민국에서 흑곰파에 일부러 시비를 걸러오는 조직이 있겠습니까?”
나름 기분 좋은 말도 하나 건네준다.
눈앞의 오대석 뿐이라면 조금은 배짱을 부려볼 만도 하지만 함께 들어왔던 이사 두 놈도 인간이 아니었다.
이런 놈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놈들의 본 모습은 곰과 닮은 모습이었다.
웨어 비스트.
수지와의 이런저런 대화에서 나왔던 단어가 떠오른다.
간부들이 저런 이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당연히 일반인들로 구성된 조폭들이 당해낼 수는 없겠지.
“껄껄걸~ 그건 그렇지. 정말 술만 마시려고 온 건가?”
“마침 비너스가 텐프로 중에 최고라고 들어서, 순수한 마음에 돈 쓰러 온 것은 확실합니다. 마무리하고 가려는데 상무라는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네요.”
“으음... 그건 미안하군. 장사하면서 손님을 가려서야... 그래, 우리 쪽에서 실수도 있고 원하는 것이라고 있나?”
그는 정말로 무언가 보상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 말은 진실임이 분명하니 말이다.
다만, 밑바닥에는 인간에 대한 멸시가 섞여 있다는 것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업장하나 주시지요.’ 이런 말로 싸움을 부추길 수는 없었고.
가장 합당한 것은 ‘한 잔 거하게 쏘세요.’ 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슬쩍 정실장과 예린 승아를 보니 상당히 기대하는 눈초리다.
다만, 오대석 앞인지라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와~ 역시 흑곰파 흑곰파 하는 이유가 있었네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타 조직에서 업장에 침범한 일인데 오히려 보상까지 해 주시려는 것을 보니 말입니다.”
그 말이 기분 좋았는지 오대석이 호탕하게 웃는다.
“하하하~ 구상두를 밟고 올라갔다고 해서 괴팍할 줄 알았더니, 기분 좋은 말도 잘하는군. 적당한 보상은 당연히 할 생각이야.”
말을 하는 오대석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는 싸늘함이 배어 있었다.
그것은 오대석도 구상두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말이겠지.
“그럼, 여기 있는 정실장하고 두 아가씨를 제가 데려가도 될까요?”
“어...?”
보상이라는 것이 그런 쪽으로 튈 줄은 몰랐는지 잠시 멍한 표정의 오대석.
하지만 본인이 꺼낸 말이 있다 보니 쉽게 거부하긴 뭐한 모양이다.
“정실장은 빛도 없다고 하고 이제는 텐프로에서 벗어나고 싶다 네요. 예린이랑 승아도 마찬가지고. 저 둘은 빛이 있다고 하던데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딴말을 하기 전에 재빠르게 선수를 친다.
오대석의 눈이 정실장에게로 향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정말, 오대석 여자였나 보네?’
분위기로 보아 한 때의 연인 정도였던 것 같지만.
으레 있는 일이다.
화류계 여자들이 나이를 먹다 보면 버려지기 마련이다.
이십대 초반의 탱탱한 애들이 주변에 널렸는데 서른 넘은 여자를 계속 둘 이유가 없었던 거겠지 싶다.
내가 먹어 본 결과, 정말 괜찮은 여잔데 말이야.
나랑 하다보면 회춘도 할 것이고.
전성기의 모습을 금방 찾은 거다.
그 때가 기대가 된다.
“으음...”
“어? 형님께 곤란한 부탁인가요...?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형님이라는 말을 섞자 오대석의 표정이 살짝 변한다.
“크흠... 흠... 뭐, 동생이 그걸 바란다면 그 정도야. 서이사에게 말해 놓도록 하지.”
이런 부분을 보자니 인간이든 아니든 한결같은 부분이 있는 모양이다.
“정말 화통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오대석에게 잔을 건네며 술병을 들었다.
오대석도 강일파보스에게 형님소리 듣는 것이 싫지는 않았는지 자연스럽게 잔을 내민다.
“정실장하고 너희들은 잠깐 나가 있어.”
술을 받아들며 오대석이 말하자, 정실장이 아가씨들을 데리고 룸을 나갔다.
세 여자가 나가자 잠시 정적이 흐르는 룸 안.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오대석이었다.
“구상두는 동생이 묻었나?”
그의 물음에 나는 어떻게 대답할까 머리를 굴렸다.
지금까지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갔지만, 지금 오대석에게서 보이는 것은 의심.
무엇에 대한 의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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